홧병 도지는 광복절
내년이면 광복 80주년을 맞는다. 해방된 지 79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제대로 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정은커녕, 그동안 습관적으로 하던 면구스런 언사도 중단한 채, 종군위안부와 강제 노역의 역사를 부인하고, 심지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이젠 대놓고 망언과 혐한(嫌韓)으로 대응한다. 참 위험하고 고약한 이웃이다.
곤혹스러운 존재는 일본만이 아니다. 우리 내부의 현실은 더욱 당혹스럽다. 단톡방에 올라온 독립기념관 새 관장에 대한 임명철회 구글폼에 즉각 서명한 이유다. ‘독립기념관을 일제강점기념관으로 만들려는거냐’라고 탄식하는 시민적 분노가 3.1만세운동 전야 분위기다. 게다가 새로 임명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국사편찬위원원회 위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등의 인물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한결같이 헌법이 규정한 임시정부 법통을 부정하고, 일제 강점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올해 광복절은 ‘역사전쟁 시즌2’를 맞고 있다. 현 정권의 대일외교는 국익과 국민의 자존심을 저버린지 오래다. 그동안 대통령을 비롯한 외교부는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앞장서서 털어주고, 일본의 낯부끄러운 입장을 마사지하기에 급급하였다. 오죽하면 광복회장은 “인사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용산 어느 곳에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였다. 2015년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다’는 국민적 역풍에 부딪쳐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그 전면에 섰던 뉴라이트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해방 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친일 청산이었다. 정부 수립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결국 당사자들의 반발과 방해로 실패로 돌아갔다. 뼈아픈 것은 친일 부역자들에게 준엄한 심판은커녕, 면죄부를 주었고, 친일 세력과 그 후손이 지금껏 대한민국 지배 세력의 일부가 되어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친일 청산의 과제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최근에 벌어지는 극우세력의 건국절 논란에서 보듯 친일 청산은 지금도 계속되어야 할 시대정신이다.
최근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에 대한 역사적 논란은 국가의 자기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국 대법원은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 책임을 판결하였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이 거부하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이유로 전범기업을 대신해 제3의 별도 재단을 만들어 배상하겠다는 해법을 제시하였다. 재단에는 애꿋은 한국 기업만 참여한다.
일본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1945년 일본 패전 당시, 조선인 군무원 수는 육군 7만 424명, 해군 8만 4,483명으로 약 15만 5천 명에 이른다. 또한 징병 조선인은 20만 9,279명이고, 징용 조선인은 72만 4,787명이다. 1945년 현재, 모두 110만 명이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것이다. 이들은 일본인의 입장에서 전쟁을 수행하거나, 지원해야 했다. 그리고 일본과 함께 종전 패배의 굴레를 뒤집어 썼다. 그때 한반도 인구가 지금 남한 인구의 절반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통계만으로도 우리 민족의 고난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2023년 1월,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추천서를 제출하였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2024.7.27.)에서 일본 정부 주유네스코 대사는 “한반도 출신 노동자를 포함해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 전시 전략 및 시설을 만들기까지 한국과 긴밀히 대화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발언에 의구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일본 정부는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때 ‘조선인 강제노역 등 군함도의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했던 약속도 7년 넘게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한국 외교부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찬성표를 던졌다. 한국의 저자세 외교가 다시 한번 굴욕외교를 낳은 것이다. 역사적 사실마저 부정하는 일본의 후안무치와 안하무인은 우리 정부가 용인한 결과다.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친일 역사가 계속되는 한 외교적 참사는 반복될 것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잠을 설치는 것은 열대야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 세대가 겪는 홧병은 반드시 다가올 심판으로 귀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