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2일(금)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임만호 선교사님께서 사역하고 계시는 희망학교에 갔다. 희망학교가 세워지기 전에 희망학교 근처 마을은 빈민촌 수준이 아니라, 거의 난민촌 수준으로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희망학교가 세워지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집을 세워서 현재는 무척 쾌적한 환경이다.
희망학교에는 현재 많은 캄보디아 학생들이 다니고 있고, 다른 현지 학교와는 다르게 컴퓨터, 미술, 체육, 음악과 같은 과목도 가르치고 있다. 학교 옆에는 생명샘교회도 있어서 그곳에서 학생들이 채플시간에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교회건물 2층과 3층은 학생들의 기숙사로 쓰여져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자고, 씻고, 먹는 것에 어려움이 없도록 되어있었다. 희망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고, 또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있다고 하니, 캄보디아에서 학교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우리가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어서, 우리가 중간에 잠시 들어가서 학생들 앞에서 워십과 찬양을 하였다. 학교 건물 옆에는 중고등학교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공사중인 건물 앞에서 지금 지어지고 있는 이 학교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고 이 땅이 복음화 되는것에 사용될 수 있게 해달라고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점심을 먹고 재래시장에 들러서 구경을 하였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고 예쁜 것들이 많아서 여자 청년들은 사고싶은 것들을 잡고 가게 주인에게 흥정을 하기에 바빴다. 저마다 재래시장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다 사고나서 망고 말린 것을 파는 건망고 공장에 들렀다. 우리가 캄보디아에 간 시기가 망고가 제철인 시기라서 값싸게 건망고를 살 수 있었다
뚤 슬렝 수용소 박물관을 방문했다. 어제 방문했던 킬링필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인데, 이곳은 크메르 루즈 정권 당시에 잡혀온 사람들이 킬링필드에 가기 전 수감 되어 있으면서 잔혹한 고문들을 받았던 수용소이다. 밤이되면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을 트럭에 싣어 킬링필드에 데리고가서 무차별적으로 쥭죽였다. 이곳 또한 킬링필드와 마찬가지로 캄보디아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이 남아있는 공간이었다. 수용소에는 사람들을 고문할 때 썼던 도구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사람들을 고문한 방법과 같은 것들이 자세하게 그림으로 기록되어있었다. 또한 수용소에 수감되어있었던 사람들의 사진도 한 장씩 다 있어서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볼때마다 참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뚤 슬렝 수용소를 다 보고나서 저녁을 먹은뒤, 이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프놈펜 공항으로 갔다. 프놈펜 공항으로 가는길에 버스에서 프놈펜 거리를 바라보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일주일동안 캄보디아에 있으면서 진심으로 캄보디아 땅과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는 내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다.
처음에 캄보디아를 간다고 했을 때는 우리가 무언가를 그들에게 해주고,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러 간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캄보디아 현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땅을 밟게 되면서, 이곳에 와서 우리가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에게 큰 사랑을 주었고 도움을 주었고 우리가 얻고가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다음번에 캄보디아를 간다면 그때는 캄보디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더 많이 해보고싶다. 노방전도 사역도 더 많이 하고싶고, 현지에서 사역하는 친구들과도 더 친해지고싶다. 편한 호텔도 좋지만 현지인 집에서 숙박하면서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
한국에 왔지만 우리가 비전트립을 통해서 받았던 감동과 은혜,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캄보디아를 위해서, 또 이 세계 열방의 복음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