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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토론방 고려초기 "태자", 생존하는 왕자의 칭호였을까?
大欽茂 추천 0 조회 680 14.08.26 21:23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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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8.27 08:57

    첫댓글 광종이 그의 아들 왕주(=경종)를 책봉할때 "왕태자 내사제군사 내의령 정윤"의 작을 내린다. 태자와 정윤 칭호가 동시에 내려지고 있다. 이것은 태자 칭호가 일반 왕자의 사후 추존 칭호로 활용되다보니 왕위계승자의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던 것 같다.

  • 14.08.27 13:40

    설득력 있는 견해입니다. 하지만 왜 왕건은 후계자를 '태자'가 아닌 '정윤'이라는 호칭으로 정한 것일까요?

  • 14.08.27 19:03

    태자가 많아서 구별을 위해 그랬겠지요. 이것도 왕건 대에 왕권이 강하지 못했던 방증일 수 있습니다. 왕권이 약하고 호족이 강하여 왕건의 여러 부인들의 힘이 강하다면 주요 호족들의 외손자-외조카에게 태자 칭호가 남발되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대호족이 힘이 꺾이는 광종 이후에는 태자 호칭이 남발되는 예가 사라집니다.

  • 14.08.27 20:22

    윗글에서 밝힌 것처럼 태자라는 칭호를 왕자들 사후 추존칭호로 활용했다면 태자라는 칭호가 생존하는 왕위계승자의 칭호로써 신성성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기에 정윤이라는 별도의 칭호를 관하였다 생각되어지네요.

    충주원부인(=신명순성태후) 유씨의 장남 태자 태는 태조 당시에 일찍 사망한것으로 보이는만큼 사후 00태자로 추존된 것으로 본다면 대흠무님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보이네요. 아니면 태자칭호가 군칭호를 가진 국왕의 형제들에게 가작 되는 칭호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어보이네요.

  • 14.08.27 20:18

    @미주가효 미주가효님 대흠무님의 글을 읽어보고 다신 댓글인지요. 논지가 벗어났기에...

  • 14.08.28 13:50

    @황상폐하 제 글은 대흠무님께 단 댓글이 아니라 조수아님께 단 댓글입니다. 대흠무님은 '태자' 가 사후 추존용 칭호라고 추정하셨지만 꼭 그에 동의함을 전제로 글을 써야 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흠무님 주장이 가능성은 있다고 보지만 이에 대해서 찬성, 반대 등 별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 14.08.28 13:29

    @미주가효 저는 대흠무님 견해를 보고 태자가 생존시의 칭호가 아니라 사후 칭호라면 굳이 정윤으로 책봉한 이유가 있었을까 의문을 던진 것입니다. 왕건 재위 시에도 태자 칭호가 난립하지 않았으면 태자로 책봉하면 됐지 굳이 정윤이라는 낯선 호칭으로 책봉할 이유가 있을까 해서지요.

  • 작성자 14.08.28 23:56

    @조수아 태조왕건 즉위 중에 왕자 태가 죽자 태자 칭호를 추존 칭호로 활용하게 되다보니 왕위계승자의 신성성이 드러나는 칭호를 찾다가 "정윤"을 붙혔다고 여겨집니다

  • 14.08.29 10:43

    @조수아 제 이야기는 태자가 여럿 있을 상황이라(살아 있는 자에게 붙였든 죽은 자에게만 붙였든간에) 이와 구별되는 칭호를 후계자에게 사용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태자가 생존시의 칭호라 그와의 구별을 위해 '정윤'을 썼다고 보는 게 좀 더 자연스럽겠지만, 설사 태자 호칭이 사후에 사용한 것이라 치더라도 태자 호칭이 남발될 상황에서 정통후계자를 '여러 태자'와 동등한 태자로 호칭하기가 불편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작성자 14.11.27 21:42

    @미주가효 국초에 "태자" 칭호가 사후 추존 칭호가 아니라면 봉군되었던 국왕의 형제들에게 주어진 칭호가 아니였을까요. 태조 당시 "동양군"으로 불리던 효은태자가 혜종이후 어느시점엔가 국왕의 형제로써 태자로 책봉되었다는거죠. 물론 태자가 아들에게 내려지는 칭호라는 관례가 있음으로 무리한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태자칭호가 하나의 작위로 이해한다면 본인의 생각이 전혀 근거없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 16.05.11 10:09

    고려시대(특히 초기)는 정실부인에서 난 왕자 모두 태자라 했습니다.
    그리고, 왕을 계승할 왕자는 정윤이라 불렀습니다.
    또한 정식으로 결혼한 왕비는 태후라고 했습니다. 왕건은 태후가 십수명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 작성자 16.05.17 16:48

    국초에 태자는 추존된 칭호가 아닐까 고민해 보았는데 여러 정황상 생전에 봉군된 왕자들은 "태자전하"로 존칭되었던 것 같습니다. 후비를 태후라고 한 것은 아니구요. 태후로 높혀진 후비들은 그 아들이나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함으로 생전에 높혀졌거나 추존된 칭호입니다.
    후비들은 생전에 "왕후전하" "왕비전하" "궁주전하" "부인전하" 뭐 이런 식으로 존칭되었던 것 같습니다.

  • 16.05.17 17:09

    @大欽茂 약 한달전 kbs역사저널에서 방송한 내용입니다. 다시보기 해보세요. 정윤, 태자, 태후에 대해 정확히 나옵니다.

  • 작성자 16.05.18 12:45

    @마리산 역사저널은 저도 보았는데요. 그기 전문가들도 고려후비칭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더군요. 김창현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태후"는 왕모에 대한 칭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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