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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지킴이 최한실님이 다듬은 우리말
1) 안녕하십니까 -> 잘 지내십니까?
(안녕하셨어요 -> 잘 지내셨어요 / 안녕히 주무세요 -> 잘 주무세요 / 안녕히 주무셨어요 -> 잘(푹) 주무셨어요)
어느날 갑자기 안녕이란 말이 우리말에 끼어들어 토박이말들을 다 몰아내고 말끝마다 안녕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서 첫째로 몰아낼 말로 안녕을 잡았다. 조금만 살펴보면 안녕이란 말이 없을수록 우리말이 살아남을 알 수 있다.
(2) 주방 -> 부엌
(주방기구 -> 부엌살림)
옛날에는 부엌이라 하던지 정지(정지간)라 했다. 그러다가 이런말들을 몰아내고 요즘은 어딜가나 일본말 주방이 자리잡게 되었다.
(3)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입에 발린 감사하다는 말이 뜻깊은 고맙다는 우리말을 몰아내 누구나 입만 벙긋하면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감사하다고 할 모든 자리에 고맙다를 쓰면 된다. 뜻밖에도 요즘은 고맙다고 하면 뭔가가 모자란듯 하고 감사하다고 해야 어른들한테 제대로 말한다고 거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4) 고객 -> 손님
손님이라 할 자리에 어딜가나 고객이란 말이 자리잡았다. 기차에도 고객이고 버스에도 고객이고 물건파는곳에도 고객이고 전화국에도 고객이고 전기회사에서도 다 고객이라 한다. 손님이란 말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일본말 고객을 몰아내고 우리말 손님으로 바꿔야 한다.
(5) 제일, 최고로 -> 가장, 으뜸가는(으뜸으로)
(6) 보통 → 여느
(7) 매일 → 날마다 ( 매달 → 달마다 ) (매해→해마다)
: 모든 매-는 '마다'로 바꿀 수 있다.
(8) (하루) 종일 → 하루내내
(9) 좌우간 , 좌우당간, 좌우지간 → 하여튼, 어쨌든
(10) 좌회전 → 왼돌아 ( 좌측(보행) →왼쪽(걷기) )
(11) 우회전 → 오른돌아 (우측(보행) → 오른쪽(걷기))
(12) 직진 → 똑바로(가기)
(13) 우선 → 먼저
(14) 일단 → 한번, 먼저
(보기 : 일단 가고 보자 -> 먼저 가고 보자, 일단 두고 보자 -> 한번 두고 보자)
(15) 생일 축하합니다 → 난날 (함께) 기뻐합니다
(16) 출발(하다) → 떠남 (떠나다, 길 나서다)
(17) 도착(하다) → 닿음, 이름, 다달음 (닿다, 이르다, 다다르다)
(18) 사실(은) → 참말은, 참으로는, 참일
(이 말은 아예 안쓰면 가장 좋겠어요. 꼭 있어야 되는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저 말버릇이지 않나 싶어요. 외솔님은 "참일"로 바꿔 놓았는데, 제가 보기엔 꼭 쓰지 않아도 좋은 말 같아요.)
(19) 전 → 앞
(모든 "전"은 앞으로 바꿀 수 있다. 6시 5분 전 -> 6시 5분 앞, 역전 -> 역앞, 30년전 -> 서른해 앞)
(20) 시작(하다), 착수(하다) → 비롯(하다)
(21) 오전 → 아침(나절), 새벽
오전 1~4시 → 새벽 1~4시
오전6시 → 아침6시, 오전9시→아침9시, 오전 11시→아침11시
(22) 오후 → 늦은 낮, 또는 뒷낮(1-6시) 밤(7시-12시)
(23) 매번 → (그) 때마다, 차례마다
(24) 가축 → 집짐승
(25) 대신(하다) → 갈음(하다)
나대신-->나를 갈음하여
(26) 유일한 → 하나뿐인
(27) 방법 → 길, 수 (또는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을까? → 좋은 길이 없을까?, 좋은 수가 없을까?, 어떻게 좋게 할까?
(28) 필요 → 있어야(해서)
글쓸 종이가 필요해서 → 글쓸 종이가 있어야(해서)
뭐가 필요한데? → 뭐가 있어야 하는데?
(29) 예상 → ~할 것 같아, ~ 처럼 보인다
많은 비가 예상되어 → 많은 비가 올 것 같아
(30) 세탁 → 빨래
세탁물 → 빨래감
세탁기 → 빨래틀
손세탁 → 손빨래
(31) 비가 그칠 전망이다 → 비가 그칠 것으로 보인다. 그칠 것 같다.
(32) 저지대 → 낮은곳
저지대는 침수가 우려된다. 낮은곳은 물에 잠길까봐 걱정이다.
(33) 해상 → 바다(위)
모든 해상에는 안개가 → 모든 바다(위)에는 안개가
(34) 산간계곡 → 메(산)골짜기
산간계곡 피서객은 → 메골짜기에 더위 비껴온 사람들은
(35) 냉수 → 찬물
(36) 온수 → 따뜻한 물, 다순 물, 더운물
(37) 폐 → 허파
(폐결핵 → 허파결핵)
(38) 신장 → 콩팥
(39) 심장 → 염통
심장이식 → 염통바꿔달기
(40) 혈관 → 핏줄
41) 혈액순환 → 피돌기
(42) 적혈구 → 붉은피톨
(43) 백혈구 → 흰피톨
(44) 췌장 → 이자
(45) 비장 → 지라
(46) 유방 → 젖가슴
(47) 장 → 창자
대장 → 큰창자
소장 → 작은창자
(48) 대지 → 집터
(49) 전 → 밭
(50) 답 → 논
(51) 산, 임야 → 메
산이란 한자말 하나가 우리겨레말 메, 재(마을 뒤에 있는 메), 갓(나무나 풀을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가꾸어 지키는 메) 셋을 잡아먹었다. 산이란 말을 쓰지말고 세 겨레말을 살리는 것이 좋겠다.
(52) 편집 → 역음
책을 엮어 밖아 펴내는 일도 다 일본한자말 투성이다. 얼마든지 겨레말로 살려쓸수 있다.
(53) 인쇄 → 박음
(54) 출판 → 펴냄
출판사 → 책 펴내는곳
(55) 산책 → 거님
산책로 → 거님길
(56) 전부 → 모두, 다
(57) 포괄하다 → 감싸다
(58) 빈자 → 가난한 이, 가난뱅이
(59) 부자 → 가면이
(60) 각자 → 저마다
(51) 산, 임야 → 메
산이란 한자말 하나가 우리겨레말 메, 재(마을 뒤에 있는 메), 갓(나무나 풀을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가꾸어 지키는 메) 셋을 잡아먹었다. 산이란 말을 쓰지말고 세 겨레말을 살리는 것이 좋겠다.
(52) 편집 → 역음
책을 엮어 밖아 펴내는 일도 다 일본한자말 투성이다. 얼마든지 겨레말로 살려쓸수 있다.
(53) 인쇄 → 박음
(54) 출판 → 펴냄
출판사 → 책 펴내는곳
(55) 산책 → 거님
산책로 → 거님길
(56) 전부 → 모두, 다
(57) 포괄하다 → 감싸다
(58) 빈자 → 가난한 이, 가난뱅이
(59) 부자 → 가면이
(60) 각자 → 저마다
(61) 발견하다 → 찾아내다
(62) 결심하다 → 마음먹다
(63) 친구 → 벗, 동무
(64) 사용 → 씀(쓰다)
(65) 필히 → 반드시
(66) 동서남북을 뜻하는 겨레말이 있었다.
바로 새저마노이다. 아직도 여기저기 그 자취가 남아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란 옛말이 있는데 마파람(=남풍)할 때 ‘마’가 바로 ‘남’이란 뜻이다.
한자말‘남’이 겨레말 마를 잡아먹은 셈이다.
샛바람(=동풍)이 불어 어슬어슬하다 할 때 ‘새’가 동이란 뜻이다.
높새바람은 북동풍을 뜻하는데 이때 ‘노’가 북이란 뜻이다.
뱃사람이 즐겨 쓰는 하늬바람은 바로 서풍을 뜻하는데 ‘하늬
또는 ‘저’는 ‘서’를 뜻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동서남북은 ‘새저마노’로 동녘은 새녘, 서녘은 저녘 또는 하늬녘, 남녁은 마녘, 북녘은 노녘으로 써가서 입에 익은 ‘동서남북’을 바꾸어 갈 일이다.
(67) 습관 → 버릇
(68) 식사 → 밥(먹기)
식사하세요 → 밥 잡수세요, 밥 드세요
(69) 방향 → 쪽
서울 방향 → 서울 쪽
(70) 백미 → 흰쌀
(71) 현미 → 누렁쌀
우리 겨레말 낮춰보기를 뼛속깊이 젖어들게 한것은 한자를 배운이들이 한자말은 높임말로, 겨레말은 낮춤말로 가르치면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선생님집하면 안되고, 선생님댁이라 해야 맞고, 제 아내는 아내라 하고 다른사람 아내는 부인이라 해야 맞는줄 알게 되었다. 진지드세요. 진지 잡수세요 하면 좋지만, 밥 드세요. 밥 잡수세요 도 얼마든지 윗사람한테 쓸 수 있다고 봐요. 선생님집, 선생님 아내도 댁이나 부인을 갈음해서 써가서 누구에게나 익숙하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겨레말을 업신여기는 말맛은 본디 그 말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 잘못 써온 말버릇 탓이 아닐까?
그런 좋은 보기로 '짓'이란 말이 있다. 영국말을 뒤칠때 일본 사람들이 옮긴 대로 따라 쓰다보니, 행동, 행위라 쓰는데, 이말들 쓸 자리에 '짓'을 써가면 좋으리라 여겨요. 그래서 마음짓, 말짓, 몸짓으로 써보면 얼마나 쉽고, 가슴에 바로 다가오는지 알게 되어요. 겨레말 사랑은 깨끗한 겨레말을 나날살이 말마다 써갈때 깊어지리라 봐요.
지난 9월 13일 겨레말 살리는 이들 온사람 한밭 모꼬지가 열렸습니다. 겨레말 살리는 이들 모임이라 하더라도 말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아 그때 나온 말들가운데 요즘 우리말살이에 자주 나오지만 버려야할 말들을 골라봤습니다.
사실
여러사람들이 말끝마다 '사실', '사실은' '사실을 말하면' '사실 말인데~'같이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쓰지 않아도 될 말이다. 그냥 빼버리고 안쓰면 우리말이 더 매끄럽다. 꼭 써야하면 '참으로는' '참말은' '참말로는'이라고 쓰면 좋겠다.
작업 -> 일
작업이라고 쓸 모든자리에 그저 '일'이라 쓰면 된다.
작업장 -> 일터, 무슨 작업을 하지? -> 무슨 일을 하지?
현장 -> 일터, 삶터,
교육현장 -> 가르치는 곳
유아교육현장 -> 아이 가르치는 곳
공감 -> 함께 느낌, 같이 느낌
원래 -> 본디
언급 -> 말, 언급하다 -> 말하다
'언급'같은 말은 하루빨리 버려야 할 말이다.
말하다 하면 되는데 이런 아무 쓰잘데기 없이 어려운 말을 쓰는 말버릇을 몹시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중국말이든 영국말이든 스스로나 남이 듣기에 쉽고 또렷하지 않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쓰는 것은 못난 까닭이다.
대화 -> 마주이야기
계속 -> 이어(서), 잇달아
'계속(하다)'와 시작하다란 말만 안 써도 우리말이 성큼 우리말다와진다.
계속은 이어(서), 잇달아, 계속하다는 잇다, 잇달다로 쓰면 되고 시작(하다)은 비롯(하다)로 쓰면 된다.
오랜 말버릇 때문에 처음엔 좀 서먹서먹하고 멋쩍은 것 같지만 조금만 이어쓰면 그런 말맛에서 벗어나게 된다.
'즈믄'을 천이 잡아먹었듯이 온은 백이 잡아먹은 겨레말이외다.
세종 큰 임금이 한글 만드실 때만 해도 온 백이라 새겼지요.
한밭은 오늘날 "대전"이라 불리고, 모꼬지는 "잔치나 놀이 또는 어떤 일을 하러 여러 사람이 모임"을 뜻하는 겨레말이어요.
큰 모임 또는 잔치를 갈음해 쓰고 있어요.
이달 열사흘날 대전대 강당에서 '겨레말살리는 이들' 온사람이 모여 겨레말 살리는 여러가지 좋은 수를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는 말입니다.
콩, 팥하면 얼마나 쉽고 또렷한가?
그런데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런 쉬운 말을 두고 대두니 소두니 적두니 하며 또렷하지 않은 일본말을 들여다 쓰고 있다. 신문, 방송에서 일하는 사람, 높고 낮은 공무원,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이런 짓거리를 일삼아 왔다. 그래서 여느 백성들도 따라 써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글에 쓰고 있다. 앞서 나왔던 논, 밭, 집터라 안쓰고 답, 전, 대지라고 쓰는 것도 백성이 낸 세금먹고 사는 공무원들이 하는 짓거리다. 일본사람들이 물러간지 일흔해가 다 되어 가는데 공무원들은 아직도 얼을 못차리고 제 나라말은 업신여겨 버려두고 일본말을 쓰고 살아간다.
(72) 대두 → 콩
(73) 소두 → 팔
(74) 적두 → 붉은팥
(75) 소맥분 → 밀가루
(76) 면 → 국수
전국중등국어교사모임에서 할 얘기들을 여기 올립니다.
한실추천 0조회 18214.12.30 15:27댓글 0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삶속에서 겨레말 살려쓰기
이런 이야기를 하러 온다는 것이 우리 삶이, 우리 말살이가 잘못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바깥 힘에 눌려서든, 겨레 안 힘센 이들이 제몫 더 챙기려고 그랬든 다른나라 말, 글을 들여다 백성을 다스리는 연장으로 쓴 뒤부터 일어난 일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저 지껄이고 싶은 대로 지껄이면 그것이 다 겨레말이고, 누구나 한겨레로 사는 사람이면 열 예닐곱 살쯤 만 되면 거의 모든 겨레말을 익혀 쓸 수 있게 되어 듣기만 해도 가슴 속까지 척척 들어와 박히는 우리말을 서로 나누었을 테니까요.
그 땐 배움터란 곳도 따로 없었고, 가르침이 있고 배움이 있는 요즘 같은 삶이 아니었지요. 태어나서 언니, 오빠 따라 어버이 따라, 동네 어른따라, 동무들과 벗들과 어울려 놀며, 그냥 그냥 살기만 하면 커가면서 저절로 거의 모든 말을 익혀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배움이 따로 없고 삶이 곧 배움이었지요. 먹을거리를 찾으러 들로 메로 나돌아 다니는 게 삶이요, 놀이요, 무언가를 얻어와서 껍질 벗기고, 굽고, 삶고, 찌고, 데치고, 고아 먹으면서 얻어온 게 무언가에 따라 어떻게 해먹는지 보며 익히고, 익히며 살았지요.
여름지이도 길쌈도 집짓기도 구들놓기도 밥하기, 빨래하기, 물긷기, 지게질, 나무하기, 바느질하기…. 사내든 계집이든 무엇하나 못하는 게 없게 되었지요. 그런 삶에 요리조리 쓰였던 온갖 말은 저절로 알게 되고.. 이렇게 열여닐곱살이면 홀로서기 할 수 있게 되어 짝지어 새살림을 또 차릴 수 있게 되었구요. 그러면 열여닐곱에 어른이 된 거지요. 아시다시피 어른, 곧 어른이(얼은이) 사내 계집 짝지어 살게 된 사람이란 뜻이잖아요.
저는 이제부터 사람들이 이런 삶으로 조금씩 조금씩 저마다 할 수 있는 만큼 돌아가는 게 옳은삶, 바른삶이라고 여겨요. 아주 오래된 앞날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저지르는 짓이 하고한 날 다른 목숨 죽이는 일 제 삶터 부수는 일을 일삼아 물도 땅도 하늘마저 더렵혀 끝내 제 목숨 죽이는 일을 하는지도 모른채 하게 되니까요.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이 배움터 가르침이가 많으실텐데, 저는 가르침이 따로 있고 배움이 따로 있는 삶은 바르지 않다고 봐요. 온누리 어느나라에서나 이른바 ‘교육’이라는 게 무너지고 있는데, 무너지는 게 마땅하다고 봐요. 왜 붙들어다 좁은 방안에 불러모아 놓고, 아이들 머릿속에 뭔가를 자꾸 집어넣으려고 합니까? 제 발로 걸어온 것 같지만 어른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겠지요 자꾸 머릿속에 넣어 주려는 일 그만하고 같이 놀고 같이 사는 배움터가 되면 좋겠어요 돈 내지도 받지도 말고...
참말로 옳고 바른 일은, 바른 삶은 돈 안 받고도 똑같이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삶을 살면 서로 굳이 돈 주고받고 안 해도 되니, 몸과 마음에 아무런 짐이 되지 않지요. 그냥 같이 사는 거니까요.
제가 딱 스무 해 앞에, 그 조금 앞서 온 나라가 백성이 임자가 되는 그런 삶이 될듯 될듯하다 안되어 (온 누리가 그런 누리가 되어야겠지만), 에라, 그러면 뜻 맞는 사람들끼리, 조그마하지만 골고루 살고, 높낮이 없고, 우리가 일한 것 우리끼리 나눠먹는 모둠살이를 꾀한 적이 있습니다. 푸른누리 모듬살이(그때는 푸른누리 공동체라 했슴)를 꾸렸더랬죠.
옛 어른들이 여름지이 하던대로 나무나 풀, 갈잎 같은것과 똥 오줌으로 거름하고, 우리한테 있어야 할 쌀, 보리, 밀, 콩, 팥, 들깨, 참깨에다 고구마, 감자, 호박, 무, 배추, 상추, 쑥갓 같은 남새를 기르고 메나 들에서 갖가지 나물을 뜯어다 먹고 살았어요. 돈 벌려고 하지 말고 돈 쓸 구멍을 다 막아버리자. 그렇게 해서 한 때는 전기도 끊고 전화도 끊고, 냉장고도 버리고, 되도록 나물이나 남새를 날로 먹고, 또 얼마동안은 쌀도 익히지 않고 그냥 씹어 먹기도 하고….
그 가운데서도 아이들을 배움터에 보내지 말고 데리고 살면서 삶속에서 말글과 사는 슬기가 길러지도록 하고 싶었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가 얽혀있어 제대로 못해봤습니다.
앞머리에 이런 이야기를 해 본 것은 겨레말을 되찾고, 겨레말살이를 제대로 해가려면 우리 생각틀을 뿌리에서 되돌아봐야겠기에 그렇습니다. 여기 모인 분들 쯤 되면 우리 말살이가 겨레말로 되어야 한다고 믿고 계시겠지요. 안 그런 분이 계시면 이야기가 좀 길어지고, 그것만 갖고 따로 오래 이야길 나눠야 하겠지요.
그러니까 우리 입에 익은 일상생활이란 말보다 나날살이라고 쓰는게 좋다고 느끼지요? 호흡보다는 숨, 키친, 주방 보다는 부엌, 기상, 기후보다는 날씨, 캐스터보다는 알림꾼, 고객 보다는 손님, .....많고 많은 일본말 중국한자말 요즘 갑자기 늘어나는 미국말 다 바꿔야겠지요 한마디도 남기지 말고
마땅히 배달겨레가 이런 배달말 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우리 핏속에, 아니지요 핏속이 아니라 우리 얼속에 큰 힘에 알랑거리고 센 힘에 눌리고, 높은 자리에 떳떳하지 않는 어떤 모자람이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지 않나 싶어요. 요즘 미국말 배우는 꼬락서니를 보면, 겉으로 제법 그럴듯한 말을 하며 사는 사람이더라도 아이들이 아니면 손주가 유치원에서 미국노래 배워 와서 부르고 미국말 섞어 쓰는 걸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까 두려워요.
왜 온 나라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미국말 못써 이렇게 안달할까요? 새로 책 펴낸 잔치는 이제 북콘서트로 자리 잡아가네요. 내노라 하는 사람까지 스펙이 어떻고 힐링이니 멘토니 씨부렁거리며 거들먹거립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 옛날 한자들여와 백성위에서 얼마나 거들먹거렸을지..... 일본말 배워와서는 또 얼마나 난체 잰 체 했을지 보지 않았더라도 눈에 선합니다. 미국말 쓰는 게 부끄럽기는 커녕 은근히 목에 힘이 들어가고, 어린애들한테 못 가르쳐 애고, 이걸 노려 아이를 볼모로 돈벌이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함초롬히 피어난 꽃망울은 아침이슬을 머금고 싱그러운 햇살을 받아 방싯방식 웃고 있습니다. ”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이 그예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님이여 이 일을 어이할꼬“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가시리 가시리잇고
리고 가시리잇고
설온님 보내옵니
가시는 도셔 오소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우리말 아름다움을 굳이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겠지요.
우리말 살려 쓰는 길은 아주 또렷하고, 쉽고, 똑바로 난 큰길이어요. 가다가 잘못 되거나 헷갈릴 게 하나도 없어요
“쓰는 말마다 겨레말만 쓰겠다는 굳은 뜻을 세우고 마음에 새겨 다져 나날살이에서 그렇게 살면 된다.” 먼저 나부터. 온겨레가 그렇게 살지 않더라도. 겨레말이 드높고 뛰어나고, 거룩하고, 훌륭하다는 걸 아는 당신으로서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잖아요. 세종임금님부터, 한흰샘, 외솔, 가람 …. 우리가 잘 모르지만 겨레말살이 해가신 모든 할매, 할배들처럼.
그래서 안녕하십니까? 안녕이란 말부터 바꾸고 잘 지내셨어요. 잘 주무셨어요. 잘 가세요...
안녕을 빼면 겨레말이 살아난다.
일찌기 빗방울님(김수업선생님)은 산이란 말 안 쓰면 메, 재, 갓이 살아난다고 하셨다. 시간이란 말을 안 쓰면 틈, 겨를, 짬, 때, 덧, 동안.. 이런 우리말이 살아난다.
나물을 채취하고 할 때 채취하다를 안 쓰면 (쑥)뜯다, (춧딩이)도리다, (꽃나물)베다, (죄핏잎)따다, (홑잎)훑다. (돌나물) 걷다, (도라지) 캐다가 살아난다.
휴게소 →쉼터,
휴가 →쉴때, 휴식→쉼, 호흡 → 숨, 들날숨, 호흡관 → 숨바라보기, 숨 알아차림, 복식호흡 → 배숨
우회전, 좌회전, 직진 → 오른돌아, 왼돌아, 똑바로
우측, 우측보행, 좌측, 좌측보행, 좌익, 우익, 좌현, 우현....
모두 왼, 오른으로 바꿔쓸 수 있다.
(1) 안녕하십니까 -> 잘 지내십니까?
(안녕하셨어요 -> 잘 지내셨어요 / 안녕히 주무세요 -> 잘 주무세요 / 안녕히 주무셨어요 -> 잘(푹) 주무셨어요)
어느날 갑자기 안녕이란 말이 우리말에 끼어들어 토박이말들을 다 몰아내고 말끝마다 안녕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서 첫째로 몰아낼 말로 안녕을 잡았다. 조금만 살펴보면 안녕이란 말이 없을수록 우리말이 살아남을 알 수 있다.
(2) 주방 -> 부엌
(주방기구 -> 부엌살림)
옛날에는 부엌이라 하던지 정지(정지간)라 했다. 그러다가 이런말들을 몰아내고 요즘은 어딜가나 일본말 주방이 자리잡게 되었다.
(3)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입에 발린 감사하다는 말이 뜻깊은 고맙다는 우리말을 몰아내 누구나 입만 벙긋하면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감사하다고 할 모든 자리에 고맙다를 쓰면 된다. 뜻밖에도 요즘은 고맙다고 하면 뭔가가 모자란듯 하고 감사하다고 해야 어른들한테 제대로 말한다고 거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4) 고객 -> 손님
손님이라 할 자리에 어딜가나 고객이란 말이 자리잡았다. 기차에도 고객이고 버스에도 고객이고 물건파는곳에도 고객이고 전화국에도 고객이고 전기회사에서도 다 고객이라 한다. 손님이란 말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일본말 고객을 몰아내고 우리말 손님으로 바꿔야 한다.
(5) 제일, 최고로 -> 가장, 으뜸가는(으뜸으로)
(6) 보통 → 여느
(7) 매일 → 날마다 ( 매달 → 달마다 ) (매해→해마다)
: 모든 매-는 '마다'로 바꿀 수 있다.
(8) (하루) 종일 → 하루내내
(9) 좌우간 , 좌우당간, 좌우지간 → 하여튼, 어쨌든
(10) 좌회전 → 왼돌아 ( 좌측(보행) →왼쪽(걷기) )
(11) 우회전 → 오른돌아 (우측(보행) → 오른쪽(걷기))
(12) 직진 → 똑바로(가기)
(13) 우선 → 먼저
(14) 일단 → 한번, 먼저
(보기 : 일단 가고 보자 -> 먼저 가고 보자, 일단 두고 보자 -> 한번 두고 보자)
(15) 생일 축하합니다 → 난날 (함께) 기뻐합니다
(16) 출발(하다) → 떠남 (떠나다, 길 나서다)
(17) 도착(하다) → 닿음, 이름, 다달음 (닿다, 이르다, 다다르다)
(18) 사실(은) → 참말은, 참으로는, 참일
(이 말은 아예 안쓰면 가장 좋겠어요. 꼭 있어야 되는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저 말버릇이지 않나 싶어요. 외솔님은 "참일"로 바꿔 놓았는데, 제가 보기엔 꼭 쓰지 않아도 좋은 말 같아요.)
(19) 전 → 앞
(모든 "전"은 앞으로 바꿀 수 있다. 6시 5분 전 -> 6시 5분 앞, 역전 -> 역앞, 30년전 -> 서른해 앞)
(20) 시작(하다), 착수(하다) → 비롯(하다)
(21) 오전 → 아침(나절), 새벽
오전 1~4시 → 새벽 1~4시
오전6시 → 아침6시, 오전9시→아침9시, 오전 11시→아침11시
(22) 오후 → 늦은 낮, 또는 뒷낮(1-6시) 밤(7시-12시)
(23) 매번 → (그) 때마다, 차례마다
(24) 가축 → 집짐승
(25) 대신(하다) → 갈음(하다)
나대신-->나를 갈음하여
(26) 유일한 → 하나뿐인
(27) 방법 → 길, 수 (또는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을까? → 좋은 길이 없을까?, 좋은 수가 없을까?, 어떻게 좋게 할까?
(28) 필요 → 있어야(해서)
글쓸 종이가 필요해서 → 글쓸 종이가 있어야(해서)
뭐가 필요한데? → 뭐가 있어야 하는데?
(29) 예상 → ~할 것 같아, ~ 처럼 보인다
많은 비가 예상되어 → 많은 비가 올 것 같아
(30) 세탁 → 빨래
세탁물 → 빨래감
세탁기 → 빨래틀
손세탁 → 손빨래
(31) 비가 그칠 전망이다 → 비가 그칠 것으로 보인다. 그칠 것 같다.
(32) 저지대 → 낮은곳
저지대는 침수가 우려된다. 낮은곳은 물에 잠길까봐 걱정이다.
(33) 해상 → 바다(위)
모든 해상에는 안개가 → 모든 바다(위)에는 안개가
(34) 산간계곡 → 메(산)골짜기
산간계곡 피서객은 → 메골짜기에 더위 비껴온 사람들은
(35) 냉수 → 찬물
(36) 온수 → 따뜻한 물, 다순 물, 더운물
(37) 폐 → 허파
(폐결핵 → 허파결핵)
(38) 신장 → 콩팥
(39) 심장 → 염통
심장이식 → 염통바꿔달기
(40) 혈관 → 핏줄
(41) 혈액순환 → 피돌기
(42) 적혈구 → 붉은피톨
(43) 백혈구 → 흰피톨
(44) 췌장 → 이자
(45) 비장 → 지라
(46) 유방 → 젖가슴
(47) 장 → 창자
대장 → 큰창자
소장 → 작은창자
(48) 대지 → 집터
(49) 전 → 밭
(50) 답 → 논
(51) 산, 임야 → 메
산이란 한자말 하나가 우리겨레말 메, 재(마을 뒤에 있는 메), 갓(나무나 풀을 함부러 못 베지 못하도록 가꾸어 지키는 메) 셋을 잡아먹었다. 산이란 말을 쓰지말고 세 겨레말을 살리는 것이 좋겠다.
(52) 편집 → 역음
책을 엮어 밖아 펴내는 일도 다 일본한자말 투성이다. 얼마든지 겨레말로 살려쓸수 있다.
(53) 인쇄 → 박음
(54) 출판 → 펴냄
출판사 → 책 펴내는곳
(55) 산책 → 거님
산책로 → 거님길
(56) 전부 → 모두, 다
(57) 포괄하다 → 감싸다
(58) 빈자 → 가난한 이, 가난뱅이
(59) 부자 → 가면이
(60) 각자 → 저마다
(61) 발견하다 → 찾아내다
(62) 결심하다 → 마음먹다
(63) 친구 → 벗, 동무
(64) 사용(하다) → 씀(쓰다)
(65) 필히 → 반드시
(66) 동서남북을 뜻하는 겨레말이 있었다.
바로 새저마노이다. 아직도 여기저기 그 자취가 남아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란 옛말이 있는데 마파람(=남풍)할 때 ‘마’가 바로 ‘남’이란 뜻이다.
한자말‘남’이 겨레말 마를 잡아먹은 셈이다.
샛바람(=동풍)이 불어 어슬어슬하다 할 때 ‘새’가 동이란 뜻이다.
높새바람은 북동풍을 뜻하는데 이때 ‘노’가 북이란 뜻이다.
뱃사람이 즐겨 쓰는 하늬바람은 바로 서풍을 뜻하는데 ‘하늬’
또는 ‘저’는 ‘서’를 뜻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동서남북은 ‘새저마노’로 동녘은 새녘, 서녘은 저녘 또는 하늬녘, 남녁은 마녘, 북녘은 노녘으로 써가서 입에 익은 ‘동서남북’을 바꾸어 갈 일이다.
(67) 습관 → 버릇
(68) 식사 → 밥(먹기)
식사하세요 → 밥 잡수세요, 밥 드세요
(69) 방향 → 쪽
서울 방향 → 서울 쪽
(70) 백미 → 흰쌀
(71) 현미 → 누렁쌀
콩, 팥하면 얼마나 쉽고 또렷한가?
그런데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런 쉬운 말을 두고 대두니 소두니 적두니 하며 또렷하지 않은 일본말을 들여다 쓰고 있다. 신문, 방송에서 일하는 사람 높고 낮은 공무원,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이런 짓거리를 일삼아 왔다. 그래서 여느 백성들도 따라 써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글에 쓰고 있다. 앞서 나왔던 논, 밭, 집터라 안쓰고 답, 전, 대지라고 쓰는 것도 백성이 낸 세금먹고 사는 공무원들이 하는 짓거리다. 일본사람들이 물러간지 일흔해가 다 되어 가는데 공무원들은 아직도 얼을 못차리고, 제 나라말은 업신여겨 버려두고 일본말을 쓰고 살아간다.
(72) 대두 → 콩
(73) 소두 → 팔
(74) 적두 → 붉은팥
(75) 소맥분 → 밀가루
(76) 면 → 국수
(77) 국가 → 나라
(78) 경제 → 살림
(79) 국어 → 나랏말
(80) 민족 → 겨레
어디 이뿐이랴 나도 모르게 그냥 튀어 나오는 말 열에 예닐곱은 겨레말로 바로잡을 말이다.
님들 어버이가 고등이라도 나왔다면 더 많을 것이다. 운이 좋아 어버이가 배움터 가까이도 가보지 않은 분이면 열에 두서넛밖에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날살이 눈 깜짝할 사이마다 깨어서 살펴 봐야한다 집에서 가까운 사람과 먼저 해감이 좋다
집에서 지어미와 지아비와 아들딸과 어버이와 언니, 아우, 누이, 누나와 아음들, 아지매, 아재, 조카, 조카딸들과 겨레말만 써간다.
배움터에서 아이들과 책에 나와 있는 들온말이더라도 겨레말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다 바꾸어서 같이 배우고 익힌다.
우리말, 나랏말 가르침이 아닌 셈본이나 다른 나라말 가르치는 분들도 겨레말로 바꿔쓸 수 있는 말이 대단히 많다.
저는 참말은 본디 이 말, 글갈이가 아니고 마음닦기 가르침이입니다. 저희 스승이 영국말로 가르침을 주셨는데 우리말로 뒤치다가 뒤늦게야 우리말이라는 게 참말은 우리말이 아니고 열에 일곱 여덟이 일본말, (중국)한자말 이란 걸 알게 됐어요.
영국말 - 우리말 말집(이른바 영한사전)에 올라있는 우리말 풀이는 열에 아홉이 일본말입니다. 일본 것 가져다 베꼈지 않나 싶을 만큼요.
제 나라말을 제대로 배울 겨를이 없이, 첫, 가운데(초, 중) 배움터에서 영국말을 종요롭게 여기는 바람따라 영국말 배우면서 어려운 일본말을 우리말인 줄 잘못 알고 따라 배워서 우리 말버릇이 너나 없이 오롯이 일본말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요즘 말이 일본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또 너무 많습니다.
느낌이란 우리말두고 감각,
느낌문 - 감각기관
눈(보는)느낌 - 시각
귀(듣는)느낌 - 청각...........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본디하는 일이 마음닦기라고 그 가운데서도 ‘안보아마음닦기’ ‘마음가장 깊은곳, 이른바 무의식이라는 곳 마음버릇을 바꾸어 성냄, 미움, 바람같은 마음더럼에서 벗어나 언제나 흐뭇하고 고요한 삶을 사는 길을 거저 가르쳐주는 일을 하고 있고요 그런 아주 멋진 “재주”를 갖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 겨레말 살려 쓰는 일은 바로 여기 오신 여러분 일이 아닐까 싶어요.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 오신 분부터 모두 이렇게 살아가면…. 겨레말 살아나요. 틀림없이.
사람들이 참말로 좋은 것이면 저부터 합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 지어미나 지아비 아들 딸 어버이한테 먼저 해보라고 합니다 저는 그렇더라고요 제가 해봐서 좋은 걸 그렇게 가장 가까운 옆사람한테 해보라고 하게 됩디다. 마음닦기도 그렇고 겨레말살이도 그렇고요 그래서 여러분도 그렇게 해보시면 어떨까요?
글버릇은 써서 내는 거니까, 그럴듯하게 써낼 수 있어요. 겨레말 많이 써서…. 그런데 말버릇은 잘 안바뀝니다. 그렇지만 참말로 바꾸겠다면 왜 안바뀌겠어요. 마음깊은 곳에선 꼭 바꾸어야 된다고 아직 생각하지 않아서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요? 제가 마음닦기 가르침이 잖아요. 마음닦기는 마음버릇을 바꾸어 기쁨과 흐뭇함만 있는 새삶을 살자는 건데 그럴려면 아주 깊은 마음버릇을 바꾸어야 하거든요. 그곳이 바뀌어야 사람이 바뀌고 삶이 바뀌지요. 말버릇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말 할 때마다 익숙하게 버릇든 말이 튀어나오는지 조심하고 살펴보며 말하게 되면 조금씩 바뀌어가요. 그리고 부지런히 우리말집을 뒤져 새로 겨레말을 익히고, 일본말을 갈음할 말로 어떤 말이 좋을지 끊임없이 알아보고 잘 안써 죽어가는 겨레말을 써서 살려내야 합니다.
제가 배달말집을 만들자고 김수업선생님께 무턱대고 찾아가서 말씀드렸던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누구라도 찾아보고 겨레말을 살려 써 가는데 도움될 만한 말집(사전)이 마땅히 없는 거예요. 제가 웬만한 말집이란 말집을 갖고 있는데, 최기호, 이근술님이 펴낸 ‘토박이말 쓰임’사전이 가장 도움이 됩니다.
오늘 여기서 여러분께 내놓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이 일을 여기 모이신 분이 저랑 함께 해가면 어떻겠습니까? 셈틀에 ‘누리 방’같은걸 내어서(겨살이 누리방에서 해도 좋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 누구라도 이 말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 이 말을 이렇게 쓰면 될까요. 더좋게, 더 알맞게 나타낼 말이 있을까요? 하고 거의 모든 낱말들을 새로 꼼꼼이 따져보고, 보듬어서 여기를 거쳐 나올 말을 배달말집 올림말로 잡아가는 게지요.
요즘처럼 날마다 새로 들온말이 늘어나 그때마다 우리말로 뒤치든가 말을 만들든가 해야 하는데, 나라에 ‘나랏말 가다듬고 보살피는곳’이 있어서 이 큰 일을 해가야 되겠지만, 나라꼴이 이러니 거기 기댈 수 없지요. 바로 우리가 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나랏말 가다듬고 보살피는 곳, 살려쓰는 곳이 되어(말하자면 국어심의 위원회 같은 곳) 이 일을 길게 보고 해 가야하지 않을까요? 겨레말이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겨레말 살려쓰는 일이 바로 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이 이걸 해주지 않고, 또 할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언제나 모든 일은 일찍 깨우친 사람들이 하기 마련이고 본디부터 그들 일입니다.
집안 바로세우는 일도 그렇고 나라 바로세우는 일도 그렇고, 온누리를 살기 좋은 누리로 만드는 일도 그런 뜻이 있는 사람들 일입니다. 마음닦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더는 미움이나 싫음, 성냄이나 짜증, 바람이나 탐냄, 근심, 걱정, 두려움에서 벗어나 그런 마음더럼을 마음에 한 올도 일어나지 않게 하여, 언제나 사랑과 기쁨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고요함만 넘치는 사람이 되어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뜻을 세운 사람들만 마음닦습니다. 그리하여 끝내 거룩한 사람이 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 가게 됩니다..
“뜻있는 곳엔 언제나 길이 있다.”
77) 가능하다 ->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
통화가능합니까? -> 얘기 좀 나눌 수 있나요?
78) 가장 -> 집안어른
나어린 찔레가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 집안 어른 노릇을
79) 가입하다 -> (모임, 보험 따위에)들다
속리산자락 지킴이 모임에 가입했니? -> 들었니?
80) 가정 -> 집, 집안
사랑과 섬김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 남을 사랑하고 섬길 줄 안다.
-> 집안(집)에서
81) 가정주부 -> 집안살림하는 겨집, 안살림겨집
82) 가정교사 -> 집가르침이
83) 달러가치가 하락한다. -> 달러값이 떨어진다.
84) 서울에서 한밭까지 거리가 얼마냐? -> 서울에서 한밭까지 얼마나 머니?
85) 사과 한개 두개 시개 니개 -> 능금 한낱 두낱 시낱 니낱
86) 개개인이 -> 낱낱사람이
87) 개인 -> 낱사람, 낱이
88) 건물이 크니? -> 집이 크니?
89) 건강하다 -> 튼튼하다
건강이 어때? -> 몸이 튼튼하니?
90) 간단하다 -> 쉽다, 조촐하다, 수수하다
조작이 간단하냐? -> 다루기 쉽냐?
91) 단순하다 -> 쉽다, 조촐하다
단순한 삶 -> 조촐한 삶
92) 감기 -> 고뿔
감기들었어? -> 고뿔걸렸어?
93) 강하다 -> (굳, 힘, 드)세다
성격이 강하다 -> 바탈이 드세다
94) 검사하다 -> 잦대에 비춰 살펴보다
신체검사 -> 몸 살펴보기
시력검사 -> 눈 살펴보기
95) 겁나다 -> 무섭다, 두렵다
96) 결과 -> 열매
원인과 결과 -> 말미와 열매
97) 결석하다 -> 빠지다
어제 왜 결석했어? -> 어제 왜 빠졌어?
98) 결코 -> 조금도
결코 두렵지 않다 -> 조금도 두렵지 않다
99) 결혼하다, 혼인하다 -> 한살되다, 시집장가가다
언제 결혼하는데? -> 한살되는 잔치가 언제지?, 언제 시집장가 가지?
100) 이혼하다 -> 갈라서다
느티님 이혼했다며? -> 느티님 갈라섰다며?
101) 축구경기 보러가자 -> 공차기 겨룸놀이 보러가자
102) 경우 -> 때
그렇게 답답한 경우에는 어떡하지? -> 그렇게 답답한 때는 어떡하지?
차에 치었을 경우에는 -> 수레에 치었을 때는
103) 경제 -> 살림
국가경제 -> 나라살림
국제경제 -> 나라사이살림
가정경제 -> 집안살림
104) 자격 -> 감목
그걸 해낼 자격이 될까? -> 그걸 해낼 감목이 될까?
105) 학 -> 갈
말본갈(문법학), 한글갈, 소리갈(음성학)
106) 학자 -> 갈이
물리학자 -> 몬갈이
107) 가음알다
가:말다와 같은 말. 맡아 다루다는 뜻
108) (뒷)가마리
(뒷)갈망과 같은 뜻
그 사람 그 일 가마리하겠나? = 뒷 갈망 하겠나?
109) 천한 -> 나라운
천하다 -> 나랍다
저 같이 천한 사람 손을 잡으면 안됩니다. -> 나라운
110) 유전, 전통 -> 내림
오랜 전통에 빛나는~ -> 내림
111) 가족, 식구, 식솔 -> 밥솔
우리 가족은 저마다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이제 홀로서기 했어! -> 밥솔
112) 근사하다 -> 가깝다, 거의 같다, 아주 비슷하다
근사치 -> 참값에 가까운 값, 거의 같은 값
113) 빈곤하다, 빈핍하다 -> 가난하다
빈곤층, 빈곤자, 빈자 -> 가난한이, 가난한 사람들
114) 자세히 -> 가늘게, 작은데까지 또렷하고 꼼꼼하게
자세히 말해봐 -> 작은데까지 꼼꼼하게 말해봐
115) 간혹 -> 가다가, 간간이, 어쩌다가
간혹 무심코 한자말을 쓸 때가 있었어! -> 어쩌다가 아무생각없이 한자말을 쓸 때가 있었어!
116) 의족 -> 가다리
다리를 부러뜨려 의족을 짚고 다닌다며? -> 가다리
117) 조목 -> 가닥
조목조목 -> 가닥가닥
조목조목 따지는데 진땀을 흘렸어! -> 가닥가닥
118) 음조 -> 가락
무슨 음조로 노래하는거야? -> 무슨 가락으로 노래하는거야?
119) 강조하다 -> 힘주다, 가락치다
나날살이에서 겨레말을 써버릇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힘주어 말했다
120) 선정하다 -> 가려잡다, 가려뽑다, 골라잡다
선정된 글은 싣도록 하세요. -> 가려잡은, 가려뽑은, 골라잡은
121) 횡령하다 -> 가로채다
횡령한 돈이 모두 얼마냐? -> 가로챈 돈이 모두 얼마냐?
122) 횡서 -> 가로쓰기, 가로글(씨)
123) 분류하다 -> 가름하다
분류 -> 가름
구별, 구분, 분간 -> 가름
124) 교재 -> 가르침거리
한자말투성이 글이 아이들한테 알맞은 교재인가? -> 가르침거리
125) 교부하다 -> 건네다
문서를 교부하다 -> 쓴 글을 건네다
126) 교사 -> 꼬드김
살인교사죄 -> 죽이라고 꼬드긴 잘못
127) 기본 -> 밑터
그 사람 기본이 안 잡혀 있어요! -> 밑터가
기본어 -> 밑터말
128) 기본형, 기본형식 -> 으뜸꼴
내 참! 더러버서 못 해 먹겠네! 할때 '더러버서' 기본형이 뭐지요? -> 으뜸꼴
129) 기수 -> 기잡이, 깃발잡이
이 번 밝메오름 기수가 누굽니까? -> 깃발잡이
130) 기술자 -> 바치① : 이름씨 몸말에 붙어 그것을 만들거나 벌이로 하는 사람
갖바치(가죽), 독바치(옹기장이), 장인바치(수공업기술자), 점바치(점쟁이), 노릇바치(광대), 못바치, 성냥바치, 활바치
바치②: 귀염바치(귀영둥이), 구석바치(방구석에 쳐박혀 있는 사람)
131) 기회 -> 고비, 때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 있을까? -> 고비, 때
132) 내용 -> 속살, 속
강의내용이 썩 좋았어요! -> 말씀 속살이
133) 대응하다 -> 마주하다, 마주맞다
그렇게 쳐들어오면 어떻게 대응할래? -> 마주할래?, 마주맞을래?
134) 대합실 -> 기다림방
역 대합실에서 만나자. -> 기다림방
135) 도공 -> 질바치
그는 이름난 도공이었다. -> 질바치
136) 도기 -> 질그릇(진흙만으로 구워 잿물을 입히지 않은 그릇)
자기 -> 사기그릇(흰흙으로 만들어 구운 그릇)
도자기 -> 질그릇과 사기그릇
오지그릇: 붉은흙으로 만들어 햇볕에 말려 오짓물을 입혀 구운 그릇
137) 망초 -> 잔꽃풀
138) 개망초 -> 넓은 잎 잔꽃풀
139) 독려하다 -> 추어주다
죽어가는 사람한테 피빼주기(헌혈)를 독려하였다. -> 추어주었다.
140) 동(棟) -> 채
아파트-> 한테살이
장미아파트 8동 208호 -> 찔레한테살이 8채 208집
141) 동경하다 -> 그리다
깊은멧속에서 나물밥먹고 살기를 동경하다. -> 그리다
142) 만3년이 걸려 다 지었다. -> 찬서해가 걸려 다 지었다.
143) 관람하다 -> 구경하다
영화관람 -> 영화구경
144) 경치 -> 누리모습
145) 계란 -> 달걀
옛날엔 다 달걀이라 했다. 언제부터인가 일본말 계란이 두루 쓰이게 되었다.
노녘에선 닭알이라 한다.
146) 계산(하다) -> 셈(하다)
147) 계절 -> 철
계절이 바뀌다. 계절따라 -> 철
148) 계획 -> 얽이
집지을 계획을 세우다 -> 집지을 얽이를 세우다
149) 고(故) ->죽은
고 이재문 선생님 -> 죽은 이재문 선생님
150) 고(苦) -> 괴로움
삶은 고(苦)로 가득하다 -> 삶은 괴로움으로 가득하다
151) 고등학교 -> 높배움집
152) 고모 -> 아비누이, 아비뉘
고모가 둘이다. -> 아비누이가 둘이다.
153) 큰고모 -> 아비맏누이
큰고모는 돌아가셨다. -> 아비맏누이
154) 고장(나다) -> 탈(나다), 듣지 않다
빨래틀이 고장이 나서 손빨래를 했다. -> 탈이 나서
155) 고향 -> 나서자란 마을, 자란 마을
내 고향은 따뜻한 마녘 나라이다. -> 내 자란 마을은
156) 곡식 -> 낟, 먹거리
여러 가지 곡식을 넣어 지은 맛있는 밥. -> 낟
157) 공부(하다) -> 배우다, 익히다, 파고들다
어릴적 공부하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살아가면서 저절로 알게 되었다.
->배우고 익히라고
158) 공원 -> 구의뜰
구의: 公. 관청의 옛말
공적인 -> 구의스런
속리산 국립공원 -> 속리메 나라구의뜰
159) 공통 -> 두루
공통어 -> 두루말씨
160) 공장 -> 짓곳
성냥공장에서 성냥 만드는 아가씨 -> 짓곳
161) 공중전화 -> 구의말틀
공중전화가 사라져간다. -> 구의말틀
162) 공짜 -> 거저
즈믄절하면 밥을 공짜로 준다고? -> 거저
163) 공책 -> 빈종이 묶음, 빈책
164) 공항 -> 비행장, 날틀곳
인천공항에는 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 인천날틀곳에는 많은 날틀이 뜨고 내린다.
165) 과거 -> 지난적, 지난날
과거에는 못 먹어보던 거지 -> 지난날
166) 과수 -> 과일나무
과수원 -> 과일나무밭
167) 과정 -> 길걸음
168) 과제 -> 주어진 일
과제는 다 했니? -> 주어진 일은 다 했니?
169) 과학 -> 갈
물질과학, 물리학 -> 몬갈
170) 관계 -> 맺음, 걸림, 이음
나하고 어떤 관계가 있어? -> 나하고 걸린게 뭐야?, 나하고 이어진게 있어?
171) 관광 -> 누리모습구경, 나들이
172) 관심 -> 마음둠, 마음끌림
겨레말 살려 쓰는데 관심있어? -> 마음이 끌려?, 마음이 있어?
173) 관하여, 관한 -> ~ 을 다룬
탈춤에 관한 책 -> 탈춤을 다룬 책
174) 광년 -> 빛해(빛이 한해 동안 가는 길이)
175) 굉장하다 -> 대단하다
우리말을 살리는 길
우리말 바로 쓰기 모임 김 정 섭
1. 들머리
지난 일흔 해 넘게 우리말을 되살리려고 우리 나름대로 온갖 애를 다 써 왔다. ‘우리말 도로 찾기, 한글만 쓰기’, ‘국어 순화 운동’ 따위가 그것이다. 한글학회를 비롯한 여러 모임은 말할 것 없고 정부까지 나서서 이 일을 벌였지만 우리말은 제 자리를 찾지 못 한 체 오늘에 이르렀다. 말글살이에서 한문글자는 줄었지만 한자말은 늘어났고 ‘우리말을 바로 쓰자’나 ‘우리말을 살리자’는 말은 다들 귓등을 넘겨 듣고 만다. 게다가 학교 교과서에는 다시 한문글자를 되살리려는 일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그 까닭을 간추려 보면 첫째, 우리말의 이름을 ‘국어’라 한다. 둘째, 우리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모른다. 셋째, 한자말을 우리말이라 하고 한문글자도 우리 글자라고 한다. 넷째, 들온말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섯째, 들온말을 가려내는 법을 만들지 않았고 들온말을 가려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섯째, 먹물 든 사람들과 나랏일을 맡아하는 벼슬아치나 구실아치들이 옛날 중국 종살이 버릇에 찌들었을 뿐만 아니라 힘센 나라 눈치나 보면서 비렁뱅이 짓을 하던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 한 것이 그것이다.
2. 우리말의 이름
‘국어’는 ‘나라말’을 일컫는 한자말이다. ‘중국 국어, 일본 국어, 한국 국어’처럼 ‘어느 나라말’이라 할 때 쓰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중국말을, 일본에서는 일본말을 ‘국어’라 하는데 이는 ‘우리말’이나 ‘우리나라 말’이란 뜻이지 제 나라 말의 이름으로 쓰는 게 아니다. ‘국어’는 어느 나라 말의 이름으로 쓸 수 없다. 우리는 일찍이 우리말을 ‘국어’라 부른 적이 없다. 왜놈들이 우리 겨레 얼을 없애려는 못된 수작으로 우리말을 ‘조선어’라 하고 왜말을 ‘국어’라 한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나라를 되찾은 뒤 얼떨결에 우리말에 ‘국어’라는 이름을 비럭질하여 붙인 것이 두고두고 말썽이다.
그 뒤 여러 차례 바로잡을 수도 있었건만 왜놈 종살이버릇이 몸에 밴 ‘든 사람들’이 나랏일을 도맡아 하면서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비뚤어진 길로 이끌어온 뒤끝이고, 크고 힘센 나라 것은 아무 거나 우러러보고 덮어놓고 받아들이는 비렁뱅이버릇으로 비럭질해 온 옰이라 하겠다. 자랑스러운 이름 ‘배달말’을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 하고 우리 겨레 숨통을 옭아매던 ‘국어’를 우리말의 이름으로 삼았으니 우리말이 아직도 한자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 했고 앞날마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3. 배달말과 들온말
우리말은 ‘배달 겨레말과 한자말과 들온말(서양말) 세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뭘 몰라서 하는 말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올림말에서 배달말은 한글로, 한자말과 서양말에는 도림(묶음표) 속에 한문글자나, 꼬부랑글자를 덧붙여 놓았다. 이를 내세워 한자말도 우리말이라 하고, 한문글자도 우리 글자라 하면서 서양말만 들온말이라 하는 까닭을 알 수 없다. 배달 겨레말은 우리 배달겨레가 만들어 쓰는 말(토박이말)이고 들온말은 우리 말밭에 여러 다른 겨레말이 들어와 우리말로 뿌리를 내린 말이다.
어느 겨레말이든 이웃끼리 오가며 섞사귀고 여러 가지 생각이나 연모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다른 겨레말이 섞이게 마련이다. 우리말에도 예부터 오늘까지 다른 겨레말이 들어와 우리 겨레말과 섞여 있다. 곧 배달겨레말 바탕에 알타이 말, 산스크리트 말, 인디아 말, 길랴크 말, 퉁구스 말을 비롯하여 중국 말, 몽골 말, 만주 말, 왜말과 여러 가지 서양말 또 한자말 따위 예순 가지가 넘는 서로 다른 나라말이 들어와 우리말로서 구실을 한다. 곧, 우리말은 배달 겨레말과 들온말 두 갈래를 아우른 말이다.
4. 들온말 받아들이기
들온말은 우리말 구실을 하는 다른 나라(겨레)말을 가리킨다. ‘가마니, 가방, 건달, 길마, 고무, 껌, 나귀, 노새, 달구지, 담배, 메주, 무명, 보라매, 부처, 붓, 빵, 사둔, 상추, 선지, 설렁탕, 염소, 올가미, 지단, 호미’ 따위가 그 보기다. 이런 말은 뭇입이 주고받으면서 갈리고 닦여서 온전히 우리말로 탈바꿈한 것이다. 곧, 들온말이란 겨레말과 함께 우리말을 이루는 두 갈래 가운데 하나다. 들온말은 우리말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겨레)말에서 들어왔건 반드시 한글로만 적어야 한다.
옛날에는 들온말이 되려면 오랜 시간 뭇입을 거치면서 우리말 말밭에 시나브로 뿌리를 내렸지만 요즘은 온갖 나라 사람들이 무리지어 오가고 과학 문명이 만들어낸 갖가지 물건과 정신문화가 빚어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갈말(학술용어), 솜씨말(기술용어)과 나날말(생활용어) 따위가 한꺼번에 어지럽게 들어온다. 이렇게 들어온 다른 나라말은 우리말과 자리싸움을 하는데 이긴 쪽은 살고 진 쪽을 죽는다. 말은 겨레 얼이요, 목숨이요, 문화다. 우리말 하나가 죽으면 우리 얼, 우리 문화 한 조각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라마다 제 나라말을 지키기에 온 힘을 기울인다. 이때, 다른 나라말을 덮어놓고 못 들어오게 막을 수도 없지만 막아서도 안 된다. 쓸모가 없는 말은 막아야 하고, 쓸데가 있는 말은 들온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들온말은 많이 받아들일수록 좋다. 우리말을 살찌워서 생각을 더 넓고 깊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학문과 예술, 기술 따위 문화를 높이고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는 데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다만, 쓸모없는 말과 쓸데 있는 말을 슬기롭게 가려내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다.
말이란 보고 듣고 느낀 것과 어떤 뜻이나 생각을 누구든 귀로 듣고 알아 체릴 수 있도록 나타낸 목소리다. 그리고 이 목소리를 글자에 담은 것이 글이다. 그런데 나타내는 소리나 글을 쓰는 법이 사람마다 다르면 말과 글이 제 구실을 못 한다. 그래서 같은 나라 사람들이 말소리를 듣거나 글을 읽고 그 속내를 두루 알 수 있도록 ‘어문 규정’을 만들어 여기에 기대어 말과 글을 부려 쓰게 한다. 우리 ‘어문 규정’에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네 가지가 있다.
들온말도 여느 말글과 마찬가지다. 아무나 마음대로 다른 나라 말을 들여와서는 안 된다. 우리말을 죽이고 우리 말투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준말 규정. 1부, 1장, 2항’에 ‘들온말 가려잡기 (외래어 사정)’란 길목을 만들어 물밀 듯이 넘쳐 들어오는 다른 나라 말을 막을 것은 막고 거를 것은 걸러서 꼭 쓸모가 있는 말만 골라 들온말로 받아들이도록 못을 박아두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려면 반드시 ‘들온말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어문 규정’에는 아직 이 법이 없다.
5. 한자말은 우리말인가
한자말은 배달겨레말이 아니고 들온말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자말이 우리말이고 한문글자도 우리 글자라고 우기는 데는 ‘국어’라는 한자말 이름과 ‘표준국어대사전’이 큰 빌미가 된다. 우리말의 이름이 ‘국어’이니 모든 한자말도 우리말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정부(문화부, 국어원)에서 우리말 본보기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의 올림말이 겨레말 25.9%, 한자말 58.1%, 겨레말이 덧붙은 한자말 10.6%, 서양말 5.4%이다. 한자말이 올림말의 68.7을 차지하니 우리말이고 한문글자도 우리 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자말이든 서양말이든 우리말이 되려면 반드시 들온말로 가려 받아들여야 하는데 우리는 이제까지 들온말을 가려잡은 적이 없다. 이 일을 했다는 분도 있지만 들온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고 장님 지팡막대로 아무렇게나 가려잡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들온말 가려잡는 법 (외래어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들온말 잣대 (외래어 사정 원칙)가 없는데 어디에 기대어 가려잡았다는 말인가? ‘국어심의위원회’에서도 ‘들온말 규정’ 없이 마음대로 들온말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한자말에는 중국 옛말과 요즘 중국말, 일본에서 만든 말,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도 있다. 그런데 같은 한자말이라도 중국, 일본, 한국에서 읽는 소리가 제가끔 다르고 뜻도 다른 것이 많다. 한자말은 중국에서는 중국말이고 일본에서는 일본말이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렇지 않다. 한자말은 배달겨레말과 뿌리가 다르니 겨레말이 아니고, 들온말로 받아들인 적이 없으니 우리말이 아니다. 흔히 한자말을 천 년 넘게 써 왔다는데 몰라서 하는 말이다. 말글살이에 한자말을 쓴 것은 왜놈들이 ‘국어 상용’으로 가르친 뒤다.
6. 우리말을 살리는 길
우리 겨레말은 날이 갈수록 한자말과 서양말에 밀려서 나라말 자리를 빼앗기고 사라져 간다. 말투마저 일본 말투, 서양 말투를 닮아서 비뚤어지고 있다. 그 뒤끝은 뻔하다. 겨레문화와 겨레다움(정체성)이 사라지고 겨레 생각마저 비뚤어진다. 나중엔 우리나라 사람끼리 말을 주고받기도 어렵게 된다. 얼빠진 겨레, 생각이 뒤틀린 겨레, 힘을 모를 수도 없는 겨레는 끝내 이 누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 말투도 바로잡아서 우리말을 바로 알고 바로 쓰도록 해야 한다.
길은 하나다. ‘들온말 규정’을 만들고 이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한자말과 서양말은 모조리 ‘들온말 가리기 (외래어 사정)’를 해야 한다. ‘들온말 잣대 (외래어 사정 원칙)’로 마름질하여 들온말과 버릴 말로 갈라낼 때 한자말 굴레에서 벗어나고 서양말로 쏠리는 눈길도 바로잡혀 우리말이 살아난다. 이보다 더 바쁘고 종요로운 일은 없다. 이 일이야말로 우리말을 살리는 오직 하나뿐이고 바른 길이다. 겨레 얼굴, 겨레 삶, 겨레 얼, 겨레 문화는 우리말이 살아날 때 비로소 바로 선다.
7. 마무리
우리 겨레 핏줄에는 예부터 아픈 내림이 이어온다. 한문글자를 눈앞에 들이밀면 바로 무릎을 꿇고, 힘센 나라 앞에만 서면 굽실거리는 종놈버릇이다. 젊어 한때는 이 버릇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도 치지만, 돈다발이 눈앞에 어른거리거나 나랏일은 맡는 자리에 앉거나 나이 들면 내림버릇이 도진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말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된다. 힘센 나라를 높이 보고 그런 나라 말과 글자를 우러러 보는 이 버릇을 씻어내야 우리말이 마음껏 자라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
한자말을 비롯한 온갖 다른 나라 말은 들온말과 버릴 말로 갈라내고, 이어서 한문글자나 서양꼬부랑글자 따위 다른 나라 글자가 한 자도 섞이지 않은 진짜 ‘우리말 본보기 사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이런 말밭에서라야 우리말이 싹트고 이 싹이 자라서 아름드리나무가 되고 수많은 나무는 우거진 숲을 이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는 글자싸움에 휘둘리거나 다른 나라 말이 우리말 안방을 넘볼 수 없게 된다. 우리말이 되살아나서 겨레 삶을 드높이고 겨레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끝)
이오덕 우리 말 생각(사상)
-《우리글 바로쓰기》와 《우리 월(문장) 쓰기》를 다시 읽으며-
1. 들머리에서
보내주신 이마글(제목)에 걸맞은 이야기를 할 만한 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짬(시간)이 모자란 탓도 있지만 저가 게을러서 이오덕님(선생의) 삶을 꼼꼼히 살피지 못하고 남긴 글을 두루 찾아 알뜰히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훌륭한 분들이 나서서 그분(의)삶과 글을 샅샅이 살펴 ‘이오덕 우리 말 생각(사상)’을 오롯이(온전히) 밝혀주시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저는 그저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옛말(속담)에 기대어 먼저(우선) 손쉬운 밑감(자료)만으로 보잘것없는 생각(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손쉬운 밑감(자료)이란 이오덕님(선생)이 우리 말을 두고 생각한 바를 알아듣기 쉽도록 간추려 속속들이 밝혀놓은 《우리말 바로쓰기》(1989), (1991), (1995)과 《우리 월(문장) 쓰기》(1992)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떳떳하지 못(구차)하지만 작은 이마글(제목)을 달아서 읽으시는 분들이 잘못알(오해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이들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오덕님(선생)이 우리 말을 어떻게 사랑하고 걱정했는지 다시 되새겨볼 수 있어서 새삼 남모르는 기쁨을 누렸음(다는 사실)도 털어놓아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실상) 저가 여기서 드리는 말씀은 이오덕님(선생)이 이들 책에서 낱낱이 간추려 똑똑하게 밝혀놓은 것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않았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물론) 저가 나름대로 드릴 말씀(의) 틀을 짜기는 했지만 이야기 바탕에서도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분(의) 글을 그대로 따와서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곧바로 들어보는 것이 제(저의) 말로 바꾸어 풀이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여러분에게 훨씬 또렷하게 다가갈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내주신 이마글(제목)에서 ‘사상’이라는 낱말은 아무래도 살갑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배곳 배움을(학교 공부를) 적잖이 하면서 하도 많이 들어온 말이라 알 듯은 하면서도 정작 속살을 만질 수가 없고 속내를 들여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속살을 만지고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갔다가 중국으로 갔다가 마침내 그리스(서양의 희랍)까지 건너가서 실컷 헤매보기도 하겠지만 끝내(결국은) 어림짐작만 하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큰마음을 먹고 ‘사상’을 그냥 ‘생각(의) 알맹이’ 쯤으로 뒤쳐 놓고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의) 이마글(제목)은 <이오덕 우리 말 생각(의) 알맹이> 쯤이 되는 셈입니다. 제 뒤침이 서툴러 잘못을 저질렀으면 부디 깨우쳐주시기 바랍니다.
2. 생각(의) 알맹이를 담은 두 그림표
이오덕님(선생)은 우리 말을 두고 생각하신 바를 《우리글 바로쓰기》 세 책과 《우리 월(문장) 쓰기》에다 남김없이 쏟아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들 네 책 가운데 맨 나중에 펴낸 《우리글 바로쓰기》에서는 ‘머리말’을 아예 ‘『우리글 바로쓰기』를 마무리 지으면서’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 같은 이름으로 내는 책은 이것으로 끝내기로 하고......” 했습니다. 해야 할 말을 남김없이 했으니 이제는 아무런 못다함(미련)이 없다면서 손을 툴툴 터는 듯한 느낌을 일으키는 말입니다.
이들 네 책을 다시 곰곰이 읽으면서 보니까 이오덕님(선생)은 ‘말과 글’을 살피며 스스로 깨달은 바를 간추려 두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물론) 먼저 나온 두 책에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 나온 셋째와 넷째 책에다 간추려 그림표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1992해(년)에 펴내놓은 셋째 책 《우리 월(문장) 쓰기》에서는 아주 조촐(단순)한 그림표를 만들었습니다.
㉠ : ① [말] → [글]
② [삶] → [생각] → [말]
③ [글] ← [글](중국글․일본글․서양글)
④ [삶] ← [생각] ← [말] ← [글]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 몹시 조촐(단순)하지만 이오덕님(선생)이 우리 말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 알맹이를 매우 또렷하게 간추려 담고 있습니다. 화살표가 바로 나가는 ①과 ②는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는 ‘바른 흐름’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지난 삶(역사)도 아니고 이제 삶(현실)도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지난 삶과(역사와) 이제 삶(현실)은 화살표가 거꾸로 나가는 ‘잘못된 흐름’인 ③과 ④라고 했습니다. 거꾸로 나가는 우리네 지난 삶과(역사와) 모둠살이(사회의) 흐름인 ③과 ④를 어떻게 하면 올바로 나가는 ①과 ②(의) 흐름으로 바꿀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오덕님(선생)을 휩싸고 괴롭히는 생각(의) 모두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낱낱이 밝혀서 풀어놓은 것이 다름 아닌 이들 네 책(의) 속살입니다.
그런데, 1995년에 펴내놓은 마지막 책 《우리글 바로쓰기》 에서는 이보다 한결 겹쳐 뒤섞인(복잡한) 그림표를 만들었습니다.
㉡ ● 말과 글 짜임(의 관계) 그림
ㆍ 말과 글이 맞서서 어긋나고 거꾸로 흐르는 지난 삶과(역사와) 모둠살이(사회) 짜임
⇒ 바로 흐름 → 거꾸로 흐름
㉮ ㉯
(제(본) 자리) [ 말 ] ⇒ [ 글 ] 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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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흐름) [ 입말 ] ← [ 글말(책) ] ❷
| |
(어른) [여름지기와(농사꾼과) ← [책을 읽고 ❸
그밖에 일하면서 (가르침(교육)․ 글 속에 사는
사는 백성들] 뱀뱀이(교양)․ 이들 –알음알이꾼(지식인),
깨우침(계몽)․ 글쟁이(문필가), 갈이(학자),
말꽃(문학)․ 믿음꾼(종교인), 벼슬아치(관리),
재주(예술)․ 판가름아치(법관)]
갈(학문))
| |
(갈배움(교육)) [어린이(학생)] ← [갈침이(교육자(어른)] ❹
(교과서)
| |
(뿌리) [ 나, 우리 ] ← [ 남의 것 - ❺
중국․일본․
서양 ]
| |
(바로 [삶]→[말] ⇒ [ 글 ] ❻
세우기) (삶을 가꾸는 글쓰기,
우리 말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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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나와 겨레를 거스름(부정),
어린이와 다른나라 우러름(외국숭배), 큰나라 섬김(사대주의),
겨레를 살리는 힘과 자리 섬김(권위주의), 겨레 거스림(반민족),
길 백성 임자됨 거스림(반민주), 사람 거스림(반인간),
누리 거스림(반자연)
보시다시피 세로로 ㉮와 ㉯의 두 줄로 마련했습니다. ㉮ 쪽으로는 [말], [입말], [여름지기(농사꾼), 일하면서 사는 백성들], [어린이, 배움이(학생)], [나, 우리], [삶]→[말], 이렇게 줄을 지어 있고, ㉯ 쪽으로는 [글], [글말], [책을 읽고 글 속에 사는 이들], [갈침이(교육자(어른)], [남의 것-중국․일본․서양], [글], 이렇게 줄을 지어 있습니다. 그리고 ㉮ 쪽은 “말과 어린이와 겨레를 살리는 길”이라고 맨 밑에다 밝혀놓고, ㉯ 쪽은 “나라와 겨레를 거스르고, 다른 나라 우러르고, 큰나라 섬기고, 힘으로 다스리고, 겨레에 맞서고, 백성에 맞서고, 사람에 맞서고, 누리흐름에 맞섬(부정, 외국숭배, 사대주의, 권위주의, 반민족, 반민주, 반인간, 반자연”)이라고 또한(역시) 맨 밑에다 못을 박았습니다. 사람과 누리를(세상) 살리고 나라와 겨레를 살리려면 ㉮ 줄을 튼튼하게 가꾸어야 하고, 사람과 누리를(세상을) 죽이고 나라와 겨레를 죽이려면 ㉯ 줄을 튼튼하게 꼬아야 한다는 뜻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또 한편 가로로는 ❶에서 ❻까지 여섯 줄로 마련했습니다. 맨 처음과 맨 끝인 ❶과 ❻에는 바로 흐름(⇒)이라 밝혀 놓았고, 가운데 들어 있는 ❷와 ❸과 ❹와 ❺에는 거꾸로 흐름(←)이라 밝혀 놓았습니다. 앞 책(의) 그림표 ①과 ②를 여기서는 맨 처음과 맨 끝으로 갈라 ❶과 ❻이 되게 하고, 앞 책(의) 그림표 ③과 ④를 여기서는 ❷와 ❸과 ❹와 ❺로 나누어 가운데 싸잡은 셈입니다. 말하자면 본디 제자리(본 자리)로 마땅하게 바로 흐르던 ❶에서 비롯하여 잘못된 흐름으로 들어서서 거꾸로 흐른 ❷와 ❸과 ❹와 ❺를 거쳐 마침내 우리가 일으켜 세워 다시 바로 흐르게 해야 할 ❻까지를 차례로 잡아 베푼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셋째 책(의) 그림표 ㉠과 넷째 책(의) 그림표 ㉡은 서로 적잖이 다른 뜻을 담고 있는 듯도 합니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과 ㉡은 조금도 다른 뜻을 담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 속에 갈무리해 두었던 생각(의) 속살들이 ㉡에 와서 훨씬 갖추어진 모습으로 드러났을 뿐입니다. ㉠이 생각(의) 바탕과 얼개였다면 ㉡은 생각이 자라서 오롯(온전)해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만을 살피며 더듬어보아도 ㉠을 버리거나 놓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오덕님(선생) 스스로도 ㉡이 당신(의) 생각을 간추려 드러냄에 마음에 차는(낸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튼 나는 우리 모둠과 지난 삶 (사회와 역사의) 모든 참 모습(실상)과 거기 얽힌 일을(문제를 )푸는 열쇠를 ‘말’에서 찾아내었다. 내 책을 읽어주는 분들도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뛰어난(위대한) 우리 한아비 나라(조국의) 말, 배달말은 훌륭한(위대한) 글자 한글을 낳았고, 이 말과 글은 내게 모든 것을 환히 비춰 보여주는 햇빛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 책 곳곳에서 조금씩 나타나 있지만, 이 머리말 다음에 그려 놓은 ‘말과 글짜임(의 관계) 그림표’에 조촐(간단)하게나마 간추려(요약해) 놓았다. 우리 말을 살리는 길만이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의) 길임을 이 표가 말해 줄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 두 그림표는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고, 둘이 아니라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 것은 뒤에 것 속에 모두 싸잡혀 있고 거기서 오롯(온전)하게 자라나 있다고 보겠습니다. 그래서 “<이오덕 우리 말 생각(의) 알맹이>는 그림표 ㉡이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 누리에(세상의) 감춰진 참(이치)
이오덕님(선생)은 배달말과 한글이 당신에게는 모든 것을 환히 비춰 보여주는 햇빛이라고 말했습니다.
“훌륭한(위대한) 우리 한아비 나라(조국의)말, 배달말은 뛰어난(위대한) 글자 한글을 낳았고, 이 말과 글은 내게 모든 것을 환히 비춰 보여주는 햇빛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배달말과 한글이라는 햇빛에 힘입어 눈을 뜨고 겪은(경험한) 바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 짓 하나하나와 생각과 느낌(하나하나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한 무리가 풀어내야 할 일 알맹이(가지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며, 한 겨레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 내려오는(오랜 세월에서 어떤 특수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아 오고 있는) 까닭까지도, 그 무리와 그 겨레가 말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하는 데서 아주 쉽게(신통하게) 술술 풀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배달말과 한글이라는 햇빛에 힘입어 사람들이 말을 어떻게 하는가, 글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니까 “사람들 하나하나 짓과 생각과 느낌(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 “한 무리가 가지고 있는 풀 일 알맹이(문제의 본질)”, “한 겨레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 내려오는 (오랜 세월에서 어떤 특수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아 오고 있는) 까닭”이 “아주 쉽게(신통하게) 술술 풀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고 했습니다.
놀라면서 깨달은 이들 세 가지는 누리(세상의) 깊숙한 속내입니다. 곧 “사람들 하나하나짓과 생각과 느낌(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은 ‘사람됨’이고, “한 무리가 가지고 있는 풀 일 알맹이(문제의 본질)”은 ‘무리됨’이고, “한 겨레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 내려오는(오랜 세월에서 어떤 특수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아 오고 있는) 까닭”은 ‘겨레됨’입니다. ‘사람됨’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말을 그렇게 하기 때문이고, ‘무리됨’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도 그 무리가 말을 그렇게 하기 때문이며, ‘겨레됨’이 그러한 것도 그 겨레가 말을 그렇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됨됨이, 곧 사람과 그 동아리(의) 됨됨이는 그들이 쓰는 말과 글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이오덕님(선생)은 배달말과 한글이라는 햇빛을 힘입어 바라보니까 ‘우리 나눔(정치)’, ‘우리 갈라짐(분단 문제)’, ‘우리 살림(산업과 경제)’, ‘우리 갈배움(교육)’, ‘우리 바른 소리(언론)’ ‘우리 말꽃(문학)’, ‘우리 갈(학문)’, ‘우리 믿음(종교)’ 이런 모든 것들 참 꼬라지와 풀일(의 실상과 문제)까지도 환히 보인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눔이(정치가) 왜 이렇게 바로잡히지 않는가, 겨레가 갈라져서 하나 되지 않는 참(분단문제가 풀리지 않는 근본)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어째서 살림살이(산업과 경제의) 밑바탕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고 바드러운가(위태위태한가), 왜 갈배움(교육)이 엉망이고 바른 소리가(언론이) 제 구실을 못하는가도 내 눈에는 말 때문임이(말의 문제로) 환하다. 말꽃(문학)이고 갈(학)이고 믿음이(종교)고 모든 풀 일이(문제가) 다 그렇게 잡힌다.”
그리고 마침내 이오덕님(선생)은 “숨어 있는 누리 참과(세상의 감춰진 이치”와) “우리 살아온(역사의) 밑뿌리가 그 무엇에 얽혀 있는가 하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였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어떻게 하는가, 글을 어떻게 쓰는가를 눈여겨보고 듣고 하니까 뜻밖에도 이 ‘말’로 하여 감춰진 누리흐름이(세상의 감춰진 이치가) 자꾸 드러나 보였고 그래서 마침내 우리 지난 삶(역사의) 밑뿌리가 그 무엇에 얽혀 있는가 하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우리 지난 삶(역사의) 밑뿌리가 그 무엇에 얽혀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 겨레됨’(의) 속내입니다. 오늘 우리 겨레(의) 겨레됨이 어째서 이러한가를 훤히 들여다보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람됨과 무리됨과 겨레됨(의) 속내를 이오덕님(선생)은 한 마디로 ‘감춰진 누리흐름이(세상의 감춰진 이치)’라고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로 하여 감춰진 누리흐름이(세상의 감춰진 이치가) 자꾸 드러나 보인다.”는 말은 끝내(결국) 이런 모든 참(사실)을 한 마디로 묶은 셈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말하는 ‘감춰진 누리흐름이(세상의 감춰진 이치’가) 다름 아닌 그림표 ㉡에 담겨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림표 ㉡이 보여주는 ‘감춰진 누리흐름이(세상의 감춰진 이치)’란 한 마디로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본) 자리 ❶> → <잘못된 흐름 ❷> → <바로 세우기 ❻>입니다. 본디 있었고 언제나 있어야 하는 마땅하고 오롯한(온전한) 자리(❶)가 어떤 매개(사정)들 때문에 뒤틀리고 거꾸로 서서 잘못된 흐름이 되어 가고 있으니(❷) 우리가 모두 얼(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서 본디 자리에 바로 세워야 한다(❻)는 것입니다. ❸과 ❹와 ❺는 모두 <잘못된 흐름 ❷> 속에 감춰진 속내이기 때문에 거기 싸잡혀집니다. 이것은 말을 바꾸면 <오롯(온전)함(바로 흐름) → 흐트러짐(거꾸로 흐름) → 오롯(온전)함(바로 흐름)>입니다. 본디는 흠도 티도 없이 바람직한 오롯(온전)함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흠과 티가 끼어들어 잘못된 흐름을 일으키면서 흐트러져 버렸습니다. 그런 흐트러짐은 여태 바로잡히지 않았고 앞과 같이(여전히) 바로잡힐 낌새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흠과 티를 가려내고 본디(의) 바람직한 오롯(온전)함으로 바로 세워야 마땅합니다. 이것이 감춰진 누리흐름(세상의 감춰진 이치)입니다. 이렇게 그림표 ㉡은 말하고 있습니다(있는 것입니다.
(제(본) 자리) [ 말 ] ⇒ [ 글 ] 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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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 입말 ] ← [ 글말(책) ] ❷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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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 삶 ] → [ 말 ] ⇒ [ 글 ] ❻
세우기) (삶을 가꾸는 글쓰기,
우리 말 살리기)
벌써 눈치 채셨을 줄 압니다만 누리흐름을(세상 이치를) 이런 눈으로 보는 것은 이오덕 님(선생)뿐이 아닙니다. 일찍이 뛰어난 스승들은 너나없이 입을 모아 누리흐름이(세상의 이치가) 이렇다고 부르짖으며 가르쳤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랬고, 공자님도 그랬고, 예수 그리스도님도 그랬고, 마호메트님도 그랬습니다. 그밖에 참된 가르침(종고)에서는 모두 그렇게 가르치고 일찍이 우리 겨레가 믿고 받들며 살았던 굿(무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오덕님(선생)이 우리 겨레(의) 말을 살피면서 깨달은 누리흐름이(세상 이치가) 이분들(의) 가르침과 꼭 같은 틀임은(틀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갖가지 거룩한(종교의) 가르침에서는 그야말로 온 누리를(세상을) 보지만 이오덕님(선생)은 우리 겨레가 어우러져 사는 누리(세상)만을 보아서 크게 다릅니다. 그런 까닭에 누리를(세상을) 잘못된 흐름으로 몰고나간 흠과 티도 거룩한(종교의) 스승들이 짚은 것과는 저절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거룩한 가르침을(종교를) 일으킨 스승들은 누리를(세상을) 잘못된 흐름으로 몰고 가는 흠과 티를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하고픔(욕심)’과 ‘뽐냄(교만)’으로 짚는 것이 한결같지만 이오덕님(선생)은 우리 겨레(의)삶을 잘못된 흐름으로 몰고 간 흠과 티를 ‘글말(책)’이라고 짚었습니다. 아주 놀라울 만큼 올바로 짚었다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우리 겨레(의) 누리(세상)에 글말(책)이 들어와 지난 삶(역사) 흐름을 잘못된 길로 몰고 간 자취는 제법 뚜렷하지만 여느 사람들은 그것을 눈여겨보지 못했고 잘못된 길임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중국 진나라 태학을 본받아 고구려 임금집안(왕실)이 서기 372년에 세운 태학을 비롯하여 다시 중국 당나라 국학을 본받아 신라 임금집안(왕실)이 서기 682년에 세운 국학에 이미 중국(의) 글말(책)이 임금집안(왕실의) 품에 안겨 버젓이(당당히) 들어왔습니다. 남(의) 글말로 남(의) 삶을 써서 담은 책이 들어와서 우리 겨레(의) 다스리는 무리들를(지배층을) 하루하루 잘못된 길로 밀어 넣었습니다. 신라(의) 국학 뒤로 중국 글말(책)은 조선임금나라(왕조)가 무너진 스무 번째 온 해(20세기) 맏무렵(초엽)까지 즈믄 서온 해(일천 삼백 년을) 넘게 갈수록 활개를 쳤습니다.
그러다가 조선임금나라(왕조)가 무너질 즈음에 이르자 다스리는 무리(지배층) 사람들은 마음을 바꾸어 이제는 하늬녘(서양)을 배워야 살 수 있다고 다투어 부르짖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귀는 으뜸일꾼쯤 되는(외교통상부 장관쯤의) 자리에 있던 독일사람 묄렌도르프가 세운 <동문학>(1883)과 미국 보빙대사 박영익이 이른바 제어미말 가르침이(원어민 교사)를 불러들여 세운 <육영공원>(1886)을 비롯하여 1894년에 일본 손아귀에 쥐여 틀을(체제를) 바꾼 다스리는 곳이(정부가) 세운 <일어학교>, <영어학교>, <법어학교>, <덕어학교>, <노어학교>가 잇달아 남(의) 글말(책)을 다투어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지난 삶(역사의) 흐름은 오늘까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은 채 굽이치며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겨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일이 우리 삶을 잘못된 길로 밀어 넣는 흠과 티가 됨(된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길임을 알아보기는커녕 그런 길이야말로 우리를 살리고 키우고 드높이는 길이라고 굳게 믿으며 앞을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 것을 좀더 멀리 팽개쳐버리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남(의) 것을 좀더 알뜰하고 오롯하게(온전하게)배워서 본받지 못한 것을 뉘우쳐 한숨지었(한탄했 )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라도 다른 사람보다 남(의) 것을 빨리 배우고 많이 본받아서 우리 것으로부터 멀리 떠나갈 수 있을까 하며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이런 지난 삶과 모둠살이(역사와 사회) 안에 이오덕님(선)은 감춰진 흐름을(이치를) 이렇게 꿰뚫어본 것입니다. ‘감춰진 누리흐름을(세상의 감춰진 이치’를) 제대로 꿰뚫어보았기 때문에 잘못된 흐름을 바로잡아 일으킬 길도 환히 밝혀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림표 ㉡에서 이오덕님(선생)은 그 길을 ‘바로 세우기’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세우기’를 이루어낼 길(방도)까지 ‘삶을 가꾸는 글쓰기’와 ‘우리 말 살리기’ 두 가지라고 똑똑히 밝혀 놓았습니다.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에는 언제나 밝은 빛으로 길을 밝히는 등불이 있고,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길잡이가 있게 마련임이(마련이라는 사실이) 어김없이 드러났습니다.
4. 거꾸로 흐른 지난 삶과 모둠살이(역사와 사회)
이제 <이오덕 우리 말 생각(의) 알맹이>에서도 가장 알맹이를 더듬어볼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 말이 놓여 있는 매개를(형편을) 이오덕님(선생)은 어떻게 밝혀놓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분(의) 우리 말 살펴본 글을(진단서를) 따져(살펴)볼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름난 나숨이는(의원은) 무엇보다도 살핌(진단)을 올바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이 살핌글이야(진단서야)말로 <이오덕 우리 말 생각(의) 알맹이> 가운데서도 가장 알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오덕님(선생의) 살핌글은(진단서는) 오늘날 우리 말 누리가(세상이 )온통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흐름을 네 가지 뼈대로 가려내어 아래와 같은 그림표로 나타내 놓았습니다.
(잘못된 흐름) [ 입말 ] ← [ 글말(책) ] 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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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여름지기와(농사꾼과) ← [책을 읽고 ❸
그밖에 일하면서 (가르침(교육)․ 글 속에 사는
사는 백성들] 뱀뱀이(교양)․ 이들]
깨우침(계몽)․
말꽃(문학)․
재주(예술)․
갈(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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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배움(교육)) [어린이(학생)] ← [갈침이(교육자(어른)] ❹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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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 나, 우리 ] ← [ 남의 것 ] ❺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그림표에 보이는 ❷, ❸, ❹, ❺는 뜨레가 서로 다릅니다. ❷는 ‘잘못된 흐름’(의) 큰 줄기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이 그림표(의) 뼈대입니다. ❸은 그처럼 잘못된 흐름을 만들어내고 일으키고 키워가고 하는 으뜸 힘(세력)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뼈대인 ❷를 살아 있는 몸집으로 만들어내는 피와 살입니다. ❹는 그런 으뜸 힘(세력) 가운데서도 잘못이 가장 큰 힘(세력), 곧 몸집(의) 피와 살이 살아 있도록 만드는 핏줄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좀더 깊숙이 들여다본 ❸의 속내인 셈입니다. ❺는 ❷, ❸, ❹, 이런 모든 잘못된 흐름의 뿌리며 심줄입니다. 잘못(의) 큰 줄기인 ❷(의) 심줄이며 뿌리라 해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표를 ❺ → ❹ → ❸ → ❷로 읽으면 우리 겨레가 거꾸로 걸어온 삶 흐름을(삶의 역사를) 환히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일본, 서양 같은 남(의) 것을 우러러보며 그들(의) 글말(책)을 불러들여서 ‘나’를 내버리는 마음과 ‘우리’를 업신여기는 마음(외국숭배, 사대주의)을 키운 것, 이것이 잘못된 흐름(의) ‘뿌리’가 되었습니다.(❺)
“이와 같이 서양말 즐겨 쓰는 버릇은 일본말 즐겨 쓰는 버릇이었고, 중국글자말 자랑스럽게 쓰는 버릇이었다. 중국글자말에서 일본말로, 다시 하늬(서양)말로...... 이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그만둔 얼 꼬라지(정신 상태)에서 보여주는 슬픈 버릇이다. 우리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나랍게(천하게) 여겨서 덮어 가리고 지워 없애고 싶어 하고, 그래서 남(의) 것을 쳐다보고 흉내 내고 따라가고 싶어 하는 앓는(병든) 몸가짐, 바로 얼이 빠진 종살이 버릇이요, 나라를 잃고 겨레를 잃는 얼앓이(망국망족의 정신병)이다.”
중국을 우러러보며 그들의 글말(책)을 불러들여 ‘나와 우리’를 내버린 해와 달(세월)은 적어도 즈믄 닷온해(일천오백 년), 일본과 하늬녘(서양)을 우러러보며 그들(의) 글말(책)을 불러들여 ‘나와 우리’를 업신여긴 해달(세월)은 온해 남짓(일백여 년), 이것이 우리네 마음을 다른 나라 우러르고 큰 나라 섬기는(외국숭배와 사대주의라는) 잘못된 구렁으로 밀어 넣은 지난 삶(역사)입니다.
“우리 겨레 다(전체)를 보아도 그렇다. 지난 즈믄 해(천 년) 동안 우리 겨레는 끊임없이 남(의)나라 말과 글에 우리 말글을 빼앗기며 살아왔고, 이제는(지금은) 온통 남(의) 말글(의) 큰물(홍수) 속에 떠밀려 가고 있는 판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이 나라(의) 어버이(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미말을(모국어를) 가르치는 일조차 아예 그만두었다.”
“말과 글이 병든 것은 삶이 병들고 지난삶이(역사가) 병든 것이다. 이래가지고 우리가 무슨 말꽃(문학)을 하고 갈배움(교육)을 하고 삶꽃을(문화를) 꽃피운다고 하겠는가? 삶에서 아주 떠난 말, 하늘(공중)에 붕 뜬 말과 글을 가지고!”
이처럼 부끄럽고 서글픈 지난 삶(역사), 이렇게 어리석고 얼빠지게 살아온 삶을 이오덕님( 선생)은 중국글과 중국글자말이라는 ‘미구’(의)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째서 우리가 이 꼴이 됐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겨레 안에 우리를 잡아먹는 ‘미구’가 있는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피 속에 미구(의) 피가 들어 있는 것이다. 몰라도 아는 척, 없어도 있는 척, 우리 것은 부끄럽게 여겨서 짓밟아버리고 남(의) 것을 흉내 내어 가지고 싶어 하는 이 더러운 소갈머리는 즈믄 해(천 년)도 더 앞(이전)부터 우리 겨레(의) 말과 얼을 끊임없이 야금야금 잡아먹는 중국글과 중국글자말이라는 꼴로 나타난 미구였다. 이 미구가 온 해 앞(백 년 전)부터는 일본말로 겉 바꿈(둔갑)을 하고, 하늬(서양)말로도 겉 바꾸며(둔갑하면서) 나라를 송두리째 팔아먹더니 아직도 뻔뻔스럽게 서울(의) 거리를 활개치고 다닌다. 겨레를(동족을) 마구 죽여(학살하여) 힘(권력)을 휘두르고 가멸짐을(부귀를) 누린 것도 끝내(필경 )미구(의) 짓이다.”
우리를 잡아먹는 ‘미구’에게 홀려서 잘못된 마음을 키운 어른들, 무엇보다도 가르침이(교육자)가 남(의) 글로 이루어진 갈침책을(교과서를) 들고서 배움이(학생), 곧 어린이들을 잘못된 흐름으로 밀어 넣었습니다.(❹) 중국 ‘미구’는 진나라 태학과 당나라 국학을 고스란히 옮겨놓고 거기서 갈침책을(교과서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잘 읽고 잘 쓰는 재주만을 겨루어서 벼슬자리를 주었습니다. 일본 ‘미구’는 서른다섯 해 동안 쳐들어 와 다스리면서(침략 통치를 하면서) 일본말을 우리(의) ‘나랏말이(국어)’라고 우기며 일본 글말로 이루어진 갈침책으로(교과서로) 온 나라 어린이를 닦달하며 가르쳤습니다. 하늬(서양) ‘미구’는 지난 온해 남짓(일백여 년) 동안 가운데 배곳(중학교)부터 높은 배곳으로(학교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하늬(서양 )글말로 쓰인 갈침책으로(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배곳(학교)에 들어가기 앞(전)에 어버이(부모)로부터 한뉘를(평생을) 쓰게 되는 나날말을 거의(일상의 말 대부분을) 배웠다. 그러나 학교란 곳에 들어가고부터는 집에서 배운 말과는 바탕이 다른 얼개(체계의) 말을 익혀야 했다. 그래서 어버이(부모)한테서 배운 말을 부끄럽게 여기고 잊어버리게 하는 갈고닦기를(훈련을) 오랫동안 받았던 것이다. 배곳(학교)뿐 아니라 모듐살이(사회)에 나와서도 그랬다. 나 혼자(개인의) 지난 날을 돌아보면 어렸을 때 배운 어미말을(모국어를) 배곳과 모둠살이(학교와 사회)에서 끊임없이 빼앗기고 또 스스로 짓밟으며 살아왔음을(살아왔다는 사실을) 나이가 60이 훨씬 넘은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이들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어른말, 글말만을 하도록 갈고닦는 갈배움(훈련하는 교육)이 우리말 모두(전체)를 앓게(병들게) 하고, 우리 겨레(의 )마음을 앓게(병들게)하고, 그래서 우리 말꽃(문학)이며 재주(예술이)며 갈(학문)이며 나눔이며(정치며) 지난 삶 모두(역사 전체)를 앓게(병들게) 하는 뿌리가(근원이) 되었다고 본다.”
이런 갈배움(교육)이 쌓이면서 책을 읽으며 글 속에 사는 사람들(알음알이꾼(지식인), 글쟁이(문필가), 갈이(학자), 믿음꾼(종교인), 벼슬아치(관리), 판가름벼슬아치(법관))이 날이 갈수록 불어났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글쟁이(문인)들은 방안에 앉아 제멋대로 글재주만 부리고 있다. 이들은 또 어렸을 때부터 책만 읽고 글 속에서 자라났다. 그 글이 죄다 일본글을 잘못 옮겨 놓은 글이고, 떠들썩한(요란한) 중국글자말로 된 글이고, 그래서 우리말은 아주 매개(형편)없이 망가져버린 글이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거기 빠져서 그런 글만 되풀이해서 쓰고 있으니, 이래가지고 무슨 이야기가(소설이 )되고 노래(시)가 되겠는가? 겨레말꽃(민족문학)이고 뭐고 해도 다 뿌리 없이 만든 종이꽃에 지나지 않는다.”
남(의) 글로 된 책을 읽으며 그런 글 속에 사는 사람이 불어나서 갈배움(교육), 뱀뱀이(교양), 깨우침(계몽), ), 재주(예술), 갈(학문) 같은 이름으로 여름지기와(농사꾼과) 그밖에 일하며 사는 백성까지 잘못된 흐름으로 밀어 넣었습니다.(❸) 우리 겨레(의) 삶을 아주 밑바탕까지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름지기(농민)들이 모인 어느 자리에서 그곳 사투리로 된 옛이야기를 읽어준 일이 있다. 바로 『배달 이야기 말꽃 큰 갈래(한국 구비문학 대계)』에 나온 이야기다. 이거야말로 진짜 우리 말이고 우리 얘기다 하고 무릎을 칠 것이라 바라(기대하)면서. 그러나 내가 읽기를 마치자마자 여름지기(농민)들은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요!” “좀 알음 많은 말꽃(유식한 문학) 얘기를 해주세요!” 하고. 나는 그 눈깜짝할 새(순간) 벼랑(절벽) 아래로 떨어진 느낌(기분)이었다. 여름지기(농민)들만은 살아있는 우리 말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이제는 온 나라(의) 알음쟁이(지식인)들, 글 쓰는 이들이 모두 딴 나라 말본(외국말)으로 다른 나라말을 곧이곧대로 뒤친(외국말 직역한) 말투로 ‘많이 아는 체(유식하게)’ 쓰고 말하고 하니 여름지기(농민)들의 말도 아주 뿌리가 뽑혀버린 것이 마땅(당연)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겨레(의) 지난 삶이(역사가) 거꾸로 흐르면서 굴러 떨어진 삶(의) 꼴(현실)이 이런 매대(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매대(지경)에까지 다다른 지난 삶(역사의) 기나긴 흐름을 한 마디로 묶어 뭉뚱그리면 남(의) ‘글말(책)’이 우리 ‘입말’까지 잘못된 길로 밀어 넣었다(❷)고 말할 수 있는 그것입니다. 그런 삶터를(현장을) 몸소 알아보던(확인하던) 눈깜짝 새 (순간)에 받은 느낌을 이오덕님(선생)은 “벼랑(절) 아래로 떨어진 느낌(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벼랑(절벽) 아래로 떨어진 느낌(기분)!
5. 바로 세우기
살핌글이(진단서가) 이렇게 나왔으니 이제 남은 일은 나숨(치료), 곧 “바로 세우기”입니다. 낫수는(치료의) 길도 말할 것 없이(물론) 그림표에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 세우기) [ 삶 ] → [ 말 ] ⇒ [ 글 ] ❻
(삶을 가꾸는 글쓰기,
우리 말 살리기)
보시다시피 ‘바로 세우기’는 [삶]에서 [말]이 나오도록 하고, [삶에서 나온 말]에서 다시 [글]이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할 것 없이(물론) [말]에서 [글]이 나오는 (제(본) 자리), 곧 ❶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본) 자리)에서는 굳이 드러내지 않았던 [삶]이 [말](의) 뿌리며 바탕임을(바탕이라는 사실을) 여기서는 굳이 드러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본) 자리)에서 [글]이 [말]로부터 나올 적에는 말할 나위도 없이 그 [말]은 또 그 바탕인 [삶]에서 나오고 있어서 굳이 드러낼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글]이 [말]을 망가뜨리는 잘못된 흐름을 되돌려 바로 세우고자 할 적에는 [말]이 이미 [삶]을 떠나 망가져 있기 때문에 굳이 [말]을 [삶]에서 끌어내도록 못 박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오덕님(선생)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와 “우리 말 살리기” 두 가지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이들 두 가지는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고, 무게가 다를 것도 없고 먼저와 나중이 있다고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말씀에서도 ‘말 살리기’를 이야기하지만 삶과 글을 함께 싸잡아 이야기합니다.
“말을 살리는 길은 글을 바르게 따지고(비판하고) 책을 바르게 따지는(비판하는) 길이요, 삶을 찾아가지는 길이다. 말을 살리는 길은 책과 글 속에 빠져 있는 앓는(병든) 삶에서 벗어나 참된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책과 글 속에 묻혀 있도록 하는 그릇된 갈배움(교육0을 바르게 따지고(비판하고) 바로잡는 길이다. 책만 읽고 글만 쓰는 글쟁이들(의) 글에 끌려가지 말고, 그것을 마다하고(거절하고) 그것에 맞서서 제 스스로 살고(자기 자신의 삶과) 삶에서 우러난 말을 자랑스럽게 쓸 때 비로소 말은 살아날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 세우기)는 [글] → [말] → [삶](의) 흐름을 되돌려 [삶] ⇒ [말] ⇒ [글] (의) 흐름으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런 일(사실)을 이오덕님(선생)은 두 가지 길(방도), 곧 “삶을 가꾸는 글쓰기”와 “우리 말 살리기”에다 기막힌 솜씨로 갈라 얽었습니다. 이들 두 가지를 하나가 되도록 그림을 그려보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 [말] 살리기 [말]
△ ⇒ △
[삶]을 가꾸는 [글] 쓰기 [삶] [글]
[삶]과 [말]과 [글]이 반반한 자리(평면)에 나란히 놓여서 흐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제(본) 자리)로 되돌리도록 (바로 세우기)를 하자면 세모꼴(의) 꼭지에 하나씩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반반한 자리(평면)에 나란히 놓이면 두(양)쪽 끝에 있는 [삶]과 [글]은 서로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고 하니까 그것이 서로 닿아야 함(한다는 사실)을 곧장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말] 살리기”를 따로 떼어서 세우니까 마침내 [삶]과 [말]과 [글]이 저마다 세모꼴(의) 꼭짓점에 앉아서 서로 닿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말]이 세모꼴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삶]과 [글]을 모두 살리는 열쇠며 지렛대임이 제대로 드러났습니다. 우리 [말]을 살리면 우리 [글]도 살아나고 우리 [삶]도 살아나고 우리 모두가 살아난다. 이것이 <이오덕 우리 말 생각(의) 알맹이>임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어떤 일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 다른 나라말과 다른 나라 말본(외국말과 외국말법)에서 벗어나 우리 말을 살리는 일이다. 백성이 임자 되고 겨레를 하나로 잇는 일은(민주고 통일이고 그것은) 언젠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그것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는 것이 좋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세해(3년) 뒤에 이뤄질 것이 스무해(20년) 뒤에 이뤄진다고 해서 백성이 임자되고 겨레를 하나로 잇는(그 민주와 통일의) 바탕이 아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말이 아주 바뀌는 일은(변질되는 그것은) 끝내(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한번 잘못 앓아(병들어) 굳어진 말은 다스려도(정치로도) 바로잡지 못하고 뒤집어도(혁명도) 할 수 없다. 그것으로 우리는 끝장이다. 또 이 땅(의) 백성이 임자 되는 일은(민주주의는) 남(의) 말 남(의) 글로써 애지을(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말로써 애짓고(창조하고) 우리 말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말을 살리는 일이 바로 목숨을 살리는 일임을 모두가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 땅에서 떳떳하게(당당하게) 살아남을 겨레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말이 살아나지 않고서는 도무지(절대로) 우리 겨레가 살아날 수 없음을(없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가 갈 길이 환히 트일 것이다.”
“죽어가는 배달말, 그것은 소리 한 번 질러 보지 못하고 산채 묻힌(생매장당한) 숱한 우리 백성들(의) 목숨이다. 큰 고을 쓰레기마당에서 비닐 자루에(도시의 쓰레기장에서 비닐 부대에) 무더기로 처넣어 꽉 막힌(봉한) 채 버려져 숨이 막혀 죽어가고 썩어가 흙으로 돌아갈 수도 없이 된 그 수많은 여린 병아리들(의) 불쌍한(처참한) 모습이기도 하다. 아아, 이래가지고 우리가 죽어선들 어느 땅이고 하늘이고 헤맬 자리조차 있겠는가?”
“쌀을 열면(쌀 개방은) 밥그릇을 미국 사람들에게 맡겨버리는 짓이지만, 말을 열면(말 개방은) 우리들(의) ‘얼’과 ‘기’를 송두리째 일본과 미국에 팔아넘기는 짓이 된다. 밥그릇을 남에게 맡기는 것도 큰일이지만(문제지만), ‘얼’과 ‘기’를 빼앗기면 뿌리 없는 나무와 다름이 없다. 숨탄것과 푸나무(동물과 식물)까지도 ‘기’가 잇고 ‘얼’이 있다는데, 사람에게 그것이 없으면 어찌 되겠는가?”
“지금이야말로 말과 글을 팔고 있는 사람들은 땅을 치며 뉘우쳐야 할 때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우리 아들이 있는 곳으로, 우리 말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말]을 살리는 일이 [글]을 살리고 사람(의) [삶]을 살리고 마침내 나라와 겨레와 누리를(세상을) 살리는 일임을 어떻게 이보다 더 사무치는 목소리로 부르짖을 수가 있겠습니까!
6. 본디 우리말 자리
이제 제(저의) 이야기도 막바지에 거의 다다른 듯합니다. 이오덕님(선생)이 “우리 말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으니, 돌아가야 할 “우리 말이 있는 곳”을 길잡이하면 제 몫은 어지간히 다한 듯하기 때문입니다.
“말을 마음대로 마구 토해 내는 사람, 그렇게 토해 내는 말들이 모두 살아 있는 구수한 우리 말이 되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참말(정말) 반갑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말에서 비로소 잊었던 자란 곳(고향)으로, 우리(의) 넋이 깃들인 누리(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어렸을 때 배운 시골(고향의) 말을 참 용하게도 잊어버리지 않고 빼앗기지도 않고 잘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끝없이(한없이) 부러워진다.”
여기서 이오덕님(선생)은 “구수한 우리 말이 되어 있는” “어렸을 때 배운 옛 시골(고향의) 말”, 곧 “어렸을 때 배운 구수한 옛 시골(고향의)말”을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디 우리 말 자리라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뜻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말이 우리 말인가 아닌가 판가름(판단)이 잘 안 될 때는, 시골에 사는 여름지기(농사꾼), 책을 읽지 않고 일하면서 살아가는 여름지기(농사꾼이)라면 그 말을 하겠는가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라. 그래서 여름지기(농사꾼의) 입에서 나올 것 같은 말이라면 우리 말이 틀림없으니(분명하니) 마음 놓고 쓸 것이고, 여름지기(농사꾼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말이라면 일본글에서 온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
“시골에서, 책을 읽지 않고, 일하면서 살아가는” “여름지기(농사꾼의) 입에서 나올 것 같은 말”이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디 우리 말 자리라고 했습니다. 또 같은 뜻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이든지 여느(일반) 백성들이 널리 쓰는 말을 따라서 쓰면 틀림없고, 그것이 가장 깨끗하고 똑바른(정확한) 말이다.”
“여느(일반) 백성들이 널리 쓰는 말”이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디 우리 말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말을 조금 바꾸어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바르고 깨끗한 우리 말이란 옛날부터 우리 겨레가 써온, 아이들도 잘 아는 쉬운 말이다.”
“쉬운 우리 말을 내버리고 어려운 남(의 )나라 글자말을 쓰고 싶어 하는 이 슬픈 버릇, 이것이 풀어야 할 으뜸 일이다(근본 문제다).”
“옛날부터 우리 겨레가 써온, 아이들도 잘 아는 쉬운 말”, 한 마디로 “토박이말”이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디 우리 말 자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디 우리 말 자리를 이오덕님(선생)은 “어렸을 때 배운 구수한 옛 시골(고향의) 말”, “시골에서, 책을 읽지 않고, 일하면서 살아가는 여름지기(농사꾼의) 입에서 나올 것 같은 말”, “여느(일반) 백성들이 널리 쓰는 말”, “옛날부터 우리 겨레가 써온, 아이들도 잘 아는 쉬운 말” 이렇게 넷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옛 시골(고향) 말”, “여름지기(농사꾼의) 말”, “백성(의) 말”, “쉬운 말” 이렇게 넷은 조금도 다른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것이고, 하나로 묶으면 “옛날부터 우리 겨레가 써온 토박이말”입니다. 그런 ‘토박이말’이 기나긴 해달(세월)에 걸쳐 업신여겨지고(천대받고) 짓밟혀 죽어나간 나머지 이제는 어린이, 여느(일반) 백성, 여름지기(농사꾼), 시골 마을(고향)에 겨우(간신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힘겹게(간신히) 남아 있는 여기가 바로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디 우리 말 자리라는 뜻입니다.
7. 마무리하면서 : <이오덕 우리 말 생각(의)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오랜만에 귀한 네 책을 다시 들고 어리석은 제가 읽어낸 <이오덕 우리 말 생각(의) 알맹이>는 이것이 고작입니다. 돌아가신 이오덕님(선생)뿐 아니라 그분을 깊이 사랑하시는 여러분들께 두루 부끄럽습니다. 아무쪼록 훌륭한 분들이 많이 나서서 제 잘못과 모자람을 바로잡고 채워주시기만을 거듭 바랄 따름입니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린 이오덕님(선생의) <우리 말 생각(의) 알맹이>가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의)알맹이>(의) 뿌리가 어디에서 나왔으며 그것을 싹트게 하고 가꾸고 키워낸 바탕과 거름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책들을 읽으면서 그것을 나름대로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서슴없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거칠기 그지없지만 그 ‘사랑’을 책에 드러나 있는 대로 세 가지로 나누어 잠깐(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 사랑
첫째는 몸소 땀을 흘리고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오덕님(선생)은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된 지난 삶(역사의) 흐름에 휩쓸려가는 우리 말을 그나마 지키며 보듬고 우리에게까지 넘겨주었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말할 것 없이(물론) 책 속에 파묻혀 글만 읽으며 남을 우러러 본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미워함과(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짝을 이루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힘없고 가난하고 업신여김 받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지칠 줄 모르며 꿋꿋하게 살아온 훌륭함을 알아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 토박이말(희)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오덕님(선생)은 이런 사람들을 흔히 ‘여름지기(농사꾼)’, ‘여느(일반) 백성’, ‘말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둘(포기할) 수 없다. 이게 어떤 일인데 그만 두(포기하)다니! 그리고 아직도 늦지 않았다. 아직도 글이 아니라 말로 –글 나쁨에 물들지 않은(글의 해독을 입지 않은) 말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틀림없이(분명히) 있다고 나는 믿는다.”
“백성이 임자노릇하기(민주주의)가 그렇듯이 우리 말을 찾아 쓰는 일도 어디까지나 여느(일반) 백성들이 해야 할 몫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말치고 깨끗한 말은 거의(별로) 없다. 힘(권력)을 잡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한 마디 하면 다투어 그 말을 따라 쓰는 꼬라지(풍토)가 되어서야 말과 백성과 백성 임자노릇을(민주주의를) 살릴 길은 없다.”
“어느 나라고 못되게 다스리는 이들은 (못된 정치를 하는 집권자들은) 벼리(법이)고 틀이(제도)고 또 무슨 여럿이 쓸 것(시설물)을 만들면서 그 이름을 아주 그럴듯하게(근사하게) 지어서 백성(국민)들을 속인다. 그러나 아무리 속여도 하늘을 속일 수는 없고, 하늘같은 백성들을 끝까지 속일 수는 아예(절대로) 없다.”
“죽어가는 배달말, 그것은 소리 한 번 질러 보지 못하고 산 채 묻힌(생매장당한) 숱한 우리 백성들(의) 목숨이다.”
“여름지이(농사꾼의) 입에서 나올 것 같은 말이라면 우리 말이 틀림없으니(분명하니) 마음 놓고 쓸 것이고, 여름지이(농사꾼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말이라면 일본글에서 온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
일하며 말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짓밟혀도 꿋꿋이 일어서는 사람들, 아무리 꾀를 부려 속이려 해도 끝내는 속일 수 없는 사람들을 굳게 믿으며 끝없이(한없이) 사랑하는 것이 이오덕님(선생의) <우리 말 생각(의) 알맹이>를 지키고 키워온 바탕이며 거름입니다.
2) 아이들 사랑
둘째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오덕님(선생의) 한 뉘(평생) 삶은 오로지 아이들 사랑으로 가득 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오덕님(선생의) 삶을 눈으로 지켜본 사람뿐 아니라 그분이 남긴 글을 읽어본 사람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사실)일 것입니다.
“날마다 텔레비전을 쳐다보면서 거기서 들려오는 온갖 뒤섞인(잡탕의) 어설픈 글말을 듣고 배우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거듭 말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빈 겨를(공백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 겨를(의 시간)은 가장 값진(귀한) 것으로 꽉 차 있다. 거기에다 또 더러운(추악한) 어른들이 잡동사니를 쑤셔 넣는 짓은 사람됨(인권)을 짓밟는 허물이(범죄 행위가) 된다. 아이들 얼을 부수는 허물을(아이들의 영혼을 폭파하는 이 범죄 행위를) 우리는 조금도(절대로) 너그럽게 봐 줄(용서할) 수 없다. 아이들을 살리는 일만이 우리들 바람(우리들의 희망)이다.”
“지난 사람 삶을(사람의 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 어느 겨레(민족이)고 어린 아기들을 가장 먼저 돌보았고(보호하였고), 어린이들에게는 또 다른 짐을 지우지 않고 다만 즐겁게 뛰놀고 노래하게 하고, 재미있는 얘기나 들려주었던 것이다. 어린이들은 그저 자고 놀고 먹고 노는 동안에만 우리 어른들이 도무지 해낼 수 없는 어미말 깨침을(모국어 공부를) 아주 저절로(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것을, 늦었지만 우리는 이제(지금이)라도 크게 깨달아야 한다.”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마침내 닿는 곳은 다름 아닌 아이들에게서 삶과 사람됨을 배워야 한다는 참을(진리를) 깨닫는 거기인 듯합니다. 그 부드러움, 그 깨끗함, 그 숨김없음, 그 꾸밈없음, 그 열려있음...... 이런 거룩함으로 가득한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면 반드시 거기서 배우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인 듯합니다. 일찍이 예수님이 ‘아이들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치시고, 워드워즈가 ‘어린이가 어른(의) 아버지’라고 뿌러지게 말한 것과 같이 이오덕님(선생)도 아이들에게서 배우고,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참말은(사실은) 나도 어린아이들(의) 말과 글에서 우리 말 깨끗함(우리말의 순수함)을 배웠다. 그래서 어른들이 쓰는 글과 말이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하겠지만, 아이들한테서 도로 배워야 함을(한다는 사실을), 더구나 겨레말 갈배움(교육)에서 크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 말도 많이 더럽혀져(오염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른들이 하는 말보다는 아이들 말이 더 깨끗하다. 가운데 배움이(중학생) 말보다는 첫배움이(국민학생) 말이 더 깨끗하고, 같은 첫배움이(국민학생이)라도 첫배움해(1학년) 어린이들(의)말이 가장 깨끗하다.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아이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갈침이(선생님)들은 깨끗한 말, 싱싱하게 살아 있는 말을 함께 배울 수 있기에 그 어느 어른들보다도 흐뭇(행복)하다고 하겠다.”
3) 목숨 사랑
이오덕님(선생의) 사랑은 마침내 모든 살아있는 목숨으로까지 나아갔습니다. 이 또한 그분(의) 삶을 몸소 지켜보고 겪어본 사람뿐 아니라 그분이 남긴 글을 일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분이 모든 살아있는 목숨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일(사실)일 것입니다.
① “살아남은 고양이들은 추운 겨울밤을 어디서 어떻게 새울까? 새끼는 어디서 낳아서 어떻게 키울까? 지난날 새끼들에게 쥐를 잡는 갈고닦기를(훈련을) 시키던 어미 고양이가 이제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갈고닦기를(훈련을) 시켜야 하겠는데, 그 쓰레기통은 뚜껑이 닫혀 있고, 열려 있다고 하더라도 잘못 그 속에 들어갔다가 뚜껑이 닫히게 되면 어찌 될까? 그런 때를 맞아(경우를 대비해서) 어미 고양이는 새끼들(의) 목숨을 건지려고(구하기 위해)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쓰레기통은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니 이것은 쥐 잡는 일보다 한층 더 어렵고, 도무지 고양이(의) 머리나 힘으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쌍한 고양이들!”
② “해마다 여름배움쉼(방학)이면 갖가지 배곳(각급 학교)에서 벌레잡이를(곤충채집을) 시킨다. 그것은 그저 잡아 죽이는 일을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벌레(곤충)들이 배움 쉴(방학) 때마다 아이들(의) 손으로 죽어가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그저 잡아 죽이는 재미를 익히고 있는 것일까. 배움 방(교실)마다 다 있는 물고기 단지는(어항은) 고기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곳(살육하는 도살장)이 되어 있는 것을 아니라고 할 갈침이(부인하는 교사)가 있겠는가? 그저 잡고 죽이고 하는 짓만 시켜온 것이다.”
③ “가장 끔찍한 것은 지름이 30센티미터나 되겠다 싶게 자란 방울나무(플라타나스)들을 사람(의) 키보다 조금 위쪽쯤에서 모조리 싹둑 잘라서 마치 길가에 커다란 말뚝을 한 줄로 박아 놓은 것같이 해놓은 것이다. 대체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베어 놓았을까? 사람(의) 머리털을 가위로 자르고 낯털 깍듯이(면도하듯이) 쥐똥나무도 그렇게 만들고, 아름드리로 자라날 나무도 그렇게 해놓아야 고을이(도시가) 아름다워진다고 보는 듯하다(모양이다). 이것이 튼튼한(건강한) 사람들(의) 눈이고 마음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런 사람들이 튼튼한 모둠살이(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④ “사람이 큰 고을(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누리흐름(자연)을 죽이면서 사는 것이다. -줄임 – 먼저(우선) 쓰레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 쓰레기는 옛날과 같이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에도 갖다놓아서는 안 되는, 땅을 더럽히고 목숨을 죽이는 쓰레기로 되어 있다. 큰 고을이(도시)라는 곳은 사람을 밑뿌리부터 허물 있는 이(죄인으)로 만들지만, 큰 고을이(도시)라는 틀 속에 갇혀 있으면 그렇게 해서 누리와(자연과) 목숨을 죽이는 짓을 아주 예사로 여기면서 도리어 그 못살게 굴고 죽이는 짓을(학대, 학살 행위를) 즐기게도 된다.”
보시다시피 저는 ①짐승 사랑, ②벌레 사랑, ③푸나무 사랑, ④누리(자연) 사랑을 차례대로 놓았습니다. 이오덕님(선생의) 사랑이 어디까지 나아가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쉽도록 해본 짓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헛된 짓거리가 아니라 이오덕님(선생의) 우리 말 사랑이 얼마나 뿌리 깊은 데로부터 솟아난 것인가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한 노릇입니다. 그분이 우리 말 살리기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사랑은 먼저 여름지기(농사꾼) 같이 땀 흘려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아끼는 사랑에서 솟아나고, 이런 어른을 아끼는 사랑은 어린 아이들을 아끼는 사랑에서 솟아나고, 또 그것은 짐승을 아끼는 사랑에서, 또 그것은 벌레를 아끼는 사랑에서, 또 그것은 푸나무를 아끼는 사랑에서, 또 그것은 흙과 물 같은 모든 누리를(자연을) 아끼는 사랑에서 솟아난 것임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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