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의 증인(하나님의 교회)들은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며, 유월절을 지켜야만 죄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는다고 주장합니다.
안상홍씨가 유월절을 갖고 왔다고 주장하며, 유월절을 지켜야만 죄사함이 있고, 영생이 있으며, 유월절을 지켜야만 재앙이 없다고 그들은 가르칩니다.
그것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완전한 죄사함의 제사였기 때문에 더 이상 죄사함의 다른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
성경은 매년 드리는 제사는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유월절이 온전한 제사라면 매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즉 매년마다 유월절을 지켜야만 죄사함을 받는다는 주장은 곧 그 유월절에 대한 교리가 불완전한 것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제사로서 그 효과는 영원하며, 두 번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17-22)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
이미 예수님께서 온전하게 이루신 구속과 영생을 부정하고, 또다시 유월절을 지켜야만 영생을 이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적인 기록을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매년 지켜야만 한다는 자체가 바로 온전치 못한 죄사함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 대속은 이미 온전히 이룬 것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온전하게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히10:1-2)
(2) 성경은 유월절을 지켜야만 죄사함과 영생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
만일 유월절이 죄사함을 얻게 하거나, 영생을 얻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라면 성경은 몇 번이라도 그것에 대해 강조를 하여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유월절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단 한마디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안증회 측은 다음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3-54)
안증회는 이 성경구절의 살과 피가 유월절이라고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살과 피를 떡과 포도주라고 해석하여, 그 떡과 포도주를 먹어야만 영생을 얻는다면, 모든 기독교인들도 다 떡과 포도주의 성찬식을 행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요한복음은 유월절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바로 그 앞의 성경구절을 안증회는 왜 보지 못하는지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요 6:47-48).
유월절이 생명의 떡이 아니며, 예수가 바로 영생의 떡인 것이며, 예수를 믿는 자가 영생을 가진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문자적으로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가 곧 죄사함을 주는 것이므로 예수를 믿는 믿음이 곧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는다는 성경구절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켜야만 죄사함을 얻는다는 구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죄사함을 주는 것이며, 예수의 피가 죄사함을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43)
사도행전10장43절 바로 뒤에는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로마 백부장이 유월절을 지켜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죄사함을 얻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예수를 믿고 곧 죄사함을 얻었다고 생각합니까?
그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로마군인이었습니다.
어느 성경에 유월절을 지켜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은 성경적인 예가 있는지 한번 안증회 교인들은 스스로 생각하여 보면 알게 됩니다....
삭개오는 회개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눅19:9)
십자가의 강도는 유월절을 지켜서 죄사함과 구원을 받았을까요?
이방인들이 유월절을 지켜서 죄사함과 구원을 받았습니까?
성경은 단 한번도 유월절을 지켜서 죄사함을 받거나 구원을 받은 적이 없으며,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7)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4)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요일2:12)
안증회는 왜 이 성경구절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상홍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어느 성경에 유월절 날짜 지킴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하여 죄사함의 사역을 온전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 놓은 죄사함의 구속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죄사함을 위하여 다시 오실 필요가 없으며,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심판을 위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3) 우리의 구원은 무엇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
우리의 구원은 유월절의 날짜를 지킨다든지,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지켜야만 한다든지, 무엇을 행하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선물이며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11:6)
(4) 유월절을 지킨다는 말의 의미:
안증회에서는 예수님도 유월절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월절이란 용어는 명절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음식자체를 가르키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은 유월절 날짜 지키기를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먹고 싶어 지켰던 것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22:15)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음식)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눅22:11)
예수님은 고난(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간절히 나누고 싶어 하셨습니다. 즉 그날 밤에 죽음을 눈 앞에 두셨으니 그동안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나누고 싶었겠지요.
과연 그것이 지금 안증회가 행하는 “유월절 날짜지키기”를 갈망한 것일까요?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이, 구원주이시고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죽음의 고난이 곧 닥치라는 것을 아시면서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이라는 날짜지키기를 간절히 갈망하셨을까요?
더 확실한 증거를 말하기 위하여, 유월절이라는 용어가 “명절”과 “음식”을 동시에 언급하는 성경본문을 인용하겠습니다.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명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음식)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막14:12)
만일 제 주장을 못믿겠다면 성경사전의 증거를 보여 드립니다.
- 구약의 페싸흐는 일반적으로 절기를 가르키며, 보다 한정해서 말하면 유월절의 희생제물을 먹는 것, 또는 양고기를 먹는 것, 또는 유월절 양 그 자체를 가르키기도 한다. 후기 유대교에서 유월절은 무교절의 의식들을 포함하여 그 절기와 관련된 일련의 모든 의식을 지칭했다.(아가폐성경사전, 유월절, 1381쪽)
왜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하신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즉 저는 예수님이 유월절이란 명절을 날짜 그대로 지키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요18:28)
예수님이 잡혀가신 다음날 새벽입니다..... 예수님은 그 전날 밤에 유월절 음식을 제자들과 먹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밤중에 예수를 잡으러 가고, 로마관정으로 넘기고.....이런 와중에 유월절의 음식을 먹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명절에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더러움을 받는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이 유대인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았으므로 아직 유월절이라는 명절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유월절은 아침까지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곧 유월절 음식을 먹으려고 집에 갔을 것입니다.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5) 예수님이 유월절 날짜를 지키라고 하셨는가?
유월절 음식은 양고기와 쓴나물과 무교병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이 음식을 먹으셨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유월절을 먹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음식을 먹으셨을 것입니다.
다만 유월절에 예수님은 “떡과 포도주”에 대해서 언급하셨습니다.
떡은 예수님의 살로 비유하셨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로 비유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떡과 포도주를 유월절에만 먹으라고 하셨나요? 그런 성경은 단 한마디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이라는 날짜”를 지켜서 떡과 포도주를 나누라고 하신 적이 없으며, “떡과 포도주라는 음식”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에 주의하십시오
-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떡)은 너희를 위하여 찢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포도주)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너희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고전11:23-25)
“너희가 마실 때마다....” 라고 되어있음을 유의하십시요.
“유월절에만...”이라고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을 행하라는 본문에서 “이것”과 “이잔”은 “떡과 포도주”를 말하는 것이지 유월절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19-20)
“이를 행하여 기념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를”이라는 말은 유월절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를 의미한다는 것은 누가 보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기독교인들은 언제 떡을 떼었을까요?
성경은 “날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모일 때마다 떡을 뗀 것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행20:11)
사도행전 20장11절은 무교절 후에 일주일이 지난(행20:6) 안식후 첫날(행20:7)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이 아닙니다.
바울과 드로아의 기독교인들은 무교절이 일주일이 지난 후 떡을 떼었습니다.
이렇게 떡을 뗀 것이 사도의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그래서 일반 교회는 떡과 포도주를 성찬식으로 나눕니다. 그러나 그것을 유월절 날짜를 지켜서 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교회는 일년에 3-4번 하고, 어느 교회는 한달에 한번씩 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여 유월절이라는 날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떡과 포도주를 나눌 때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다시금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유월절 날짜를 지켜서 그 날에만 떡과 포도주를 나누라고 하셨습니까?
(6)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가?
성경은 유월절을 지키라고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습니다.
안증회가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경적인 구절이 오직 하나가 있는데, 그것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5:5-8)
안증회의 주장과 같이 만일 유월절이 죄사함을 주며, 영생을 주고, 재앙을 면하게 해주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성경은 왜 그것에 대해서 침묵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지 말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4-17)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 하노라"(갈4:10-11)
또 호세야2:11을 보면 유대인들의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의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명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폐하여 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폐하겠다고 하셨으면 폐한 것이지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분으로 만드십니까?
즉 유대인들의 명절을 지키는 안증회는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호2:11)
어느 사람은 호세야서는 북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지금 명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증회에서는 하나님의 예언이 틀렸다고 가르칩니까?
안증회에서는 로마서는 로마교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며,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교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가르치는지요?
그렇다면 소아시아 일곱교회에게 말하는 계시록의 새이름과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안증회는 왜 안상홍과 장길자라고 해석하며,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에만 해당되는데 왜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까?
8) 니케야회의 이후부터 유월절이 없어졌다?
안증회는 초대교회가 유월절을 지켰는데, 325년 니케야회의부터 강제로 유월절이 폐지되고 부활절을 지키게 되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사를 조작하는 거짓말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교회사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을 이용하여 안증회는 교회사까지 조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기독교서점에 가서 교회사에 관한 책을 찾아보면 안증회의 조작이 곧 밝혀지게 됩니다.
본인은 교회사를 약 10권 정도를 참고하고 이 글을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책 이름과 페이지 수를 정확히 표기하니 의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참고하기 바랍니다.
초대교회는 부활절을 “파스카”라고 불렀습니다.
“파스카”란 말은 유월절이라고 하는 “페사흐”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그 이유는 부활절이 유월절 기간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말한 파스카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고, 그 파스카는 부활절을 의미하였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유월절이 곧 부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문헌을 보겠습니다.
#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을 파스카(Pascha)라고 불렀다. 이는 구약의 유월절(Passover)을 뜻하는 “페사흐”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초대교인들이 예수그리스도가 영원한 유월절 양으로 우리를 위하여 구속희생을 당한 사실에 근거하여 구약의 유월절을 예수의 부활기념일로 변용시켜 기념한데서 유래한 말이다(데일리가정성경, 교회절기일람, 165쪽)
안증회는 유세비우스의 교회사를 인용하면서 초대교회가 유월절을 지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새빨간 거짓말로서 부분적인 인용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안증회가 인용한 유세비우스의 교회사라는 책의 유월절에 대해서 올려 봅니다.
“이 무렵 유월절을 지키는 일에 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었으므로, 상당한 논란이 일어났다. 보다 옛 전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던 아시아의 교회에서는 정월14일을 주님의 유월절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날은 유대인들에게 양을 잡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던 날이다. 그날이 무슨 요일이든지, 그들은 그 날에 금식을 끝내야 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유월절을 이런 식으로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사도들의 전승에 따라 오늘까지 보급되고 있는 관습을 따랐으므로, 금식은 반드시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끝내야 했다. 이 문제를 두고 감독들의 대회 및 소집회들이 개최되었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하나의 교회의 명령을 작성하여 모든 교회에게 전했다. 즉 주님의 부활의 신비는 다른 날이나 주일날에 축하되어야 하며, 반드시 이날에 유월절 금식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유세비우스의 교회사, 261-262쪽)
얼핏 보면 동방교회가 유월절을 지킨 것처럼 잘못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읽어보면 유월절을 지킨 것이 아니라, 부활절을 유월절로 지켰다는 내용이며, 그 명백한 증거를 곧 보여 주겠습니다.
위 글은 동방교회만이 부활절을 유월절에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서방교회는 사도들의 전승에 따라 오늘까지 보급되는 관습(부활절을 주일에 지키는 것)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금요일에 금식을 했으며 주일은 부활날이므로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위 본문은 동방교회는 유월절을 지켰다고 기록되어 있을까요?
안증회의 조작이 이제 밝혀지게 됩니다.
261쪽을 보면, 제23장 “유월절에 관한 문제”라는 제목이 있는데, 유월절이라는 단어에 (6) 이라는 색인이 붙어 있습니다.
그 색인을 찾아보면....(509-510쪽, 5권 6번)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이라는 단어는 출애굽기 12:27에 기록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파생된 단어인 pasca 라는 희랍어는 유대인의 명절을 나타내는 명사로서, 초대교회에서는 유월절에 있었던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절기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제 안증회의 엉터리 조작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유월절을 지킨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들이 파스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그것은 유월절이 아니라 부활절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아래의 문헌과 똑같은 내용인 것입니다.
# 한편 부활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출애굽,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었던 사건에서 예시되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기념하는 축제가 되었다. 소아시아 교회들은 히브리 달력을 따라 니산월 14일 즉 전통적인 유월절에 그 절기를 지키는 본래의 관습을 오랫동안 유지하였던 같다. 그러나 결국에는 유월절 절기를 기독교의 주간에 맞추어 지키는 팔레스타인과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로마 교회의 관습이 우세하게 되었고, 부활절은 첫날의 축제가 되었다.(기독교회사, 윌리스턴 워커 121쪽)
초대교회는 유월절을 지킨 것이 아닙니다.
단지 동방교회의 개종한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부활절을 유월절 절기에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뿐입니다.
물론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부활절을 지켰습니다.
# 그러다가 AD 325년 이러한 교회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니케야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기간이어야 한다는 동로마 교회의 주장과 반드시 주일이어야 한다는 서로마교회의 주장을 다 수용시킨 절충안을 내 놓았다. 그 결과 부활절은 춘분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지키되 특정 일요일일 필요는 없다고 정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한 해결점이 되지는 못하였다..... 유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종교력으로 1월인 니산월14일, 즉 유월절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였다. 이렇게 유월절이 부활절로 변용되어 기념된 것은 예수의 부활이 유월절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출애굽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심으로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역과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이 그 의미에 있어서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데일리가정성경, 교회절기열람, 165쪽)
심지어 안증회 자신들이 초대교회가 유월절을 지켰다는 증거로 인용한 간추린교회사라는 책은 그대로 인용된 것이 아니라, 조작되어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교회사를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조작하여 놓고, 태연하게 책이름과 페이지까지 인용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소집동기
① 부활절 일자문제(동방은 유월절을 지키고, 서방은 주일을 중시했다)
② 아리우스(Arius)설 때문에 교회가 분열될까 염려하여
# 결의
③부활절은 주일에 지키기로.
④교회 정치에 관한 규정 제20조를 제정함
(간추린 교회사 64-67쪽)
## 이 부활절은 초대 설교자들의 전도활동의 원동력이었으며 동시에 설교의 핵심이 되었다. 2세기 후기에는 이 부활절을 언제 지키느냐가 논쟁이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세상의 구원이 유대의 절기인 유월절과 연결된 후에, 이것은 기독교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지켜지게 되었다. 즉 오늘날까지 이 부활절은 달력으로는 유대교의 유월절과 연결되어있다. 서아시아에서는 부활절을 유대교의 유월절인 Nisan 유대인들의 월력을 지키고 있다. 이에 따라 매 달은 초승달로 시작된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새해를 Nisan월로 시작하고 있다. 이 Nisan월 14일 즉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에 이들은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 월 14일에 시작하였다. 이에반해 로마에서는 Nisan월 14일이 지난 후 주일을 부활절로 지켰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날을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부활절이 음력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은 주중의 날에 관계없이 3일 후에 지켜졌다. 이들은 성금요일을 Nisan월 14일이라 믿었다. 이에 따르면 한 예로서 성금요일(Nisan월 14일)이 당해 화요일로 되면 부활절은 목요일에 지켜졌다.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자들은 "Quartodecimans(열 넷째 날장이)"라 불리었다. 이에 반해 서방에서는 부활절이 언제나 일요일 즉 부활일에 지켜져야 하며 십자가 처형은 언제나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고 여기어졌다. 서방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중(週中)의 날이 중요하였고, 동방교회에는 달(月)이 중요시되었다.
이 분쟁은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해결되었다. 여기서는 달과 주중의 날이 다 인정되도록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을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 주일에 지키기로 하였다.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때에 온다는 것과 또 언제나 주일에 온다함을 양측에 확증시켜주었다. 그러나 춘분을 정하는 데에도 난점이 생김에 따라 3월 18일부터 25일 사이의 여러 날자가 사용되어 상이한 부활절을 지켜왔다. A. J. Wegman, Liturgie in der Geschichte des Christentums, 74-76. Josef Andreas Jungmann, Der Gottesdienst der Kirche, 201; Edward T. Horn, 교회력, 161-162.
그렇다면 초대교회에서는 성찬식을 일년에 한번 유월절에 거행하였을까뇨?
초대교회 교인들은 유월절에 성찬식을 한 것이 아니었으며 주일마다 가졌습니다.
# 주일마다 가졌던 성찬식과는 달리 세례식은 일반적으로 일년에 한 번(많아야 두 번) 거행되었다. (기독교회사, 윌리스턴 워커, 124쪽)
# 초대교회에서 성찬식을 어떻게 이해하였는가에 대하여는 이미 어느 정도 설명을 하였다. 성찬식이라는 용어는 적어도 1세기 말엽에 생겨났으며, 아마도 본래는 "빵을 떼는 것“을 지칭하였던 그 의식을 가르키는 말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그 용어는 일차적으로 그리고 아주 고유한 의미로 교회의 제식의 음식으로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에 대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를 의미하였다.(기독교회사, 윌리스턴 워커, 126쪽)
# 이 음식을 성찬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성찬을 아무나 취할 수 없고, 오직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참되다고 믿는 사람들..... 거룩하게 된 그 음식물은 바로 성육하신 예수님의 살이요, 피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예식 후에 우리는 항상 이와 같은 것들을 서로 기억하도록 합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부족한 사람들을 돕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모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인하여 우리는 인류의 주께 그의 아들 에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하여 송축을 올립니다. 그리고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나 시골에 사는 사람이나 한 곳에 모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글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오래 읽습니다. 독경자가 읽기를 마칠 때에 사회자는 강론을 통해서 그 고상한 교훈들을 모방하도록 권면합니다. 그다음에 우리는 모두 함께 일어서서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말한대로 기도가 끝나면 빵과 물탄 술을 가져오고, 그리고 사회자가 높이 들고 그 거룩해진 음식물을 나누어 주어 모두 받게하고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집사들이 가져다 줍니다.....” (쇼트웰의 순교자저스틴의 성서강해, L.C.C. 66절 286page, 저스틴의 제1변증서)
안증회는 저스틴의 변증서가 초대교회가 아니라, 교부시대에 접어 들면서 조금씩 변개된 것이라고 변명을 하였습니다.
안증회는 저스틴의 변증서가 언제 기록된 것인가를 찾아보십시요.
AD 150년대에 기록된 것입니다.
성찬식은 용어는 1세기 말엽(즉 AD 90년경)부터 발견 되어진다
성찬식이라는 단어의 최초의 문헌적인 기록은 이그나시우스의 “에베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며 “디다케”(12사도의 교훈)에서도 발견되어진다.
“하나님의 성찬(God's Eucharist)을 거행하고 그를 찬양하기 위해 더욱 자주 모이도록 힘씁시다.”(History of Antioch in Syria. 에베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초대교회의 형성, 성광문화사 65쪽)
성찬을 헬라어로는 Eucharist라고 하는데, 그 단어는 라틴어의 eucharistia에서 온 것으로, 헬라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에서 유래됩니다.
그 원래의 의미는 “감사하게 생각하다, 감사를 드리다”는 뜻인데, 주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기 전에 감사하셨다(giving thanks)는 것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축사하시다, 사례하시다”라는 단어로 번역된 “유카리스테오”입니다.
## "지켜온 가장 오래된 절기는 부활절과 일요일예배였다. 부활절 축하는 오순절까지 연속하였고, 터툴리안은 이 기간에 무릎을 꿇지 않고 예배하는 습관을 언급하였다. 일요일은 매 주간에 오는 부활절이었고 그리고 일요일은 유대인의 안식일과 신중하게 구별하였다. 터털리안은 일요일에 휴업하게 만들려는 경건한 노력의 시작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콘스탄틴 대왕 때까지는 이 날에 의무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한 일은 없었다. 이날의 특징은 예배하는 것이고 그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만찬의 거행이었다"(대한기독교서회, 교회사 초대편 p. 139)
## 부활절 축제에 대한 최초의 문자기록은 부활절의 정확한 날짜를 결정하려는 "부활절 논쟁"에 나타나는데, 이는 A.D.154년 서머나(Smyrna)의 감독 폴리갑(Polycarp)과 로마의 감독 안티크투스(Anticetus)사이의 서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Euseb. Hist. V 23-25). 그러므로,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부활절 축제가 기독교회 전체에 걸쳐 일반적으로 지켜지게 되었음에 틀림없다.(참고문헌 kcm.co.kr 성서대백과. 기독지혜사)
안상홍의 증인회(하나님의 교회)는 기독교의 성찬을 비성경적이라고 비난하며,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성경대로 지키는 것이 과연 유월절인지, 아니면 성찬인지 성경을 통하여 상세하게 살펴보자.
"성찬"(Holly Supper)이라는 단어는 고전11:20에 나온다.
한글개역성경은 “주의 만찬”(헬:퀴리아코스 데이프논, Lord supper)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공동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성찬”이라고 번역하였으며, 물론 이 성찬의 목적과 유래와 그리고 의도는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에서 명백하게 표현되고 있다.
성찬을 헬라어로는 Eucharist라고 하는데, 그 단어는 라틴어의 eucharistia에서 온 것으로, 헬라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에서 유래된다.
그 원래의 의미는 “감사하게 생각하다, 감사를 드리다”는 뜻인데, 주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기 전에 “감사하셨다”(giving thanks)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 성경에서는 “축사하시다, 사례하시다”라는 단어로 번역된 “유카리스테오”이다.
왜 기독교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며 성찬식을 거행하는가?
주님은 성찬식을 거행하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이다.
성찬식은 세례와 함께 개신교에서는 두 가지의 은혜의 수단인 성례로 간주되는데, 주님은 성찬과 함께 세례를 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세례가 기독교의 입문과 관계되며 일회성이라면, 성찬은 그리스도와 보다 밀접한 관계를 갖게하여 교인의 신앙을 강화하는 은혜의 수단이며, 반복적으로 시행한다.
특히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규례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데, 성경에서 이 성찬식을 어떻게 행하라고 언급되었는가를 살펴보자.
-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너희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고전11:23-25)
주님은 “떡을 먹는 것”과 “잔을 마시는 것”을 “기억하고 행하라”고 하셨다.
떡은 예수의 몸으로 기억하고, 잔은 주님의 피임을 기억하여 행하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의 이와 같은 당부는 “유월절을 행하고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떡과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행하라고 하셨다.
오히려 성경은 유월절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너희가 마실 때마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에 대하여 기록된 다른 성경본문을 살펴보자.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14:22-24)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떡과 포도주에 대한 말씀만이 기록되어 있으며, 떡은 예수님의 살이며,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을 살펴보자.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19-20)
누가복음도 유월절을 지키라는 말은 전혀 없다.
다만 떡과 포도주에 대해서 “이를 행하여 기념하라”고 하셨다.
즉 주님의 말씀을 정리를 해보면, 고전11장23절에서는 떡과 포도주에 대해서 “기억하여 행하라”고 하셨고 누가복음22장에서는 “이를 행하여 기념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성경말씀도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10:16-17)
즉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은 축복의 잔이며,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떼는 떡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떡을 함께 떼는 것에 대해서 상당부분을 기록하고 있다.
주님이 떡과 포도주에 대해서 “기억하여 행하라”고 하셨고, “행하여 기념하라”고 하셨으니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이것을 행하였고 기념하였던 것이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행20:11)
어느 성경에도 유월절에 이것을 행하였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날마다” 혹은 “모일 때마다”라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성경의 성찬에 대한 기록은 유월절에 행하라는 말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떡과 포도주의 성찬을 행하라는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안증회가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경적인 구절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을 살펴보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5:5-8)
안증회 교인은 아무리 이단이라고 하여도 성경 독해력도 없는가? 위 본문은 유월절을 지키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고린도교회에 음행을 저지르는 자가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이 음행에 대해서 강하게 야단을 치고 있는 것이다.
즉 음행이라는 범죄를 “명절의 누룩”으로 비유하고 상징한 것이다.
누룩은 그 크기를 크게 팽창시키는 것을 비유로서 “묵은 누룩을 버리라”고 하면서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음행하는 범죄자를 교회에서 축출시키고, 순전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자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본문에서 유월절(명절)은 “어린양이신 예수”를 상징하며, 묵은 누룩은 “유대인”을 상징하고, 악독하고 괴악환 누룩은 음행을 저지르는 자를 말하며,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은 “참된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것이다.
누룩과 떡이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잘 알면서 명절은 실제로 지켜야 한다고 해석하니, 그야말로 우습기 짝이 없다.
안증회는 실제로 악독하고 괴악한 누룩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성경은 모형적이며 율법적인 구약을 제외하고,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는 구절이 없다.
오히려 신약성경에서는 지키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켜야만 한다면, 왜 성경은 그러한 구절이 단 한마디도 없으며, 오히려 지키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을까?
-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4-17)
-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 하노라"(갈4:10-11)
오히려 호세야2:11을 보면 유대인들의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이 폐하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실제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의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명절을 지키지 않는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폐하여 진 것이다.
즉 유대인들의 명절을 지키는 안증회는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호2:11)
어느 사람은 호세야서는 북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지금 명절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안증회에서는 하나님의 예언이 틀렸다고 가르치는가?
안증회에서는 로마서는 로마교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며,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교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가르치는가?
그렇다면 소아시아 일곱교회에게 말하는 계시록의 새이름과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안증회는 왜 안상홍과 장길자라고 해석하는가?
그렇다면 성찬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떡은 그의 살을, 포도주는 그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 즉 성찬은 주님이 행하라, 기념하라고 하신 부탁의 말씀으로서 지켜야만 한다.
첫째로,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을 뜻한다.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둘째로,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에 함께 참여함을 표시하고 확증한다.
-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함이다.(고전10:16)
-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받으면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고전11:27)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세째로, 성찬은 성도 상호 간의 연합과 교제를 표시하고 확증한다.
-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10:17)
안상홍의 증인(하나님의 교회)는 여자는 기도와 예배시간에 반드시 너울(수건)을 써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얼핏 보면 정말 성경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은 일까지 자신들은 성경을 지키므로 자신들이 참교회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죽은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그 부인이었던 장길자를 하나님으로 신격화하여 만든 사이비 유사종교단체가 자신들이 성경적이라고 선전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성경을 살펴보자....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고전11:2-6)
(1) 머리에 무엇을 쓰는 교훈에 대해서는 바울은 <유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유전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파라도시스”라고 하는 헬라어이다.
그 뜻은 “유대인의 전통적인 풍습, 교훈, 율법”을 말한다.
그 단어는 마태복음15장 2-6절과 마가복음7장8-13절에서 “하나님 말씀에 거역되는 유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골로새서2장8절에도 사용되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2:8)
즉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가 아닌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풍습”을 말한다. 물론 머리에 무엇을 쓰는 유대인들의 풍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나쁜 유전은 아니다.
예를 들어 누가 한복을 입고 예배를 드린다고 할 때에, 그것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풍습으로서 칭찬을 하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면 된다.
KJV 영어성경은 “Ordinances”로 번역하였고, NIV 영어성경은 “Teaching” 으로 번역한 것이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6~9절에서 결혼 문제를 말할 때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공동번역: 충고, 현대인의 성경: 권면)요 명령은 아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즉 혼인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명령이 아니라 권명하는 것이라고 밝히는 것이다.
바울은 어느 경우네는 주의 명령이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고, 어느 경우에는 주께 받은 계명이 없다고 솔직히 말하고 있기도 한다.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 7:25~26)
물론 바울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풍습에 대해서 칭찬을 하였지만, 그것을 약 2000년이 지난 지금에 한국사람들이 유대인의 전통적인 풍습을 따른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된다.
유대인들이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은 (얼굴을 가리는 것) 남편이 있다는 표시였다. 그리고 외출시에는 머리에 천을 둘러 머리와 얼굴을 가리웠던 것이다.
다시 말하여 여자의 권위는 남편에게 있었고, 남편의 권위는 하나님에게 있다는 수직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 당시 여자는 인구조사나 계수에도 빠지지 않았던가?
(2) 성경을 눈을 씻고 보아도, 너울이라는 수건을 머리에 써야한다는 것은 찾을 수가 없다. 성경은 단지 머리에 무엇을 쓴다고만 말하고 있을 뿐이다.
즉 성경본문은 “머리를 가리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안증회(하나님의 교회)는 머리에 수건을 쓰는 교리에 대해서 “성경을 더하거나 감하지 말라”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강조하고 있는데, 어느 성경에 “수건 혹은 너울”을 쓰라고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혹시 안상홍의 증인들은 카톨릭에서 여자들이 수건을 쓰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닌가? 카톨릭을 사단이니 음녀니 하는 안증회가 카톨릭의 제도를 모방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게다가 그것은 수건이 아니라 머리와 얼굴전체를 감싸는 천을 말한다.
성경대로를 주장하려면 카톨릭을 모방하여 수건을 덮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얼굴 전체를 감싸는 천을 둘러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과연 안증회가 성경을 가감하지 않으며 성경대로 지키는 곳인지 스스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3) 더욱이 성경은 긴 머리의 여자는 머리에 쓰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전11:14-15)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준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성경을 가감하지 않는다는 안상홍의 증인들은 이 성경구절은 왜 생략하는가?
즉 긴머리는 쓰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안증회는 성경이 왜 두가지 다른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설명을 피하고 있다.
성경은 두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 머리를 가리우는 것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긴머리 역시 머리와 얼굴을 가리운다고 보는 것이다.
유대인의 풍습은 결혼한 여자는 남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중동권은 그러한 풍습을 갖고 있는 나라가 많다.
(4) 안상홍의 증인(하나님의 교회)은 고후3:13-16에 대해서는 머리수건(너울)이 아니라, 면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후3:13-16)
위 성경본문은 수건에 대해서 영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수건"을 "마음을 덮는 신앙적 방해요소"로 비유하고 있으며, 주님에게로 돌아오면 수건이 벗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안증회는 위 성경본문의 수건은 머리수건(너울)이 아니라 얼굴을 가리는 “면박”이라고 주장하며 변명을 하고 있다.
즉 면박과 머리수건(너울)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본문의 수건은 “칼뤼마”로서 베일, 덮개를 의미하는데,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은 모두 “너울”로 번역하고 있으며, 현대인의 성경은 "수건"으로 번역하고 있다.
즉 면박과 너울(수건)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용도에 따라 얼굴을 덮거나 머리에 쓸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안증회(하나님의 교회)나 카톨릭이 쓰는 적은 수건이나 망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전체를 가리는 베일을 의미한다.
즉 성경대로 머리에 무엇을 쓰려면, 베일을 뒤짚어 써야만 성경대로 쓰는 것이다.
성경사전을 보자. 안증회의 주장이 완전 거짓말로 밝혀진다.
너울 :지난 날, 여자가 나들이를 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서 길게 내려쓰던 가리개, 얇은 검정 깁으로 만들어졌다.(아가폐성경사전 248쪽, 너울)
면박 : 여자들이 주로 머리(때때로 얼굴을 포함하여)와 어깨를 가리는데 사용했던 천을 말한다...... 모세는 여호와를 대면한 후에 얼굴에서 광채가 났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면박 또는 수건을 썼다......바울은 이 수건이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무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재해석하고 영적화하고 있다(칼륌마).....동일한 어근의 헬라어가(카타칼륍토: 머리에 쓰다) 고전11:6에 나오고 있는데 매우 어려운 단락의 일부분인 본절에서는 오히려 면박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아가폐성경사전 417쪽, 면박)
너울과 수건과 면박의 구별은 사실상 없다.
게다가 성경사전은 고전11장의 머리에 쓰는 수건을 면박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하고 있다.
(5) 안상홍의 증인(하나님의 교회)는 민수기 5:18-22를 예로 들면서, 그 당시 여자노예들은 머리를 깎고 있었으며, 남편이 간음죄로 의심되는 아내가 있으면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서 머리에 쓴 수건을 벗기고 머리카락을 풀은 다음에 쓴 물을 마시게 하였다고 주장한다.
즉 머리에 쓴 수건을 풀면 간음죄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목적이다.
민수기5장18절을 보자....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 머리를 풀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을 그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민5:18)
어느 성경에 수건을 풀게하였다는 구절이 있는가? 그런 구절은 없다.
고전11장 본문을 보자....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장은 여자가 항상 무엇을 쓰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예언을 할 때”에 머리에 쓴 것을 벗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도와 예언을 하지 않을 때에도 머리에 쓴 것을 풀으라는 것은 아니다.
어느 성경에 제사장 앞에 가서 머리에 쓴 수건을 풀라는 구절이 있는가? 단지 머리를 풀라는 구절만이 있을 뿐이다.
안증회는 왜 성경을 가감하는가?
물론 이러한 문제까지 구태연하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안증회측에서 이러한 문제를 중요한 교리로 설명하면서 자신들이 성경적인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이 너무나 우습기 짝이 없다.
(6) 2000년 전의 유대인의 풍습과 전통을 지켜야 하는가?
그렇다면 노예(종)제도도 지켜야 하며, 일부다처제도도 지켜야 하며, 수혼제도(형이 죽으면 형수를 부인으로 삼는 것)도 지켜야만 하는가?
그래서 안증회는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가?
그렇다면 안증회는 성경을 가감하는 바가 없이 안식일을 지켜야만 할 것이다.
# 아들, 딸, 여종, 남종, 객, 육축까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날 (출20:10)
# 처소에서조차 나오지 못하는 날(출16:29)
# 불도 피울 수 없는 날(출35:3)
# 스스로 괴롭게 하는 속죄의 날(레23:32)
# 번제등의 제사를 지내는 날(민28:10)
# 장사를 할 수 없는 날(느10:31)
# 성문을 닫으므로 성문 밖에 나갈 수 없음(느13:19)
# 오락을 하지 못함(사58:13)
# 짐을 지지 못하는 날(렘17:21-22)
# 정해진 거리를 갈 수 없는 날(행1:12)
안증회는 안식일에 불도 피우지 못하고 밥도 굶게 되었으며, 교회가 먼 곳에 있다면 갈 수가 없다.
가장 극적인 사항은 "안식일을 범하는 자를 죽여야 한다"(출31:15)는 구절로, 안증회는 안식일을 범하는 자를 살인하여야만 성경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될 것이다. 성경을 가감하지 말고 지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