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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9년(2025년) 9월 넷째 주(9/28) 일요 정기 법회
17구 봉사팀들께서는 일요법회에 참석하시는 보살님들께 안내데스크와 현관에서 법회보를 건네며 반갑게 형제들을 맞습니다. 가을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발걸음 가볍게 밝은 얼굴로 들어서는 불광 형제들의 모습은 언제나 여여합니다. 엘리베이터 봉사 27구 보살님들께서 보광당까지 친절하게 안내드리고 계십니다.
사무국 내의 풍경은, 업무 봉사팀은 분주히 업무에 집중하시고 오늘 멀리서 법회에 법문하시러 오신 법사님, 함께 방문하신 보살님들께서 차를 마시며 좌담을 하고 계십니다.
외부의 현수막, 내부의 불광 법회 안내문을 모두 사 측에서 떼어 놓아서 거사님들께서 다시금 부착하시느라고 고생하고 계십니다.
떡과 생수는 송파 14구 15구, 16구, 17구에서 보시하여 준비해 주셨습니다. 임원들께서 이른 아침부터 나눔 봉사를 하고 계시고 법당안내팀, 새법우 안내팀이 각각 자리하고 계십니다.
곳곳에 추석 합동차례 안내, 법회일정 안내문을 붙이고 다도팀, 방송팀 법회를 위한 모든 준비를 빈틈없이 하고 계십니다.
현수거사님의 천수경 독경을 마치고 사회자님이 법회 시작 멘트로 부처님 전에 헌향, 헌다를 올리며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명절이 며칠 남지않은 때이고 비가 내려 궂은 날씨인데도 불광형제들은 법회를 보고 법문 들으러 보광당 가득 모였습니다.
금주의 법문 : 나는 우주의 시작이고 끝이며 중심이다.
금주의 법어 : 행복아침선 혜암 김상복 선원장
마하반야바라밀!
광덕스님의 크신 지혜와 원력으로 불광사는 이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를 이루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이런 불광사에 계시려면 아마도 여러분들께서는 타고난 큰 공덕이 있으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멋지십니다. 정말 너무 훤하고 너무 좋아 보이십니다. 복이 있으십니다. 인사말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은 마하는 크다는 뜻이고, 반야는 지혜, 바라밀은 피안에 도달하다는 뜻인데, 이 말을 확 줄이면, ‘모두 깨달아서 성불하십시오.’ 이 말이거든요.
자 그런데 우리는 깨닫게 되면 어떻게 달라지나? 우리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어도 사실은 온 곳을 몰라요. 그리고 또 내가 지금 살고 있어도, 내 이름 빼고, 내가 남자인데, 여자인데 하는 것을 빼고 나면 내가 누구인지 몰라요. 또한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 우리가 결국은 죽게 되는데, 죽음의 도착지가 어디냐고 물으면 사람들이 몰라요. 그런데, 이것을 깨닫게 되면 내가 온 곳이 어디며,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며, 내가 누군지 알게 됩니다. 또한 내 앞에 펼쳐진 이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는 그냥 세상이 있지, 그냥 세상에 있는 것을 내가 사는 것, 들이고, 구름이고, 바다고 그냥 본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면, 성불을 하게 되면 이 세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돼요.
우리는 흔히, 나와 다른 남이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주체와 객체가 있는 그것이 따로가 아니고, 같은 하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돼요. 우리는 나와 남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싸우고, 질투하고, 온갖 갈등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광덕스님깨서 말씀하시는 성불이 되면,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즉 깨닫게 되면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 분명히 행복은 바라는데, 행복을 바라는 사람한테 ‘무엇을 행복이라 합니까?’라고 물으면 답하기 곤란해 합니다. 또한 우리가 모두 고통을 싫어하는데, ‘고통의 본질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도 고통의 본질에 대한 답을 잘 못하십니다. 여러분들 우리는 이 사회에 태어나서 언제나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선이라고 하고, 나쁜 것은 악이라고 하는데 선의 본질이 무엇인지, 악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는 교육 받음 안에서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또한 내가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지, 왜 죽는지 물으면 답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된 그것을 아주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선이 뭔지, 악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나와 남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면, 이 세상이 싸우고 경쟁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아! 이 세상은 우리 놀이터구나, 한바탕 재미있게 놀다 가면 되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꾸는 꿈속에서 그 꾸는 꿈이 ‘이게 꿈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여러분들 아무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을걸요. 내가 지금 돈이 많은데, 친구가 돈 좀 달라고 하면 그것이 꿈이라고 알면 돈을 주잖아요. 그런데, 그 꿈을 깨면 주는 것을 아까와 하잖아요.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이 세상을 정말 놀이터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누군가 축하할 일이 있으면 진정으로 축하해 주고, 누가 슬픈 일이 있으면 진정으로 슬퍼해 주고, 누가 어렵다 하면 도와주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누어 먹읍시다가 된다니 까요. 그런데 그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께서 불교 공부를 해 보면, 부처님은 처음으로 우리를 부처가 되는 길로 안내한 선지자이기 때문에 존경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는 보잘 것 없고, 부처님은 위대하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처음부터 부처가 되지를 못합니다. 그 사고를 바꾸어야 됩니다. 여러분들 내가 없는 이 세상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언제나 내가 알아보는 내가 있을 때, 친구도 있고, 자식도 있고, 남편도 있고,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바다도 있지 않습니까?
언제나 내 입장에서 생각하셔야 됩니다. 내가 부처가 되고, 내가 깨달으려고 하면 언제나 출발을 나로부터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언제나 내가 밉다하고, 좋다하고, 슬프다하고 말하는데, 그 모든 감정들을 나를 벗어나서 말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나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돈 많은 사람만이 주인공 같고, 잘생긴 사람이 주인공 같고, 나는 그저 보잘 것 없는 사람 같고, 나는 여자니까, 남자니까 하고 미리 규정을 하고 삽니다. 그나마 돈이 있고, 명예가 있으면 당당하게 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도록 이 사회가 이 현실이 이 세상이 은연중에 그렇게 세뇌가 되어 있거든요.
자, 부처님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해서 위대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또한 내가 위대하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는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궁극으로는 내가 없는 세상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흔히,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있지 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할 때도 언제자 내가 이렇게 존재할 때 그 말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입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중심은 나입니다. 제가 극단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다고 합시다. 깨달음을 위해서는 극단적으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냥 좋은 말로 해서는 나를 못 찾습니다.
내 사랑하는 남편이 오늘 밤에 돌아가셨다고 치면, 그러면 이제 곧 헤어질 테니까, 마지막으로 같이 하룻밤 이불 덮고 자십시오. 하면 아무리 사랑해도 하룻밤 차가운 몸을 대면서 같이 자지 못할걸요? 아무리 내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내 사랑하는 아내와 이제 헤어지니까 마지막으로 오늘 같이 하룻밤 이불 덮고 차가운 몸을 만지면서 자보십시오. 오늘 헤어지면 다시는 못 만납니다. 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못하냐 하면요? 무서워서. 목숨의 끝에 도달했는데, 내가 잘못될까 봐, 내가 나빠질까 봐. 내가 좋아지면 안 무섭잖아요. 죽은 남편은 뒷전이고, 나한테 마음이 더 들어가 있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시라는 겁니다. 언제나 모든 사고와 생각은 상대한테 있지 않고, 나한테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 이장님이 계십니다. 이장님 흉보려고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언젠가 이장님이 저한테 찾아 왔습니다. 그 이장님께서 내 아내가 아파서 맨 날 걱정이 돼요. 심장병이 있는데 심장이 아파도 가슴이 덜컥하고 그런대요. 그래서 제가 그 분한테 이장님, 사모님이 아파서 사모님을 신경 쓰는 거 아니잖아요. 이장님. 사모님 돌아가시면 일하고 오면 빨래도 안 해주고, 밥도 안차려주고, 과일 따는데 안 도와주고, 트럭 운전도 안 해주고 하니까 이장님이 불편해서 사모님 죽을까봐 걱정하는 거지, 사모님을 진짜로 생각해서 걱정하는 것 맞습니까?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그 말을 안 하세요. 내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 같아도, 나를 벗어나 언제나 내 이익에 반해서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자신 스스로를 가만히 살펴보시면, 언제나 내 기준을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세상에는 하늘 위에도 하늘 아래에도 오직 나 밖에 없다니까요.
부처님이 먼저 계십니까? 내가 먼저 있습니까? 자 여러분, 신이 위대한 신이 이 우주를 창조해서 그 안에서 내가 지구라는 별에 태어났다고 말을 하더라도, 내가 있어야 신이 위대하다는 말을 비로소 하지 않을까요? 누가 먼저입니까? 신이 먼저입니까? 내가 먼저입니까? 내가 있어야 신이 위대한 것입니다. 신이 나한테 와서 자신이 위대하다고 했습니까? 부처님께서 오셔서 ‘나 위대해!’이랬습니까? 부처님이 2500년 전에 설산에서 수행해서 6년 고행 끝에 성불하셔서 위대하다. 이 말을 누가 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위대하다고 누가 만들었습니까? 내가. 그러면 신이 먼저입니까? 내가 먼저입니까? 위대한 신이 있어 이 우주를 설계했다고 하려면 내가 먼저 있어야 되잖아요. 언제나 모든 것의 출발은 나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면서 광덕스님께서 말씀하신 성불을 할 때, 그냥 일요일 이렇게 열심히 법회에 오신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핵심의 주체가 나구나 라는 것을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반야심경에 있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하면 말은 다 알아요. 30년 다니신 분한테 제가 무슨 뜻인지 그 설명 한번 들어 볼까요? 했더니, 그냥 배운 대로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지 이렇게 말할 뿐이지 30년을 다녀도 사실은 잘 모르세요. 왜 그런가 하면 언제나 내가 주가 안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자, 제가 설명해 보겠습니다. 색즉시공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동해안은 파도가 많이 칩니다. 바위에 철썩 부딪혀서 파도가 공중에 붕 뜨면 파도가 공중에 떠 있잖아요. 그러면 이것은 색이에요. 그런데 바다는 어마어마하게 크지요. 바다 아니 태평양은 어마어마하게 크니까, 이 태평양을 공이이라고 합시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서 파도가 공중에 붕 뜨면, 파도가 색이고 바다가 공이라고 하면, 원래 바다라는 공에서 나온 것이 파도 방울 아닙니까? 파도한테 ‘파도야, 너는 색이 아니고, 원래부터 공이야!’ 이렇게 말하면 파도 방울이 ‘아니야, 나는 절도 많이 하고, 수행도 열심히 하고, 참선도 하고 해야 내가 바다가 되잖아, 태평양이 되잖아!’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그렇게 해야 파도가 태평양이 됩니까? 그냥 떨어진 채로 이미 공에서 떨어져 나왔으니까, 파도 방울이 80억 개 있다고 칩시다. 그 80억 개 파도 방울 하나하나가 바다 속에 안 들어 가도 이미 공(바다)에서 나온 것 아닌가요? 파도 하나가 색 하나가 바다 속에 들어가는 순간은 어떻습니까? 파도는 공이 아니고 이슬이네. 태평양은 자기가 큰 줄로 알고 있는데, 진짜로 치면 이슬이라니까요. 그런데 이슬 이것이 뭐라 합니까? ‘아니야 나는 이슬이 아니고, 공이야’라고 생각해서 공의 단어가 딱 튀어 나와서 파도가 되면 색이 곧 공이지요.
제가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 모두가 부처입니다 라고 이렇게 말하는데, 나는 공부도 못하고, 돈도 없고, 인물도 못생겼고, 늙었고, 암이 3기나 되었는데 무슨 부처란 말이야?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태평양이 아주 넓은 태평양이 공이라 합시다. 달리 말하면 부처라 합시다. 태평양은 작은 파도 방울 하나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있죠. 태평양을 부처라고 하면, 부처에서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서 목을 팍 기울이면 여러분들은 모두 중생이 되는 겁니다. 80억 개의 파도 방울이 튀었다 합시다. 태평양을 부처라고 하면,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은 원래부터 부처입니다’라고 말하면, ‘아닌데, 나는 파도 방울인데, 저 넓은 태평양이 나란 말인가?’하시는데, 파도는 태평양에서 안 나왔나요? 태평양이 부처라 하면, 여러분이 태평양 그 부처에서 나온 하나의 파도 방울인데, 여러분은 그 태평양을 잊어버리고, 아니야, 나는 중생이고, 못생겼고, 노가다하고, 빼빼하고 인물도 없어요, 이러시는데, 여러분이 30년 꼭 수행을 해야 원래 태평양 부처인 줄 알겠느냐고요. 선지자들이 ‘여러분, 수행을 안 해도 이미 부처입니다’라고 말을 해도 여러분들은 ‘아닌데?’하고 의문을 가집니다. 제가 예전에 그랬습니다. 부처님은 우주를 다 아신다는 데, 저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꼴등했고, 키도 작고, 아는 것도 없고, 길도 모르고, 무엇을 말하면 맹해서 못 알아듣고, 잘하는 것 하나도 없는데 어찌 내가 부처란 말이야 했습니다. 태평양이 부처라 치면, 부처의 몸을 떨어져 나온 하나의 파도 방울이 부처가 아닌가요? 태평양 아닌가요? 그래서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입니다. 태평양은 큰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방울과 같습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반야심경에서 말하고 있는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생활하시다가도 어떻게 내가 색이란 말이지 라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 내가 원래부터 부처가 맞네. 라고 깨닫게 될 겁니다. 그냥 부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수행을 해야 부처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이대로가 어떻게 부처가 됩니까? 라고 질문하면, 선사들은 밥 먹고 빨래하고, 마당 쓸고 하는 것이 이미 부처라고 답합니다. 여러분, 그냥 집에서 빨래하고, 밥하고, 지지고, 볶고, 자식들 쥐어박고, 손주들 사랑하는 이 모든 것들이 이미 부처의 삶입니다. 부처의 삶은 거룩하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한 생각, 살짝만 바꾸면 내가 부처임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연기법에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있지 않을 때, 저것이 있지 않게 되고, 이것이 사라질 때 저것이 사라진다는 말, 너무도 많이 들어서 모르는 분은 없잖아요. 제가 질문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라고 물었을 때 답하시는 분 아직 못 봤습니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무엇을 가리킵니까? 저는 아직 여기에 답하시는 분 아직 못 봤습니다.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난다, 무엇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납니까? 그러면 답하시는 분 못 봤습니다. 이것이 있지 않을 때, 저것이 있지 않다고 했을 때, 무엇이 있지 않을 때, 저것이 있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답하시는 분 못 봤습니다. 이것이 사라질 때, 저것이 사라진다고 했을 때,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고하면 바로 ‘나’를 말합니다. 자,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고 할 때, 보십시오. ‘나’가 있어야 당신, 아내, 자식, 남편, 하늘, 구름, 미운 사람, 좋은 사람 등 온갖 것들이 생겨나거든요. 내가 있어야 이 세상, 하늘과 땅과 구름도 있잖아요. 여러분들이 내가 없어도 다른 사람이 있잖아, 이러면 이번 생에는 못 깨닫습니다. 우리는 남을 기준으로 생각하시면 여러분 영원히 나를 깨달을 수 없어요. 내가 없고도 다른 사람이 있었나요? 내가 있을 때, 저 사람도 있고, 이 사람도 있다고 알지, 내가 죽고 없는데,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나요? 언제나 모든 생각을 나로부터 해야 합니다. 내가 있을 때. 내가 사라지면 이 사람도 사라집니다. 다른 사람도 있잖아요? 라고 하시는데, 다시 말합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내가 죽어도 다른 사람이 있잖아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겁니다. 언제나 내 생각을 안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광덕스님께서 말씀 하신 성불이 될려면 모든 사고와 생각을 나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이번 생에는 나를 찾지 못합니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이 우주는 누구 때문에 있냐 하면, 나 때문에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우주 보신 적 있습니까? 여러분은 아주 깊은 잠만 들어도, 자식이고, 남편이고, 우주를,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없잖아요. 언제나 내가 눈을 떠서 내가 있다고 할 때, 자식, 남편, 우주, 세상이 있거든요. 다시 말하면, 오늘도 이 우주는, 태양이 뜨는 이유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으면 태양은 뜨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는데, 내 없어도 태양이 뜨거든 할 때, 또 나를 벗어났거든요. 언제나 중심을, 모든 사고의 중심을 오직 나에게 맞추어서, 내가 있을 때, 저 태양이 나를 위해 뜨고, 또한 내가 띄운 겁니다. 저 하늘에 내린 비가 나를 위해 내리고, 이 세상은 오직 나를 위해 맞추어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 제가 오늘 저 지방 경북 의성 시골에서 왔습니다. 저를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점심을 먹거든요. 오늘 점심을 먹으러 가면 보십시오. 그 점심은 그냥 점심이 아니고, 내가 서울 올 것을 알고, 식당 주인이 새벽 네시에 가락시장에 가서 양파 사오고 파 사오고 해서 요리를 해서 제가 딱 들어가면 미리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내가 커피 집에 가더라도, 제가 가면 아메리카노를 먹을지 카푸치노를 먹을지 그대로 준비해 놓았다가 제가 말만 하면 딱 꺼내 줘요. 제가 서울 오는 길에 주유소에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그 분들은 새벽부터 밤을 새워 기다려서 기름을 딱 넣어 줍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말은 너무 나갔다고 말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정말로 나를 위해 돌아가네.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될 겁니다. 또, 내가 아프면 병원의 의사는 20년 전부터 미국에 유학을 가서 밤잠 안자고 논문 써서 박사 학위를 받아서 제가 병원에 가면 준비를 잘 해서 정확하게 수술을 해 줍니다. 내가 죽을 때가 되면 장의사가 널도 맞추고, 덮는 보도 맞추어 줍니다. 이 세상은 정말로 나를 위해서 죽을 때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처리해 줄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늘 위에도 하늘 아래에도 오직 나밖에 없습니다. 자, 여러분! 불성이 없으면, 만약에 눈으로 본다 치면, 5분 전에 죽은 사람은 눈이 없어서 못 보죠. 귀로 듣는다 치면 5분전에 죽은 사람은 안 들리거든요. 태평양이, 공이, 불성이, 부처인 그것이 나타나서 여러분들은 보고 듣는 겁니다. 어쨌든 이 세상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각자 한 분, 한 분은 나를 통해서 세상에 나타났어요.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세상을 나타나게 한답니다. 시어머니 병간호해야 되고요, 시아버지 병간호해야 되고요, 자식이 아프고요, 그런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나는 그 모두를 나타나게 하는 주인공이라니까요. 내가 중심이고, 언제나 내가 말을 합니다. 내가 꽃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내가 장독이다, 장미다, 하늘이다, 구름이다, 나비다 그 모두를 내가 말합니다. 내가. 꽃이 있다고 내가 말했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본다 이렇게 말하면 이번 생에 못 깨닫습니다.
언제나 모든 사고와 생각을 나에게 돌려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어느 날 수행하다가 보니까 이 우주는 정말로 사랑이네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거대한 코끼리에서부터 가장 작은 박테리아에 이르기까지, 가장 작은 박테리아는 그 위에 있는 프랑크톤이 먹고, 그 위에는 지렁이가 먹고, 이렇게 쭉쭉 올라가면 두더지가 먹고, 여우가 먹고, 호랑이가 먹고, 사자가 먹고, 등등 이 밑에서부터 착착 먹이 사슬이 올라가잖아요. 그러면 그 중간에 먹이사슬이 빠져 버리면 그 위에 것들은 멸종합니다. 아! 우주는 큰 틀에서 보면, 아 진짜 사랑이네, 나를 위해서 내가 필요한 것은 이 우주는 다 줍니다. 안주는 것도 있던데?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들이 강력하게 안 원해서 그래요. 여러분이 나는 가난한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물질을 강력하게 안 원해서 그래요. 대통령 누가 되느냐 하면요? 가장 강력하게 원하는 사람이 돼요. 가장 강력한 마음이 당도 만들고, 지지층도 만들어서 그가 대통령이 되거든요. 여러분들께서도 살아가면서 내가 아직도 못 이룬 것은 내가 뜻을 강하게 안 가져서 그래요. 강력하게 뜻을 두면 이루어집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 우주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만 있다고 하면 한 쪽으로 치우친 거거든요. 공부를 해 보면 이 우주는 무자비이구나, 자비가 없습니다. 일본에 쓰나미가 와서 만 8천명이 죽었는데, 만 8천명이 죽었으면 전부 악당만 죽었을까요? 그 중에는 착한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분들도 죽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조건이 안 맞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조건에 맞는 삶을 살아줘야 돼요. 추우면 옷도 입어야 되고, 비가 새면 지붕도 막아야 되고, 남이 외롭다면 도와주고 해야지, 이런 것들이 조건에 맞추는 거거든요.
무엇이나 생명은 하나 밖에 없는데, 내 하나의 생명을 위하여 죽은 생명의 숫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고등어 먹었지요, 소 먹었지요, 돼지 먹었지요, 닭 먹었지요, 조개 먹었지요, 온갖 것들을 먹었는데, 그것들은 죽기 싫은데 나를 위해서 끝도 없이 죽잖아요. 앞으로도 내가 30여년을 더 산다고 치면 앞으로 나를 위해서 죽어야 할 생명의 숫자가 어마어마한데, 우리는 한 번도 고민을 안 해요. 여러분들은 내가 돈 주고 사먹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여러분 돈 주고 사먹은 적 없습니다. 2만 5천원 주면 닭이 오지만, 닭 키운 사람, 배달한 사람, 요리한 사람 주었지 닭 생명 값 주신 분 있으면 손 한 번 들어 보실까요? 닭 생명 값 주신 분 있으면. 소고기 먹으러가서 소 요리한 사람 주고, 소 키운 사람 주었지, 소 생명 값 주신 분 있으면 팔 한번 들어 보실까요? 아무도 주신 분 없습니다. 그런데, 소 생명 값 주었다고 생각하고, 닭 생명 값 주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광덕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여러분 모두 성불하십시오.’할 때, 나는 무엇인데, 나는 누군데, 그들의 생명을 죽였어도 여러분들은 모두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죠. 보시도 하고, 베풀기도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시죠. 제가 여러분들 생명을 빼앗지 않고, 오른 쪽 팔 하나만 잘라가더라고 아마 여러분들 저를 죽일걸요. 나는 앞으로도 내 한 생명을 위해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천 생명이 죽어야 되는데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누군데 괜찮냐고? 나는 누군데, 나는 손끝 하나만 건드려도, 뺨을 한 대만 때려도 안 되고, 나를 위해서 다른 생명은 날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내가 누군지 궁극으로 되돌아 봐야 됩니다. 이처럼 나는 끊임없이 내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제가 만난 사람들은 각자 본인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한 분도 못 봤어요. 각자 나는 다 옳다고 생각해요. 살인을 해도 옳고, 남의 뺨을 때려도 옳고, 제가 만난 분 중에 본인의 생각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 한 분도 못 봤어요. 남편이 잘못할 때도, 자식이 잘못할 때도 우리 회사 직원이 잘못할 때도 그 기준이 언제나 내 기준에 빠져 있는 거죠. 정말로 내가 옳은지 끊임없이 나를 찾는 데는 다른 사람을 보면 안 됩니다.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 살피면 된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나 말이나 이런 것들이 내 생각에 푹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내 생각에 안 빠져 있다면 여러분들은 세상이 모두 옳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나도 잘 돼 있고, 자식도 잘 돼 있을 겁니다. 현재 위치가 지금 잘 안 돼 있다면, 내가 무슨 내 생각에 빠져 있는지, 내 생각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보셔야지 삶이 달라집니다. 오늘같이 좋은 곳에 오셔도 형식으로 왔다가 형식으로 가는 행동 보다는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면서 내가 뭐가 틀렸는지, 무엇이 맞는지를 안 돌아보면 이번 생에는 부처님 안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구니는 마귀의 집단인데, 이 마구니가 하는 일이 여러분들이 고통에서 영원히 못 벗어나게 하는데 있어요. 마구니는 내 눈 앞의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내 눈 앞에 산이나 나무나 들이나 온갖 것들이 나타나는 그것은 형상인데, 그 형상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내 자식이 형상이잖아요. 돈이 형상이잖아요. 좋은 집이 형상이잖아요. 좋은 사람이 형상이잖아요. 내 눈 앞에 있는 모든 형상들이 사라지지 않으면 여러분은 영원히 고통에서 못 벗어납니다. 이 말의 뜻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의 본질은 공이다. 공이란 뜻은 잘못 해석하면 없다. 라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겁니다. 여러분은 이 얘기를 들으면 내가 어떻게 하늘과 땅과 구름과 우주를 만들었다는 말이야?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 세상의 비밀을 말하자면 정말로 여러분이 우주를 만들었어요. 내 눈 앞에 있는 형상, 나무고, 들이고, 꽃이고, 병아리고, 나비고, 다 마음으로 만든 겁니다. 내 마음으로. 내 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 있다고 하면 고통에서 못 벗어납니다. 자식이 내 눈 앞에 있는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거든요. 아주 좋은 물건이나 좋은 물질이 있는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거든요.
아 궁극으로는 세상의 모든 형상들이 내 마음이 만든 것이구나. 실제로 정말로 내 마음이 만들었습니다. 그 증거가 뭐냐 하면, 여러분이 지금 내가 존재한다는 이 마음이 있을 때, 앞의 세상 물질이 보였지,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앞에 사람이나 차나 구름이나 하늘이 보인 적이 있습니까? 이걸 그대로 믿으셔야 돼요. 언제나 내 마음이 있을 때만 세상이 보이잖아요. 언제나 나라는 마음이 있을 때 세상이 보이잖아요. 지금도 보십시오. 여러분 내 마음이 활동할 때만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보이잖아요. 뒤에 보이는 부처님도 내 맘이 있을 때 보이잖아요. 부처님도 누구 때문에 있다? 불경스러운 것 같아도, 궁극으로는 내가 없으면 부처님도 없습니다. 부처님이 나 때문에 있다니까요. 아주 극단적인 말로 하자면 선사들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했어요.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잖아요. 부처님이 저한테 와서 깨달았겠습니까? 부처님이 여러분한테 내가 깨달은 자야라고 했습니까? 내가 부처님을 깨달은 분이라고 했잖아요. 선사들이 하는 말이 무언고하면, 부처를 내가 인가했다. 맞아 죽을 일이지요. 맞아 죽을 일. 뼈도 못 찾을 일이지요. 그런데 나를 찾고자 한다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것이 있다는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말을 누가 했습니까? 내가 했잖아요. 궁극으로는 부처님은 내가 인가했네! 안 맞아 죽습니다. 그것이 부처가 되는 길이라니까요. 물론, 부처님이 바른 길로 안내하기 위해서 중요한 거는 가장 먼저 하셨어요. 위대해요. 따라야 돼요. 그런데 종이 되면 안 됩니다. 궁극으로는 부처를 넘어서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보다도 내가 먼저 있어야겠다, 부처님 있고,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있어야 부처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이 불손한 것 같아도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 기준이 달라지는 겁니다. 깨닫고 나면, 부모를 내가 낳았다 해라, 왜? 아니 내가 어떻게 부모를 낳아? 부모가 나를 낳았지. 그런데 선의의 말로 하자면 내 없이 부모님이 있습니까? 언제나 내 입장에서 말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있잖아요. 깨닫고 나면 바라보면 가치 기준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 기준이 달라지면 고통을 고통으로 안 여기는 거죠. 여러분들이 보는 모든 고통을. 여러분이 건강할 때는 그냥 평범했잖아요. 건강할 때, 나는 너무 기뻐서 미치겠다, 좋겠다는 생각 보다는 그냥 오늘도 내일도 별 거 아니다 생각했는데, 자 여러분이 만약에 병원에 갔는데, 암이 3기다 이러면 난리 나잖아요. 나한테 일어나는 일이 똑 같이 왔어도 건강할 때는 내 일이고, 건강 안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닌 게 아니잖아요. 똑 같이 나한테 일어나는 일을 건강한 것은 좋게 생각했고, 건강하지 않은 것은 나쁘게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내가 누군지 알면 건강한 것이나 아픈 것이나 똑 같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분별을 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은 비 하나만 가지고도 비가 너무 많이 오면 홍수 났다, 비가 안 오면 가물다, 물난리 났다, 비 하나만 가지고도 온갖 이론을 세워서 힘들어 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그냥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그 세상 속에 빨려 가지 않습니다.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불교에서는 사바세계라고 하거든요. 고통이 있는 세상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 고통은 고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어떠한 고통도 없다니까요. 여기 많은 여성분들이 계시지만, 여러분들이 애기를 낳으면 일로 치면 24시간 근무입니다. 똥오줌 다 받아내야 하고, 자다가 애기가 울면 젖도 주고 해야 하는데, 어디 다른 데 가서 24시간 근무하라고 하면 난리가 날걸요. 그런데 내 자식이야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에 고통은 사라지고, 일주일 기다리다가 아주 노란 똥을 누면 좋아가지고 똥 닦고 그러지요. 시아버지, 시어머니 똥 닦으라고 했으면 맞아 죽을 겁니다. 똑 같은 똥인데도 내가 좋다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랑, 어휴 냄새나네 하고 하는 것이랑 다릅니다.
이 세상에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만들어 준 고통이지, 이 세상 어디에도 고통은 없습니다. 병이 걸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암4기에 걸리면, 그래 암4기가 걸려서 그러다가 죽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내가 병원에 가면 암1기만 되도 하늘이 노래져요. 똑 같은 암인데도 다른 사람이 걸리면 그래 그렇지 하고 넘어가지만 내가 암에 걸리면 난리가 납니다. 똑 같은 암인데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남이니까 괜찮고, 나이니까 안 괜찮다 이렇게 해 버리면 없는 고통도 있고, 있는 고통도 없어지는 거잖아요. 모든 것을 맞추어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 다른 사람이 그런 것은 죽어도 괜찮고, 나한테 일어나면 안 괜찮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만 다르게 하면 이 세상은 정말로 고통은 없어집니다. 여러분이 깨달아서 해탈을 해야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 세상은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너무도 아름다운, 너무도 천국 같은 곳이 됩니다.
여러분들 다 죽기 싫어하는데, 저는 죽음에 대하여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늙으면 다리에 힘도 없고, 기억력도 없고, 늙으면 또 젊은 사람들이 다 싫어해요. 이런 것들이 점점 누적이 되면, 내 몸이 스스로가 어디가도 천대를 받으니까 죽어야 되겠다. 하거든요. 그런데 죽음은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자 보십시오. 내가 앓고 있는 질병, 다리도 안 아프고, 눈도 안 좋은 것, 무릎 아픈 것, 모든 것이 끝이에요. 여러분들 자식이 있는데, 그 자식을 또 그 손자를 마음에서 놓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죽으면 자식도 없죠, 손자도 없죠, 온갖 것들이 다 없어집니다. 아들이 뭐 출세를 해야 되는데, 결혼을 해야 되는데, 죽음은 이 모든 고통들을 다 내려놓게 해 줍니다. 육체의 고통, 정신의 고통. 죽음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몸은 아이고 힘들어 하면서도 죽기를 싫어합니다. 실제로는 죽음이 절대로 부정이 아닙니다. 바라보는 관점을 하나 달리 하면, 이 세상 어디에도 고통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그 사고를 많이도 아니고, 한 생각 살짝만 바꾸면 이 세상 어디에도 고통은 없습니다.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고 하지요. 45억 년이 아니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입니다. 지구의 나이는 여러분이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시작은 내가 태어났을 때 시작입니다. 이 세상, 이 우주의 중심이 어디야? 저는 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딱 알았어요. 예전에 저는 돈 많은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고, 잘생긴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고, 똑똑한 사람이 우주의 중심인 줄 알았는데,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살아가는 큰 틀의 흐름이,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 것이죠. 아 내가 우주의 중심이네. 내가 있을 때 우주가 있고, 대통령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주의 끝은 언제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부처님 경전에 나옵니다. 부처님 제자가 어느 마왕한테 물어 봤어요. 이 우주가 언제 끝이 납니까? 하고 물으니, 그 분이 그것을 왜 나에게 묻느냐, 그것을 부처님한테 물어 보라고 해요. 그래서 부처님한테 갔습니다. 부처님, 이 세상이 언제 끝이 납니까? 하고 물으니, 부처님께서 무어라고 답하셨는가 하면, ‘그대의 식이 멸할 때’.그 말은 내라는 것이 사라질 때. 아니, 다른 사람도 있는데 내만 사라지고. 이러면 내가 뭐라고 했지요? 내가 나에게서 생각을 벗어나면 이번 생에는 못 깨닫는다고 했죠. 언제나 내가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있다고만 해라. 여러분들 꿈을 꿀 때, 내가 등장하지 않는 꿈을 꾼 적 있습니까? 언제나 그 꿈속에는 내가 있습니다. 바라보는 자로 있거나, 꿈속에 투입이 돼 있거나. 언제나 꿈속에는 내가 있거든요. 그러면 보십시오. 그 꿈에서 내가 빠져 나오고 없으면 그 꿈 속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나요? 꿈과 똑 같이 내가 바라볼 때 세상이 있습니다. 내가 안 바라보는데 이 세상을 본 적이 있나요? 의식이 없을 때 이 세상을 본 적이 있나요? 언제나 나라는 의식이 있을 때, 이 세상이 있잖아요. 아주 깊은 잠이 들었을 때도 세상을 본 적이 없고, 의식이 없을 때도 세상을 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내라는 것이 존재할 때 세상이 있거든요. 이것을 쑥 좁혀서 말하면, 이 세상은 바로 나로부터이구나! 여러분 각자가 내가 세상의 시작이고, 내가 중심입니다. 나는 늙었는데, 나는 아픈데 이러면 안돼요. 내가 태평양이라는 바다에서 한 방울의 물이 틴 파도입니다. 그 태평양은 곧 부처입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게 아니고, 이대로가 언제나 완전한 부처입니다. 수행을 안 해도 되고, 머리 안 꾸며도 되고, 일주일 간 세수를 안 해도 나는 완전한 부처의 상태입니다. 이런 것이 알아질 때,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때, 아! 내가 부처 맞네! 하게 됩니다. 깨달음 안에서 공부하게 되면, 내가 이때까지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 세상이 경쟁의 대상이 아니고, 미움의 대상이 아니거든요. 관점이 바뀌면 이것이 새로 태어나는 것이구나, 이것이 부활이구나, 이것이 영원한 삶이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자, 파도 방울을 보십시오. 이 파도 방울이 태평양에 안 들어가면 이것이 말라 죽거든요. 이슬이 그냥 그대로 있으면 그냥 늙어서 병들어 죽는 거예요. 그런데 이슬이 그대로 태평양 바닷물에 풍덩 빠지면, 이슬이 죽을 수 있습니까? 파도가 태평양 바다 속으로 안 들어 가면 햇볕에 말라 버리지만, 그 파도가 태평양 바다 속으로 떨어지면 그 파도 방울은 햇볕 때문에 사라지지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파도 방울 하나인데, 태평양이 된 줄 모르면 그냥 늙어서 병들어 죽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대로 태평양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그 파도는 영원히 안 죽습니다. 내가 원래 태평양이 부처인 줄 알고, 그 자리가 공인줄 알면, 공에서 떨어져 나오면, 내가 그대로 아 공이구나하고 알면, 태평양 바다에 들어가는 겁니다.
원래부터 여러분은 행복한 부처였습니다. 부처가 아닌 적은 단 일순간도 없었습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부처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가치 기준이 달라서 몰랐을 뿐이지, 언제나 여러분은 정말로 변함없는 완전한, 몸에 장애가 있거나 늙었거나 머리가 빠졌거나 상관이 없이 지금 이대로 완전한 부처입니다. 스스로가 생각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야심경에서 오온이 공하다고 했는데, 오온은 색수상행식인데, 쑥 들어 가 보면, 이 세상이 있다고 하는 것은 누가 하는 겁니까? 세상이 나한테 와서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늘이 와서 내보고 있다고 하고, 소나무가 와서 내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있다고 하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는 ‘있다’는 정의를 무엇으로 내리는가 하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따릅니다. 춥다, 덥다, 하늘이 파랗다, 무지개가 떴다, 꽃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5분 전에 죽은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거든요. 조금 전에도 우리가 외웠지만, 우리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실재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것은 내 마음이 있을 때만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절하면 영하 20도 되는 냉장고에 있어도 안 추워요. 내가 기절했을 때, 누가 막 비난하는 말을 해도 벌떡 일어나서 화를 안내요. 이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이 있을 때만 일어납니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결국 내 마음이 일으킨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허리가 아파서 절뚝절뚝하다가도 지하철이 지나가다가 가스가 폭발해서 땅바닥이 10미터 치솟아 오르면 아이구 허리야 하고 천천히 걸어갑니까? 아니면 후다닥 갑니까? 아무 일이 없을 때는 아이구 허리야 하지만 주위에 꽝하고 큰 소리가 나면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뛰어 갈 겁니다. 여러분이 가진 그 모든 고통은 실제로는 내가 허리가 아픈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내 마음이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아픈 겁니다. 누가 나를 비난하거나 욕을 하더라도 내 마음이 있을 때에만 욕이 들려요. 내 마음이 없으면 안 들리죠.
여러분 혹시 마음을 보신 적이 있나요? 나는 마음을 많이 내렸다고 하는데, 그러면 제가 질문을 해요. 아! 그래요. 자전거 녹슨 것 닦으려면 녹슨 곳을 알아야 되는데, 혹시 마음을 비우려면 마음의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겨드랑이 밑에 있습니까? 코 밑에 있어요? 가슴에 있어요? 가슴에 있다고 하면 한번 쪼개어 볼게요. 머리에 마음이 있다면 머리를 쪼개어 볼게요. 여러분들이 마음을 비웠어, 마음을 내렸어 하시는데, 마음의 위치를 몰라요. 그런데 마음이 없지는 않지요. 마음이 있다면 잠을 깨서 언제나 내가 존재할 때만 마음이 있다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마음이 안보이잖아요. 그러나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공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공이 없는 것으로 표현을 하는데, 마음이 있어서 분명히 내가 좋고, 싫고 하는데, 내가 마음을 비웠다고 하는데 그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물으면 그 물음에 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있다고 하려니 보이지 않고, 없다고 하려니 내가 늘 항상 쓰고 있잖아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오온이 살아가려고 하면 마음이 없이는 안 되거든요. 그래서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여기에 나타나 있듯이 없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마음이 있을 때만 임시로 있는 것인데, 온갖 세상사에 시달립니다. 시누이가, 시어머니가, 형제가 다투고 하는 것들은 다섯가지 감각기관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거든요. 똑 같은 말을 하는데, 안 미운 사람이 그 말을 하면 화가 안나는데, 시누가 하면 화가 나요. 이 세상에서 갈등하는 이유는 내가 마음을 한쪽으로 써서 그래요.
누구나 걱정 근심을 하죠.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아프리카 기아로 몇 백만이 죽었는데, 그것을 해결하는 걱정을 하고 근심을 가지십니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하는데 젊은이가 2만 몇 천 명 죽었다고 그것을 맨 날 걱정하십니까? 제가 여러분들 한 분 한 분 안 만나 봐도 다 알아요. 여러분들 하는 걱정은 언제나 나를 안 벗어나 있습니다. 여러분들 하는 모든 생각의 종점은 나를 안 벗어나요. 내 자신, 내 부모, 내 형제. 그래서 불교에서는 아 내가 없는 거구나, 이것을 무아(無我)를 기본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깨달아서 궁극으로는 내가 없는 거구나 를 아셔야 돼요. 내가 있을 때는 이 세상의 고통에서 영원히 못 벗어납니다. 그래서 광덕스님께서 하신 해탈이 되면, 아 내가 없구나, 내가 없으면 걸릴 게 없잖아요. 그러면 대자유의 삶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진정으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청명거사님 녹취)
♬ 찬탄곡 : 사랑하는 우리부처님 ( 천양희 작사. 김희조 작곡 , 김회경 지휘) 마하보디 합창단 ♬
부처님 말씀보다 더 빛나는 것 어디 있으랴 중생을 제도 함이 세상을 평등하게 하니
이 공덕 이 믿음 보배로다 부처님 생각하면 환희심 일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부처님께 가는 길
피면 지지 않는 우담바라같이 부처님 우리 부처님 중생이 사랑하은 우리 부처님
부처님 가르치심보다 더 거룩한 것 어디 있으랴 중생을 구제함이 세상의 번뇌 끊으시니
이 자비 이 은혜 광명이로다 부처님께 절하면 청정심 일어 절하고 절해도 다함없는 그분의 큰 뜻
열리면 떨어지지 않는 만년과 같은 부처님 우리 부처님 중생이 사랑하는 우리 부처님
문도 입장문 발표 : 혜담 스님
첫째: 광덕스님의 뜻을 받들어 불광법회 불자들의 원력으로 창건된 불광사는 불광법회의 창립목적과 불광사의 창건정신이 구현되도록 운영되어야 하고, 불광사 주지는 이에 적합한 스님으로 문도회의 공의를 거쳐 선임되어야 한다.
둘쩨 : 문도회의의 공의를 거치지 않고 불광사 주지가 된 동민스님을 불광사 주지로 인정할 수 없다.
셋째 : 광덕스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거짓으로 스님의 건당상좌가 된 학륜스님은 광덕문도가 아니므로 문도회나 불광사 일에 관여하지 말고 광덕문도회에서 자진 사퇴하라.
넷째 : 불광 정상화를 염원하는 스님들은 불광 불자들과 함께 광덕스님의 가르침을 가일층 충실히 실천할 것을 다짐한다.
혜담 스님, 그리고 대중들이 합송으로 수능 및 각종 고시 대비 수험생 기도 축원문을 하였습니다.
발원문 낭독 : 송파 4구 명등 청정여 보살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법회 후에 각 구법회, 법등가족들과 점심 공양을 드시며 한 주 동안의 일상을 나누며 담소하는 정겨운 모습입니다.
안내팀 봉사자 보살님들이 귀가하시는 불광 형제들에게 인사 나누는 불광 법회만의 아름다운 정감입니다.
보광당 법회 후 대웅전에서는 금강경 염송 기도에 참석하신 보살님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금강경을 독송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빈틈없는 대자비 보살님을 비롯하여 2조 보현행자 여러분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밝은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는 부처님이 고운 미소로 선재 선재라 찬탄하십니다.
봉사자 보살님들은 비 오는 날 쓰고 오신 우산의 빗물을 받치려 빈통 안에 우산도 꽂아 놓으시고 쓰레기 처리까지 깔끔히 끝냈습니다.
법회 후 오후 1시 30분에 보광당에서 교육인원 39명이 참석한 가운데 2차 불교기본교육이 진행되었습니다.
● 1교시 강사 및 강의 : 현문 수석 부회장님 [불자의 자세와 예절].
● 2교시 강사 및 강의 : 현진 민 병홍 구도부장님 [사찰의 구조와 불상의 이해]
기본 교육이 끝나고 송파 13구, 송파 16구, 노원구, 대원 4구에서 법당 청소를 깔끔하게 하고 계십니다.
금요일 사 측에서 저희 현수막을 모두 철거하여 사무국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금요일 사 측에서 벽에 붙여 놓은 안내문 벽보도 모두 떼어낸 텅빈 벽 모습입니다.
지난주 조계사에서 1인 시위 기도정진 하시는 거사님, 보살님. 그리고 토요일 호법 시위 정진을 하고 계신 거사님들과 20구 보살님들.
불광 정상화를 염원하는 불광 형제들의 굳건한 의지를 담은 모든 시위 정진은 정상화 이루는 그 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_()_
|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이법 [二法]
알음알이를 알아차리고 (쌍카라) 번뇌망상을 녹여서. 뿌리체 말려죽이는 공부방식.
(매일 보리방편문 150독 눈으로보고 가슴으로읽어서 귀로듣는 공부를
1000일 동안 15만독 이상하면 멸진정에 들어가는 공부방식)
아나빠나사띠와 뇌의 변화 - 호흡 알아차림의 뇌과학
출처 : 하늘씨 | 블로그
- https://naver.me/GDLLQgLh
[아.나타.마]
아나빠나 사띠
아닛짜 아닛짜 아닛짜 ~ ~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재가자[만]의 포교사단설립 예정자.
현산김봉현 합장ㅅㅎㅅ
이법 [二法]
우리는 햇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 힌다.
[아.나타.마]
(아닛짜ㆍ나무아미타불ㆍ 마하반야바라밀)
아나빠나.사띠ㆍ위빠사나. 아닛짜~~~
상대방
모든존재를 믿고 실뢰를 하면 모든 문재가 해결이됩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불기 2569년 2025.09.28. 일요일 법회.
재가자만의 포교사단설립 예정자.
현산김봉현 합장ㅅㅎㅅ
멀리서 오신 법사님의 귀한 법문을 풀어쓰신 청명님, 법회 많은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하신 원각화님, 멋있게 편집하신 마음님 덕분에 불광법회 일지는 알차게 여여하게 이어집니다. 수희찬탄 올립니다_()()()_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을 색다르게 해설하신 법사님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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