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손 창 식
신미(信美) 여자 중·고등학교의 넓은 교정에서는 엄숙히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다. 신미학원(信美學園)의 재단 이사장 겸 동교의 교장이었던 양자겸 선생의 장례식인 것이다.
양자겸이라고 하면 교육계에서는 제법 알려진 인물이다. 비단 교육계뿐 아니라 사회적인 무슨 행사가 있을 때면 깨알 같은 활자로 신문 광고란을 메우는 명사급 인물들의 방명록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명사라는 것에 다소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고인이 된 양자겸 선생을 덕망 높은 교육가요 사회의명사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늘의 장례식 광경을 보아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소위 고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의 굵직굵직한 직함을 가진 인물들에게서 보내온 조화가 여러 개 눈에 뜨일 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명사로 알려진 인물들의 참례자만도 미처 셀 수 없을 정도니 말이다.
이 밖에 전직, 현직 교사며, 동창생들과 재학생들, 그리고 일부 학부형들로 그 넓은 운동장을 거의 메우고 있었다.
그만치 고인은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아온 인물인 모양이다. 고인의 약력 소개와 여러 사람의 조사를 통해서도 그 점은 수긍이 가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20대의 청년 시절부터 30여 년간을 오로지 교육 사업에만 전심전력하여, 거의 독력으로 서울에서도 굴지의 신미 여성 학원의 오늘을 있게 한 그 공적을 중심으로 엮어진 진실 일로의 약력과, 한결같이 고인의 유덕을 높이 찬양하여 마지않는 각계의 조사가 읽혀질 때에는, 넓은 고별식장은 그대로 울음바다로 변해버리고만 것이다.
“……또한 양자겸 선생님은 고결 무구한 도덕가요 근엄한 인격자로서, 만인의 추앙과 존경을 받아오신 분이었습니다. 불의와 부정에 대해서는 엄격하기 추상같았으며 반면에 불우하고 불행한 사람에 대해서는 내 일처럼 여기시어 그 인자하고 따사롭기가 봄볕 같았습니다. 그려기에 선생께서는 끼니를 거르시고 고의(古衣)를 걸치고 다니실 정도로 사생활을 절약하시어서 수많은 가난한 제자에게 학비를 대주셨고, 심지어는 그 생활까지 도와주시는 일이 적잖았습니다…….”
이러한 조사에 운동장을 둘러막은 담 밖의 언덕 위에서도 네댓 살짜리 사내아이의 손목을 잡고 서서 연방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기에 바쁜 젊고 예쁜 한 여인이 있었다. 여자는 고별식장을 내려다보다가는 눈물을 닦고 또 닦고 하였다.
그때 마침 24, 5세의 한 여자가 학교 후문으로 통하는 언덕 위의 지름길을 달려 내려왔다. 왼쪽 눈등에 까만 기미가 있는 그 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울고 섰는 여인의 옆을 지나치려다 말고 힐끔 돌아보았다.
순간 기미 눈은 걸음을 멈추고 입을 딱 벌리더니,
“어마, 너 미숙이 아니냐!”
외치며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자 미숙이라고 불린 여인은 질겁을 해 놀랐고, 아들인 듯싶은 어린 소년을 치마폭으로 가리듯 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얘, 미숙아. 나 혜영이야 모르겠어?”
그제야 미숙은 억지로 웃으며,
“선뜻 잘 몰라봤어. 참, 오래간만이구나.”
마지못해 하는 대꾸였다.
“우리 집은 바로 저 위에 있어. 마침 손님 때문에 늦어져서 막 뛰어내려오는 길야. 그런데, 너 왜 여기서 이러구 섰니? 들어가지 않구.”
“음 그냥, 여기가 좋아…….”
미숙은 당황하여 우물쭈물 해버렸다. 그러자, 미숙의 치마폭에 가려 있던 아이가 갑갑한 듯이 고개를 내밀고 정면으로 혜영을 보았다. 혜영이도 그 아이를 마주 보며,
“네 아들이냐? 어느새 결혼했기에 벌써 이렇게 컸니?”
묻고,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아서였다.
“음, 저어…… 아니…….”
미숙은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쩔쩔 매다가 아이를 돌아보며,
“그만 가자.”
이러고, 혜영을 향해,
“미안해, 나 바빠서 먼저 가봐야겠어.”
사과하듯 변명하듯 하더니 아이의 손목을 끌며 저쪽으로 달아나버리듯 한 것이다. 혜영은,
“왜 저럴까, 재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학교 후문을 거쳐 반 이상 진행된 고별식장으로 들어갔다.
혜영과 미숙은 이 신미 여중·고교의 동창이었다. 그렇지만 무척 가난했던 미숙은, 졸업을 1년 앞두고 슬그머니 학교를 그만두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혜영이 재학생들의 대열을 돌아 졸업생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살살 접근해가노라니까, 동기동창생 중에서도 단짝이었던 인애와 문주가 먼저 발견하고 와락 손을 잡으며 반가워했다.
돌아가신 옛날 교장 선생님에 대한 애도의 말이 소근소근 몇 마디 오고간 뒤 발돋음을 하며 관이 놓여 있는 쪽을 열심히 넘겨다보던 혜영이 별안간,
“어마마마, 그렇구나, 설마 그럴라구, 설마…….”
옆에서들 놀라 돌아볼 정도로 이렇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인애와 문주가 어 리둥절해서,
“왜 그러니, 너?”
팔을 잡아 흔드니까, 혜영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섰더니,
“저쪽으로 좀 가.”
인애와 문주를 끌고 사람이 없는 운동장 한 귀퉁이로 갔다.
“무슨 일이냐?”
궁금해하는 문주의 물음에 혜영은 담 밖의 언덕을 가리키며,
“나, 오다가 저기서 미숙일 만났어.”
다시 그쪽을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한미숙이 말이니?”
“참말, 걔 본 지 오래다 얘. 왜 안 들어오구 거기 있었을까?”
“그럴 사정이 있나봐, 사실은 거기서 네댓 살짜리 사내애를 데리구 울구 있었어. 그래서 너 언제 결혼했기에 벌써 이렇게 큰 애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우물쭈물하잖아.”
“네댓 살이면 걔가, 열여덟이나 열아홉에 낳았게.”
“그러게 말야. 그 애 얼굴이 꼭 낯이 익어. 그래서 유심히 눈여겨 보았더니 어쩔 줄 몰라 쩔쩔매면서 애를 끌구 달아나버리지 않겠니.”
“왜 그랬을까?”
“나두 참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이리로 들어왔는데, 저기 상주가 들고 있는 고인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어. 그 사내아이 얼굴이 돌아가신 교장 선생님 의 모습 고대로야. 어쩌문 고렇게도 쏙 뺐겠니, 글쎄.”
“어마!”
인애와 문주도 똑같이 벌린 입을 잠시는 다물지 못했다.
“이제 생각하니까 짐작이 가는 일이 있어. 미숙이가 가난하니까, 교장 선생님이 그때 학빌 대줬지 않아, 나중엔 생활까지 돌봐준댔어.”
“옳아, 그러다가 그렇게 그렇게 된 거구나.”
세 여자는 머리를 주억거리고, 어색한 표정들로 똑같이 관 옆의 유족석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 눈들은 거리 관계로 여기서는 희미하게 윤곽만 알아볼 수 있는 고인의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고결 무구한 도덕가요, 근엄한 인격자로서 만인의 추앙과 존경을 받아오신……’ 그분의 생전의 모습을 말이다.
-끝-
2016년 11월 1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