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 명물 수탉 ‘이쁜이’가 ‘여의도 지킴이’로 거듭났다.
지난 9월 주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천호동 귀족닭’에서 졸지에 ‘노숙닭’이 됐던 이쁜이(스포츠서울 9월 8일자 참고). 한 달 만에 새 주인 김현순씨(53)를 만나 노숙생활을 청산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김씨 역시 옛 주인 못지않은 닭광(狂). 전세로 살고 있는 여의도의 40평짜리 아파트는 ‘닭들의 천국’이다. 혼자 사는 김씨는 1년6개월된 암탉 수사라, 뚜까, 브야핫, 수탉인 애핫과 4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내가 이쁜이를 데려가겠어!
이쁜이에게 지난 한 달은 악몽 그 자체였다. 한국조류보호협회가 들어선 건물 옥상에서 날개가 부러진 검독수리, 눈알이 빠진 소쩍새, 다리를 절뚝거리는 재두루미들과 함께 밤이슬을 맞았다. 천연기념물인 이들과 다른 처지라 무시와 괄시는 견딜 만했지만 지난 3년 동안 매일 목욕하고 맛나는 모이에다 부러운 시선을 한껏 받으며 즐겼던 공원산책, 그리고 주인 품에 안겨 자는 침대생활의 따뜻함만은 잊을 수 없었다. 꽁지와 깃털이 빠지고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다. 천연기념물이 아닌 이쁜이를 ‘보호’할 사람을 찾던 차에 김씨와 연결됐다. 공포에 떨던 이쁜이에게는 구원의 순간이었다. “신문기사와 TV로 이쁜이를 접하는 순간, 6개월 전에 가출한 ‘라챌’이 생각났어요. 다른 닭들과 함께 여의도공원으로 놀러갔는데 라챌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어요.” 김씨의 말이다.
●로또복권에 당첨된 거야
한국조류보호협회 김성만 회장은 “이쁜이를 애완용 농장으로 넘기려고 했는데 마침 김씨가 나타나 홀가분합니다”라며 “이쁜이는 타고난 계팔자로 또다시 극적인 반전을 이룬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닭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쁜이를 들뜨게 한 것은 성숙한 암탉 3마리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3년 동안 장가 한번 못 가보았다. 물론 이쁜이는 수탉 애핫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선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쁜이가 이 아파트로 들어온 지 불과 1주일도 못됐는데 벌써 이쁜이와 애핫은 암탉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닭들은 영혼이 너무 맑아
,여의도 닭할머니’로 불리는 김씨의 아파트는 닭들의 천국이다. 김씨는 수탉의 울음소리를 줄이기 위해 싱크대 밑에 ‘닭장’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지 않는다. 이 닭들의 천적은 이웃아파트 아가씨들. “별꼴이야”라며 무시하다가 닭들에게 쪼이기도 한다.
닭의 이름을 히브리어(애핫은 하나, 투까는 달콤하다라는 뜻)로 지을 정도로 김씨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다. 6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생활하면서 유대교에 귀의했다. “닭의 영혼은 아주 맑습니다. 매우 용감하고 충성심도 대단해요. 아무리 배고파도 먹이를 항상 나눠먹습니다. 심지어 먹이를 되뱉어내 상대를 배려해줄 정도랍니다.” 김씨의 닭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