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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장이 쇠퇴하고 뱃길도 끊기면서 납도는 버려졌다. 납도로 가는 길은 욕지도에서 시작한다. 태풍으로 배를 접안하는 시설은 부서졌지만 납도의 품으로 안기고자 떠났던 몇몇 주민들은 이곳을 찾고 있다.
동백의 밀림으로 들어서는 순간, 호젓한 무인도 속의 길섶마다 동백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붉은 동백꽃 핀 아름드리 나무사이로 천상의 새들이 입을 모아 지저귄다. 납도는 자생 동백이 잘 보존된 섬 중의 하나다.
라디오에서 동백이 아름다운 백련사의 동백꽃을 나무에 핀 목화(木花)요, 땅에 떨어진 낙화(落花), 마음에 핀 심화(深花)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백련사의 동백이 삼화(三化)라면 납도의 동백은 실낙원에 불타는 꽃, 삼화(森花)다.
납도는 1999년까지 12가구가 자가발전기에 의존해 생활하던 유인도였지만 지금은 대문도, 문패도 없는 이름 없는 섬으로 전략했다. 그저 석양을 바라보기 좋은 곳.
봄이면 핏빛 동백꽃이 웃어주는 섬이다. 푸르다 못해 검푸른빛을 띈 바다는 납도를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히 감싸고 있다. 납도에 배가 안 다닌지 꽤 되었다. 명령항로가 다니게 된다고 해도 겨우 하루에 한번 정도나 운영하지 않을까 싶다.
납도 개발에 의해 유람선이 뱃길을 가른다면 사정이 달라지겠만.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 노대리에 속해 있는 납도는 140년 전 고성에서 동래정씨가 뗏목에 떠밀려 이곳에 정착하면서 유인도가 되었다. 납도의 유래는 생김새를 따라 지어졌는데, 섬이 납작하다고 하여 얻은 이름이다.
납도는 유인도때부터 전기가 없어 촛불과 호롱불로 생활했다고 한다. 당시 자가발전기로 전기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기름 값을 감당하지 못해 납도인들은 옛것을 그대로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6월 21일 KBS의 <우기자의 취재수첩, 피플 세상속으로>에서 납도에 사는 마지막 주민인 김덕현씨와 박연옥씨 모녀를 소개한 적이 있다. 당시 김덕현씨는 73세, 박연옥씨는 53세였다.
김덕현씨는 17살에 납도로 시집와, 고동과 약초를 캐면 생활을 영위해 왔다. 남편이 죽자 약초인 어성초와 고동을 판 돈에 보조금을 보태어 살아가고 있었다.
한번은 통영시내에서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박연옥씨를 잃어버려 혼 줄이 난 후, 김덕현씨는 딸을 납도로 밖으로 데려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납도를 알고자 우연히 보게 된 프로그램을 통해 납도인의 생생한 삶과 모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납도의 마지막 주민 김덕현씨도 키웠다는 감귤나무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권고로 1967년 납도에서 시험 재배됐다. 그 당시 우장춘 박사는 납도를 원시 자연림이 그대로 살아있는 ‘천혜의 섬’이라고 극찬을 했다.
밀감이라고도 부르던 당시의 감귤은 제주에서만 나는 과일로, 납도의 기후와 맞아 이 섬에서 자라게 되었다. 납도에 성공한 감귤은 1970년대부터 본섬 욕지도에서도 재배되었고 재배 규모가 전체 주민의 절반인 500여 농가, 120여㏊에 이를 정도로 한때 인기 높았다.
당시 납도에서는 감귤나무를 ‘대학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자식을 대학에 보낼 정도로 부를 상징하는 나무라는 뜻. 하지만 80년대 초 감귤의 과잉생산으로 주민들은 더 이상 감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납도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 납도의 감귤나무는 버려져 몇 그루 남지 않았다.
과거 감귤의 시험대가 된 납도를 최근 통영에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납도를 ‘창작예술섬’으로 만들 계획이다. 아트체험센터와 예술인촌, 감상의 길 등을 만들어 감귤아씨 섬에서 제2의 전성기 납도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의도다. 하지만 아름드리 동백림, 살아있는 원시 자연림과 어떻게 조화를 맞출 것인가는 과제로 남는 부분이다.
밀감을 심었던 밭은 묵정밭이 되고 나무가 우거져 구분을 할 수 없지만 군데군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나무가 만든 쑥대밭으로 옛 마을을 가름할 수 있었다. 사람은 떠났지만 동백나무는 붉은 핏빛 꽃을 피워 섬을 끌어안고 있다.
섬은 수백 년 된 동백나무가 고목이 되고 그 고목이 동백터널을 만들어 천혜의 낙원을 만들었다. 거제 지심도, 여수의 오동도 동백아씨 정겹지만 오롯한 아름다움이 살아 숨 쉬는 땅, 납도에 뚝 떨어진 동백꽃은 가슴 깊은 곳까지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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