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배우사를 훑어볼 때 '착한 여자 콤플렉스', '천사표 콤플렉스'로 관객들의 눈물주머니를 터뜨려 놓은 배우들이 있었다.
그 이름은 '눈물의 여왕'일라고 불리워졌던 전옥을 필두로 김연실, 김소영, 문예봉, 유계선, 김신재, 이경희, 고은아, 전계현, 문희 등 기라성 같은 명성을 떨친 여배우들이었다. 이들 여배우들 중에서도 특히 '눈물과 천사표의 페르소나'로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준 여배우가 전옥에 이어 '제2의 눈물의 여왕'으로 알려진 이경희(李璟姬)였다.
이경희는 1932년 9월 29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한성여고 졸업 수 한때 레코드가수 및 악극단에서 활동하다가 영화연기자로는 1955년 김성민 감독의 <망나니 비사>로 데뷔하였다. 이 영화에서 이경희는 전택이, 노경희와 트리오로 공연했다.
이경희는 어린 소년시절부터 재학 당시 서울방송국에 출연하는 기회도 자주 가졌으며 졸업 후 레코드사의 요청을 받아 <서울의 거리>, <서울 부기> 등의 히트곡을 취힙하기도 했다.
그 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 그곳에서 악극단 <희망>에 입단하여 <루루태자>, <라 콤파르시타>, <분홍치마>. <클레오파트라> 등의 연극에 출연하였다.
그녀가 애수에 젖은 음감으로 <라 콤파르시타>를 불러 젖힐 때 관객들은 주저없이 '순정의 가희', '눈물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던 것이다.
이경희의 데뷔작 <망나니 비사>에 따른 에피소드(<여성영화인사전>69쪽 이경희.2001년 도서출판 소도)를 살펴 보자. 55년 서울 수복 후 여배우를 물색하던 김성민 감독은 이경희가 적역이라는 조언을 듣고 당시 국도극장에서 황해 등과 <님의 품에 안기리>라는 연극을 하고 있던 그에게 찾아봤다. 노경희, 전택이, 이민 등 당대의 빅 스타들과 함께 <망나니 비사>에 출연하게 된 이경희는 정조을 지키려던 자신 때문에 모함에 빠지게 된 아버지와, 본의 아니게 아버지의 목을 쳤지만 자신을 사랑하게 된 망나니 '먹'(전택이)의 죽음까지 묵묵히 지켜보아야 하는 비운의 여인 '채'로 분했다. 장옷를 뒤집어쓰고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채'의 모습은 너무나 단아해서 잡시 발성영화에 잘못 캐스팅된 무성영화의 슬픈 페르소나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이 영화 이후 청순가련한 비극의 히로인은 이경희에게 일종의 숙명처럼 고착되었다.
영화 <망나니 비사>에서 여주인공 '채'로 분한 이경희와 역시 여주인공 '달'로 분한 노경희는 양반집 규수(전자)대 술집 작부라는 상반된 신분의 여인으로 등장하였다.
-어느 고을의 교리(이민)가 그 고을 진사의 딸 '채'(이경희)를 좋아한다. 그러나 진사는 자기 딸을 교리의 소실로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교리는 갖은 모함을 다해서 진사를 역적으로 몰고 그의 딸을 차지하려 했다. 그랬지만 딸은 도망을 쳤다. 그 딸이 도망친 곳은 바로 망나니인 '먹'(전택이)이네 집. '먹'은 그 딸을 숨겨주었다. 그것을 인연으로 망나니 '먹'은 진사딸 '채'를 짝사랑하기 시작한다. 이 사실을 눈치챈 술집작부인 달은 사랑하는 '먹'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쓴다. -
이른바 삼각형 연애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경희가 청순가련형의 여인상을 연기한 반면 노경희는 특유의 빈정거림으로 '먹'을 다루는 능동적인 하층민 여인상을 선보였다. 노경희는 이 영화의 '달'역으로 1955년 제1회 금룡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관객들의 가슴에는 '채'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마지막 대목에서의 이경희 연기가 아프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경희는 이밖에도 <모정 > '58. 양주남 감독 , <육체의 길> '59. 조긍하 감독, <삼여성>'59 박성복 감독, <연산군>'61 신상옥 감독, <김약국집 딸들> '63 유현목 감독, <단종애사>'63 이규웅 감독, <모란이 피기까지는> '63 김기덕 감독, <혈맥> '63 김수용 감독, <추풍령> '65 전범성 감독, <신설> '74 조문진 감독, <들국화는 피었는데> '74 이만희 감독, <여자를 찾습니다>'76 하길종 감독, <깃발없는 기수> '79 임권택 감독, <내가 버린 여자2>'80 홍성기 감독, <아가다>'79 김현명 감독>, <영웅연가> '86 김유진 감독, <이장호의 외인구단>'86. 이장호 감독, <아다다> '87 임권택 감독 등에 출연하였다.
이경희의 대표작을 들라고 하면 <망나니 비사>, <잃어버린 청춘>, <찔레꽃> 등 3편을 통해서 보여준 연기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게된다. 그 가운데서 대표작 중 1편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유현목 감독의 <잃어버린 청춘>에서 보여준 이경희의 연기(정애 역)를 평가하고자 한다.
영화 <잃어버린 청춘>의 주인공인 위진구(최무룡)의 직업은 전기공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전선 수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괴한과 맞부딪쳤다. 상대방은 바람처럼 달아나버리고 그 자리에는 돈다발이 떨어져 있었다. 위진구가 조심스럽게 돈다발을 집어들었을 때 근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진구가 그 사람을 발견, 일으켜 세우려고 할 때, 그가 갑자기 "강도다!"라고 소리치며 칼을 뽑아들었다. 진구는 옷소매를 붙잡고 달라붙은 그 자를 때려눕히고 위기를 벗어난다. 하지만 피를 많이 흘린 그는 죽었고, 진구는 억울하게도 살인범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단절된 진구는 신을 의지하는 애인 정애(이경희)에게서 구원을 찾는다. 결국 젊은 전기공은 경찰에 자수하지만 애인의 따스한 눈물만으로는 냉엄한 현실의 절망감을 밀어젖힐 수 없었다는 내용의 드라마가 6.25전쟁 후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서울의 도심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의 운명이 리얼한 영상 속에서 속절없이 농락당한다는 '쫓기는 인생'의 삶이 비정하게 묘사된 영화에서 여주인공 정애의 마지막 내뱉은 말은 "이젠 울지 않겠어요"였다.
필자는 <잃어버린 청춘>이 제작된 지 45년이 지난 며칠 전 유현목 감독을 만나 영화배우 이경희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유감독님이 <잃어버린 청춘>을 연출한 당시 연기자로서 이경희 씨는 어떠했습니까?"
"한 마디로 해서 청순가련형의 동양적 이미지의 배우였지요. <잃어버린 청춘>의 라스트신을 찍는데, 비오는 장면이었습니다. 때가 엄동설한이라 우중 신을 찍기가 용이치 않았어요. 소방차를 동원 호스로 물을 뿌렸는데, 물이 잘못 뿜어져 고압선에 닿으면 위험한 형국이었어요. 나는 이경희 씨에게 추우니 비닐 옷을 입으라고 권했지요. 그런데도 2시간 이상 촬영하는 동안 이경희 씨는 끝내 비닐 옷을 걸치지 않고 꼬박 혹한 속에서 물세례를 받았어요. 나는 속으로 그녀가 인내력은 물론, 프로 의식이 강한 외유내강형 연기자로구나 생각했지요. 성실하고 싹싹했고, 외모도 나무랄 데 없는 미인형이였지요."
<눈내리는 밤 '58>, <목포의 눈물'58> 등 신파극 멜로 드라마를 연출한 바 있는 하한수 감독도 이경희에 대해 연기평을 했다.
"내 영화에 출연한 후 <눈물의 여왕>이라고 불리워진 전옥 씨는 정말 전설적인 여배우로 연기에 대한 열정은 가히 '불꽃'이라고 부를만 했어요. 거기에 비해 이경희 씨는 소극적이며 내향적인 성품의 연기자였지요. 그의 매력은 항시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함에 있습니다." 1958년 초여름 결혼했던 남편 김영건과 1963년 사별한 이경희는 딸 혜정의 강한 어머니로서 모정의 세월 속에서 연기생활에 전념했다.
이경희가 출연한 최근 작품으로는 <세상 밖으로>'94 여균동, <닥터 봉> '95 이광훈, <도둑과 시인> '95 석래명, <애> '99 이두용, <가위>2000 윤종찬 등이 있다.
영화배우 이경희.... 그녀는 1950년대 중반에 데뷔한 이래 45년간을 현역 연기자로 활동하였다. '눈물과 천사표의 페르소나'는 늙음도 마다 않고 항상 우리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