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제목 : 신앙의 관성의 법칙
설교본문 : 여호수아 9:1~12, 10:1~14(참고, 사도행전 14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4년 11월 24일
===========================
신앙은 간절함, 두려움, 기다림과 견딤,
그리고 저항하고 거스르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간절함은 방향성입니다.
그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그의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어느 것을 더 큰 권세로 믿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 큰 권세를 가진 것과 손을 잡고 있다면 그보다 작은 것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간절함과 두려움, 이 두 가지 작용으로 우리는 매일 이런저런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은
우리가 매일 하는 이 선택에 믿음이 어떻게 작용했느냐 하는 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오늘은 여호수아의 말씀을 통해 간절함과 두려움, 그리고 견딤과 기다림이
어떻게 복과 저주를 가져오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오.
1. 아이 성에서의 패배
지금까지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계속 보여주었습니다.
그때는 요단강이 가장 범람했을 때였는데
강물이 벽돌처럼 쌓여 물벽을 이루어서 강을 마른 땅으로 건넜고,
여리고 성도 하나님께서 무너뜨려 주셔서 아주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공격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냈다가
정탐꾼의 말대로 삼천 명의 군사를 보냈다가 36명이 죽고 패하여 쫓겨납니다.
➠ 제비뽑기로 아간이 뽑히고(수 7:16~18)
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자파별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17.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가문이 뽑혔고,
세라 가문의 각 가족별로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의 가족이 뽑혔고,
18. 삽디 가족의 남자들을 차례대로 나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넉넉히 이길 것이라 생각했던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여호수아가 슬퍼하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범죄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하나님께 바친 물건에 손을 댄 자가 있으니 그를 찾아내어 불사르라고 명하십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 중에서 제비를 뽑으니 아간이 뽑힙니다.
아간이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를 숨겨 두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찾아내자 온 백성들이
아간과 그의 가족과 그 물건을 돌로 치고, 불사른 후에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습니다.
그제야 하나님께서 진노를 그치시고
이어서 아이 성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후 아간이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 일은 간략하게 요약만 합니다.
아간에 대한 말씀은 해당 큐티방을 참조해주십시오.)
2 내일이 오고 있으니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오.
여호수아에 나온 지금까지의 일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요단강을 건넌 일
그때는 모맥을 거두는 시기이므로
요단강 강물이 강둑에 넘칠 정도로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장면을 사흘 동안이나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이전 같으면 불평을 했겠지만 이들은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니
요단강에 길이 25km, 높이 500~600m에 이르는 엄청난 물벽이 생깁니다.
2) 기생 라합의 일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의 일을 사람들에게 듣고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더 큰 신은 없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을 가르쳐주는 자가 아무도 없으니 간절한 마음을 품고만 있었는데
그때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그의 집에 들어옵니다.
라합은 목숨을 걸고 그들을 숨겨주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들어오는 복을 받게 됩니다.
3)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일
요단강을 건넌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십니다.
할례를 받으면 상처가 아물기까지 대단히 위험한 상태가 되지만
그들은 말씀대로 할례를 받고 또 유월절까지 지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애굽의 수치를 떠나게 하시리라 하시며
여리고 성을 기가 막힌 방법으로 무너뜨리십니다.
4) 아이 성을 무너뜨린 일
그러나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체험하던 이스라엘은
교만에 빠져 성급하게 아이 성을 공격했다가 36명이 죽고 패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한 것이라고 여호수아에게 알리셔서
아간과 그의 가족이 죽임을 당한 후에 다시 아이 성을 공격하여
아이 성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게 됩니다(여호수아 8장).
● 묵상 :
내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하고 오직 너희는 그날 해야 할 일에 충성하라(마태복음 6:34).
마태복음의 이 말씀은 내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하라는 것은
나의 내일을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오늘 한 일로 내일을 만드신다는 말씀이 여호수아서만큼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오는 곳이 있을까 싶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요단강도 멈추고 여리고성도 무너지게 하셨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니
이스라엘이 아이 성 같은 아주 작은 성과의 싸움에서도 패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오늘을 가지고 내일을 만드시니,
공연히 내일 일을 염려한다고 코를 석 자나 빼놓고 넋 놓고 있지 말고
오늘 해야 할 일에 충성된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나의 내일을 복된 내일로 만드십니다.
제 2 부 : 하나님을 택한 기브온 사람들
1. 기브온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보신 하나님
1) 거짓으로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은 기브온 사람들(수 9:1~6, 14~15)
1. 이 일 후에 요단강 서쪽 산지와 평지와 대해(大海, 지중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소식을 듣고
2. 함께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3) 그러나 (히위 족속인)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 성에서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사신(仕臣)의 모양을 꾸미되
낡고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5)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핀 떡을 준비하고
6)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14)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양식을 손에 들고 조사해 보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여호와께 묻지도 아니하고
15)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려 줄 것이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의 족장들도 그 조약을 지키기로 맹세하였더라.
이스라엘이 아이 성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나안의 남부 지역에 있는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의 왕들이 함께 모여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합니다.
그때 기브온 주민들은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꾸미고 여호수아에게 와서 화친을 청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꾸며진 형색을 보고 여호와께 묻지 않고 그들과 조약을 맺습니다.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 그들이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으니 그들을 치지 못합니다.
여호수아는 이들이 거짓으로 조약을 하였으니 대대로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집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 긷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2)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기브온 사람들의 구원
본문 14절은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묻지 않았으므로
그가 지혜가 부족하여 기브온 사람과 조약을 맺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 일이 모두 기브온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구원 받기를 간절히 원하니
여호수아의 마음을 잠시 흐리게 하셔서 그들과 화친을 맺도록 하신 것입니다.
3) 기생 라합과 기브온 사람들의 공통점
기생 라합과 기브온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로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기생 라합에게는 이스라엘의 정탐꾼 두 명을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길을 열게 하셨고,
기브온 사람들에게는 여호수아를 속일만한 꾀를 갖게 하셔서
비록 종이기는 하지만 구원 받는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함께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
2. 가나안 남방 연합군이 기브온을 공격함
1) 가나안 남방 연합군의 기브온 공격(수 10:1~5)
1. 그때에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뺘앗아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처럼
하였고, 또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王都, 일국의 수도)와 같이 큰 성으로 아이 성보다 크고,
그 사람들도 모두 용맹한(강한) 전사들이었기 때문이라.
3. 그리하여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4.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함께 기브온을 치자.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5. 그리하여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그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기브온에 대항하여 진을 치고 싸우니라.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 성을 점령하여 완전히 진멸하고,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나안 남부 지역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모여 함께 기브온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기브온은 여리고나 아이 성과 같이 작은 성이 아니라
왕도(王都)와 같이 아주 큰 성으로 그 군사들 역시 용맹하기로 이름난 곳이었으므로
이스라엘과 싸울 때 기브온이 주력부대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했는데,
그들이 먼저 이스라엘과 화친하였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택한 그 대가를 치르는 기브온
기생 라합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두 명의 정탐꾼을 숨겨준 대가로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자칫 발각되는 날에는 그 집 식구들이 다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브온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그 주변 남방 연합군에게 공격을 당하는 대가를 치릅니다.
이런 일은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브온 사람들은 남방 연합군이 모두 힘을 합해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므로,
그들에게 공격을 당할 염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에게 화친을 청한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1) 기브온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스라엘(수 10:6~9)
6.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해
주옵소서.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7. 여호수아가 정예 부대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길갈에서 진군하여 올라가니라.
8.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9.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불시에 그들에게 들이닥치니
기브온은 즉시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자기들을 속이고 화친 조약을 맺은 놈들이니
“어디 한번 당해 봐라” 하고 모른 체 할 수도 있을 텐데,
여호수아는 기브온이 공격을 당할 처지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를 이끌고 길갈에서 밤새도록 행군하여 올라가서
도착하는 즉시 남방 연합군에게 불시에 들이닥쳤습니다.
길갈은 여리고 가까운 곳이니 표고가 바다보다 낮은 마이너스 250m이고
기브온은 해발 722m이니 표고 차이가 약 1,000m나 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길갈에서 기브온까지 30km를 산악 행군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밤새 갔다고 했으니 약 10시간 안에 행군한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열심입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온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2) 큰 우박을 내리신 하나님(11절)
11. 그들이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내리막길에 이르렀을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셨으므로 그들이 죽었
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맞아 죽은 자보다 우박에 맞아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밤새 행군하여 적들의 진영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기습하여 진격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크게 혼란에 빠뜨리십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크게 승리하여 그들을 추격하니
하나님께서 도망하는 무리에게 큰 우박 덩이를 내리셔서
이스라엘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맞아 죽은 자가 더 많게 하셨습니다.
3)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12절)
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던 그날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여호와께 아뢰어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그대로 멈춰 있으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이스라엘이 크게 승리를 하고 있지만 밤이 오면 그들이 숨을 수 있어 낭패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
태양과 달을 향하여 그대로 멈춰 있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태양과 달이 정말로
그들이 남방 연합군을 완전히 물리칠 때까지 하루 종일 멈춰 있었습니다.
제 3 부 :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사도행전 14장의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이고니온에서의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
유대인의 박해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이고니온으로 가서
전에 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이고니온에서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1) 많은 사람이 믿고 주께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났다(행 14:1)
1. 이에(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핍박을 받아 이고니온에 왔으므로)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자,
그들의 설교를 듣고 유대과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들은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악한 자들이 아무리 핍박과 고난을 가한다고 할지라도
복음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듣는 자들로 하여금 믿음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2) 도시의 사람들이 두 무리로 나누어졌다(2절)
2. 그러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나쁜 감정)을 품게 하거늘
그러나 반대로 믿음을 갖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그 마음에 악한 마음이 들어가서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믿음을 가진 자들에 대하여 나쁜 감정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도시는 유대인을 따르는 자들과 사도들을 따르는 자들로
두 무리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3) 폭력적인 반대가 있어났다(5~7절)
5.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그들의 관원들과 합세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쳐 죽이려 달려드니
6. 사도들이 이 사실을 알고
루가오니아 지방에 속한 두 성(城)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믿음을 갖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점차로 폭력적인 방법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 도시의 관원들과 합세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급기야 돌을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는 급히
그곳에서 동남쪽으로 38km 지점에 있는 루스드라로 피신하여 갑니다.
4)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8~10절)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이 사람은 바울의 설교를 귀 기울여 듣거늘,
바울이 그를 주목하여 보다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는지라.
이렇게 바울과 바나바가 모욕과 반대를 받았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오래 머물며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 그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표적과 기사는 시련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 왜 복음이 전해졌는데 도시가 분열이 되나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의 결과 도시가 두 쪽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믿음을 반대하는 무리들은
“너희가 오기 전에는 이 도시가 하나였는데 너희가 와서 둘로 나뉘어졌다”
하는 불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멸망을 향하여 가는 기차 안에서
평안히 있게 하는 것은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닙니다.
갈등과 아픔이 있더라도 사람들을 깨우쳐서
멸망으로 가는 기차에서 생명으로 가는 기차로 옮겨 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공동체를 바르게 바로잡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에만 빠져 있을 때에는 신앙적인 갈등이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아직 벗지 못한 죄의 습관과 생명의 말씀 사이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그갈등과 아픔을 지나면서
우리는 서서히 그 말씀의 능력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이것을 창조적인 갈등이라고 합니다).
2.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 신으로 섬기려는 루스드라 사람들
1)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자가 걷고 뛰며 기뻐함(행 14:10)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는지라.
이고니온에서 쫓겨나듯 빠져나와 루스드라로 갔습니다.
루스드라에 가니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여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걸어본 일이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울의 설교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를 주목하여 보니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울은 즉시 그에게 “네 발로 일어나라”하고 명령하자 그가 곧 걷고 뛰었습니다.
2) 이 일로 바울과 바나바를 헤르메스와 제우스로 알고 제사를 드리려 함(11~13절)
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쓰스(제우스)라고 부르고,
바울은 주로 설교를 맡아 하고 있었으므로 허메(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성 바깥에 있는 쓰스(제우스) 신전의 제사장이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성문 앞에 가지고 와서
무리와 함께 두 사도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니
그러자 이 일을 본 루스드라의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향하여
신이 사람의 모양으로 내려왔다며 황소 몇 마리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서
그들이 우상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바울과 바나바 앞에 제사를 드리려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며 그들의 일을 중지시켰습니다.
그리고 오직 영광 받아야 할 분은 우리를 구하신 예수님뿐이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3. 루스드라에서의 두 가지 위험한 유혹
우리는 이 사건에 담긴 다음 두 가지의 유혹에 주목해야 합니다.
1) 힘 있는 자를 의지하려는 우상 숭배의 유혹(행 14:11~13)
(11~13절 성경구절 위에)
바울과 바나바가 마치 신과 같은 능력을 나타내 보이니
그들은 두 사도를 신으로 숭배하려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힘이 있어 보이는 자를 의지하려는
사람들의 본능적인 욕구를 봅니다.
내가 힘이 없으니 힘이 있어 보이는 자를 높여서
그의 힘을 통하여 나를 보호하려는 욕구입니다.
이런 유혹 때문에 독일의 히틀러가
독일 국민들에게 그렇게 많은 지지를 얻으며 지도자가 될 수 있었고,
지금도 사교 집단의 교주들이
교인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으며 사악한 행동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간에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하나님처럼 의지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이 세상에 절대 권력을 가지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기억합시다.
누군가 힘이 있어 보일지라도
그 역시 나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2) 나를 높이려는 자기 우상화의 유혹
이렇게 힘이 있어 보이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려는 경향성과 함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나를 높이는 것을 즐기고 싶은 욕구입니다.
헤롯 왕이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가리켜 신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자
그는 그 칭찬에 만족하며 마치 자기가 신이 된 듯 즐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벌레에 먹혀 죽는 자가 되었습니다.
3) 옷을 찢으며 그들을 말리는 바울과 바나바(행 14:14~15)
14. 두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이 말을 듣고 자기들의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신으로 섬기려 하자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그들 무리 속에 뛰어 들어가서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들도 분노하고, 질투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유혹받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묵상 : 누군가를 하나님처럼 숭배하지도 말고, 나를 높이려 하지도 마십시오.
우리가 누군가를 숭배하려 할 때 그 사람은 염려도 하지 않고,
유혹도 절대로 받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누군가를 이런 마음으로 의지하거나 숭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조심하십시오.
또 자기를 높이려는 욕망에 빠진 자가 사람들에게 자기를 우상화하여
자기는 흠과 티가 없는 절대적인 순전함을 가진 자라고 과시하려 하지도 마십시오.
4. 유대인들의 집요한 훼방과 박해
1) 루스드라에서 죽을 만큼 박해를 받은 바울(행 14:19)
19. 그때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몰려와서 무리를 충동(선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자기들을 신으로 숭배하려는 것을
자기들 옷까지 찢어가면서 억지로 말리고 난 직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에게 돌을 던집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를 방해하기 위해 무려 160km나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는 이들의 집념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돌에 맞은 바울이 얼마나 참혹하게 보였는지
그들은 죽었다고 여기고 성 밖 쓰레기장에 바울을 내다 버렸습니다.
2) 더 위험한 유혹:
➀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이 자기들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상상을 해봅니다.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을 신으로 숭배하려는 일을
굳이 막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일 그 일을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유대인들이 그곳에 와서 무리를 선동할 때
그들이 그렇게 쉽게 선동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바울이 죽을 만큼 돌에 맞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➁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돌로 맞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죽을 만큼 돌에 맞는 일보다
자기들을 숭배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일이
훨씬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5. 루스드라에서의 기적
무리들은 바울이 축 늘어지자 죽었다고 여기고
행려병자들이 죽었을 때 내다 버리는 곳인 성 밖 쓰레기장에 내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바울의 장례라도 치러주기 위해 바울 주변에 몰려들자
바울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문을 가볍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본문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기적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1) 죽은 바울을 다시 일으키신(부활하게 하신) 하나님(행 14:20)
20. 그러나 제자들(성도들)이 달려와 바울을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서(혹은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셔서,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셔서)
다시 그 성안으로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많은 사람들이 본문을 바울에게 돌을 던진 이들이
죽은 줄 착각하고 성 밖 쓰레기장에 던졌는데,
바울이 조용히 있다가 그들이 가니까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두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줄 착각할 수는 없습니다.
누가는 본문을 기록할 때 ‘아나스타스’라는 말을 사용하여,
바울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셔서 일어나게 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일어난 것이
초대교회에서의 또 하나의 기적의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2) 더 큰 기적 : 자신이 죽었던 루스드라를 향하여 다시 들어가는 바울
그러나 바울이 죽었거나, 혹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얻어맞았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툴툴 털고 일어났다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그가 조금 전에 죽을 만큼 돌로 얻어맞은 바로 그 성,
루스드라로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삶과 죽음, 핍박과 고난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바울을 봅니다.
● 묵상 :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이 너무나도 중요하고 간절한 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천국과 지옥을 확실히 믿고 있는 바울이었기에
그가 당하는 고통보다도 믿지 않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여기에 성령께서 그와 함께하시니 그가 그 어떤 특공대보다도 더 담대하게
자신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을 향하여 다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바울처럼 믿지 않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구합시다.
그리고 바울처럼 주님의 성령이 함께해 주시기를 구하고 또 구합시다.
주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면
우리도 바울같이 용감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6.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 14:21~22)
21. 그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must)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하고
바울이 그렇게 루스드라에 들어간 후
그 이튿날에 인근에 있는 더베로 가서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많은 제자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고 권면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증거하였습니다.
● 묵상 :
이것은 바울이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핍박의 때를 사는 사람들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평화로운 시대에 사는 사람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자기의 삶을 포기하고 믿음의 삶을 사는 것도 환난이요,
허물과 죄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사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고민도 환난입니다.
또 아무리 평화로운 시대라 할지라도
믿음의 바른길을 가는 사람들을 세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바른 것이라면
반드시 크든 작은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세상에서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환난을 당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면
내가 세상에서 믿음을 가진 자답게 살았었는지를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7. 오던 길을 되돌아가며 교회와 일꾼을 세우는 바울(행 14:23~28)
23.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 금식 기도하고,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맡기고)
24. 그 후에 두 사람은 비시디아를 통과하여 빔빌리아로 들어갔다가
25.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뒤에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안디옥은 온 교회가 두 사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빌어 주며,
선교의 임무를 맡겨 선교사로 파송했던 곳이라.
지금 그들은 그 임무를 마치고 (그 교회로) 돌아오게 된 것이라.
27. 그곳에(안디옥 교회에) 이르러서 교회 성도들을 불러 모으고,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신 모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으니라.
1차 전도 여행을 마친 바울은
그가 다녀왔던 도시들을 다시 방문하며 성도들을 모읍니다.
그리고는 그들 중에서 장로를 세워 교회를 조직합니다.
여기에서의 장로는
그들이 설교와 목양을 담당했으므로 오늘날 목사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교회를 조직하고는
주께서 이 사람들을 맡아 주실 것을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 묵상 :
오직 교회가 바로 서는 것만을 바라고 원했던 바울의 신앙의 열정이
우리에게도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결 론 : 신앙의 관성의 법칙
1) 뉴턴의 운동의 법칙 : 관성의 법칙과 가속도의 법칙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법칙이 관성의 법칙입니다.
관성의 법칙은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뉴턴의 제2법칙인 가속도의 법칙은
물체의 움직임은 미는 힘에 비례하고 질량에 반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에 비유하여 설명하면
계속해서 신앙에 열정과 노력을 계속 불어넣지 않으면
신앙은 성장을 멈추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2) 가만히 있으면 신앙은 결코 성장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가만히 두면 절대 성장하지 않습니다.
멈춰 있는 것은 계속 멈춰 있으려 하며
움직이는 것 역시 멈추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두면 절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앙은 뒤로 흘러가는 물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중간이라도 하는 것입니다.
3) 가는 것을 밀면 더 잘 갑니다.
가는 것을 밀면 더 잘 갑니다.
이미 달려가는 힘이 있는 신앙은
뒤에서 조금씩만 밀어줘도 계속해서 잘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 가고자 하는 힘이 약해지기 전에 계속 밀어줘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그들 도왔고,
이 돕는 일이 계속되니 가속도가 붙어서 엄청난 기적까지 일으켰습니다.
4) 멈추면 다시 움직일 때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멈추면 다시 움직일 때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성장이 멈춰버린 신앙을 다시 성장하게 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듭니다.
멈춰버린 상태에 있는 것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움직이는 것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과 힘이 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묵상 : 순종이 계속될 때 하나님의 도우심도 계속 됐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도 그를 계속 도우셨고,
이 도우심이 그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인 삶에 가속도가 붙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일 이 신앙의 성장이 멈추자 하나님의 도우심도 중단되고,
이스라엘에 큰 고통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사사기의 말씀을 통해서 배웁니다.
바울 역시 시련이나 고난이 와도 복음의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하니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그를 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성장을 멈추게 하지 마십시오.
멈추면 다시 일어나기가 아주 힘들어집니다.
주님
라합이나 기브온 사람들처럼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옵소서.
신앙의 성장을 멈추지 말게 하옵소서.
변화와 성장의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게 하옵소서.
분별의 영을 주셔서
잘못되고 거짓된 영을 구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