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길지만 일년은 짧다.
일도 아니고 휴식도 아닌 상황들이 매일 나를 빠르게 관통하고 있다.
욕망으로 차 오르던 머리와 힘찼던 심장박동도 최근들어 한결 느려지는 것을 느낀다.
더는 타 오르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시간들이 유유히 흘러간다.
몸은 늙어 가는데 마음은 늙지 않는 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도 아직 싫지는 않다.
그렇지만 나이 때문에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없다는 제한성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몸은 늙고 마음은 젊어 지면서 마주하는 양면성은- 점점 단순해지고 제한적이 되어 간다-
그런 면에서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각종 부상과 교통사고 그리고 잡다한 사건사고로 점철된 2018년을 보내고 황금돼지 해를
맞이하였다.
매해 연말이나 연초에 해외마라톤에 참가하는 연례행사로 이번에는 수마클 쥐띠
(서정준,이준헌,손문희님),주당 4인방(박종무,윤상현,나 손문희님) 그리고 윤상현님의
어부인(조영옥님)으로 구성된 7인이 베트남 호치민(구 사이공)마라톤에 참가하였다.
첫날(1/11,금)
아침 8시30분.인천공항 제2터미널.
수마클 이브스키팀을 전화상으로 경황없이 배웅하느라고 오신학.유길영님 부부가 준비
했다는 바나나와 요풀레도 받지 못했다.받은 것으로 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들인다.
손문희님이 넉넉한 양으로 정성스럽게 준비한 따끈한 호박죽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장거리 여행과 피교육생 신분은 집 떠나는 그 순간부터 배가 고프다.
오지,짠내투어나 써바이벌이 아닌 여행의 첫번째 선결요건은 배 부르고 등이 따뜻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최우선의 중요한 요건은 누구와 함께하느냐 이다.
우리 7인의 멤버는 이제 숨소리만 들어도 기분 좋은지,화가 났는지 어쩐지등 거의 상황을
파악할 수가 있고 그만큼 편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물론 이런 사이가 되어 버리기 까지는 서로가 자기 자신을 던져 버리는 무수한 관용과
희생의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에서 새삼 감사하다.
한국시간으로 9시40분에 인천을 이륙한 비행기는 베트남 현지시간으로 12시50분,
5시간10분만에 탄소누트 공항에 착륙한다.
손문희님의 외아들이 미리 나와서 반갑게 맞이 해준다.
베트남 현지생활에 적응하여 CJ그룹과 손잡고 CF산업에 종사하는 이친구는 몇년전에
중마의 주로에서 사진자봉을 한적도 있어 더욱 친근하다.
이번에 여행사 없이 대회신청에서 부터 리무진,통역,숙소마련까지 모든 것을 준비해 준 덕에
호치민까지 올 수 있었다.
5일간 우리가 타고 다닐 포드자동차의 럭셔리한 9인승 리무진 RV차량이 대기하고있다.
나는 한국에서 5일간 25000원 정액의 SNS 무제한 사용 로밍을 해오고 다른 분들은
8천원 주고 현지의 심칩으로 바꾼다.좌측 끝 손문희님 아들.
스카이 가든 3단지 15층4호의 펜트하우스에 짐을 푼다.
우리가 4박5일간 거주하면서 베이스 캠프로 사용할 스카이 가든 아파트는 거의 한국인이
거주하면서 이일대가 한인타운으로 형성되어 있어 여기가 베트남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안된다.
아파트 3단지 전경.
편의점,부동산 중계업소,미용실,네일아트점등과 노래방,족마사지,야채과일점,슈퍼,
콩나물 해장국까지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점들이 300M 반경안에 포진하고 있고
걷다보면 지나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국말을 쓴다.
펜트하우스의 아파트 내부구조는 복층형으로 아래층은 응접실겸 거실,주방과 식탁 그리고
방1개가 있고 2층에는 더블베드에 월풀욕조가 딸린 스위트룸 3개가 있다.
윗층 침실에 딸린 욕실에는 월플욕조에 넓고 쾌적하며 호텔수준의 대형타월과 욕실용품이
구비되어 있다.
침실도 넓직하여 여행가방에서 옷을 꺼내 제멋대로 늘어 놓아도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침실의 조명도 엘레강스하며 호텔에 견주어 손섹이 없다.
소유주의 안목이나 수준이 돋 보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집 떠나면 항상 배고픔이 뒤 따른다.
아침에 호박죽 먹고 기내에서 10시반에 또 아침식사를 했는데도 숙소에 짐 풀고 나니
또 배꼽시계가 작동한다. 점심은 베트남 현지식으로~
베트남을 대표하는 맥주는 하노이맥주와 사이공맥주다.
도수4도의 사이공 라거맥주는 혀끝에 감도는 맛이 부드럽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죠끼잔에 얼음이 채워져 나오면 여기에 맥주를 부어 마시며 요청하지
않아도 종업원이 알아서 계속 얼음을 리필해 주고있다.
주당들의 식전 에피타이저는 당근 쏘맥 3~4잔인데 오늘 베트남에서의 첫식사는 쏘를 빼고
맥만으로 가볍게 신고를 대신한다.
볶은밥,간장 소스를 넣어 먹는 것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계란말이형 오무라이스,계란을 많이 넣고 식감이 과자같이 바삭바삭하다.
안주겸 간식겸 식사겸 3종셋트를 하나로 통합~
꼬마 도너츠처럼 튀겨낸 빵을 반으로 나눈 다음 다진 고기나 해산물을 넣고 파를
살짝 얹었다.
느끼하지 않고 상큼하다.
해물잡탕,중국집에서 많이 먹든 것이라 낮설지 않다.
메뉴가 모두 우리 입맛에 맞는 것으로 엄선하여 주문한 손문희님 아들의 배려가
작용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다.
끝없는 먹방,티비에서 보아 온 먹방프로가 현실이 된 기분이다.
호치민의 재래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호치민의 대표적안 관광코스로 푸드시티의 스트리트 마켓이다.
1층 옥외는 서양인들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차지하고 있고 1층 내부의 각종 푸드코너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실내 시식코너가 놓여있다.
2층 시식코너에서 바라 본 스트리트 마켓.외국인 관광객을 위하여 특화된듯 하다.
오징어,순다리 새우,생선구이를 주문하여 한국에서 공수한 소주와 함께 2차 술파티로~
조리과정을 보면서 주문하기 때문에 위생적으로 안심도 되고 가격이 워낙 저렴하여
부담이 없다.
배도 부르고,이제 슬슬 호치민의 시내 야경투어를 나선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호치민 시청사.
밤낮으로 엄청남 규모의 오토바이가 거리에 넘치는데 보기에는 무질서하여 사고가 빈발할 것
같지만 교통 흐름을 지켜 보면 묘한 질서와 무언의 패턴이 있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같은 분위기다.
거리에서 스트리트 댄스 퍼포먼스도 있고,악기도 연주하고,기념품과 놀이기구 행상도 보인다.
삼삼오오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있어 여기가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인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은 호치민시 100주년 기념일이라고 한다.
경축공연에 많은 비용과 인원을 동원한 흔적이 엿 보인다.
베트남 호치민의 첫날밤이 이렇게 흘러가고 누구라도 그러 하듯이 첫날밤의 흥분은 쉽게
가라 앉지 않는다.우리 마라톤 뛰러 온 사람들 맞나? 늦은 밤 이렇게 방황하면 안 된는데~
옛날 70년대에 10시가 넘으면 "청소년들은 길에서 방황하지 말고 부모님들이 걱정하지 않게
빨리 귀가 하세요"라는 멘트를 길거리 공공 스피커로 한적이 있었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이심전심으로 아쉬움을 남기고 귀가한 우리는 다시 3차로 접어든다.
이 와중에도 이번 여행의 총무를 맡은 이준헌감사가 돈 계산하기에 여념이 없다.
베트남 돈의 환율은 대충 한국돈의 1/20이다.그러니까 베트남 돈 1만동은 한국돈 500원이다.
처음에는 환율계산에서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출국시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1L 대용량의 양주 2병이 눈 깜짝할 사이에 비워진다.
이준헌감사가 한병은 꼭 남겨 달라고 그렇게 신신당부 하였슴에도 불구하고 돈 계산 하는
사이에 악동들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쁜 사람들!
호저의 딜레마.
열대사막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밤이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의 체온을 느낄 만큼만
가까이 모여 잠을 잔다는 호저라는 동물이 있다.
호저는 몸에 박힌 가시때문에 서로 살을 맞대고 자고 싶어도 가시 때문에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서로 상처를 내지않고 온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살아가며 이거리를
"호저의 거리"라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일러 "호저의 딜레마'라고 했다.
모두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당4인방을 포함해서 수마클 회원의 상당수가 전국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의 주력을 과시한다.
사실 술이라는 것이 건강을 첫째로 하는 마라톤클럽에서는 쥐약이나 다름이 없다.
술이 마시다 보면 판단력도 흐려져서 이성에 마비가 오고,말이 많아지며,헛소리(?)도
마구 방사되지만 기분이 업되고 친밀감이 더 업 되는데서 부작용을 상쇄시키게 된다.
적어도 수마클 술4인방에게서는 지금까지 헛소리나 실수가 없이 덕담 속에서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시는 분위기다. 아니 오히려 이모든 부정적 행태를 덮어준다는 말이 더 맞다.
인간의 능력이 신비해서 주량이 엄청난데도 아직까지 몸에 큰 무리가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렇다고 술에 장사가 없다는 데 이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누구와 어떻게 술을 마시느냐가 몸에 와닿는 데미지를 상당부분 상쇄시키는 것은
자명한 것 같다.
수마클+술이라는 명제 앞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시간속에서 "호저의 거리"와 "
호저의 딜레마"에서 방황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부터는 조금은 더 호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술을 음미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체력과 회복주기를 염두에 두면서 몸과 마음이 흐트러짐 없이 곱게 나이 먹기 위해서~
살아 오면서 나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자만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혹시 나도 모르게 술자리에서 저질러진 주사나 기분나쁜 언행이 있었다면 그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사과드리고 싶다.
앞으로 호저의 거리와 호저의 딜레마를 동시에 염두에 두는 것을 약속하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