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에는 다면적인 성격이 있다' 는 말은 하나의 예술작품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러한 방법들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통해 입증된다.
이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이렇게 예술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흐의 구두 작품을 중심으로 알아보면...

<A Pair of Leather Clogs, 1889, Oil on Canvas, 32.5 X 40.5 cm ,
Van Gogh Museum, Amsterdam>
::형식주의::
형식주의적인 접근방법에는 이미지를 선, 형태, 색 등과 이들의 배열이 자아내는 미적인 효과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 접근방법을 통해 고흐의 나막식 그림을 보면, 신발이 놓인 표면이 위쪽으로 기울어져, 강한 대각선이 형성된 화면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면은 풍부한 노란색과 주황색을 띠고 있고, 배경은 연한 옥색이다.
신발 자체는 다양한 회색 톤으로 그려졌고, 신발이 드리우는 그림자에서는 회색에서 검정 그리고 녹색에 이르는 색깔들을 볼 수 있다.
그림을 통합해주는 역할을 하는 색은 노란색으로, 녹색과 주황색에 섞여 있는 색이다.
검정과 흰색 그리고 회색은 색 스펙트럼에 포함되지 않는 색들로 대조를 통해 색을 강조해준다.
신발은 타원형으로, 불규칙한 오각형 모양을 한 표면에 둘러싸여 있다. 옥색 바탕은 삼각형인데, 신발의 기울어진 각도와 나란하다.
신발의 윤곽선과 신발이 놓인 표면의 모서리가 풍성한 색을 담는 틀을 이루고 있다.
이 그림에서 고흐가 사용한 시각언어의 가장 큰 특징은 개별적인 형태 그리고 강한 붓질과 함께 화면구성에서 느껴지는 질서와 자제력을 통해, 그가 전적으로 작품에 몰입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고흐의 선에서 느껴지는 힘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사용한 밝은 색은 실외의 빛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19세기 후기인상주의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도상학::
이미지의 힘은 전달하려는 의미를 미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흐의 구두 그림처럼 이미지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형태와 의미가 서로를 강화해야 한다.
도상학은 작품의 내용과 소재의 관계를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비구상 작품보다는 구상 작품을 읽는 방법으로 주로 사용된다.
전통적으로 도상학적인 접근법을 택하는 경우에는 이미지를 뒷받침하는 문헌이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고흐의 신발 그림의 경우에는, 고흐 자신이 그 소재에 관해 말한 것 외에는 다른 문헌이 없다.
그러나 고흐의 신발을 개인적인 맥락이 아니라 좀더 광범한 맥락에 놓고 신발이 문화사,예술사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신발에 관한 도상학적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방대한 작업이 될 수 있는데, 신발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고, 전 세계에 걸쳐 신발의 미니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A Pair of Shoes, 1885, Oil on Canvas, 37.5 X 45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기호학::
기호학이 시각예술에 적용되면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주장은 좀 완화되었다.
고흐가 그린 나막신은 우리가 가진 심상이나 개념과 더 닮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고흐 그림의 요소들, 즉 개별적인 붓질들은 나막신과 닮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보다는 나막신의 일루전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그 배열이 닮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호학의 한 범주인 구조주의적 해석은 문화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인 원형(또는 구조)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한다.
이 접근 방식은 신화나 광고, 메뉴, 패션 그리고 여타의 문화적 표현들에 적용되어왔다.
그러므로 고흐의 구두는 기호학적으로 본다면, 가난과 힘든 노동 그리고 내구성 같은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이미지로 읽어야 할 것이다.
어떤 기호학자들은 예술작품 속에서의 기호를 장르와 스타일의 전개라는 관점에서 보기도 한다.
이런 경우 [나막신 한 켤레]는 19세기 정물화의 전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구두가 놓인 표면이 기울어져 있는 것은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시대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평면화를 나타내는 기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두드러진 붓질은 예술가가 사용하는 재료와 그 작업과정이 예술과 예술비평의 소재로 부상하는, 새로운 예술적인 경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구조주의에서는, 의미는 예술가(또는 저자)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문화적 체계에 의해 주어진다고 본다.
구조주의의 닫힌 체계와 대조적으로, 특히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가 주창한 후기구조주의는 해체적인 체계, 즉 구조의 개방을 지향한다.
데리다가 사용한 해체의 방법론은 질문을 하는것이며, 단어와 개념 그리고 이미지 간의 연상작용을 추적하는 것이다.
데리다는 고흐가 끈이 달린 가죽 구두를 그린 또다른 그림을 예로 들면서 미술사가 샤피로, 철학자 하이데거와 학술적인 논쟁을 벌인다.
구두의 본질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구두는 도시인의 것일까, 아니면 농부의 것일까?
그리고 샤피로와 하이데거가 주장했던 대로, 실제로 '한 켤레'였을까? 고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림을 '구두 두 짝'이라고 이름 붙였으니 말이다.
::전기와 자서전::
예술작품을 전기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기호학과는 반대로 저자/예술가가 그들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고흐의 생애에 관해서는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그가 비교적 근래의 예술가일 뿐 아니라 동생 테오에게 자신의 삶과 예술에 관한 편지를 꾸준히 썼기 때문이다.
이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고흐가 농부와 노동자들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흐는 편지에서 역시 농부들을 즐겨 그렸던 밀레의 말을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나막신을 신고 있으니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이다.
" 고흐가 자신을 농부와 동일시한 것은, 바사리가 잘 보여준 예술가의 전기와 자서전에서의 신화 만들기 관습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즉 바사리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후에 부자나 귀족후원자에게 발탁되어 명성을 얻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고흐는 그의 생전에는 명성을 얻지 못했고, 부자는 고사하고 어떤 후원자에게도 인정을 받거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가 자신을 '농부화가'라고 불리었을 때는, 그 자신이 농부라는 것과 농부를 그리는 화가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선언하면서, 이미 '예술가 신화 만들기' 전통에 합류한 것이다.
고흐는 농부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으며 자신도 성직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였다.
그는 네덜란드어뿐 아니라 영어, 불어, 독어에 능통하였으며 광범위한 독서를 했다.
또한 높은 교양을 쌓았으며, 영국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또한 헤이그, 벨기에, 파리에서 그의 삼촌이 하던 화상일을 한동안 돕기도 하였다.
게다가 미술사를 진지하게 공부했고, 루브르에 걸린 거장들의 작품과 일본 목판화를 연구했으며, 이들을 꾸준히 모사하였다.
고흐는 자신이 태어난 네덜란드에서 농부들의 그림을 많이 그리긴 했어도, 프랑스에 와서 비로소 구두 그림을 그렸다.
::정신분석::
화가 고흐의 경우만큼 많은 심리학적 연구가 발표된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그의 구두 그림은 화상이었던 동생 테오와 쌍둥이이기를 바라는 그의 원망을 반영하는 것이라 해석되어 왔다.
그 이유는 고흐가 파리에 있는 테오의 아파트로 이사한 후에야 비로소 구두 정물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 후 짧은 일생 동안 고흐는 구두라는 주제를 천착한다.
아를에서 프랑스 화가 고갱과 잠시 공동생활을 하면서 이 주제는 다시 떠오르게 된다.
그의 동생과 그랬던 것처럼 이 경우에도, 고흐는 다른 남자와 일종의 쌍둥이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굳은 친분을 맺으려 했던 것이다.
동시에 고흐는 한 여자와도 정상적인 관계를 맺으려, 즉 한 쌍을 만들려 무척 노력하였다.
그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는데, 항상 이룰 수 없는 상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즉 짝사랑을 하거나 심지어 창녀를 변화시키려고 하였다.
정신분석학자라면 고흐의 개인적인 선택이 갖는 더 깊은 의미를 알고 싶어할 것이고, 여기서 우리는 전기적인 정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고흐는 형이 유산되고 정확히 일 년 후에 태어났다.
유산된 형의 이름 역시 빈센트였다.
어머니는 첫번째 빈센트의 죽음으로 인한 우울증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정서적으로 냉담하였다.
그의 방에 있는 창문 밖으로는 죽은 형의 무덤이 보였고, 이로 인해 고흐는 생존자로서의 죄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동생 테오는 4년이 지나서야 태어났는데, 그동안 이미 빈센트는 우울하고 냉정한 어머니와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목사였던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외상을 입은 상태였다.
고흐가 당른 남자와 쌍둥이 같은 관계를 맺고자 했던 것은,
죽은 빈센트를 되살리려는 바람과 어린 시절 테오와 나누었던 형제애를 지속하고픈 열망, 그리고 자신을 격려해주는 다정한 아버지를 갖고 싶은 희망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테오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이런 상황에서 빈센트가 원했던 모든 관심을 쏟아붓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테오는 평생 지속적으로 그의 형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고흐의 구두는 관계를 맺기 위한 그의 평생에 걸친 노력과 관련한 두 가지 주제가 구체화된 것이다.
한편으로 구두 한 켤레는 똑같은 두 개의 것으로, 이는 죽은 형, 살아 있는 동생, 동료 예술가, 동일시할 아버지의 형태를 띤, 또다른 자아를 향한 가시적인 열망의 표현이다.
다른 한편으로 구두는 한 쌍을 이루는 것이므로, 이는 여자와 결합하려는 그의 반복된 노력을 반영한다.
여기에 예시된 고흐의 구두는 비어 있다.
여기에는 어떤 이야기도 없고, 아무도 그 구두를 신고 있지 않다. 구두가 비어 있다는 사실은 고흐의 외로움과 함께, 다른 이를 향한 감정의 부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두는 또한 사람들과의 연결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이는 고흐의 관계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고흐의 구두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이미지에 접근하는 정신분석학적 방법의 특징을 알 수 있다.
무의식에서는 꿈과 달리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에, 무의식의 표현은 시간적인 연속성 밖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결과 정신분석적 방법론은 역사적인 서사성뿐 아니라 소재에도 관심을 가지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이 언제나 역동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