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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이론(燃燒理論)
마당 한 구석에 조그만 소각로를 만들었다.
농막을 지을 때 쓰다 남은 씨멘트 블록 몇 장을 이리저리 맞추면서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자투리 철근토막 몇 개를 가로세로 석쇠처럼 얹어서, 밑으로 재가 모이면 긁어내기도 하고 연소 중에는 충분한 공기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낸 다음, 그 위로 다시 불록을 쌓아가며 한쪽에 아궁이를 내었다.
블록과 블록 사이는 진흙을 채워서 틈새를 막아 균형을 잡는 동시에 밖으로 전도되는 열을 차단하도록 하고, 아궁이를 낸 위치로부터 몇 단을 더 올려서 내부의 연소공간을 충분하게 높인 다음, 상판을 덮고 그 위에도 상당량의 진흙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연통을 세우고보니 내가 보아도 그 이상한 모양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소각로가 완성되었다.
내부공간을 키운 것은 연소할 때에 발생하는 열을 가급적 소각로 안에 더 머물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 실내온도가 높아질수록 연소(燃燒)는 더 맹렬 하게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삼십대 초반까지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임시직 일자리에서 고용과 해고를 거듭 겪어오다가 비로소 안정된 직장으로 국내 유수에 정유공장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우리 신입사원들의 교실에서 안전과목을 강의하던 강사 M(明)은 연소와 폭발에 대하여 특별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열강 하였다.
생산 현장 어디를 막론하고 가연성 물질을 취급하는 곳이니만큼 화재와 폭발위험에 대한 교육은 너무도 당연하거니와, 불에 대한 M의 식견은 놀라운 수준이어서 안전부서의 평사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전문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는 명 강의를 베풀었다.
물질에 따른 폭발한계와 연소한계를 배우는 단계에서 그는 그 현상을 사람들의 경우를 끌어들여 비교하기를 즐겨 했었는데, 즉 젊은 연인들의 마찰열에 의한 발화와 인구의 팽창, 전제통치의 압력과 민중봉기폭발 등, 비교하기에 너무도 가당치 않은 사안들로 예를 들면서도 여전히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더 그를 돋보이게 하여서 우리들은 그 입심 좋은 M강사를 명강사(名講師)라고 부르며 아무도 조는 사람 없이 경청하였다.
무릇 인간사회의 모든 사건들은 자연과학적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연소와 폭발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 그의 변함없는 지론 이었다.
얼마 후 M과의 친분이 쌓이고 가끔씩 술자리를 갖게 되면서도 그와 우리들의 대화 중에는 자연스럽게 불에 대한 화제가 술잔에 담겨서 오고갔으며, 자리가 자리이니 만큼 그 내용 또한 남녀 간에 사건을 불과 폭발에 빗대어서 좌중에 폭소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명강사는 주량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술상에 매너도 좋아서 자연스럽게 퇴근길에 점화 원(Ignition source)으로 자리 잡고 그를 따르는 추종인원들 중 그날에 사정에 따라서 선발된 몇몇 제자들을 앞세우고 대폿집이 늘어선 골목으로 들어서서 퇴근길에 과외수업을 진행하곤 하였다.
길고 지루한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고 현장 교대근무 팀에 편성된 우리들은 대부분 예상했던 대로 우선 단순반복적인 일에 투입되었다.
담당지역을 세세하게 패트롤(Patrol) 하면서 장치의 소음, 진동, 누설(漏泄) 유무 등 기본적인 점검을 먼저 한 다음, 각 중점관리 포인트의 시간대별 기록과 시료채취, 그때그때 선임자들의 지시를 받는 것 등이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여러 가열로(Heater)들의 불꽃을 관찰하는 일 이었다.
명강사(名講師) 그의 말 대로, 가열로의 감시창을 통하여 불꽃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그때그때 최적의 연소상태 여부를 판단하는 동안, 우리들은 불을 다루는 사람의 기본적인 임무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모를 어떤 신비, 그도 아니면 어떤 생명체와의 마주 함 이랄까, 여하튼 이제껏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오직 불꽃에서만 다가오는 독특한 감흥 같은 것을 느끼곤 하게 되어서, 점검 그 목적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한 번씩 감시창을 열고 들여다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가열로 안에 여러 개의 버너가 타고 있을 때, 각각에 불꽃 모양을 하나씩 점검하며 겉불꽃, 속불꽃, 화심(火心)의 색상과 밝기를 보아서 가열로 전체의 상황을 간파하는 것은, 그 미세한 이상 징후를 육감으로 느끼면서부터 시작 되는데, 이런 것은 이론교육이나 매뉴얼의 설명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불꽃과의 오랜 친교로만 터득되는 것이었다.
1차 공기와 2차공기의 공급 상태, 분무된 연료유의 무화(霧化)상태, 너무 작거나 너무 큰 불꽃, 가열로 내외의 기압의 차이를 결정하는 스택(Stack) 댐퍼의 개도(開度)등, 모든 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하여 조치한 다음, 안정되고 좋은 불꽃으로 만들고 나서 느끼는 자부심은 담당자들만의 것이기도 하였다.
수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귀촌(歸村)을 생각할 때에, 내가 눈앞에 그려보던 것은 흙벽돌로 지은 집에 큼직한 아궁이를 내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군불을 때서 방을 덥히고 살아보는 것이었다.
설핏 설핏 눈발이 스치는 어스름 저녁, 은근한 훈기와 아릿한 연기가 흐르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불꽃을 바라보며, 옆에 앉은 사람과 담배를 나누어 피우거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떠 올려보곤 했었는데, 그런 나의 계획은 뜻밖에 닥친 긴 병원생활로 변경되었고, 결국 강판 사이에 단열재를 넣은 조립식 건축패널로 조그맣게 지은 건물에 온수보일러를 돌려서 바닥을 덥혀주는 농막을 짓게 되고 말았다.
수술 후 남겨진 장애로 노동력의 대부분을 상실하였고, 빠듯하게 된 귀농자금 등의 현실을 생각하여 결정된 결과이다.
차츰 건강상태가 회복되면서 마당가를 돌아가며 이런저런 나무들을 서둘러 심고, 조그만 과수원에도 공을 들였더니, 해마다 겨울철 가지치기 작업에서 나오는 사과나무가지들과 집근처에 낙엽만 긁어 들여도 땔감걱정은 없게 되었으나, 막상 그것들을 지펴서 군불을 땔 수 있는 허름한 부엌과 아궁이가 없었다.
겨울을 앞두고 보일러에 석유를 채울 때 마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땔감들을 방치하면서 석유를 사다가 부어야하는 것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그보다는 난방을 핑계로 아궁이 앞에 앉아서 군불을 때는 즐거움을 잃게 된 것이 더 속상하는 일이었다.
획기적인 방향전환을 궁리하다가 나온 답이 소각로(燒却爐)제작이었던 것이다.
경제성이 전무하며 마당 한쪽에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끈질기게 반대 해 오던 사람이 잠시 집을 비운사이에, 그동안 눈여겨보아두었던 재료들을 찾아내서 후딱 만들어 놓고 보니, 은근히 뒷감당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지된 장난을 할 때와 같이 짜릿한 즐거움에 혼자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소각로제작에 이렇게 무모하게 대드는 이유 중에는, 이참에 나도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다는 결기를 스스로에게 확인도 할 겸, 세상을 어떻게 경제성만 찾아가며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나만의 개똥철학도 내재되어 있어서 처음부터 웬만한 비난 정도는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던 터였다.
연소(燃燒)의 일반적 정의는, 어떤 가연성물질이 기화되어 공기 중에 산소와 연소범위 조건으로 혼합 되고, 점화 원(열)이 있을 때, 급격하게 산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연성물질과, 공기(산소), 점화원(열) 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를 제거하는 것이 그 불을 꺼지게 하는 소화(消火)방법이기도한 것이다.
가연성 물질은 산소와의 혼합비율에 따라서 폭발상태와 연소상태로 구분되는데, 그 비율은 물질과 외부조건에 따라서 다 다르다.
물질은 연소되면서 열과 빛을 발생함과 동시에 수많은 종류의 복잡한 기체상태 또는 고체상태의 찌꺼기들을 남기게 된다.
연소(燃燒)가 어떤 물질이 산화되는 경우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데 비하여, 소각(燒却)이란 어떤 물건이나 물질을 태워서 없애버리기 위한 특정 목적의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무엇이 불에 탄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물상의 변화이지, 결코 완전한 소멸은 아니기 때문에, 실상 소각의 목적은 늘 불완전한 상태로 이루어지게 마련이고, 따라서 일찍이 명강사(名講師)의 지론대로, 한번 있었던 사건이 변형되어 눈에 안보이게 할 수는 있어도 결코 없었던 일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없애야 할 물건과 사건들을 만들고, 다시 태워 없애기를 반복하면서 그 일에 매달려서 바쁘게들 살고 있다.
불에 대한 막연한 애착인가.
어찌되었든 나는 일단 소각로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때때로 맹목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에 홀리듯 열중했다가 얼마가 지나면서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하여 그전에 일을 후회하고 자세를 바로 잡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일들은 대개가 개인적인 비밀로 치부되어서 세상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만든 이 소각로는, 점점 축적되는 열을 주체할 수 있을만큼 전문적인 자재로 구성된 것도 아니므로, 연통이 빨갛게 달아오르거나 하는 등, 위험한 상태가 될 수도 있음으로 일정시간 연소가 진행된 다음에는 일단 불을 끄고, 서서히 식힌 다음 다시 태우는 등, 운용상의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어차피 태워야 할 것이라면 가급적 맹렬하게 태우는 것이 좋을 것 이라는 감상적인 생각은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 무책임한 발상이다.
우발적실수로 발생된 불이, 터무니없이 큰 화재나 폭발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들은 수없이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한 순간에 폭발적인 정열을 이성적으로 제어하지 못하고 어떤 대상에 몸을 던졌다가, 한평생을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우리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불은 제어할 수 있을 때에 요긴한 것이지 무조건 맹렬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며 사람들의 정열도 또한 그러하다.
불장난과 불구경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유난히 어려서부터 아궁이 앞에 앉아 불 때는 것을 좋아 하였다.
부엌에서는 언제나 어머니 냄새가 나고, 어머니에게서는 언제나 부엌 냄새가 났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내 곁으로 어머니가 지나다니시면서, 김이 오르는 국솥을 열어 보시거나 부뚜막에 내려앉은 재티를 행주로 닦아내시거나 하면, 그 따뜻함과 어머니 냄새와 엷은 연기가 감도는 몽롱한 안도감이 가득하던 부엌이 지금껏 유년의 향수로 남아있다.
만들기는 어찌어찌 만들었는데, 이제 이 소각로의 성능을 시험해서 그 결과가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되어야 처음부터 이 계획을 마땅치 않아 하던 사람들의 불평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궁이에 땔감을 넣고 불을 붙이면 연기는 연통으로 빠져 나가고, 재는 아래로 떨어질 것인데 ,무슨 성능 시험이 필요 하겠는가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같은 땔감을 넣었어도 연소의 상태는 아궁이의 크기, 내부 구조, 연통의 방향과 높이, 날씨, 불을 지피는 방법 등에 따라서 다 다르게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시절 같은 반에 고만고만하던 친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삶을 불 태워본 결과는 극적으로 연소현상을 연상하게 한다.
어떤 삶이 더 소중했다거나 하는 판단은 미루어두더라도, 같은 땔감이지만 연소과정에 따라서 빛과 열을 발생하는 정도가 다르게 된다는 것만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과수원 한 모퉁이에 쌓아 두었던 지난겨울 전지 목 두어 단을 가져다 놓고, 자못 엄숙한 심정으로 최초에 화입식(火入式) 준비를 했다.
소각로 앞에는 사과상자를 엎어 놓고 앉아서 연소현상을 관찰 할 수 있도록 하고, 가랑잎 대신에 신문지 한 장과 라이터 등도 준비 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신문지 한 장을 절반으로 나누어서 쏘시개로 썼을 뿐인데, 철근석쇠 위에 얹힌 마른가지들은 벌써 불이 붙었고, 연통으로는 하얀 연기가 빠르게 나가고 있었다.
석쇠 아래에서 들어가는 공기가 너무도 충분한 나머지 아궁이 안에 불꽃은 밝은 노란색으로 타고 있었다.
이는 과잉공기에 작용이 분명하다.
아래로 떨어지는 재를 조금 긁어 내 보니, 완전연소 후에 남기는 하얀 색이고 그 양이 매우 적다.
나의 소각로는 완벽한 성능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지금부터가 더 문제이다.
처음부터 무엇을 태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고한 결심보다는, 그저 막연하게 무엇인가 지워 없애고 싶다는 생각에 매달려서 스스로를 압박 해 왔을 뿐이니 지금 당장 내가 소각로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은 마른나무 가지 뿐 이었다.
결국 또 한 번 쓸데없는 일을 저질러 놓은 셈인가.
우선은 며칠째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경찰서장의 과태료독촉장이 눈에 거슬리기는 한다.
위반 장소-안동에서 영주방향 속도위반13Km,
무엇이 급해서 속도를 위반 했었을까
태우고 싶은 것은 과태료 고지서 뿐 아니라 유형무형으로 무수한 것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이것이야 라고 집어지는 것은 없다.
그런 것 들을 소각로에 집어넣어 보았자 태우기는 했어도 결코 완전하게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우고 싶은 것들과는 반대로 사람들은 무엇을 남기거나 간직하고 싶어 하기도 한 다
산에 올라 바위에 이름을 새기고,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오는 등,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마도 원시 때부터의 영역표시를 하던 동물적 본능이 아닐까
아내는 결혼 후 부터 내가 직장을 옮길 때 마다 나의 발령장과 급여명세서를 모아두는 버릇이 있었다.
60년대 중반부터 나의 아내가 된 그녀의 장롱안 깊은 설합 속에는, (일당370원을 급함. OO화학주식회사 사장 OOO). 에서 시작하여, (정기승급, 일당410원을 급함,) (5급 승급, 일당550원을 급함,) 등으로 계속된 서기2000년까지의 긴 기간 중에 급여명세서들이 빠짐없이 차곡차곡 모여있다.
저 꺼림직 한 흔적들이 언젠가는 결국 사정없이 나의 무능력하고 나태했던 지난날들을 낱낱이 드러내고야 말 것임이 분명하지만, 그 불안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나는 그것들을 지금껏 태워버리지 못하였다.
소각로에 집어던지더라도 있었던 역사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연소이론이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 될 것이거니와 그 낡은 종이쪽들이 나에게는 무능했던 과거의 성적표들이지만, 반대로 아내에게는 강요당한 빈곤과 고된 역경을 견디어내고 승리한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랗게 빛이 바랜 고문서들을 꺼내 보이면서, 착잡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프린 나에게, 아내는 나중에 자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모아두는 것이라고 자신 넘치는 표정으로 말 하곤 하였다.
그녀의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기는 하지만 이제 와서 어찌 할 수 있겠는가.
반백년을 넘게 함께 해온 아내와의 관계에서 조차 이러하거늘, 그밖에 세상 여기저기 다니며 남겨진 부끄러운 흔적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명강사가 보고싶어 진다
202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