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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시는 하나님(시 139:1-10)
2022. 8.28. 주일 설교
작성자:권혁길 목사(엘림수양관교회)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1-10)
본문 1절에“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나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것이 정말 다행한 일이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 이십니다. 나를 낳으신 부모님도 나를 다 알지 못합니다.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내와 남편도 나를 다 알지 못합니다. 비록 내가 낳은 자식도 부모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마음이 허전하고 우울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본문 1절에『[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살펴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펴보신다는 말씀이 부담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단점만을 살피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삶을 애정으로 보살피시면서 나를 돕는다는 사실입니다.
1. 나의 앉고 일어섬과 생각을 아십니다.
본문 2절에,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동작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 쉬기 위해서 앉는 것도 아시고 일하기 위해 일어서는 것도 아십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원문에서 아시오며 [d'y:(야다) 알다, 이해하다. 관계하다, 관찰하다, 성적 관계를 갖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다’는 다른 사람과 인격적이며 친숙한 관계를 갖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아신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출 33:12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이란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름만으로도 아신 것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 나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절에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생각의 원문이['r(레아) 의사, 목적, 생각, 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나의 의사나 목적이나 생각까지도 다 아십니다. 생각은 원래 남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생각하기 전에도, 또는 생각한 지가 오래되어 나는 잊어버렸을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생각을 아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생각만 했는데도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져 있는 경험을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을 아시고 나의 생각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좋은 생각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엡 3: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한 것을 아시고 이루어 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생각한 그 이상으로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2. 나의 모든 길과 행위를 아십니다.
본문 3절에,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라고 하셨습니다.
* 나의 모든 길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걷는 모든 발자국과 모든 옳은 행보와 또는 곁길로 잘 못 가는 것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잘못된 길을 갈 때 그 길을 막기도 하십니다. 또는 어느 길을 가야 할지 막막할 때는 내가 가야 할 길로 안내하시기도 하십니다.
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길을 걷는지 또는 누구와 함께 그 길을 걷는지 어떤 방법으로 걷는지를 다 보고 계시며 다 알고 계십니다.
욥 23:10절에,『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
* 우리의 행위를 다 아십니다.
본문에 보면,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라고 하셨습니다.
잠 16:2절에도,『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욥 11:11절에,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행위를 다 보실 뿐만 아니라 행위에 따라 보응하십니다.
욥 34:11절에,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옳지 못한 행위는 하룻밤 사이에도 뒤집어엎어 흩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욥 34:25절에,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엎어 흩으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반면에,『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고 롬 2:1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요삼 1:11절에도,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으며, 계 20:12절에는,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정확합니다. 세상에서는 불공정한 재판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공정한 심판이 없습니다.
계 22: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3. 나의 하는 모든 말을 듣고 아십니다.
본문 4절에,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혀로 하는 말을 다 듣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민 14:27-28절에,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원망하는 말도 다 듣고 계신다는 것이며, 또 우리가 말한 것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행 10:31절에,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사 38:3-5절에,『[3]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4]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할 때,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의 눈물까지도 보셨으며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하여 주셨습니다.
욘 2:9절에는,『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는 말씀과 같이 감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요나를 물고기 뱃 속에서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엡 5: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신 이유는 사 57:19절에,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는 말씀대로 우리 입술의 말을 들으시고 그것을 열매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4. 나의 약함을 아시고 나를 도우십니다.
본문 10절에,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안수하시며 나를 도우십니다.
본문 5절에,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안수하시며 도와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고후 4:8절 말씀에,『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의 대적이 사방에서 우리를 우겨 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적으로부터 우겨 싸임을 당하지 않도록 앞뒤를 둘러싸고 도와주시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내가 어디를 가도 그곳에 계시면서 나를 도우십니다.
본문 8절에,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장소를 초월하여 어디서든지 나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곳 거기가 어디든 간에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무엇을 하든지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주의 손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본문 10절에,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손으로 나를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오른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른손은 능력의 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창조주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기적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전능하신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축복의 손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손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이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늘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가장 잘 아십니다.
1. 나의 앉고 일어섬과 생각을 아십니다.
2. 나의 모든 길과 행위를 아십니다.
3. 나의 하는 모든 말을 듣고 아십니다.
4. 나의 약함을 아시고 나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에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도 연약한 나를 잘 아시기 때문에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복을 주시며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려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내가 구원을 받았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령님도 나를 잘 아시기 때문에 지금도 내 안에 임재하여 계시면서 나를 돕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예수님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