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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유명한 애국시인으로 전국시기 초나라에 굴원(屈原)이 있고 당나라에 두보(杜甫)가 있다면
남송(南宋)에는 육유(陸遊, 1125~1210)가 있다. 그의 시에는 나라를 잃은 비분강개와 우국우민의 감정이
역력히 깃들어 있다. 육유는 죽을 때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아 현존하는 시만 9300여 수에 달해
중국 고대 문학사상 최다작의 시인으로 꼽히며, 뛰어난 문학적 성취로 하여 ‘작은 이백’으로 불린다.
또한 그는 ‘청천벽력’이란 말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육유와 그의 첫 부인 당완(唐婉)의 애틋한 이야기를 안다면 육유를
더욱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고부간 불화로 인한 생이별
20세 때 육유는 지혜롭고 시문에 능한데다가 얼굴까지 어여쁜 사촌여동생 당완과 결혼했다.
죽마고우로 자란 그들의 금슬은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낼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육유의 어머니는
당완이 밖으로 나다니며 남자들과 학문을 토론하는 것을 싫어해 틈만 나면 트집을 잡아 며느리를 궁지로
몰아넣었으며, 후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아들에게 오늘날의 이혼과 비슷한 쓔치(休妻)를
하도록 강요했다. 당완과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육유는 아내와 함께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으며,
친척들과 친구들도 번갈아 타일렀지만 독한 어머니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효’와 ‘사랑’의 갈림길에서
육유는 결국 ‘효’를 택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통탄하며 당완과 헤어졌다.
2년 후, 어머니의 주선으로 육유는 왕씨 성의 여자와 재혼하였고, 당완도 조사정(趙士程)이란 남자에게 시집갔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정은 오히려 점점 더해만 갔다. 시간이 흘러 10년 후인 1155년의
어느 화창한 봄날, 소흥(紹興) 근처의 심원(沈園)에 놀러간 육유는 우연히 당완과 조사정 부부를 만났다.
둘의 눈이 허공에서 서로 마주치는 순간, 마음속 깊은 구석에 숨겼던 지난 기억들이 다시 아련하게 떠올랐다.
당완은 남편에게 사촌오라버니라고 소개하고 사람을 시켜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했다. 조용히 함께 술잔을
부딪치는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마음은 찢어지듯 아팠다.
희비가 교차된 짧은 해후를 마치고 조사정과 함께 떠나는 당완의 뒷모습을 보며 육유는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갑자기 붓을 들어 벽면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것이 바로 유명한 <채두봉(釵頭鳳)>이란 사(詞)이다. 그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이 사는 곧바로 주위에 알려졌으며,
이를 전해들은 당완은 눈물로 얼룩진 답장을 적어 그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 후 육유는 금나라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는데 모든 정열을 바쳤으며, 직접 전장에서 적을 물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당완은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려 시름시름 앓다가 이듬해에 죽고 말았다.
1200년, 또 한 해의 봄이 시작될 무렵, 75세 고령의 육유는 다시 한번 심원을 찾았다. 심원은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이지만 그날 적었던 시는 이미 희미해져 분별하기 힘들었고, 사랑하는 아내는 옆에 없었다.
당시에 둘이 만났던 작은 다리에까지 다다르자 육유는 솟구치는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어 평생을 함께
한 붓을 날려 <심원2수(沈園二首)>를 지었다. 절친한 붓과 시를 통해서 평생 간직한 철석 같은 고귀하고
순결한 사랑을 절절히 그려냈다.
사랑했지만 함께 하지 못한 육유와 당완의 이야기는 그 후 세세대대로 전해 내려오면서 얼마나 많은 후
세사람들을 감동시켰는지 모른다. 오늘도 그곳에 가면 훗날 돌에 새겨 넣은 세 수의 시를 볼 수 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혼백을 기리고, 또 영원불멸의 사랑을 내려주기를 빈다./상해경제
채두봉(釵頭鳳) 1
/ 육유陸游
紅酉禾手,黃呻酒 ,滿城春色宮牆柳。
홍유화수, 황신주 , 만성춘색궁장류
東風惡,歡情薄。一懷愁?,幾年離索。
동풍악 환정박 일회추서 기년리색
錯!錯!錯!
착 착 착
春如舊,人空瘦,淚痕紅?鮫?透。(痕紅 鮫靑透 )
춘여구 인공수 (흔홍 교청투)
桃花落,閒池閣。山盟雖在,錦書難托。
도화락 한지각 산맹수재 금서난탁
莫!莫!莫!
막 막 막
고운 손 살포시 들어
술잔을 권할 적에
궁 담 안 버들가지
봄빛이 무르익었었지.
저 몹쓸 봄바람
좋은 인연 빼앗아 가서.
쓸쓸한 이 마음
숨겨온 지 몇 해였나?
틀렸어, 틀렸어, 틀려 버렸지,
봄빛은 예와 같은데
사람은 부질없이 늙어
진한, 눈물 흔적
손수건에 배어났네.
꽃이 진 한가로운 연 못 가에
태산 같이 굳은 약속
편지도 전할 수 없어졌지.
생각말자, 생각 말자, 생각을 말자꾸나.
채두봉(釵頭鳳) 2
/ 당완唐婉
世情薄,人情惡,雨送黃昏花易落。
세정박, 인정악, 우송황혼화이락
曉風乾,淚痕殘。欲箋心事,獨語斜?。
효풍간 루흔잔 욕전심사 독어사란
難!難!難!
난 난 난
人成各,今非昨,病魂曾似秋千索。
인성각 금비작 병혼장사추천색
角聲寒,夜?珊。?人尋問(酷人尋問),咽淚?歡。
각성한 야안산 (혹인심문) 인루장환
瞞!瞞!瞞!
만 만 만
세상도 야박하고
인정도 사나워서
황혼에 뿌린 빗방울
꽃잎을 떨어뜨렸지
밤새 흘린 눈물 흔적
새벽바람에 말리고
내 마음 호소하려
난간에 기대었지.
어려워, 어려워, 너무너무 어려워.
우리는 헤어져
그 옛날은 멀어졌으나
그리워하는 이 마음
그네 줄처럼 오락가락.
수졸(戍卒)들의 호각소리에
밤은 깊어 가는데
내 마음 알려 질까봐
눈물을 삼키네.
속였어, 속였어, 내 마음까지 속였어.
육유(陸游)와 당완(唐婉)의 애틋한 사랑의 시
(陸游, 釵頭鳳 육유의 채두봉-비녀머리의 봉황)
陸游及唐婉 情斷沈園----陸游之釵頭鳳
南宋著名愛國詩人陸游,一生遭受了巨大的波折,他不但仕途坎?,而且愛情生活也?不幸。 宋高宗紹興十四年,二十歲的陸游和表妹唐婉結?伴侶
남송저명한 애국시인 육유의 일생은 파란의 연속이었다. 육유의 아내는 원래 외사촌 누이동생인 당완(唐婉)이었다.
兩人從小?梅竹馬,婚後相敬如賓。
두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낸 청매죽마였기에 결혼후에도 여전히 서로를 존중하며 다정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然而,陸游的母親不喜歡唐婉,以至最後發展到?迫陸游和?離婚。
그러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몹시 미워해서 결국 강제로 이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陸游和唐婉的感情?深,不願分離,他一次又一次地向母親懇求,都遭到了母親的責罵。
두 사람의 애정은 매우 깊었다. 재삼재사 모친에게 간구하였으나 모친으로부터 책망만 받았을 뿐이었다.
陸游迫於母命,萬般無奈,便與唐婉忍痛分離。
모친의 명에 따르지 않을 수 없어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었다.
後來,陸游依母親的心意,?娶王氏?妻,唐婉也迫於父命嫁給同郡的趙士程。
후에 당완은 개가하게 되고 육유도 다시 처를 맞이하였다.
這一對年輕人的美滿婚姻就這樣被?散了。
그리하여 그렇게도 서로를 사랑하던 부부는 헤어지게 된 것이다.
十年後的一個春天,陸游滿懷憂鬱的心情獨自一人漫遊山陰城沈家花園。
그로부터 10년후(1156년) 봄, 육유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심원(山陰城에 있는 沈家花園, 沈園)에 심란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져 유람하였다.
正當他獨坐獨?,借酒?愁之時,突然他意外地看見了唐婉及其改嫁後的丈夫趙士程。
홀로 심원에 독좌하여 술을 들게 되었다. 그러던중에 그곳에 유람온 조사정(趙士程)에게 개가한 당완을 만나게되었다.
盡管這時他已與唐婉分離多年,但是內心裡對唐婉的感情?沒有完全擺脫。
당완과 헤어진지 벌써 십년...두 사람은 완전하게 서로를 잊지는 못하였던 모양이었다.
他想到,過去唐婉是自己的愛妻,而今已屬他人,好像禁宮中的楊柳,可望而不可及。
당완은 육유를 정성껏 대접하였으나 서로의 마음은 무척 아프기만 하였다. 과거엔 지극히 사랑한 지아비였으며 지어미였으나 이제는 서로 타인에게 매인 신세가 아닌가!
想到這裡,悲痛之情頓時湧上心頭,他放下酒杯,正要抽身離去。
비통한 마음에 술만 들이키고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不料這時唐婉徵得趙士程的同意,給他送來一杯酒,陸游看到唐婉這一?動,體會到了?的深情,兩行熱淚?然而下,一揚頭喝下了唐婉送來的這杯苦酒。
당완의 남편 조사정의 동의를 얻은 그녀는 특별히 사람을 보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송별주를 나누어 마시고 헤어졌다고 한다.
然後在粉牆之上奮筆題下《釵頭鳳》這首千古?唱:이 시는 그 당시 육유가 심원의 담장에 써놓은 것이라고 한다.
紅?手 黃藤酒 滿城春色宮牆柳
東風惡 歡情薄 一懷愁? 幾年離索
錯!錯!錯!
春如舊 人空瘦 淚痕紅?鮫?透
桃花落 閑池閣
山盟雖在 錦書難託
莫!莫!莫!
陸游在這首詞裡抒發的是愛情遭受?殘後的傷感、內?和對唐婉的深情愛慕,以及對他母親棒打鴛鴦的不滿情?。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감성이 풍부한 시인육유의 눈에 비친 모습은 참담하기만 하였다. 술 몇 잔에 헤어지던 날의 뼈아픈 기억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陸游題詞之後,又深情地望了唐婉一眼,便?然而去。陸游走後,唐婉孤零零地站在那裡,將這首《釵頭鳳》詞從頭至尾反覆看了幾遍,?再也控制不住自己的感情,便失聲痛哭起來。回到家中,?愁怨難解,於是也和了一首《釵頭鳳》詞:
혼례를 치루면서 백년해로를 맹세하던 기억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데, 지금은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편지 한통조차 주고받을 수 없었다. 이에 육유는 "에이! 말아야지, 말아야지! 옛 생각을 떠올려서 어쩌자는 말인가?" 라며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는 사패이다. 이 작품에 담긴 진실이 너무나도 애닳고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었다한다.
世情惡 人情薄 雨送黃昏花易落
曉風乾 淚痕殘 欲箋心事 獨倚斜欄
難!難!難!
人成個 今非昨 病魂常似秋千索
角聲寒 夜?珊 ?人詢問 咽淚裝歡
瞞!瞞!瞞!
唐婉不久便鬱悶成病而死。 陸游得知唐婉的死訊,痛不欲生。?了抒發自己內心的隱痛,他後來曾多次來到沈園題詞懷念唐婉。--《陸游, 釵頭鳳》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녀는 육유와 헤어진 후에 이 시를 전해읽고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겪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나 깊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녀의 불행은 중세 봉건시대의 잔혹성을 반영한다 하겠다...후에 40여년이 흘러 일흔 여섯의 나이가 된 육유는 다시 심원을 찾았는데, 그러나 예전의 심원이 아니었다. 벽에 써놓은 글도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당완의 모습은 노인이된 마음속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이에 육유는 다시 시를 지어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沈園(一)
夢斷香銷四十年,沈園柳老不飛棉。
此身行作稽上土,猶弔遺?一泫然。
꿈같은 나날 끊기고 향기 사라진지 사십년
심원의 버들도 늙었는지 버들솜도 날지 않는구나
이 내몸 계산의 흙이 되어도
그녀의 남은 자취 조문하며 마음껏 슬퍼하리라!
* 해인풍수 인용
비녀머리 봉황(釵頭鳳)채두봉
陸遊(육유).1125~1210.남송때 시인.
당완에게 육유
紅酥手 黃藤酒 그대의 고운 손 내게 황등주를 따라 줄때
홍소수 황등주 酥:연유소(수)
滿城春色宮牆柳. 성 안엔 봄빛 가득하고 버들잎 늘어졌지.
만성춘색궁장류
東風惡 歡情薄 동쪽바람 사나워 우리의 인연 끝났으나.
동풍악환정박
一懷愁緖,幾年離索. 그리움에 사무친 마음 몇년을 보냈던가.
일회수서 기년이색
錯 錯 錯 ! 모두가 다 내 잘못이었네....!
錯:어긋날 착.
春如舊 人空瘦 봄은 예나 같건만.사람은 덧없이 여위었구나.
춘여구 인공수
淚痕紅浥鮫綃透 연지 묻은 붉은 손수건 눈물에 졎어 들고
루흔홍읍교초투
浥:젖을 읍,흐를 압.綃:생사 초..透:사무칠투
桃花落 閑池閣 복숭아꽃 스러진 한적한 연못 누각에서
도화락 한지각
山盟雖在, 錦書難託. 산을두고 맹세한 비단글씨 어이 지키리
산맹수재, 금서난탁
육유(陸游)와 당완(唐婉)의 애틋한 사랑의 시. 송대(宋代)의 시인 육유(陸游) 스스로 문집에 담아
후세에 남긴 시는 대략 9,000여 수이지만 2만여 수의 시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육유(陸游)는 스무 살 때 사촌누이인 당완(唐婉)과 결혼했다. 육유(陸游)의 어머니는 금슬이
너무 좋은 아들 부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더니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육유(陸游)의 어머니는 이혼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관습상 자식이 부모의 영을 거역할 수는 없었던 시대라
이혼을 하긴 했지만 육유(陸游)는 당완을 이웃 마을로 몰래 피신시키고 간간이 가서 사랑을 나누곤 했다. 육유는 어머니가 점지해 준 왕씨 여인과 재혼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완(唐婉)도 문인 조사정(趙士程)에게 재가(再嫁)를 했다.
8년 세월이 흐른 어느 봄날 육유가 고향인 소흥(紹興) 우적사(禹迹寺) 남쪽에 있는 심씨원(沈氏園)이란
경치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바람 쐬러 나온 당완(唐婉) 부부와 눈이 마주친 육유와 당완(唐婉)은 깜짝 놀랐지만 말도 못 나누고 헤어진다. 조사정(趙士程)이 아내에게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전남편이라고 하지 않는가. 도량이 넓은 조사정은 육유에게 술과 안주를 보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가슴이 미어진 옛정에 육유(陸游)는 통곡하는 심정으로 간신히 시 한 수를 지어 당완(唐婉)에게
몰래 전했다 한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釵頭鳳(채두봉, 비녀머리의 봉황)이었다.
마음이 있어도 마음을 전할 수 없으니 그 비통(悲痛)한 심정.
이런 마음을 달랠 길 없던 당완(唐婉)은 용기를 내어 남편 조사정(趙士程)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여 동의를 구하고, 사람을 보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송별주(送別酒)를 나누어
마시고 헤어지며 채두봉(釵頭鳳)에 대한 答詩(답시)를 남겼다 당완(唐婉)은 이렇게
육유(陸游)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남편에게 돌아갔으나 이 날 이후로 시름시름
앓아눕기 시작하더니 결국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楓葉初丹槲葉黃 단풍잎 붉은 물 들고 떡갈잎 누레지는데.
河陽愁鬢怯新霜 물에 잠긴 해를보며 시름속에 흰머리 한스러라
몽단향소사십년
심원류로불비면
此身行作稽山土, 이 몸이 죽어가서 회계산의 흙이 되어,
차신행작계산토.稽山/회게산.
猶弔遺蹤一泫然. 오직 그대 남은 자취에 눈물만 흘리리라.
유적유종일현연
(其二)
城上斜陽畵角哀, 성위로 해기울고 피리소리 애잔한데
성상사양화각애
沈園非復舊池臺 심씨 정원은 옛날의 누대가 아니로다
심원비부구지대
傷心橋下春波綠, 다리 아래 푸른 봄물 마음만 상하는데
상심교하춘파록
曾是驚鴻照影末. 앞서놀란 기러기 그림자 비추며 날아가네.
증시경홍조영미
*陸游(육유 1125~1210):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자는 무관(務觀). 호는 방옹(放翁).
남송 제일의 시인으로, 나라의 상황을 개탄한 시나 전원의 한적한 생활을 주제로 한
시가 많다. 글씨도 뛰어났다. 육유(陸游)가 스무 살 되던 해에 그는 문학을 좋아하는
당완(塘婉)과 결혼하였으나 어머니가 그녀를 미워하여 결국 이혼에 이르고 만다.
그 후 10년 만에 육유(陸游)는 그녀를 이 정원에서 재회하게 된다.
그때 느낀 슬픔을 그는 채두봉(釵頭鳳)이라는 유명한 시로 표현했다.
이 시를 읽은 당완은 또 채두봉에 부쳐 라는 시로 화답하고 곧 숨을 거두었다.
육유(陸游)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팔십 평생을 사는 동안 많은 시를 남겼다.
*沈園(심원): 浙江省(절강성) 紹興(소흥) 동남쪽에 있는 송나라 시대의 유명한
심씨의 정원(庭園)으로 남송의 시인 육유(陸遊)의 고사로 유명하다.
육유는 금나라에 대해 철저한 저항(抵抗)을 주장한 우국시인(憂國詩人)이었다.
BC 5세기 초 이곳에서 월왕(越王) 구천(勾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 포위되어 패하였다가
20년의 신고(辛苦) 끝에 부차를 격파하여 ‘회계(會稽)의 치욕’을 설욕하였다는 고사로 유명하다.
진(秦)나라의 始皇帝는 천하순행(天下巡行) 때 이 산에 이르러 석비(石碑)를 세웠다
*會稽山(회계산): 중국 저장성(浙江省) 사오싱현(紹興縣)에 있는 산.

첫댓글 수운정선생님, 인터넷에서 수집한 자료라 오자와 탈자가 더러 보여 신빙성이 떨어지네요. 점검 요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