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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0월 11일 토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요한 23세 교황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요엘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피난처와 요새가 되어 주시고 시온에 머무르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를 행복하다고 하는 여자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낫을 대어라. 수확 철이 무르익었다.>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12-2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2 “민족들은 일어나 여호사팟 골짜기로 올라가라.
내가 사방의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려고 거기에 자리를 잡으리라.
13 낫을 대어라. 수확 철이 무르익었다.
와서 밟아라. 포도 확이 가득 찼다.
확마다 넘쳐흐른다. 그들의 악이 크다.
14 거대한 무리가 ‘결판의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결판의 골짜기’에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15 해와 달은 어두워지고 별들은 제 빛을 거두어들인다.
16 주님께서 시온에서 호령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를 치시니
하늘과 땅이 뒤흔들린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피난처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요새가 되어 주신다.
17 그때에 너희는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사는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
예루살렘은 거룩한 곳이 되고
다시는 이방인들이 이곳을 지나가지 못하리라.
18 그날에는 산마다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젖이 흐르리라.
유다의 개울마다 물이 흐르고 주님의 집에서는 샘물이 솟아
시팀 골짜기를 적시리라.
19 이집트는 황무지가 되고 에돔은 황량한 광야가 되리라.
그들이 유다의 자손들을 폭행하고 그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20 그러나 유다에는 영원히, 예루살렘에는 대대로 사람들이 살리라.
21 나는 그들의 피를 되갚아 주고
어떤 죄도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않으리라.
주님은 시온에 머무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 11,27)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계속 지켜보던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행동을 지켜보며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요? ‘와! 저렇게 훌륭한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어떤 사람일까? 저런 아들이 있어서 틀림없이 기쁠 거야!’
보통 어머니는 자녀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자녀가 잘되어서 나중에 부양받기를 바란다거나 자녀 덕에 사회에서 어깨에 힘주고 대접받으며 다닐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자식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성모님께서도 예수님을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11,28). 오늘 복음을 읽고, ‘그렇다면 성모님께서는 행복하시지 않았다는 말씀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가 당신을 낳으신 성모님보다 더 행복하다고 하실 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성모님께서도 “하느님 말씀으로 말씀하시고 생각하[신]”(41항) 분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느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나의 생각을 하느님 말씀으로 채우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이찬우 다두 신부)
참으로 이해하기 난감한 예수님의 말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라는 군중 속 한 여자의 외침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 참으로 특별하고 이해하기 난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 27-28)
이 복음 구절을 접하고 많이 의아해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성모님께서 얼마나 서운해하셨을까? 안타까워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막중한 사명을 지니셨던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어찌 그리 어머니께 냉정하실 수 있는가? 의문을 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람들의 칭송 앞에서 ‘그렇습니다. 저희 어머니,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 훌륭한 분이십니다.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한 마디 해주시면 어디 뿔이라도 난답니까?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냐?’고 따질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알쏭달쏭한 예수님의 말씀을 곰곰히 묵상해보니, 오히려 이 말씀은 성모님을 섭섭하게 해드린 말씀이 아니라 성모님을 향한 극찬의 말씀이었습니다. 성모님께 지상 최대의 영예를 드리는 선물의 말씀이었습니다.
성모님의 일생을 묵상해보면,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경청하신 분은 다시 또 없습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응답한 분도 없습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 앞에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순명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음과 동시에 당신의 영혼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예수님을 낳으셨음과 동시에 당신의 영혼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탄생시키셨습니다.
당신 아들 예수님과 삼십여년을 동고동락하신 성모님께서는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통해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접했습니다. 언제나 진지하게 묵상했고, 그 말씀을 충실하게 사셨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예수님이 말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성모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알쏭달쏭한 말씀는 곧 성모님을 향한 극찬의 말씀인 것입니다.
구세주 예수님을 당신의 몸으로 잉태하시고 출산하신 것, 참으로 위대한 성모님의 업적입니다. 그러나 더 큰 업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모님께서 충실히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천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 말씀의 진의는 이것입니다. 성모님은 단지 자신의 어머니, 즉 혈육관계라는 것 때문에 훌륭하거나 행복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 인해 훌륭하고 행복하심을 강조하십니다.
성모님에게서 하느님의 말씀을 빼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말씀’을 열 달 동안이나 자신의 태중에 모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른 세 해 동안 ‘말씀’ 곁에서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언제나 ‘말씀’을 경청했고 관상했으며 그 말씀을 삶 가운데 실천하셨습니다.
말씀에 대한 성모님의 충실성은 다음과 같은 응답에서 잘 드러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배울 때입니다. 신부님께서 부제들에게 ‘강론’을 발표하게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저희의 강론을 들어주셨고, 편집을 거쳐서 우리의 강론을 모아 ‘강론 집’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1990년에 있었던 일이니, 어느덧 35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강론했을 때도, 35년이 지난 지금도 강론은 늘 어렵고, 부담됩니다. 수도회 수사님의 강론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분 강론의 핵심은 ‘기준점’이었습니다. 땅이 기준이 되면 키가 큰 사람이 당연히 키 큰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늘이 기준이 되면 키가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를 이야기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요엘 예언자는 ‘심판과 축복’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고, 이웃을 해치는 사람과 나라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잘못을 뉘우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과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준점은 심판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던 예수님께서도 ‘기준점’을 늘 말씀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슬퍼하는 사람, 지금 고통받는 사람, 지금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아픔과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혈연, 지연, 학연을 통해서 관계를 맺지만, 제자들에게는 새로운 관계를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모두 한 형제와 자매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에게는 안식일과 계명이 기준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기준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은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지만, 하느님의 기준은 자비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이에게도, 악한 이에게도 햇빛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도, 오후 늦게 일한 사람도 같은 보상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최강 1교시라는 강연에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리아드는 ‘분노’에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도망가면서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입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전쟁터에서 죽으면서 또 다른 분노가 생겼습니다. 친구를 죽인 상대방을 죽이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잃어버린 트로이 사람들의 분노가 되었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와 친구를 잃어버린 영웅이 아무런 무장 없이 늦은 밤에 만납니다. 그리고 모든 분노를 풀어버리고 자기가 죽인 트로이의 영웅을 돌려보냅니다. 분노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만들기 마련입니다. 죽음은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모두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악을 악으로 되갚는 것보다는 악을 선으로 갚을 때 분노는 녹고 용서와 사랑이 꽃피게 됩니다.
오디세이는 ‘귀향’입니다. 10년간의 전쟁도, 10년간의 모험도 결국은 고향으로 가려는 마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낙원 같은 섬에서도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노란 손수건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본인의 실수로 감옥에 가게 된 남편이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직도 나를 기다린다면 마을 입구 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걸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은 나무에 100개가 넘는 노란 손수건을 걸어놓았습니다. 남편은 ‘나 집으로 갑니다.’라고 말하면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오디세이의 아내는 아무런 연락도 없는 남편을 20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전쟁도, 모험도, 이별도 남편을 향한 아내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도, 모험도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호령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를 치시니 하늘과 땅이 뒤흔들린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피난처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요새가 되어 주신다. 유다에는 영원히, 예루살렘에는 대대로 사람들이 살리라. 나는 그들의 피를 되갚아 주고 어떤 죄도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않으리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위로해 주시고, 슬픔은 기쁨으로 바꿔주신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의인에게는 빛이 내리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쏟아진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행복한 사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믿음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희망을
희망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룸을
이루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돋움을
돋우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섬김을
섬기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살림을
살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오늘의 성인
성 요한 23세(John XXIII)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1881-1963년
같은이름 :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는 1881년 11월 25일 이탈리아 베르가모(Bergamo)에서 12km 떨어진 소토 일몬테(Sotto il Monte)에서 가난한 농부인 조반니(Giovanni Roncalli)의 13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Angelo Giuseppe Roncalli)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한 요한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제상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그는 베르가모 신학교에서 2년 간 교육을 받고, 로마(Roma)의 성 아폴리나레 대학(San Apollinare Institute)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를 하던 중, 1902년 10월 영성 지도자인 구속주회의 피토키(Francesco Pitocchi) 신부를 만나면서 “하느님은 모든 것이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Dio tutto, io sono nulla)라는 기본적이면서 근본적인 명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1904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다음해에 베르가모의 테데스키(G.R. Tedeschi) 주교의 비서로 임명되어 1914년 주교가 사망할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다. 교구장 비서로 일하면서 그는 신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암브로시우스 도서관에서 연구 작업은 후에 교황 비오 11세(Pius XI)가 된 라티(A.D.A. Ratti) 추기경과의 만남을 갖게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끝난 후 1921년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는 그를 포교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의 이탈리아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그는 이어 1925년 아레오폴리스(Areopolis)의 명목상의 대주교 및 1935년 불가리아의 대목으로 임명되었다. 불가리아 · 그리스의 교황 사절, 파리주재 교황청 대사(1944∼1953년)를 거쳐 1953년 1월 12일에는 사제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1958년 10월 비오 12세(Pius XII)에 이어 77세의 고령으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교황으로서 요한 23세라는 이름을 선택한 그는 11월 4일 즉위식을 거행하면서 좋은 목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우선 교황이 된 후 처음으로 개최한 추기경 회의에서 추기경 숫자를 70명으로 제한하는, 식스투스 5세(Sixtus V)부터 내려오던 규정을 폐지하였다. 1958년 12월 23명의 추기경을 새로 임명하였는데, 그 중에는 밀라노(Milano) 교구장으로 후에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가 되는 몬티니(Giovanni Battista Montini)도 포함되어 있었다. 1962년까지 그가 임명한 추기경은 모두 87명으로 늘어났다.
1959년 1월 25일 교황은 추기경들에게 로마 교구 시노드 개최, 공의회 개최, 교회법전 개정 등 세 가지 계획을 선언하였다. 로마 교구 시노드는 1960년 1월 24-31일까지 라테란 대성전에서 개최되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는 교황의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이 공의회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 교인의 일치라는 궁극적인 목적에서 교회의 종교생활을 쇄신하고 그 가르침과 조직을 현대에 맞도록 개혁한다는 취지를 펼쳤다.
그 밖의 괄목할 만한 개혁으로는 그리스 멜키테 총대주교 막시모스(Maximos) 4세의 호소를 받아들여 비잔틴 전례에서 모국어 사용을 허가하는 한편, 미사경본과 시간전례서(성무일도)에 대한 새로운 예식 규정을 인가하고(1960년), 미사 통상문의 성찬 기도에 성 요셉(Josephus)의 이름을 삽입하였으며(1962년), 교회법전 개정을 위한 교황청 위원회를 구성한(1963년) 일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1960년 그리스도교 일치 사무국 개설, 이듬해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처음으로 로마 가톨릭의 대표가 참가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비가톨릭 인사들이 참관인으로 초대되는 등 일련의 쇄신이 이어졌다.
1963년 5월 22일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마지막 인사와 함께 강복을 준 교황은 성령 강림 대축일이었던 6월 3일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5년도 채 안된 재임 기간 동안 요한 23세 교황은 인류를 향해 열려 있는 교회가 되도록 가톨릭 교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좋으신 교황’(papa buono)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그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 소송이 시작되어, 2000년 9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복되었다. 그리고 2014년 4월 27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부활 제2주일)에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함께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6월 3일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일인 10월 11일로 변경하여 기념한다.
성녀 마리아 솔레다드(Mary Soledad)
활동년도 : 1821-1887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메리, 미리암, 솔레다드, 아코스타, 토레스
성녀 마리아 솔레다드 토레스 아코스타(Maria Soledad Torres Acosta)는 세례 때에 엠마누엘라(Emmanuela)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녀는 조용한 성품의 소녀로 자랐으며 놀이보다는 기도하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던 그녀가 미카엘 마르티네스 이 산즈(Michael Martinez y Sanz)라는 성모의 종 3회원 신부를 만나게 됨으로써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수많은 병자와 버려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인물이었다.
1851년 미카엘 마르티네스 이 산즈 신부는 7명의 부인들을 모았는데, 그들 가운데 맨 마지막 인물이 바로 엠마누엘라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는 이 수녀회의 실질적인 설립자가 되어 '고통의 성모님'의 가호 아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1861년 '마리아 시녀회'는 겨우 교구 차원의 승인을 얻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였다. 1875년에는 산티아고데쿠바(Santiago de Cuba)에 첫 번째 해외 수녀원을 건립하였다. 성녀 마리아 솔레다드는 35년 동안 이 수녀회의 지도자로서 봉사하였다. 그녀는 1950년 시복되었고,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알렉산데르 사울리 (Alexander Sauli)
활동년도 : 1534-1592년
신분 : 주교
지역 : 파비아(Pavia)
같은 이름 :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제노에제(Genoese) 가문의 아들로 이탈리아 밀라노(Milano) 태생인 성 알렉산데르 사울리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후에 17세의 나이로 바르나바회 성직자가 되었다. 그는 파비아 대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면서 자비로 도서관을 지어 헌납하기도 하였다. 1556년 그는 같은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으며 또 뛰어난 설교가로서 높은 존경을 받았다.
이를 지켜보던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는 그를 초빙하여 밀라노 대성당에서 설교하게 했는데, 너무나 청중들을 열광시켰기 때문에 스폰드라티(Sfondrati) 추기경(나중에 그레고리우스 14세 교황이 됨)까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567년 그는 약관 33세의 나이로 총장이 되었고, 1570년에는 코르시카 알레리아 주교로 활약하였다. 그는 20년 동안이나 교구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였기에 '코르시카(Corsica)의 사도'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1741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04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