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홋카이도(2)/靑石 전성훈
사흘째(8월 4일), 어제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일어나 온천욕을 즐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른 아침 북해도 바다를 바라보면서 온천욕을 즐긴다. 오늘은 오타루 시내와 홋카이도의 주도인 삿포로 관광이다. 삿포로(SAPPORP)의 PORP는 아이누(AINU)語로 푸른 평야, 평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러일전쟁 당시 군수물자 보급창고 지역으로 개발된 벽촌 오타루, 오타루의 화려했던 시절을 보여주는 오타루 운하, 포토존에 서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후다닥 사진을 찍는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버려진 쓸모없는 창고를 이용하여 예술가들이 작품을 꾸미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관광지로 변했다고 한다. 오타루 시내 번화가 빵집, 선물 가게 중에 일본 최대 규모의 오르골 전문점을 찾아간다. 오르골 시계탑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오전 10시 정각 증기로 기적소리를 내면서 증기가 올라가는 장면을 연출하여 유명하다. 거리를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시계탑을 쳐다보면서 사진을 찍는다. 빵집에서 갓구운 빵을 사 먹고 리무진 버스를 타려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버스는 있는데 운전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기사분이 택시를 타고서 허겁지겁 주차장으로 와서 늦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마침내 오타루를 떠나서 삿포로로 향한다. 삿포로 시내 카레 전문점, ‘마음(心)’, 맑은 국물에 향신료, 감자, 홍당무, 닭 다리 한 개가 들어있는 삿포로 수프 카레, 카레 국물에 밥을 비비거나 말아서 먹으면 된다. 옆자리에 앉은 일행 대부분 음식에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한다. 수프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 나 역시 닭 다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해외여행이라도 음식은 스타일이 너무 다르면 먹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 방문지는 삿포로 맥주 박물관이다. 삿포로 최초로 맥주 공장이 설립된 곳으로 200밀리 무료 생맥주를 마셔보니 엄청 쓴맛이다. 삿포로에서 저녁은 자유식이다. 번화가 상점 구경을 하면서 걷는데 다리가 아프다. 집합 장소인 시계탑 부근 삿포로 시청을 찾아가는데 방향 감각이 없어서 현지인 노부부에게 길을 물어보니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삿포로 시청 1층 로비 카페 의자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오오도리 공원에서 주위를 구경하기도 한다. 아내와 손녀가 현지 음식을 먹지 못하여 마트에서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사고, ANA 크라운 프라자 삿포로호텔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는다. 밤이 깊어지자 비가 쏟아진다. 삿포로 라멘을 먹어보지 못하여 아쉽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돌아가는 날(8월 5일), 평소와 마찬가지로 배꼽시계가 새벽 5시 반에 눈이 떠져 오전 6시 지나 호텔 뷔페로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정리하여 호텔을 나와 면세점에 들린 후에 치토세 공항으로 향한다. 짐을 부치고 공항 구내에서 초콜릿을 사고 나서 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아보니, 초밥과 라멘집 뿐이다. 결국은 빵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씩씩하게 잘 걷고 짬짬이 책을 읽는 사랑스러운 손녀, 선물 가게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져서 혹시라도 떨어뜨릴까 봐 신경을 썼지만,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고맙고 감사하다. 4년 6개월 만의 해외여행, 더위 속에서도 가까운 이웃 나라의 풍습과 경치를 바라보며 즐겁게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음 여행을 꿈꾼다.
낙수, 홋카이도는 우리나라 남한 전체 면적의 약 80% 크기의 땅으로 역사적인 유물이 없는 곳이다. 120~130년 전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문화를 말살하고 일본 본토인의 생활을 억지로 뿌리내리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개발한 곳이 홋카이도이다. 개발의 모델은 최강국인 미국이다. 서부 개척이라는 미명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를 초토화하고 몰살을 감행한 아메리카인의 솜씨를 배우고자 그들을 고문으로 모셨다고 한다. 삿포로 시내의 유명한 시계탑은, 당시 미국인 선교사가 말했던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는 명언과 연관이 깊은 120년 된 시계탑이다. 오타루를 떠나 삿포로로 가는 동안 한적한 시가지를 지날 때 인근의 아파트(우리나라의 5층 맨션 비슷)나 단독주택을 보니, 대부분 창문에 커튼이 쳐있다. 인솔자에게 물으니 일본에서는 거의 커튼을 내리고 생활한다고 한다. 창문을 열지 않고 커튼을 치고 살면 무척 답답할 것 같은데 일본인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집안에 틀어박혀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들 소위 오탁구족(御宅族)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일본인은 만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기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지 못한 나라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신사에서 기원을 드리고, 결혼할 때는 교회에서, 죽으면 불교의식으로 장례를 지낸다. 전통적으로 매장이 아닌 화장을 하며 분골(粉骨)을 3등분하여 절과 마을 공동묘지 그리고 집안의 작은 불당에 모셔놓는다. 이사할 경우 마을 공동묘지에 있던 부모나 가족의 분골을 파내어 다시 이사한 곳으로 가지고 간다고 한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풍습과 사고방식으로 조상을 모신다. 아사히, 기린, 삿포로 맥주는 북해도에서 생산하고 있다. 삿포로 클래식은 이곳에서만 판매하여 귀국할 때 공항에서 샀더니 350밀리 6개에 1천 엔이다. 인솔자 여성의 입담이 대단하다. 일본, 일본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과 일본인의 우리나라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직설적으로 들려준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일제 침략기에 대한 일본인과 우리의 인식과 관점의 차이가 크다는 느낌이 든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태평양 방류 관련하여 당사자인 일본은 너무나 조용하다.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와는 무서울 정도로 확연히 다르다. (2023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