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쇼핑몰 와일드벨리스(Wildberries.ru)를 만들어 러시아 여성 최고의 부자가 된 고려인 타티아나 바칼추크가 원래의 성인 '김씨'를 되찾았다.
렌타.ru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타티아나는 5일 텔레그램을 통해 타티아나 바칼추크가 아닌 타티아나 김(Татьяна Ким)으로 바뀐 정부의 공식 문서를 공개했다.
바칼추크의 성을 김으로 바뀐 것을 보여주는 러시아 문서/사진 출처:텔레그램
타티아나 김은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핫한 여성 기업인이다. 현지 언론에는 거의 매일이사시피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정보가 게시된다.
현지 인터넷 매체 rbc는 1일 러시아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타티아나 김'이라고 쓰고, 그녀가 통합 자회사(RVB㈜, 러시아어로는 ООО «РВБ»)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회사 통합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원들의 고용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챙기겠다고 밝혔다.
타티아나 바칼추크 당시의 모습. 책상 위에 바칼추크 명패가 올려져 있다/사진출처:인스타그램
현지 언론의 관심은 두가지다. 와일드베리스가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결단을 내린 러시아 야외광고 전문회사인 루스 아웃도어(이하 루스)와의 합병 진행 상황과 타티아나의 이혼 소송이다. 두 사안을 별개로 봐서는 안된다. 타티아나가 루스와의 합병을 선언했을 때, 와일드베리스의 공동창업자 격인 남편 블라디슬라프 바칼추크가 격렬하게 반대했고, 끝내 이혼 소송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관심을 모은 것은 남편의 폭력적 대응이다. 블라디슬라프가 지난달 18일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와일드베리스 사옥에 들어가려다 건물 경비원들과 충돌했다. 그 와중에 총성이 올리며 건물의 보안책임자 등 2명이 사망하고 경찰관 등 7명이 다쳤다.
블라디슬라프는 "새 창고 건설과 관련한 협상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사무실을 찾았지만, 입구에서 경비원들의 저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타티야나는 텔레그램을 통해 "미팅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았으며, 남편이 회사를 급습하려다 실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무장한 남성들이 충돌 중에 총을 쏘았고, 젊은이들이 죽었다"며 "블라디슬라프,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부모님과 아이들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라고 울먹였다.
와일드베리스 본사 입구에서 벌어진 충돌장면/현지 매체 영상 캡처
현지 언론이 공개한 현장 영상에는 건장한 남성들이 언쟁을 벌이다 그 중 한명 이상이 총을 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러시아 사법 당국은 이 사건 관련자 30여명을 체포했고, 남편 블라디슬라프 역시 현장에서 연행되었다가 풀려났다.
와일드베리스 측은 “블라디슬라프가 19일 아침 살인미수및 공권력 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고 밝혔다. 또 "디나모 지하철역 근처 이스크라 파크 비즈니스 센터에 위치한 또 다른 사무실도 건장한 남성들에 의해 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남편 블라디슬라프 바칼추크/사진출처:텔레그램
충돌 사건 발생 닷새 후(23일) 타티아나는 “최선의 선택은 항상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결혼 전의 본명인 김씨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타티아나 김은 육아 휴직 중이던 2004년 창업한 와일드베리스를 러시아 최대의 인터넷 쇼핑몰 업체로 키웠다. 그녀가 와일드베리스의 지분 99%를 갖고 나머지 1%는 IT전문가인 남편 소유다.
부부의 대립은 와일드베리스와 루스 간의 합병에 대한 갈등으로 시작됐다. 블라디슬라프는 아내의 합병 결정에 크게 반발하면 "회사를 강탈당했다"고 주장했으나, 타티아나는 회사의 미래와 혁신을 위해 합병이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그녀는 2023년 말 rbc와의 인터뷰에서 "와일드베리스의 직원이 3천 명이나 되는데, 그 엄청난 에너지가 앞으로 달려가기는커녕 안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직원들은 일에 집중하기 보다는 누가 무엇을 하는지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고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와일드베리스와 루스는 지난 6월 '디지털 거래의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합병할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뒤이어 7월에는 합작 투자 회사인 RVB㈜를 출범시켰다. 또 타티아나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9월 20일 연방 반독점위원회인 FAS( Federal Antimonopoly Service, 우리 식으로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RVB㈜로의 와일드베리스의 자산 이전에 대한 승인을 받아냈다.
모스크바 법원은 현재 부부의 이혼 소송을 심의 중이다. 양측은 와일드베리스의 새 창고 건설을 둘러싼 비즈니스적 갈등이 파탄의 원인이 되었는지 여부 등을 놓고 다투고 있다. 남편은 소송을 통해 와일드베리스의 지분 절반을 받아낼 작정이다. 러시아 사회는 흥미진진하게 이를 지켜보고 있다.
와일드베리스는 지난해 270억 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지분 99%를 갖고 있는 타티야나의 자산은 81억 달러(약 11조원)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