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장 구속사 강해
유다의 기업
“하나님의 나라가 야곱의 후손들을 통해 어떻게 건설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야곱의 기대를 모았던 요셉은 형들의 모략으로 인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요셉을 판 형제들은 요셉이 마치 들짐승에 물려 죽은 것처럼 야곱을 속임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있어서 요셉의 특별한 역할을 기대하였던 야곱은 깊은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요셉을 잃은 야곱은 덧없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됨에 있어 요셉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던 야곱의 인간적인 욕심에서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성취되어야 하겠기에 야곱은 더 이상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좀더 구체적으로 그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시는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야곱이 소망하였던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야곱의 기대와 같이 그처럼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야곱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 땅에 내려가 4대 만에 큰 민족을 이루어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내용(창 15:12-16 참조)을 모를 리 없었다. 그때까지는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야곱이 속한 시대에는 그 나름대로의 하나님 나라가 진행하는 과정과 그 현상이 명백하게 나타나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야곱은 당대에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건설함에 있어 무언가 특이한 일을 계획하고 계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셉이 들짐승에게 죽임을 당하자 실의에 빠진 상태가 되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1. 유다 가계(家系)의 등장
이러한 때에 야곱의 아들들은 각기 나름대로 생육하여 상당한 가족을 이루어 나갔고 부를 축적해 나갔다. 그런데 유독 유다만은 다른 형제들과 같이 번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언약을 승계한 약속의 자손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곁길로 나가고 있었다. 모세는 이러한 유다의 상황을 숨기지 아니하고 사실대로 기록함으로서 잠시 야곱으로부터 유다에게로 우리의 시선을 옮기고 있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다. 유다 역시 약속의 자녀인 까닭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내용에 대하여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가나안 여인을 보고 반하여 동침함으로서 그 사이에 엘과 오난과 셀라를 생산하게 되었다(창 38:1-5 참조). 유다가 가나안 여인과 혼인하였다는 사실이 큰 죄가 되거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다는 야곱의 시대적 사명을 수행해야 할 위치에 있는 자로서 순수한 혈통을 보전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장차 그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드러내어야 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민족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유다뿐만 아니라 가나안 여인 사이에 난 유다의 아들들 역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유다는 장자 엘을 위하여 다말이라는 여인을 택하여 혼인하게 함으로서 가문의 대를 잇도록 하였다. 야곱의 후손들에게 있어서 대를 잇는다는 것은 단순히 혈통을 잇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즉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한 단위의 민족으로 성장해야 하는 역사적인 사명을 수행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엘은 하나님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악한 자였다. 성경은 엘에 대하여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창 38:7)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로 보아 엘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매우 불성실한 사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엘의 동생 오난 역시 엘과 다를 바 없었다. 당시 혼인 관습인 수혼법(brother's marriage)에 따라 오난은 엘의 가계를 잇기 위하여 형수와 혼인해야 했다. 그러나, 오난은 형수가 잉태하여 아들을 생산한다 할지라도 그 아들은 자신의 유업을 잇는 것이 아니라 엘의 가계를 잇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쉽게 그 일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미 죽어버린 엘의 가계를 잇게 하기 위하여 자신이 형수와 혼인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오난은 땅에 설정함으로서 형수가 임신할 수 없도록 수단을 부렸다. 그렇게 함으로서 엘의 자손이 번성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성경은 오난의 행위가 명백히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반역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창 38:9-10).
엘과 오난을 잃은 유다는 그 문제의 핵심에 대하여 관찰하고 그 대책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유다는 엘과 오난을 왜 여호와께서 죽이셨는가에 대한 문제를 따지지 않고 오히려 수혼법에 따라 셀라가 다말과 혼인할 경우 셀라마저 죽지 않을까 하는 인간적인 우려에 빠지고 말았다(창 38:11). 유다는 문제의 본질을 놓쳐버리고 단지 일어난 현상을 어떻게든지 무마해 보려는 소극적인 해결책만을 찾은 것이다.
2. 다말 사건이 주는 구속사적 의미
유다는 다말에게 수절을 요구함으로서 셀라와 정혼 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었다. 이에 다말 역시 이의를 달지 않고 유다의 요구에 응하여 수절하며 셀라와 성혼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정혼의 관계는 정식 부부와 같은 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부관계를 가지기 전가지 피차 정절을 지키며 자신을 정갈하게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유다의 아내가 죽고 유다는 홀아비가 되었다. 마침 양털을 깎는 시기가 되어 유다는 양털을 깎기 위해 딤나에서 창기로 분장한 다말의 집으로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석 달쯤 지나 다말이 임신하였다는 소식이 유다에게 전해졌다. 유다는 자신으로 인해 다말이 잉태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즉시 다말을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엄중하게 책문하였다. 다말은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유다에게 보내어 그 물건의 주인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음을 밝혔다. 다말의 의도는 셀라가 장성하여 자신과 혼인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셀라가 죽을까 염려하여 혼인을 미루고 있는 유다의 부덕함을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던져 고발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엘과 오난이 죽은 것은 다말과 관계를 가져 발생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유다의 그릇된 생각을 고발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자 한 것이다.
다말의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다말로서는 자신이 죽음을 택해서라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고 유다의 그릇된 판단을 고발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최악의 방편이라도 선택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유다는 다말이 제시한 약조 물을 보고 비로소 다말의 정당함과 자신의 부덕한 판단에 대하여 찔림을 받게 되었다. 유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창 38:26)고 함으로서 다말의 정당함을 인정하고 다말을 재판에 회부하지 않았다. 다말은 임산의 기한이 찬 후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생산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서 유다의 가계를 계승하지 못하고 죽은 엘을 대신하여 베레스가 유다의 가계를 잇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다 자신에게는 상당한 삶의 변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무관심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인생을 재정비한 결과 무엇보다도 유다는 다른 형제들과 더불어 야곱의 정통성을 이어야 한다는 의식을 분명하게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후예 유다는 야곱의 축복을 통해(창 49:8-12 참조)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다른 누구보다도 바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중대한 역사적인 사명은 야곱 이후에는 12아들들에게 계승되었고 유다와 다말에게서 출생한 베레스를 통하여 다윗에게로 계승되고 있음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모세가 유다와 다말 사건을 매우 중시하여 성경에 기록한 것은 약속의 후손으로서의 대를 계승한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