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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 : 믿음 BIW : 서로 사랑하라 AG : 부녀들
TS : 믿음이란 불변하는 올바른 의의 진리와 사랑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아~ 해가 달하고 싸워서 해가 졌어?
어느 아가씨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조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조카가 이모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조카 : 이모, 지금 아침이야?
이모 : 아니!
조카 : 근데 왜 해가 떠?
이모 : 해가 뜨는 게 아니라 지는 거야!
그러자 조카가 갸우뚱거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 해가 달하고 싸워서 해가 졌어?”
그러고 보니 어린 꼬마의 눈에는 이렇게도 보일 수 있나 봅니다.
해가 달과 싸워서 졌기 때문에 매일 해가 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꼬마가 가진 호기심은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호기심 많은 어린 꼬마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하나님 앞에서 호기심 많은 어린 꼬마가 되어봅시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을 겁니다.
그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행복은 만만치 않은 행복이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들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오늘 본문 요한2서를 기록한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막내였던 사도 요한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서 가장 어린 제자이다.
야고보의 동생이고, 세베대의 아들이라고 복음서에서는 소개한다.
마가복음 3:17에서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라고 기록하면서 예수님께서 이 두 형제에게 “보아너게(Boanerges)” 곧 우레의 아들(Sons of Thunder)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두 형제는 성격이 우레처럼 급하고 괴팍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한과 야고보는 갈릴리 바다를 근거지로 어부생활을 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의 12제자로서 베드로와 함께 수제자가 되었던 사람이다.
마태복음 20;20-23절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 곧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찾아와서 절하면서 무언가를 구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에게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신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간청하게 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요한의 부모님은 아들들의 장례에 대하여 욕망이 컸던 분들이다.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형 야고보는 사도행전 12장에서 헤롯 대제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Herod Aqippa)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순교를 당하게 된다.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서 가장 어렸기 때문에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이다.
다른 제자들은 순교자가 되었지만, 요한은 순교를 당하지 않고 100세 가까이 사시다가 자연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신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니 세대배의 두 아들은 예수님의 12제자가 되면서 형 야고보는 가장 먼저 순교당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고, 동생 요한은 가장 마지막에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간다.
전승에 의하면 요한도 펄펄 끓는 기름 솥에 던져졌는데 마치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극렬하게 타오르는 일곱 배나 되는 풀무 불에 던져져도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았던 것처럼, 요한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놀란 박해자들이 요한을 화형시키는 대신에 밧모섬으로 유배를 보내졌다고 전해진다.
밧모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직접 계시를 받고 계시록을 기록하게 된다.
극심하게 예수 믿는 신앙인들을 박해하고 요한을 밧모섬으로 유배 보냈던 도미티안 황제가 측근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여 죽게 된다.
도미티안 황제가 죽은 후에 요한은 밧모섬의 유배에서 풀려나서 다시 튀르키예에 있는 에베소 교회로 돌아와서 에베소 교회에서 마지막 사역을 감당하시면서 요한서신서를 기록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신다.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서, 요한1서, 2서, 3서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여 성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람이다.
요한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못 박혀 죽으시면서 흘리신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주시는 생명, 영생과 하나님의 사랑,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강조하신 분이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생명, 영생과 사랑을 강조하면서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요한이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는 예수님의 인성이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속출하면서 이단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성경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이단들이 출몰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훼방하고 박해하고 파괴하려고 하듯이, 초대교회 시절에도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영지주의, 쾌락주의와 같은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예수님의 신성이나 인성을 부인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게 된다.
특히 영지주의가 아주 극성으로 활동하던 시기이다.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는 영은 거룩하지만, 육은 더럽고 추한 존재로 이원론적인 사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신성은 맞지만, 더럽고 추한 인간이라는 예수님의 인성은 지닐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이단이다.
사단, 마귀의 조종을 받은 이단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들을 파괴하기 위하여 온갖 감언이설과 그럴듯하게 다른 이론들을 만들어내면서 교회를 파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서, 서신서, 계시록은 이단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은 두 번째 편지인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 본문 요한2서에서 요한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부녀들, 여인들에게 어떤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D4.
① 하나님의 자녀로 택해 주시는 주님.
1절에서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서신서들 중에 수신자를 여성으로 지목하여 기록한 성경은 요한2서가 유일하다.
빌레몬서는 남성들의 이름과 아울러 압비아라는 여인의 이름을 동시에 기록하면서 빌레몬서의 수신자로 기록하고 있지만, 요한2서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들이라고 기록하면서 여성을 수신자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다른 성경과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요한 사도가 쓴 서신의 수신자로 기록하고 있는 부녀들은 어떤 여인들일까?
1절에서 요한은 택하심을 받은 부녀들과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여인들은 어느 특정한 개인을 지목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신앙을 고백하여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든 일반적인 여인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여 구세주라고 고백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여인으로 신앙 생활하는 일반 교회의 모든 여성들을 지칭하는 호칭이라는 의미이다.
이 부녀들은 온 우주계와 지구촌의 주인,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택하심을 받은 여인들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히 선별하고 선택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처럼, 사도 요한은 신앙인의 모든 여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하여 불러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레미야 1:5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불러 세우는 과정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잉태하기 전부터, 태어나기 전부터 선지자로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하고 있다.
에베소서 1;8-10절에서는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고백한 신앙인들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시고 택정하여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요한복음 1;12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믿음의 고백을 한 모든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졌기에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모든 신앙인들은 하늘 아버지께서 특별하게 선별하여 불러주신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절대로 세상에 굴복하거나 기죽거나 나약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세상을 향하여 당당하고 굳건하게 전능하신 하나님, 엘샤다이(El Shaddai)의 하나님의 가장 복된 자녀들이라고 자기 스스로 선언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② 올바른 진리 가운데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여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든 부녀들, 여인들과 그의 자녀들과 가족들에게 어떻게 살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일까?
우리 주님은 모든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일까?
사도 요한은 2-3절에서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진리는 바뀌지 않는 절대불변의 원리가 적용된다.
돌, 바위가 변하지 않듯이 진리는 변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바뀌는 것은 참된 진리가 될 수 없다.
흔히 영어로 성경을 bib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사실 이 bible이란 단어는 헬라어 biblion이란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biblion이란 단어는 책장에 꽂혀 있는 여러 권들의 책들을 의미한다.
집에 있는 책장에 어떤 책이든지 만화가 되었건, 소설이 되었건, 시집이 되었건, 노래책이 되었건, 책장에 꽂혀 있다면 그것이 바로 bible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66권이라는 각각의 성경을 하나의 성경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이야기할 때, 부정관사를 사용하여 a bible이라고 기록하지 않는다.
반드시 정관사와 대문자를 사용하여 바로 그 책이란 의미로 The Bible 또는 바로 거룩한 그 책이란 의미로 The Holy Bible이라고 사용한다.
어떤 이들은 성경을 성서(聖書)라고도 부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성서(聖書)가 아니다.
성경은 결코 변하지 않는 단 한 권의 책, 절대불변의 책으로서 성경(聖經)이다.
서(書)가 아니라 경(經)이다.
서는 일반적인 책을 말하지만, 경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불변의 책이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읽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성경은 각종 시대, 지역, 사람, 인종, 문화에 의해서 바뀔 수 있는 일반적인 책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과 사람과 인종과 문화를 초월하여 절대로 바뀔 수 없는 불변의 책이다.
성경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바로 그 말씀이라는 의미이다.
세상의 사상이나 이론이나 생각이나 견해나 살아가는 방식은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고,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진리는 절대로 바뀔 수 없는 불변의 원리가 적용된다.
성경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절대불변의 원리에 의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다.
요한 사도는 신앙인들에게 이처럼 변할 수 없는 절대불변의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권고하시는 것이다.
요한이 에베소교회에서 마지막으로 사역하던 초대교회 시절에는 영지주의, 쾌락주의, 갖가지 철학자들, 사상가들이 즐비하던 시절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등이 실존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이들로 인하여 교회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이상야릇한 학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교회에 어려움을 주었던 시절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이런 세상의 학문, 사상, 철학이 낳은 이단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복음서와 서신서를 기록하면서 교회의 신앙인들, 특히 여성들은 참된 진리 되시는 예수그리스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정확하고 명확하게 깨닫고 진리 가운데 신앙생활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초대교회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교회 역사에는 수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났다가 다시 사라지곤 하였다.
현대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단들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왜 그리도 자칭 하나님들이 많은지, 자칭 구세주들이 많은지, 자칭 성령들이 많은지....
한국교회에 등장하는 이단들은 꼭 자기가 하나님이 되었든, 구세주가 되었든, 성령이 되었든 삼위 하나님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려고 나타난다.
그런데 아무리 이단들이 극성을 부린다 해도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돈도 바치고, 몸도 바치고, 가족들도 바치고, 순결도 바치고, 생명까지도 바친다.
그렇게 바쳤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 그들을 추앙하면서 따라가서 그들과 함께 멸망의 길로, 심판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 정말로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속히 그들이 올바른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삼위 하나님 앞으로, 성경 앞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올바른 진리, 절대불변의 원리가 적용되는 참된 진리 가운데 살아야 한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올바르게 배우고 가르치고 전하면서 올바른 진리 가운데 살아야 한다.
사도 요한은 4절에서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으로 세워진 올바른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신앙인들과 그들의 자녀들, 가족들을 보니까 연로하신 사도 요한의 가슴에 뜨거운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고 고백하며 칭찬하고 있다.
우리들도 올바른 진리 가운데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제대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물론이거니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신앙인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③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기를 원하는 주님.
요한은 5-6절에서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라고 권면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진 사도이다.
사랑의 사도답게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비롯하여 서신서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무척이나 많이 사용하면서 기록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부녀들, 신앙의 여인들에게 “서로 사랑하자.”라고 권고하고 있다.
신앙인들 서로 간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사랑하자라고 권고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자라고 말씀하면서 이 사랑은 특별하게 다시 거론할 수 있는 독특한 다른 사랑이 아니라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신앙의 여인들이라면, 적어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여인들이라면 이미 예수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사랑을 잘 알고 있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 친히 보여주셨던 그 사랑,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고 사도들이 교회들을 돌아보면서 보여주었던 바로 그 사랑,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이미 온 몸으로 느끼고 고백하고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신앙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살자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사랑이란 바로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첫째 되는 계명은 마음을 당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 되는 계명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사랑의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 신앙인들이 지켜야 할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뿐만 아니라, 모세5경을 통해서 주신 613개의 계명은 물론이거니와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보여주신 사랑의 계명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요 성도들이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곧 십자가 사랑의 계명이다.
곧 사랑은 모든 율법과 계명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 사랑으로 살았던 사도 요한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한을 제자로 세울 때에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이 보아너게와 같이 괴팍한 성격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사도가 되면서 온순하고 온유하고 겸손하여 사랑의 사도로 바뀌는 은혜와 축복을 받은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사랑의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
신앙인의 별명은 사랑의 사람이라는 별명으로 바뀌기를 소망한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이 수리아 안디옥에까지 전해지면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생겨나게 되었을 때, 안디옥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 크리스챤’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별명으로 붙여준 크리스챤이란 이름이 성도들을 의미하는 용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 크리스챤(Christian)이라는 말은 작은 예수, 예수쟁이들, 예수님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신앙인들은 작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살았던 삶의 흔적을 따라서 살아가는 예수쟁이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랑의 사도였던 요한 사도가 신앙의 여인들에게 자신처럼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달라고 간곡하게 권면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 찾을 수 있는 트레이드 마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성령님의 감동으로 살아가는 사랑의 흔적을 보여주는 삶이다.
④ 이단의 무리들과는 완전히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주님.
요한이 서신서를 쓴 가장 큰 이유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고 흠집을 내고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면서 교회를 파괴하려는 마귀 사탄의 무리들인 이단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서신서를 기록하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요한은 7절에서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말씀한다.
9절에서는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라고 말씀하고 있다.
10-11절에서는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권세에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닌 이단들을 따르는 무리들과는 상종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만약에 어느 누구라도 이단의 무리들과 인사라도 나누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경고까지 한다.
사도 요한이 엄중하게 경고까지 하면서 이단의 무리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들과는 완전히 구별된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오직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적당하게 세상의 이론이나 논리에 타협하지 말고, 단호하게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좋은 것이 좋은 게 아니냐? 하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좋은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렇지만 좋은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야 할 대상이 있는가 하면, 절대적으로 거절하고 상종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이웃들과는 좋은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온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하나님의 자리를 자신의 소유물로 빼앗아 버린 이단의 무리들과는 조금이라도 상종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들을 한 발자국이라도 집안으로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는 철저하게 구별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각종 이단들, 동성애를 추종하는 이들, 평등법이라는 미명 아래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하는 이들과는 상종하지 말아야 하는 대상들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그들과는 상종하지도 말고 완전히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경고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그들과 유대관계를 맺다가 누군가라도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서 그들을 따라가는 이들이 생겨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그들은 불신자들을 유혹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신실한 신앙인들을 유혹의 대상으로 삼아서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실제적으로 한국교회를 파괴시키려고 나타난 많은 이단들은 불신자들을 포섭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들을 자신들의 포섭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선명의 통일교를 비롯하여 이만희 신천지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의 신실한 신앙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신천지뿐만 아니라 장길자 여인의 엄마 하나님의 교회에 빠진 이들도 신앙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구원파, JMS의 정명석, 신옥주 등등 대부분의 이단들은 신앙인들을 포섭 대상으로 올려놓고 교묘하게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여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과는 아예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도 요한의 시대, 초대교회 시대에도 동일하게 나타난 증상이고, 교회 역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증상들이다.
그래서 요한은 그들과는 상종하지 말고 완전히 구별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치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철저하게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을 쫓아내라고 경고하는 말씀과 같다.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섬기던 신앙, 전통, 사상, 문화, 음악, 풍습 등등 모든 것들을 쫓아내라고 수도 없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도 요한은 모든 신앙인들에게 이단의 무리들과는 상종조차도 하지 말고 구별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L4 & B4.
그러면 신앙인들은 어떤 표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신앙인이 신앙 생활하는 데에는 분명한 표준과 기준이 세워져 있다.
분명한 잣대를 가지고 그 잣대에 의해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경에 대하여 분명한 잣대, 표준, 기준이 세워져 있다.
곧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이라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이라는 삼위 일체의 하나님과 성경이라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삼위 하나님과 성경이라는 기준은 지역과 역사와 시대와 인물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불변하여 정확무오한 진리이다.
어떤 환경과 처지와 여건과 시대와 지역이 바뀐다 해도 삼위일체와 성경이라는 진리는 변할 수도 없고, 바뀔 수도 없는 절대불변의 원리이다.
이 진리는 어떤 것들과도 타협하거나 거래하거나 추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는 원리이다.
어느 누군가라도 절대불변의 원리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타협하거나 거래하거나 추가하거나 감소시키는 행위를 한다면 하나님의 저주와 징계를 받거나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요한계시록 22;18-19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런데 어떤 무리들은 성경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새로이 짜깁기하거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하여,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성령에 대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변질시키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만큼이나, 대단한 업적이나 되는 것처럼 떠벌리면서 우둔한 영혼들을 미혹하여 사탄의 세계로, 저주와 재앙의 세계로 끌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성경이라는 절대불변의 원리를 놓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성경을 놓치거나 빼앗겨서는 안 된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에 대하여 아주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변질하여 가르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과는 상종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대단한 인물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좀 매정하다. 야박하다. 서운하다, 독하다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이단과는 상종조차 하지 말라고 아주 엄하게 경고하고 있는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이단들과는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그러면서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간직하고 지켜내야 한다.
성경을 올바르고 굳건하게 가르치고 전하는 말씀의 지도자를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제대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인의 기본적인 자세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매일매일 읽고 배우고 알아가야 한다.
호세아서 6:1-3절에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외치고 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라고 외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자고 호소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 3:18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오늘 요한 사도가 신앙의 여인들뿐만 아니러 모든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선별하여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들이기 때문에 올바른 진리와 사랑 가운데 마귀, 사탄, 어둠의 세력들에게 붙잡힌 이단들과는 완전히 구별된 삶을 살아서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실 때까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사랑과 은혜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와 지도자들과 동료 신앙인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