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과의 교감, 순박한 상상력
= 손영종의 <진기명기 소나무들>을 읽고 -
권대근(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산림수필은 자연과 같은 삶, 자연에 닮아가는 삶, 자연스러운 삶에 대한 흔적 남기기다. 문학의 존재 가치는 삶의 흔적이고, 작가의 체온이 만인이 공감할 만한 흔적으로 서려 있을 때 가치를 발한다. 이런 측면에서 당선작은 그 쾌를 같이한다. 모든 문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그러하듯 문학은 끊임없는 깨달음을 이루어가고, 감춰진 사실들을 밝혀내는 일이며, 그를 수용하는 과정이다. 바람이 스치면 물결이 일렁이듯 인간도 어떤 사물을 접할 때, 감정이 인다. 미적 정서의 발현이다. 여기에 자기를 묻는다는 것, 어떤 사물에 취하는 것, 그것으로부터의 결과가 바로 수필이다.
손영종의 <진기명기 소나무들>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당선자가 ‘지금, 현재, 여기’를 지향하면서 ‘있어야 할 것’들에 관심을 놓고, 수필의 테마를 ‘장흥숲 몽유송원’으로 설정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란츠 알트가 생태학과 경제학간의 결합이라는 문제의식을 단순한 이론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 접목시키고 있는 차원에서 손영종이 생태에 주목한 것은 당연한 처사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 환경의 관점이 아닌 소나무의 삶과 인간의 삶을 동일한 가치선 상에 놓고 소나무들에 스토리를 입힌 장흥숲 체험을 통해 손씨는 생태의 관점으로 ‘생태의 법칙’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는 수필가의 의식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필은 생태문학의 가능성을 확보함으로써 수필의 위상은 물론 수필가의 위상도 높일 수 있다. 왜냐하면 문학에서 인식이 없다는 것은 영혼이 빠져나간 신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태적 세계관 속에서 손영종의 관심이 생태이야기로 향하는 것은 작가적 사명을 다하는 일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사랑으로 변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태와 생명에 대한 사랑이 절실한 이때, 손영종이 일반 숲의 한계를 뛰어넘는 좋은 숲 이야기를 통해 자연의 원형적 상징이기도 한 나무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는 것은 우리 수필가들이 본질적 문제에 눈을 떴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산행을 하다 보면 목판에 시가 새겨진 것은 가끔 본다. 그러나 이렇게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들을 열거한 것은 처음이다. 산마다 특색이 있는 이야기가 있고, 아름다움과 역사가 있다. 아름드리나무를 지나가는 풍경처럼 우람하고 우직하며 장엄하게만 볼 게 아니라 문학 속 얘기와 비유하며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 나무와 숲, 바위, 계곡에 담긴 역사도 이해하고, 설화나 문학 속 이야기와 연결된 것들이 소개된다면 산의 특징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산은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 그대로를 감상하게 하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으나 산행이 이제는 국민의 일상놀이가 된 만큼 가족과 왔을 때 대화할 거리가 많은 숲이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진기명기 소나무들> 중에서 -
이 수필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작가가 대상을 습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관심으로 가지고, 새로움을 찾아내려고 각고의 노력을 해나간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관찰 고찰 통찰 성찰을 통해서 자아 심성을 드러내며 대상의 완상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소나무의 의미를 인생의 이해와 결부시켜냄은 곧 인생을 폭넓게 해석하려는 생활인의 몸짓이다. 당선자의 창작의도는 세상의 모든 대상을 그냥 볼 게 아니라 문학 속의 이야기와 비교하면서 보자는 것이다. “나무와 숲, 바위, 계곡에 담긴 역사도 이해하고, 설화나 문학 속 이야기와 연결된 것들이 소개된다면 산의 특징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주장한다. 사물을 스토리와 함께 대할 수 있었으면 대상의 특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인간적인 소망을 숲탐방을 통해서 갖는다. 인생 저편에서 사물을 통해 사상을 관조하고 거기에서 지혜를 터득하는 이야기를 수필화하는 작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손영종의 글이 실존적이란 말이다.
이 수필은 구운몽에서 양소유와 인연이 된 여덟 여인처럼 여덟 그루의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그에 맞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숲의 모습이 자신만의 느낌으로 잘 표현되어 감동을 준다. 자연을 땅의 마음에 견주어 표현하는 것은 당선자의 문학적 잠재력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이런 자연에 대한 독특한 관심과 문학적 사유는 일상을 지나가는 관성이 아니라 창조적 존재로 끌어올리기 위한 의지의 확산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환영할 만한 일이다. 손영종은 색다른 숲의 풍경을 표현하는 수필을 써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우리 국민의 가족 놀이문화도 한 단계 업그래이드 시키고자 한다. 그런 고로 사물 속에서 진리를 발견해 내려는 그의 의지는 가장 뜻 깊은 삶의 창조적 기능에서 나온다고 하겠다.
<진기명기 소나무들>은 한마디로 숲에서 특이한 소나무를 보고 느낀 정서의 문학적 형상화가 빛나는 수필이다. 그는 자연을 끌어들여 순수하고 아름다운 꿈의 세계를 아련히 그리워하는 낭만적 분위기도 연출하면서, 자연 자체에 눈길을 고정시키지 않는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연을 관조하고 거기서 우리 숲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사물을 포착하여 관조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그것은 곧 현실의 삶에 투사된다. 이 수필의 제재인 ‘진기명기 소나무’는 자연과 문학의 콜라보를 지향한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소나무를 보아서 그런지 더 자세하게 보게 되고 여러 자태에 빠져든다. 나를 보고 있는 소나무들이 나를 양소유로 착각하는지 방긋거리며 와르르 달려드는 느낌도‥….’라는 표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대상과 교감하는 순박한 상상력의 한 단면이 우리 삶을 살찌우게 할 것 같다. 이를테면 자연의 대상 앞에 선 작가는 자연의 완상을 즐기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진지한 모습의 철학자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수필은 전혀 교시적인 분위기를 주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 교시라는 문학적 기능을 손색없이 수행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