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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서대장(서은철목사)
새 시대엔 삶의 원리와 원칙대로 ... 에스라7:1-10
주신 말씀 에스라7:1-10절을 중심으로 새시대엔 삶의 원리와 원칙대로 살고 살아도 되게 하고 살아야만 하는 시대가 되기 원합니다.
정권교체보다 시대교체를 독재와 부정한 정권의 퇴출보다 부동산값의 안정을 남북의 교류협력보다 안보무능이라도 말로만 하는 반공을 택한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우려할 만한 일은 첫 번째 인사부터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어느 정권의 대변인이 세상에 선거에서 진 상대당을 지지한 국민들을 위로는 못할망정 반국가적이라고 전근대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을 중용할까요?
마치 조선시대에 자기편이 아니면 모두 숙청해야 한다는 사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역사가 후퇴해도 되는 것일까요?
우려와 걱정이 현실화되는 것 같아 무척이나 조심스럽습니다.
22년 동안 국토방위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청춘을 바친 사람으로 군사정권 때 선거철만 되면 상대당 후보를 간첩이나 빨갱이로 몰아 부치던 그 버릇이 아직까지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조국의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그래도 선거는 끝났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하나님이 뽑는다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는 국민들이 당선자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국민화합을 이루고 다시 한 번 경제발전과 사회질서유지 서민경제의 회복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어 주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한 정권인수인계 시점에서 우리가 이루어야할 새해, 새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 말씀을 통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어떻게 새 시대엔 삶의 원리와 원칙이 준수되는 정의 사회가 구현될까요?
첫째로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합당한 지도자를 주신 줄 믿으라.(1)
1절에서 말하는 '이 일 후'란 고레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전재건을 완료하여 봉헌식을 거행하고 또 유월절을 준수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약 58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된후 60여년이 지난 때이므로 포로 생활을 경험하고 성전 재건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이미 팔레스틴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이방인들과 통혼하며 포로 귀환시 가졌던 신앙의 감격과 열심을 상실한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배곯았던 시절을 이야기하면 그러면 라면 먹으면 되지 라고 가난을 모르고 엉뚱한 말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70년대 유신과 긴급조치에도 불구하고 독재정권에 항거하지 못하고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며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보장하다가 급기야 민주화 과정에서 등 돌리고 떨어져 나가 안티기독인들을 대량 생산한 것과 같은 양상이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민족과 통혼하며 이방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혼합되어 순수성을 잃어가므로 민족적 위기에 다시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수만리 떨어진 페르시아 땅에서 아론의 16대 후손으로써 제사장인 동시에 율법에 능통한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제2차 포로귀환의 영도자가 되어 귀환하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에스라의 주도하에 신앙개혁을 이룸으로써 민족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 이름이 뜻이 '하나님이 도우시다'인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가장 적절한 때에 적절한 종을 보내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시며, 경책하시며, 일으켜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가운데 에스라와 같은 종들을 세우시고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간섭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한 가족이 한 민족이 될 때까지 400여년을 참으시다가 때가 이르매 마침내 모세를 불러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불러내시고 스스로 그들을 백성 삼으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나라를 다윗으로 건설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영광 받으신 후 바벨론 포로 70년의 기한이 차자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 주셔서 일차로 귀환하게 한 후 이제 에스라를 지도자로 삼아 2차포로 귀환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교회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구원 사역을 만방에 전하게 하기 위하여 율법과 철학에 능통하고 열정을 가진 바울 사도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 놀라운 복음 전파의 성과를 이루어 마침내 313년 로마 교황은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놀라운 시대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나라를 위해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를 보내 세워 주십니다.
엡4:11-12 "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함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가 아무리 악하고 사단이 여러 방법으로 무너뜨리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런 모든 사단의 역학을 물리치고 성도들과 그 공동체를 말씀과 의의 길로 인도할 자를 지도자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귀히 사용하시고 온전히 쓰시는 영적지도자로 세워지기 위해 부단히 준비하고 노력할 때 반드시 주님의 때에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인재가 되기 위해 인격을 도야하고 학문과 지식을 함양하되 무엇보다 먼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이 일을 합당한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어떻게 새 시대엔 삶의 원리와 원칙이 준수되는 바른 나라가 이루어질까요?
둘째로 신앙을 보전하고 계승해야 합니다.(2-5)
2-5절은 에스라의 출신 배경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지도자의 자격문제입니다.
한국교회의 목사가 되려면 해 교단에서 운영하는 신학대학원 목회자 양성과정을 거쳐 강도사 고시를 거쳐 목사로 안수됩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후손으로써 14대 조상인 비느하스는 출애굽 당시 싯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암 여인들과 음행하였을 때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그들을 진멸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평화의 언약 곧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을 받은 자입니다.
이처럼 에스라는 혈통적으로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신앙적 모범을 가진 가문의 후예로써 자격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에스라의 출신배경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어느 민족 , 어느 나라 든지 간에 훌륭한 전통과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스라 가문은 조상들은 아론의 장자들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구속사적 입장에서 자신과 후손의 올바른 신앙의 전통을 보전하고 계승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웠고, 보전하기 위해 많은 손해와 굴욕을 참고 이겨냈던 것입니다.
성도가 말씀과 진리 가운데 훌륭한 신앙적 모범을 가진 가문이 되기 위해서는 신앙을 보전하고 계승하기 위해 자신의 신앙을 보수하고 후손들을 신앙으로 훈련시켜 바른 믿음의 전통을 계승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아들을 주일에 학원에 보낸다거나 장로의 아들이 주일 성수를 하지 않고 권사의 아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제 신앙 제가 지키는 것이라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부모님은 안계신지요.
목사의 설교가 좋으면 오라고 하지 않아도 오고 가라해도 가지 않는다고 모든 책임을 목사에게 지우고 권리는 교인들이 누리겠다고 하는 성도는 없으신지 자신들을 돌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제한국 교회가 100년이 넘어 삼사오대의 신앙적 전통을 가진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적 전통을 가진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신앙적 전통을 잘 계승하고 , 발전시키기보다 오히려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첫째는 부모된 자들이 믿음의 본 신앙의 본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교회가 세상에 본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잘못된 일을 보고 권면과 징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너무 무거운 짐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세상의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지고 맙니다.
분석을 하다보면 수 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그런 패인을 분석하는 것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버이 된 먼저 믿은 자들이 올바른 신앙적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버이된 우리 성도들이 올바른 신앙적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하며(신6:7), 늙어서도 떠나지 않을 마땅히행해야 할 길을 가르치고(잠22:6),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해야 한다(엡6:4) 합니다.
분석이 끝났으면 단점을 제거하고 장점을 살려서 힘차게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 합니다. 경제인이 국가를 잘 운영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자기성만 쌓다가 마치고 맙니다.
부모들은 백마디 말보다 신앙의 실천으로 자녀들에게 신앙적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신앙을 잘 보전하고 계승하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전통을 이어가는 일이 아니라 가문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은 테필린이라 해서 모세오경과 이사야등 구약성경을 암기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아니면 모세오경과 족보만 암송하면 됩니다.
테필린은 마치 우리나라 판소리 완창하듯 전체 내용을 소리 내어 암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성도의 가문에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약속하였습니다. 출20: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문의 인물을 이 민족과 나라와 세계를 위한 일꾼으로 세우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신앙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보존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일을 위해 나아가는 기준은 바로 신앙의 전통을 이어받아 바른 생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신앙을 잘 보전하고, 그것을 잘 계승 발전시켜 물려줌으로써 후대에게 가장 위대한 유산을 남겨 주는 성도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축원 합니다.
어떻게 새 시대엔 삶의 원리와 원칙이 준수되는 정의 사회가 구현될까요?
셋째로 위기에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기회가 됩니다. (7-10)
7-9절은 에스라 주도하에 이루어진 제2차 포로 귀환 기사입니다.
제2차 포로귀환은 페르시아 아닥사스왕 7년인 BC458년 이루어졌습니다.
제1차 포로귀환시 고레스왕은 포로귀환 칙령을 반포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된 자는 다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것을 명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자는 5만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라고 자유를 선포했음에도 유다백성이 귀환하지 않은 것은 바벨론에서 이루어 놓은 모든 삶의 기반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서 황무지를 개척하고 수확할 때까지 자기들이 지금 있는 곳보다 척박한 땅에서 고생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많은희생이 동반되는 일이었습니다. 안전하고 평안한 삶이 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차일피일 하다가 80년이 지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방에 머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징계의 기간이 지나면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다시 나라를 재건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스라엘로 돌아가도록 하나님의 섭리로 발생한 사건이 에스더 사건입니다.
아닥사스다의 선왕이었던 아하수에로 왕때에 하만이라는 아말렉 자손이 페르시아 내의 유대인을 멸절하려고 음모를 꾸려 이스라엘 자손들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왕비로 신분을 숨기고 있던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신앙지도를 받고 헌신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들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는데 이를 기념해 부림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을 깨닫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일어나서 에스라를 지도자로 세우고 2차 포로귀환을 하게 된 것입니다.
현실의 달콤함에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인생 채찍과 인생 막대기로 징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형 통하는데 유독 성도들만이 시련을 당하는 경우엔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지 않기 때문에 회개하고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당하는 고난이나 실패 위기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고 깨끗이 씻어 더 귀하게 더 높이 사용하기 위한 사랑의 증거인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로 부르셨기에,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고 세속에 찌들어 돈과 물질과 명예와 쾌락에 빠져 살며, 자신의 육체의 이익만을 위해 저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하시며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7-8절에서 드디어 에스라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다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는 뜻과 함께 덜 중요한 곳에서 중요한 곳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세상가치와 다른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계시기에 폐허가 같이 되었고 보잘 것 없을 지라도 화려하고 권세와 물질이 풍성한 페르시아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가는 신앙의 길을 말합니다. 우리가 가는 신앙의 길은 세상적으로 보면 내려가는 길이요 자기를 죽이는 길이요 포기하는 길처럼 보입니다.
자기의 모든 세상적인 유익을 포기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 합니다.
빌3: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이루어 놓은 모든 삶의 기반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이 세상의 모든 유익을 포기하고 새 예루살렘을 향해 힘차게 출발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9절을 보면 이들은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나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만 4개월에 걸쳐 1500km를 어린이 노약자들고 함께 온 것입니다. 당시 페르시아가 정치적으로 불안정하여 이곳 저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도적이 창궐하여 귀환자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대적과 매복자들의 위험을 잘 극복하고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그들의 여정을 지키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멀고 험한 인생이 여정일지라도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수천 수만km의 여정 속에서 안전하고 평안하며 많은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 많은 함정과 올무와 매복과 위기와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는 여호아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며 흩어져 있던 구약성경을 편집하여 최초로 구약성경 39권을 집대성하는 놀라운 성과를 얻게 됩니다.
10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보내신 뜻은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을 말씀을 통해 회복시키고자 함이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족속과 통혼하며 선민으로써 바른 삶을 살지 못하였던 것은 스룹바벨이나 예수아 학개 선지자 사후에 바른 영적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고 준행하게 함으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회복되게 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삶의 원리이며 원칙입니다.
말씀을 떠나 스스로의 방법으로 이 세상을 살려하면 안됩니다.
성도가 악과 멸망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에 힘써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성도는 말씀을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어떻게 새 시대엔 삶의 원리와 원칙이 준수되는 정의 사회가 구현될까요?
첫째로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합당한 지도자를 주신 줄 믿으라.(1)
둘째로 신앙을 보전하고 계승해야 합니다.(2-5)
셋째로 위기에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기회가 됩니다. (7-10)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형통한 것은 지극히 일시적인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는 신호탄인줄 알아야 합니다.
마하르 쇼페르 מהר ספר익숙한 학자가되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생명을 걸고 정하기에 전무하는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칭찬받고 상급받는 행복자가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