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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에 있는 한 딸기농장에서는 행잉베드 방식으로 재배한 ‘하늘딸기’를 수확하였다고 합니다. 행잉베드재배란 딸기 흙이 들어간 판 즉, 베드에 심어서 그 베드를 천정에 줄로 연결하여 자동으로 올렸다 내렸다하며 재배하는 것입니다. 그냥 바닥에 심는 딸기재배와는 달리 작업자 통로가 있는 곳에 베드를 더 설치하기 때문에 시설 이용율과 토지 이용율이 184%정도 더 늘어나며 그로 인해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작업자의 신체조건에 따라 딸기 베드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해 농사일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재배법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칠곡군 최초로 행잉베드 방식으로 딸기를 재배하는 이 딸기농장 대표는 2019년 고향인 칠곡군으로 귀농한 초보 농업인이라고 합니다. 이 농장대표인 김씨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으로 귀농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2018년 화물차 운전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를 다쳐 귀농을 결심했다”며 “휠체어를 타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 행잉베드 재배법이라는 것으로 딸기 농사를 지으면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부가가치가 높은 것에 매력을 느껴 딸기 농사를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최근 여러 시골지역에 귀농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농산물 생산과 판매에 첨단적인 방법과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는 것을 뉴스를 통해 보게 됩니다. 어떻게든 단위면적에서 더 큰 열매를 맺고 더 많은 수확을 내어서 다각적인 판매로 영업이익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오늘 말씀을 보면서 과연 우리의 믿음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 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두로지역 수로보니게의 여인은 딸의 신병의 문제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귀신들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할 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에게도 어려움을 안겨다주는 이 귀신들린 딸을 보면서 예수님을 찾아오는 그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 이제는 믿음의 결과물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이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우리의 삶속에서 항상 좌절과 불평과 걱정과 염려로만 살아간다면 정말 우리는 어떤 믿음의 열매도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과 그 믿음의 열매를 얻는 방법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도 제대로된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으로 매일매일 복된 인생, 행복한 인생, 기적을 경험하며 일상에 은혜가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의 결실을 얻는 조건, 첫째는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24절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님께서 게네사렛지역에서 사역하시고 다시 떠나 두로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두로에 살고 있는 헬라인이며 수로보니게족속에 속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예수님께서 그 곳에 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곳에 계신 것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이 계신 지 모르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다면 오늘 본문의 이 치유의 기적은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어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야하고 그래서 삶속에서 예수님이 드러나야 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삽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 세상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삶의 색깔이 달라지게 되는데 그것이 축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 내게 유익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축복의 길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 해가 되는 사람을 만나면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평생 고생하며 살 수도 있고 심지어 한번 잘못된 만남으로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좋은 만남의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한 소년이 물에서 수영하다 힘이 빠져 죽기 일보 직전에 그 근처 농부의 아들에 의해 구출됐습니다.도움을 받은 소년은 청년이 된 다음 농부의 아들을 찾아가 옛 일을 감사하며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그러자 농부의 아들은 의학공부를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습니다.이 이야기를 들은 청년의 부모는 돈을 대어 그 농부의 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농부의 아들은 의학공부를 하여 ‘페니실린’이라는 약을 발견하고 나중에는 노벨 의학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노벨의학상까지 받은 위대한 의사가 된 농부의 아들은 유명한 의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입니다.한편 수영을 하다가 구조받아 살아난 청년은 훗날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 정치인이 되었는데 바로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 윈스턴 처칠이 2차 세계대전 중 폐렴에 걸려 죽음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때에도 자신이 경제적 도움을 주어 의사가 된 농부의 아들이 발견한 페니실린을 처방받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잠언 13장 20절입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남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님의 만남입니다. 어떤 부모밑에서 태어나서 어떤 분위기의 가정환경에서 자라느냐 성장에 부모님이 어떤 영향을 끼치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는 형제의 만남입니다. 가족중 형제는 정말 서로에게 큰 영향력을 끼칩니다. 서로 협력하고 도우며 서로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지 없는 지는 가족중 형제우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셋째는 친구의 만남입니다. 어떤 친구들을 사귀며 친구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길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배우자의 만남입니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서 배우자에게 어떤 가치관을 나눠주고 서로 영적인 부분과 육적인 부분과 어떤 것이 오고 가는 지 정말 영적으로 힘이 되고 육적으로 힘이 되는 삶이 되는 지는 어떤 배우자, 어떤 가치관의 배우자를 만나서 생활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런 만남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좋은 만남이 되어야하고 좋은 만남이 되도록 잘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만남을 뛰어넘는 진정 인생의 가장 소중한 위대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사람이 인생 속에서의 만남에 별로 안 좋은 부모님을 만났어도 매번 돈만 꾸어 달라는 형제가 있어도 내 돈 떼어먹고 사기 치는 친구를 만났어도 날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직장 동료가 있어도 이 모든 만남 속에서 내가 아쉽고 손해 본 모든 상처가 있어도 하나님 한 분 잘 만나면 이 모든 상처들이 싹 씻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한 번 잘 만나면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에 있었던 모든 잘못된 만남을 완전히 해결하고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서운하고 상처가 남았던 모든 만남을 한 순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 잘 만나고 형제 잘 만나고 친구와 직장을 잘 만나고 배우자를 잘 만나 세상사는 동안 승승장구, 좋은 일만 가득하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종종 홈런치며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평생을 사는 동안 하나님 만나지 못하면 그 모든 만남이 헛된 것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를 찾아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만나면 사람과의 만남에서 받은 모든 상처와 아픔을 싹 씻으시고 회복하는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만난 그 어떤 좋은 만남을 다 합쳐도 하나님 만나는 이 한 사건만도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꼭 만나야 할 우리 주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것은 비극인 것입니다. 왜냐면 인생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만남에서 다 실패했을지라도 예수님 한번 잘 만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부모님이 다 일찍 돌아가시고 형제가 없어고 만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폭행을 당했다든지, 배우자를 만난 것이 실패여서 결혼을 망치고 가정이 갈등만 가득하다고 해도 다 괜찮습니다. 이 모든 만남은 단 한 사건으로 보상받는데 바로 그것은 우리 주님 예수와의 만남으로 보상받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 만나면 모든 인생의 실패가 다 회복되고 모든 관계의 불안이 해결됩니다.
이사야 55장 6,7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열매로 거둬들이는 것은 주님을 만날 때 가능합니다. 내가 잘 믿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알고 있다고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내 믿음가운데 찾아오시고 그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의 믿음이 이제 결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안에 있고 주님과 동행할 때 주님께서 열매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삶가운데 예수님 찾아오시기를 기도하고 그 찾아오신 예수님을 매일매일 만나는 체험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결실을 얻는 조건, 둘째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25,26절입니다.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오늘 본문에 등장한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리고 귀신을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 지 그 자신이 몰랐겠습니까? 얼마나 사람들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자신의 가족사를 들춰내는 것이 부끄럽겠습니까? 더구나 오늘 본문을 보니 이 여인은 원래 헬라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그리스지역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지역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그리스사람, 그렇다면 그에 대한 멸시의 시선이 그 당시 있었을 것입니다. 또 그는 이스라엘지역에서 살면서 수로보니게 족속에 속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수로보니아족속은 수리아지역 즉 북쪽 갈릴리지역보다 더 위쪽으로 이스라엘사람들이 이방인들과 혼혈족으로 이루어서 다문화 가족형태를 이루며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당시 정통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말을 섞는 것도 꺼려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자리에서 식사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정말 상상치도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꺼려하고 죄인취급하고 동물취급하며 인간대접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해결해야할 일을 들고 우리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만이 그 해결자되실 수 있다고 믿으며 은혜와 기적을 찾아서 주님을 만나러 나온 것입니다. 치유를 기대하는 헬라인 수로보니게족속의 여인을 보면서 정말 간절함이 보여지고 정말 예수님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며 맡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47편 8절입니다.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시편 89편 9절입니다.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미국 워싱톤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었습니다. 1시간 가량이면 도착하는 거리인데 이상하게 2시간 30분동안 계속 비행중이었습니다. 안개 때문에 뉴욕 J.K.케네디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공중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결국 기내에 채웠던 연료는 다 떨어졌고 기내는 추워졌습니다. 비행기는 매사추세츠와 콜로라도주 중간 지점에 있는 조그마한 브래들리 공항에 비상착륙했습니다.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최첨단의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항공기와 베테랑 기장이라고 할지라도 짙은 안개에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물론 바람 구름, 안개, 이슬, 비 등 자연을 조종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허약한 인간과 과학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정말 제대로 일상적 삶을 살지 못하는데 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부족한 지 깨닫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시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능력, 나의 지식, 내가 내세울 것이 있어도 그것이 우리의 의지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조건을 다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게 생긴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대부분 우리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생각입니다. 특히 이 문제가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고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면 더욱 함께 기도해달라는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주님께 우리를 내어드리는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하는 길은 하나님께 우리들의 어려움을 맡기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모든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며 축복의 열매를 맺고 은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의 결실을 얻는 조건 마지막 셋째는 수모를 참고 부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28절입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경험한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대화는 정말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이 여인에 대한 은혜를 비유로 주면서 그 당시 정말 하찮은 동물로 비유되었던 ‘개’를 비유하는 것을 볼 때 정말 충격적입니다. 더욱이 이 충격적인 단어의 사용을 예수님께서 먼저 시작하셨다는 것이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기적적인 역사를 행할 이유가 없다까지 말씀하시는 더 큰 충격입니다. 오늘 말씀 마가복음 7장 27절을 보십시오.
마가복음 7장 2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수로보니게족속 여인의 딸에게 치유의 역사를 행할 이유가 없을 것을 너무나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보면 자녀들이 아직 배부르지 않는데 자녀의 떡을 취하여서 개들에게 던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자녀들의 떡은 유대인들 먼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눠줄 은혜를 뜻하는 것이고, 개들에게 주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그 떡을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은혜를 간구하러 나왔는데 자신에게 주는 것을 개에게 주는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화가 날까요?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너무나 심각한 인신모독적인 언사를 하십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이런 말을 하실 수 있을까 의아하지만 이 여인은 이 말을 통해 정말 자신의 믿음을 보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부족함,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그래서 예수님의 기적이 필요함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이 예수님의 시험을 통과하고 결국은 딸이 치유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문제의 해결을 받고 자신이 도움이 얻어야만 하는 간절함이 있기에 이런 모독적인 이야기를 듣고도 예수님께 매달려야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든 결국은 이 문제의 해결자는 예수님이시다라는 확신이 있기에 이젠 내가 의지하고 매달릴 것은 그 분밖에 없다고 고백하며 간절하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인격모독을 당해도 무시와 멸시를 당해도 주님에게는 어떻게든 매달려봐야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결국 이런 심한 말을 듣고서도 매달리는 이 영혼, 이 영혼을 예수님께서는 살리십니다. 결국 이런 모진 말을 하면서도 영혼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경기도 분당에서 청년부를 잠시 맡아 청년부를 선교하는 청년부로 변화시키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전임 전도사님이 사임하고 후임 전도사님이 구해지기까지 약 6개월정도만 학생부와 더불어 청년부까지 함께 맡았습니다. 저는 그 청년부를 맡자마자 맡은 청년부의 대부분 인원을 데리고 그 교회 최초로 선교여행을 다녀오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 당시 돈으로 약 3천만원 가까운 돈을 여름 행사로 쓰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단기선교를 여름에 다녀오기 위해 청년부의 예배와 성경공부 주중프로그램까지 모두 선교중심으로 바꿔서 진행하며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단기선교를 위한 각종 선교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함께 선교훈련을 받던 대학교 1학년 이제 막 대학을 들어간 새내기 청년 하나가 온갖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함께 선교탐방을 가려고 하는데 자신은 집이 멀어서 오는 길에 서울쪽의 자기 집앞에 내려주지 않으면 못가겠다고 하고 전도사님이 집에 돌아갈 때 내려주시지 않는다고 했다며 자신처럼 멀리서 오는 여러 친구들에게 집에 돌아가는 것이 불편하니 모두 가지 말자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그 선교탐방을 다녀오면 저녁 9시 혹은 10시쯤 될 것이라 대중교통이 여전히 다니고 있어 각자 교회에서 헤어지면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장담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진짜 늦어져서 대중교통편이 끊어지면 그 때 대책을 세워서 모두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청년은 막무가내로 가기 싫다며 이미 가기로 하고 준비하고 있는 여러 청년부 지체들 중의 몇 명에게 PC방이나 가자고 하며 완전 선교탐방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두면 큰 일 나겠다 싶어 저도 그 청년에게 “이 더러운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외쳤고 우왕좌왕 갈까말까 고민하던 여러 청년들은 갑자가 분위기가 쏴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 새내기 청년 형제는 깜짝 놀라 뛰쳐나갔습니다. 저는 그 형제를 급하게 따라가서 이런 저런 이유를 듣고 이런 저런 우리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다둑거려서 함께 인천항에 들어와 있는 미션선박 둘로스호 선교탐방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이후로도 이 형제는 훈련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혼란을 일으키고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을 방문했을 때도 큰 문제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단기선교에서 가장 힘들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선교여행을 다녀온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때의 일을 기억하며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주며 선교훈련시켜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선교여행을 다녀왔고 한 번은 장기적으로 선교를 나가서 수년간 어려운 나라를 찾아다니며 선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큰 충격요법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통해 정말 부족하고 철없던 신앙이 돌아오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볼 때 진짜 이런 말을 절대 해서는 안되겠지만 어느 때에는 정말 그 사람에게 필요한 치료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의 여인은 “개”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소리를 듣고서도 그렇다고 고백할 수 있는 지 그래서 더 주인이 주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지 정말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무시당해도 내가 수모당한다고 해도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버티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는 기적의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한 치유를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나를 무시한다고 해도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에게 매달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수로보니게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께 온전히 매달리고 온갖 수모와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들어도 더 중요한 것이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실 기적,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알고 버티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면 뭐라고 나에게 말씀하셔도 예수님안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는 것이 내가 살 길이고 우리 가족이 살 길이고 우리 민족이 살 길이다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말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내 삶에 들어오셔서 나의 모든 것을 만져주시기를 기대하십니까? 나의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나의 자존심이 깎이고 나의 치부가 드러나도 솔직히 기도하며 해결하기를 소망하십니까? 내가 의지하는 예수님께서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나를 멸시하며 나에게 인격모독적인 언행을 하시며 나를 모질게 대하셔도 예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시고 온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신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예수님에게 매달려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기에 수모와 멸시를 인내하며 예수님만 붙들고 계십니까?
나는 멸시당하고 인격모독당하고 기도의 응답을 즉각 받지 못하고 분명 예수님의지하고 있는데 주님은 나를 무시하는 듯 해도 여전히 주님만 의지하십니까?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주님이 어떻게 우리를 대접하셔도 주님이 주인이라는 것의 믿고 의지하며 주님께서 기적을 언젠가는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믿고 기다리며 온갖 고난과 멸시와 수모를 인내하며 기다려야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며 승리의 날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