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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진심장구하(盡心章句下)
▣ 진심장구하(盡心章句下)
『凡三十八章이라』
『 모두 38장(章)이다.』
『○ 맹자 ; 진심하 ; 제1장+1』
『○ 맹자 ; 진심하 ; 제2장+2』
『○ 맹자 ; 진심하 ; 제3장+3』
『○ 맹자 ; 진심하 ; 제4장+4』
『○ 맹자 ; 진심하 ; 제5장+5』
『○ 맹자 ; 진심하 ; 제6장+6』
『○ 맹자 ; 진심하 ; 제7장+7』
『○ 맹자 ; 진심하 ; 제8장+8』
『○ 맹자 ; 진심하 ; 제9장+9』
『○ 맹자 ; 진심하 ; 제10장+10』
『○ 맹자 ; 진심하 ; 제11장+11』
『○ 맹자 ; 진심하 ; 제12장+12』
『○ 맹자 ; 진심하 ; 제13장+13』
『○ 맹자 ; 진심하 ; 제14장+14』
『○ 맹자 ; 진심하 ; 제15장+15』
『○ 맹자 ; 진심하 ; 제16장+16』
『○ 맹자 ; 진심하 ; 제17장+17』
『○ 맹자 ; 진심하 ; 제18장+18』
『○ 맹자 ; 진심하 ; 제19장+19』
『○ 맹자 ; 진심하 ; 제20장+20』
『○ 맹자 ; 진심하 ; 제21장+21』
『○ 맹자 ; 진심하 ; 제22장+22』
『○ 맹자 ; 진심하 ; 제23장+23』
『○ 맹자 ; 진심하 ; 제24장+24』
『○ 맹자 ; 진심하 ; 제25장+25』
『○ 맹자 ; 진심하 ; 제26장+26』
『○ 맹자 ; 진심하 ; 제27장+27』
『○ 맹자 ; 진심하 ; 제28장+28』
『○ 맹자 ; 진심하 ; 제29장+29』
『○ 맹자 ; 진심하 ; 제30장+30』
『○ 맹자 ; 진심하 ; 제31장+31』
『○ 맹자 ; 진심하 ; 제32장+32』
『○ 맹자 ; 진심하 ; 제33장+33』
『○ 맹자 ; 진심하 ; 제34장+34』
『○ 맹자 ; 진심하 ; 제35장+35』
『○ 맹자 ; 진심하 ; 제36장+36』
『○ 맹자 ; 진심하 ; 제37장+37』
『○ 맹자 ; 진심하 ; 제38장+38』
*맹자 ; 진심하 ; 제1장
▣ 제1장(第一章)
『孟子曰 不仁哉라 梁惠王也여 仁者는 以其所愛로 及其所不愛하고 不仁者는 以其所不愛로 及其所愛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인(仁)하지 못하다, 양혜왕(梁惠王)이여! 인자(仁者)는 그 사랑하는 바로써 사랑
하지 않는 바에 미치고, 인(仁)하지 못한 자는 사랑하지 않는 바로써 사랑하는 바에 미친다.”』
『親親而仁民하고 仁民而愛物이 所謂以其所愛로 及其所不愛也니라』
『 친척을 친(親)히 하고 백성『[사람]』을 사랑하며, 백성을 사랑하고서 물건을 사랑함이 이른바 사랑하는 바로써
사랑하지 않는 바에 미친다는 것이다.』
『公孫丑曰 何謂也잇고 梁惠王이 以土地之故로 쭺爛其民而戰之리가 大敗하고 將復之하되 恐不能勝이라 故로 驅其所愛子弟하여 以殉之하니 是之謂以其所不愛로 及其所愛也니라』
『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양혜왕(梁惠王)이 토지의 연고 때문에 그 백성을 미란(쭺爛)시켜 싸우게 하였다가 대패(大敗)하고는, 장차 다시 싸우려 하되, 이기지 못할까 두려우므로 그 사랑하는 자제(子弟)를 내몰아서 여기에 희생시켰으니, 이것을 사랑하지 않는 바로써 사랑하는 바에 미친다고 하는 것이다.”』
『梁惠王以下는 孟子答辭也라 쭺爛其民은 使之戰鬪하여 쭺爛其血肉也라 復之는 復戰也라 子弟는 謂太子申也라 以土地之故로 及其民하고 以民之故로 及其子하니 皆以其所不愛로 及其所愛也니라』
『○ 此는 承前篇之末三章之意하여 言 仁人之恩은 自內及外하고 不仁之禍는 由疏逮親이니라』
『 양혜왕(梁惠王) 이하는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신 말씀이다. 그 백성을 미란(쭺爛)시켰다는 것은 백성들을 싸우게
하여 그 피와 살을 미란(쭺爛)시킨 것이다. 부지(復之)는 다시 싸우는 것이다. 자제(子弟)는 태자(太子) 신(申)을 이른다. 토지의 이유 때문에 그 백성에게 미치고, 백성의 이유 때문에 그 아들에게 미쳤으니, 이것은 모두 사랑하지 않는 바로써 사랑하는 바에 미친 것이다.』
『 ○ 이는 전편(前篇)의 끝 세 장(章)의 뜻을 이어서 인인(仁人)의 은혜는 안으로부터 밖에 미치고,
불인(不仁)의 화(禍)는 소원(疏遠)함으로부터 친척에게 미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2장
▣ 제2장(第二章)
『孟子曰 春秋에 無義戰하니 彼善於此는 則有之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춘추(春秋)》에 의로운 전쟁이 없었으니, 그 중에 저것이 이것보다 나은 것은
있다.”』
『春秋에 每書諸侯戰伐之事에 必加譏貶하여 以著其擅興之罪하고 無有以爲合於義而許之者라 但就中彼善於此者則有之하니 如『召陵之師주:소릉지사』之類가 是也니라』
『 《춘추(春秋)》에는 제후(諸侯)들이 전벌(戰伐)한 일을 쓸 때마다 반드시 비판과 폄(貶)을 가하여 그 멋대로 군대를 일으킨 죄를 드러내었고, 의(義)에 합한다고 여겨 허여 한 것이 없다. 다만 그 중에 저것이 이것보다 나은 것은 있었으니, 예를들면 소릉(召陵)의 군대와 같은 유(類)가 이것이다.』
『征者는 上伐下也니 敵國은 不相征也니라』
『 정(征)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정벌하는 것이니, 대등한 나라끼리는 서로 정벌하지 못하는 것이다.”』
『征은 所以正人也라 諸侯有罪면 則天子討而正之하나니 此春秋所以無義戰也니라』
『 정(征)은 사람을 바로잡는 것이다. 제후(諸侯)가 죄가 있으면 천자(天子)가 그를 토벌하여 바로잡는 것이니,
이 때문에 《춘추(春秋)》에 의(義)로운 전쟁이 없는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3장
▣ 제3장(第三章)
『孟子曰 盡信書면 則不如無書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서경(書經)》의 내용을 모두 믿는다면 《서경(書經)》이 없는 것만 못할 것이다.”』
『程子曰 載事之辭엔 容有重稱而過其實者하니 學者當識其義而已라 苟執於辭하면 則時或有害於義하니 不如無書之愈也니라』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일을 기재한 내용에는 혹 지나치게 칭하여 그 실제보다 지나친 것이 있으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그 의(義)를 알뿐이다. 만일 그 내용에 집착한다면 때로는 혹 의리에 해로움이 있을 것이니, 《서경(書經)》
이 없는 것이 나음만 못할 것이다.”』
『吾於武成에 取二三策而已矣로라』
『 나는 〈무성편(武成篇)〉에 대해서 두서너 쪽을 취할 뿐이다.』
『武成은 周書扁名이니 武王伐紂하고 歸而記事之書也라 策은 竹簡也니 取其二三策之言이요 其餘는 不可盡信也라
程子曰 取其奉天伐暴之意와 反正施仁之法而已니라』
『 〈무성(武成)〉은 주서(周書)의 편명(篇名)이니,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하고 돌아와 그 사실을 기재한 책이다. 책(策)은 죽간(竹簡)이니, 그 두서너 책(策)의 말을 취하고, 그 나머지는 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하늘을 받들어 포악한 삶을 정벌한 뜻과 정사를 돌이켜 인(仁)을 베푼 법을 취할 뿐
이다.”』
『仁人은 無敵於天下니 以至仁으로 伐至不仁이어니 而何其血之流杵也리오』
『 인인(仁人)은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다. 지극한 인(仁)으로 지극히 불인(不仁)한 사람을 정벌하였으니,
어찌 그 피가 절구공이를 표류하게 하는 일이 있었겠는가.”』
『杵는 췍杵也라 或作鹵하니 楯也라 武成에 言 武王伐紂에 紂之前徒倒戈하여 攻于後以北하여 血流漂杵라하니 孟子言此則其不可信者라 然이나 書本意는 乃謂商人自相殺이요 非謂武王殺之也라 孟子之設是言은 懼後世之惑이요 且長不仁之心耳시니라』
『 저(杵)는 방아찧는 절구공이이다. 혹은 노(鹵)로도 되어 있으니, 방패이다. 〈무성(武成)〉에 말하기를 ‘무왕(武王)이 주(紂)를 정벌함에 주(紂)의 군대 앞에 있던 무리들이 창을 거꾸로 들고서 뒤를 공격하여 패배시켜, 피가 흘러 절구공이가 표류했다.’ 하였으니, 맹자(孟子)께서 이것이 그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러나 《서경(書經)》의 본래 뜻은 바로 상(商)나라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죽인 것을 말했을 뿐이요, 무왕(武王)이 그들을 죽였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맹자(孟子)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후세(後世)의 의혹을 두려워한 것이요, 또 불인(不仁)한 마음을 조장(助長)할까 해서였다.』
*맹자 ; 진심하 ; 제4장
▣ 제4장(第四章)
『孟子曰 有人曰 我善爲陳하며 我善爲戰이라하면 大罪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진(陳)을 잘 치며, 내가 전쟁을 잘한다.’고 하면 그는 큰
죄인이다.』
『制行伍曰陳이요 交兵曰戰이라』
『 항오(行伍)를 통제하는 것을 진(陳)이라 하고, 병기를 서로 가하는 것은 전(戰)이라 한다.』
『國君이 好仁이면 天下에 無敵焉이니 南面而征에 北狄怨하며 東面而征에 西夷怨하여 曰 奚爲後我오하니라』
『 국군(國君)이 인(仁)을 좋아하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는 것이다. <탕왕(湯王)이> 남쪽을 향하여 정벌함에 북쪽에 있는 오랑캐가 원망하며, 동쪽을 향하여 정벌함에 서쪽에 있는 오랑캐가 원망하여 ‘어찌하여 우리들을 뒤에 정벌하는가.’ 하였다.』
『此는 引湯之事以明之하니 解見前篇하니라』
『 이것은 탕(湯)임금의 일을 인용하여 밝힌 것이니, 해석이 전편(前篇)『[양혜왕하(梁惠王下)]』에 보인다.』
『武王之伐殷也에 革車三百兩이요 虎賁이 三千人이러니라』
『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정벌할 때에 혁거(革車)가 3백 양(兩)『[양(輛)]』이었고, 호분(虎賁)이 3천 명이었다.』
『又以武王之事明之也라 兩은 車數니 一車兩輪也라 千은 書序에 作百하니라』
『 이는 다시 무왕(武王)의 일을 가지고 밝힌 것이다. 양(兩)은 수레의 수(數)이니, 한 수레에는 바퀴가 둘이다.
천(千)은 《서경(書經)》〈목서(牧誓)〉의 서(序)에는 백(百)으로 되어 있다.』
『王曰 無畏하라 寧爾也요 非敵百姓也라하신대 若崩厥角하여 稽首하니라』
『 왕(王)께서 말씀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들을 편안히 하려는 것이요, 백성들을 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시자, <상(商)나라 사람들이> 마치 짐승이 그 뿔을 땅에 대듯이 머리를 조아렸다.』
『書泰誓文은 興此小異하니 孟子之意는 當云 王謂商人曰 無畏我也하라 我來伐紂는 本爲安寧汝요 非敵商之百姓也라
하신대 於是에 商人이 稽首至地를 如角之崩也니라』
『 《서경(書經)》〈태서편(泰誓篇)〉의 글인데, 이와 조금 다르다. 맹자(孟子)의 뜻은 마땅히 말씀하기를 ‘왕(王)이
상(商)나라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나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와서 주왕(紂王)을 정벌함은 본래 너희들을 안녕(安寧)히 해주기 위한 것이요, 상(商)나라 백성들을 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시자, 이에 상(商)나라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려 땅에 이르기를, 마치 짐승들이 뿔을 땅에 대듯이 하였다.’ 하신 것이다.』
『征之爲言은 正也라 各欲正己也니 焉用戰이리오』
『 정(征)이라는 말은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각기 자기를 바로잡아주기를 바라니, 어찌 전투를 쓰겠는가.”』
『民爲暴君所虐하여 皆欲仁者來正己之國也니라』
『 백성이 포악한 군주에게 학대를 받아, 모두 인자(仁者)가 와서 자기 나라를 바로잡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5장
▣ 제5장(第五章)
『孟子曰 梓匠輪輿 能與人規矩언정 不能使人巧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재장(梓匠)과 윤여(輪輿)’가 남에게 규구(規矩)를 가르쳐 줄 수는 있을지언정,
남으로 하여금 공교롭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尹氏曰 規矩는 法度니 可告者也요 巧則在其人하니 雖大匠이라도 亦末如之何也已니라 蓋下學은 可以言傳이요 上達은 必由心悟니 『莊周所論²<輪之意주:장주소론착륜지의』가 蓋如此하니라』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규구(規矩)는 법도(法度)이니 남에게 일러줄 수 있는 것이요, 공교함은 그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비록 큰 장인(匠人)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움은 말로써 전수해 줄 수
있으나, 우로 천리(天理)를 통달함은 반드시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 장주(莊周)가 논한 ‘수레바퀴를 깎는다.’는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6장
▣ 제6장(第六章)
『孟子曰 舜之飯£』茹草也에 若將終身焉이러시니 及其爲天子也하사는 被袗衣鼓琴하시며 二女果를 若固有之러시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순(舜)임금이 마른밥을 먹고 채소를 먹을 때에는 그대로 종신(終身)할 듯이 하시더니, 천자(天子)가 됨에 미쳐서는 진의(袗衣)를 입고 거문고를 타시며, 두 여자가 모시는 것을 고유(固有)한 것으로 여기
셨다.”』
『飯은 食也라 £』는 乾¿也라 茹는 亦食也라 袗은 턛衣也라 二女는 堯二女也라 果는 女侍也라 言 聖人之心이 不以貧賤而有慕於外하고 不以富貴而有動於中하여 隨遇而安이요 無預於己하니 所性이 分定故也니라』
『 반(飯)은 먹음이다. 구(£』)는 마른밥이다. 여(茹)도 먹는 것이다. 진(袗)은 그림을 그린 옷이다. 이녀(二女)는 요(堯)임금의 두 딸이다. 과(果)는 여자가 모시는 것이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빈천(貧賤)하다고 하여 밖에 사모함이 있지 않으며, 부귀(富貴)하다고 하여 마음속에 동요함이 있지 않아, 만나는 환경에 따라 편안하고, 자신에게 관여됨이 없으니,
<성인(聖人)은> 천성(天性)이 분수에 정해져 있기 때문임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7장
▣ 제7장(第七章)
『孟子曰 吾今而後에 知殺人親之重也로라 殺人之父면 人亦殺其父하고 殺人之兄이면 人亦殺其兄하나니 然則非自殺之也언정 一間耳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나는 이제서야 남의 어버이를 죽임이 매우 중대한 일임을 알았노라. 남의 아버지를
죽이면 남도 또한 내 아버지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도 또한 내 형을 죽인다. 그렇다면 자기가 직접 부형(父兄)을 죽인 것은 아니지만, 한 사이일 뿐이다.”』
『言吾今而後知者는 必有所爲而感發也라 一間者는 我往彼來하여 間一人耳니 其實은 與自害其親無異也니라 范氏曰
知此則愛敬人之親이니 人亦愛敬其親矣리라』
『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고 말씀한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어서 감발(感發)하신 것이다. 일간(一間)은 내가 가고 저가
와서 한 사람을 사이 했을 뿐이니, 그 실제는 자기가 그 어버이를 스스로 살해(殺害)한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이것을 알면 남의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니, 그리하면 남들 또한 내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8장
▣ 제8장(第八章)
『孟子曰 古之爲關也는 將以禦暴러니』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옛날에 관문(關門)을 만든 것은 장차 포악한 자를 막고자 해서였는데, ”』
『譏察非常이라』
『 수상한 사람을 기찰(譏察)하는 것이다.』
『今之爲關也는 將以爲暴로다』
『 지금에 관문(關門)을 만든 것은 장차 포악한 짓을 하려 함이로구나!』
『征稅出入이라』
『○ 范氏曰 古之耕者는 什一이러니 後世엔 或收太半之稅하니 此는 以賦斂爲暴也요 文王之츉는 與民同之러니 齊宣王之츉는 爲?國中하니 此는 以園츉爲暴也니 後世爲暴는 不止於關이라 若使孟子用於諸侯면 必行文王之政이니 凡此之類를 皆不終日而改也시리라』
『 출입하는 자에게 세금을 거두는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옛날에는 농사짓는 자들에게 10분의 1의 세금을 받았는데, 후세에는 혹 태반(太半)의
세(稅)를 징수하니, 이것은 세금을 거둠으로써 포악한 짓을 하는 것이요, 문왕(文王)의 동산은 백성과 더불어 함께 이용하였는데, 제선왕(齊宣王)의 동산은 국중(國中)에 함정을 만들었으니, 이것은 원유(園츉)로써 포악한 짓을 하는 것이다. 후세(後世)에 포악한 짓을 함은 관문(關門)에 그치지 않았다. 만일 맹자(孟子)께서 제후(諸侯)에게 등용되었다면 반드시 문왕(文王)의 정사를 행하셨을 것이니, 무릇 이러한 따위는 모두 하루가 못되어 개혁하셨을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9장
▣ 제9장(第九章)
『孟子曰 身不行道면 不行於妻子요 使人不爾면 不能行於妻子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자신이 도(道)를 행하지 않으면 <도(道)가> 처자(妻子)에게 행해지지 못하고, 사람을 부리기를 도(道)로써 하지 않으면 <명령이> 처자(妻子)에게 행해지지 못한다.”』
『身不行道者는 以行言之니 不行者는 道不行也요 使人不道者는 以事言之니 不能行者는 令不行也니라』
『 자신이 도(道)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실로써 말한 것이니,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도(道)가 행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을 부리기를 도(道)로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로써 말한 것이니, 능히 행해지지 못한다는 것은 명령이
행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孟子曰 周于利者는 凶年이 不能殺하고 周于德者는 邪世不能亂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이(利)에 완벽한 자는 흉년(凶年)이 그를 죽일 수 없고, 덕(德)에 완벽한 자는 나쁜
세상이 그를 어지럽힐 수 없다.”』
『周는 足也니 言積之厚則用有餘라』
『 주(周)는 족(足)함이니, 쌓음이 후(厚)하면 씀이 유여(有餘)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孟子曰 好名之人은 能讓千乘之國이어니와 苟非其人이면 簞食豆羹에 見於色하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승(千乘)의 나라를 양보할 수 있거니와, 만일 그러할
만한 사람이 아니면 한 그릇 밥과 한 그릇 국에도 얼굴빛에 나타나는 것이다.”』
『好名之人은 矯情干譽라 是以로 能讓千乘之國이라 然이나 若本非能輕富貴之人이면 則於得失之小者에 反不覺其眞情之發見矣라 蓋觀人을 不於其所勉而於其所忽이니 然後에 可以見其所安之實也니라』
『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실정을 속이고 명예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천승(千乘)의 나라를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본래 부귀(富貴)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아니면 득실(得失)의 작은 것에서 도리어 그 진정(眞情)이 발견
(發見)됨을 깨닫지 못한다. 사람을 관찰할 때에는 그 힘쓰는 바에 하지 말고, 그 경홀히 하는 바에 하여야 하니,
그러한 뒤에야 그 편안히 여기는 바의 실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孟子曰 不信仁賢이면 則國空虛하고』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인현(仁賢)을 믿지 않으면 나라가 텅 비고, ”』
『空虛는 言若無人然이라』
『 공허(空虛)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無禮義면 則上下亂하고』
『 예의(禮義)가 없으면 상하(上下)가 혼란하고,』
『禮義는 所以辨上下, 定民志니라』
『 예의(禮義)는 상하(上下)를 분별하여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無政事면 則財用不足이니라』
『 정사(政事)가 없으면 재용(財用)이 넉넉하지 못하다.”』
『生之無道하고 取之無度하며 用之無節故也니라』
『○ 尹氏曰 三者는 以仁賢爲本이니 無仁賢이면 則禮義政事가 處之皆不以其道矣리라』
『 생산함에 방법이 없고, 취함에 일정한 제한이 없으며, 씀에 절도가 없기 때문이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세 가지는 인현(仁賢)을 근본으로 삼으니, 인현(仁賢)이 없으면 예의(禮義)와 정사(政事)를 처리함에 모두 그 도(道)로 하지 못할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孟子曰 不仁而得國者는 有之矣어니와 不仁而得天下는 未之有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인(仁)하지 못하고서 나라를 얻은 자는 있거니와, 인(仁)하지 못하고서 천하를 얻은
자는 있지 않다.”』
『言 不仁之人이 騁其私智하여 可夷千乘之國이나 而不可鎰丘民之心이니라 鄒氏曰 自秦以來로 不仁而得天下者有矣라 然이나 皆一再傳而失之하니 猶不得也라 所謂得天下者는 必如三代而後에 可니라』
『 불인(不仁)한 사람은 그 사사로운 지혜를 구사하여 천승(千乘)의 나라를 훔칠 수는 있으나, 구민(丘民)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 추씨(鄒氏)가 말하였다. “진(秦)나라로부터 이래로 불인(不仁)하고서 천하(天下)를 얻은 자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한 두 대(代)를 전하고 잃었으니, 이는 얻지 못한 것과 같다. 이른바 천하를 얻는다는 것은 반드시 삼대시대(三代
時代)와 같은 뒤에야 가능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孟子曰 民爲貴하고 社稷次之하고 君爲輕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백성이 가장 귀중(貴重)하고, 사직(社稷)이 그 다음이고, 군주(君主)는 가벼운 것이다.”』
『社는 土神이요 稷은 穀神이니 建國則立『壇츊주:단유』以祀之라 蓋國은 以民爲本이요 社稷은 亦爲民而立이며 而君之尊은 又係於二者之存亡이라 故로 其輕重이 如此하니라』
『 사(社)는 토신(土神)이요, 직(稷)은 곡신(穀神)이니, 나라를 세우면 단유(壇遺)를 세우고 이들 신(神)에게 제사한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사직(社稷) 역시 백성을 위하여 세우며, 군주의 존귀함은 또 두 가지의 존망(存亡)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그 경중(輕重)이 이와 같은 것이다.』
『是故로 得乎丘民이 而爲天子요 得乎天子 爲諸侯요 得乎諸侯 爲大夫니라』
『 그러므로 구민(丘民)의 마음을 얻은 이는 천자(天子)가 되고, 천자(天子)에게 신임을 얻은 이는 제후(諸侯)가 되고, 제후(諸侯)에게 신임을 얻은 이는 대부(大夫)가 된다.』
『丘民은 田野之民이니 至微賤也라 然이나 得其心이면 則天下歸之요 天子는 至尊貴也나 而得其心者는 不過爲諸侯耳니 是民爲重也니라』
『 구민(丘民)은 전야(田野)의 백성이니, 지극히 미천하다. 그러나 그 마음을 얻으면 천하(天下)가 돌아오고, 천자(天子)는 지극히 존귀하나, 그 마음을 얻은 자는 제후(諸侯)가 됨에 불과할 뿐이니, 이는 백성이 귀중함이 되는 것이다.』
『諸侯危社稷이면 則變置하나니라』
『 제후(諸侯)가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하면 바꾸어 둔다.』
『諸侯無道하여 將使社稷爲人所滅이면 則當更立賢君이니 是는 君輕於社稷也니라』
『 제후(諸侯)가 무도(無道)하여 장차 사직(社稷)이 남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면 마땅히 현군(賢君)으로 바꾸어 세워야 하니, 이는 군주가 사직(社稷)보다 가벼운 것이다.』
『犧牲旣成하며 칞盛旣潔하여 祭祀以時로되 然而旱乾水溢이면 則變置社稷하나니라』
『 희생(犧牲)이 이미 이루어지며 자성(칞盛)이 이미 정결하여, 제사를 제 때에 지내되, 그런데도 가뭄이 들고 홍수가 넘치면 사직(社稷)을 바꾸어 설치한다.”』
『祭祀不失禮로되 而土穀之神이 不能爲民禦災킳患이면 則毁其壇츊而更置之하나니 亦年不順成『八ª>不通주:팔사불통』之意니 是는 社稷이 雖重於君이나 而輕於民也니라』
『 제사가 예(禮)를 잃지 않았는데도 토신(土神)과 곡신(穀神)이 백성을 위하여 재앙을 막아주고 환난(患難)을 막아주지 못하면 그 단유(壇츊)를 허물고 바꾸어 설치한다. 이는 또한 연사(年事)가 잘 이루어지지 못하면 팔사(八ª>)를 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사직(社稷)이 비록 군주보다 중(重)하나, 백성보다 가벼운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孟子曰 聖人은 百世之師也니 伯夷柳下惠是也라 故로 聞伯夷之風者는 頑夫廉하며 懦夫有立志하고 聞柳下惠之風者는 薄夫敦하며 鄙夫寬하나니 奮乎百世之上이어든 百世之下에 聞者莫不興起也하니 非聖人而能若是乎아 而況於親炙之者乎아』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성인(聖人)은 백세(百世)의 스승이니,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가 이것이다.
그러므로 백이(伯夷)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완악한 지아비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지아비가 입지(立志)하게 되며,
유하혜(柳下惠)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경박한 지아비가 돈후(敦厚)해지고, 비루(鄙陋)한 지아비가 너그러워진다.
백세(百世)의 위에 분발하거든 백세(百世)의 아래에서 그 풍도를 들은 자가 흥기(興起)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성인(聖人)이 아니고서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들을 직접 가까이 하여 배운 자에 있어서랴!”』
『興起는 感動奮發也라 親炙는 親近而薰炙之也라 餘見前篇하니라』
『 흥기(興起)는 감동(感動)하고 분발(奮發)함이다. 친자(親炙)는 친근히 하여 훈자(薰炙)함이다. 나머지는 전편(前篇)『[만장하(萬章下)]』에 보인다.』
*맹자 ; 진심하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孟子曰 仁也者는 人也니 合而言之하면 道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인(仁)은 사람이라는 뜻이니, 합하여 말하면 도(道)이다.”』
『仁者는 人之所以爲人之理也라 然이나 仁은 理也요 人은 物也니 以仁之理로 合於人之身而言之면 乃所謂道者也니라』
『○ 程子曰 中庸所謂率性之謂道가 是也니라 或曰 外國本에 人也之下에 有義也者宜也, 禮也者履也, 智也者知也, 信也者實也 凡二十字라하니 今按如此면 則理極分明이라 然이나 未詳其是否也로라』
『 인(仁)은 사람이 사람된 소이(所以)의 이치이다. 그러나 인(仁)은 이치요, 사람은 물건이니, 인(仁)의 이치로써 사람의 몸에 합하여 말하면 이것이 바로 이른바 도(道)라는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중용(中庸)》에 이른바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이른다.’한 것이 이것이다.”』
『 혹자는 말하기를 ‘외국본(外國本)에는 인야(人也)의 아래에 ‘의야자의야(義也者義也) 예야자리야(禮也者履也)
지야자지야(智也者知也) 신야자실야(信也者實也)’라는 모두 20자(字)가 있다.’한다. 지금 살펴보건대 이와 같다면
이치가 지극히 분명해진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지는 자세하지 않다.』
*맹자 ; 진심하 ; 제17장
▣ 제17장(第十七章)
『孟子曰 孔子之去魯에 曰 遲遲라 吾行也여하시니 去父母國之道也요 去齊에 接淅而行하시니 去他國之道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노(魯)나라를 떠나실 적에는 ‘더디고 더디다, 내 걸음이여!’하셨으니, 이는 부모(父母)의 나라를 떠나는 도리요, 제(齊)나라를 떠나실 적에는 밥을 지으려고 담궜던 쌀을 건져 가지고 떠나가셨으니, 이는 타국(他國)을 떠나는 도리이다.”』
『重出이라』
『 거듭 나왔다『[만장하(萬章下)]』.』
*맹자 ; 진심하 ; 제18장
▣ 제18장(第十八章)
『孟子曰 君子之촮於陳蔡之間은 無上下之交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공자(孔子)]』가 진(陳)•채(蔡)의 사이에서 곤액을 당하신 것은 상하
(上下)의 사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君子는 孔子也라 촮은 與厄同이라 君臣皆惡하여 無所與交也라』
『 군자(君子)는 공자(孔子)이다. 액(촮)은 액(厄)과 같다. 군신(君臣)이 모두 악(惡)하여 더불어 사귈 사람이 없어
서였다.』
*맹자 ; 진심하 ; 제19장
▣ 제19장(第十九章)
『퐬稽曰 稽大不理於口호이다』
『 맥계(퐬稽)가 말하였다. “저『[계(稽)]』는 크게 입에 덕을 보지 못합니다.”』
『趙氏曰 퐬은 姓이요 稽는 名이니 爲衆口所챀하니라 理는 賴也라하니라 今按漢書컨대 無俚를 方言에 亦訓賴하니라』
『 조씨(趙氏)가 말하기를 “맥(퐬)은 성(姓)이요, 계(稽)는 이름이니, 여러 사람들의 입에 비방을 받았다.
이(理)는 뇌(賴)『[의뢰함]』이다.”하였는데, 지금 《한서(漢書)》를 살펴보면 무리(無俚)를 〈방언(方言)〉에 또한
뇌(賴)라고 훈(訓)하였다.』
『孟子曰無傷也라 士憎『[增]』玆多口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나쁠 것이 없다. 선비는 더욱 구설(口舌)이 많은 것이다.』
『趙氏曰 爲士者는 益多爲衆口所챀이라하니라 按此則憎當從土어늘 今本에 皆從心하니 蓋傳寫之誤니라』
『 조씨(趙氏)가 말하기를 “선비가 된 자는 더욱 여러 사람들의 입에 비방을 받는다.”하였다. 이를 상고해 보면 증자(憎字)는 마땅히 토(土)를 따라야 할 것인데, 지금 본(本)『[책(冊)]』에는 모두 심(心)을 따랐으니, 이는 전사(傳寫)의 잘못일 것이다.』
『詩云 憂心쿍쿍어늘 ?于群小라하니 孔子也시고 肆不殄厥?하시나 亦不隕厥問이라하니 文王也시니라』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마음에 걱정하기를 초초(쿍쿍)히 하거늘, 여러 소인(小人)들에게 노여움을 받는다.’
하였으니, 이는 공자(孔子)이시고, ‘그들의 노여움을 없애지는 못했으나, 또한 그 명성을 잃지 않았다.’하였으니,
이는 문왕(文王)이시다.”』
『詩는 Ë風柏舟及大雅綿之篇也라 쿍쿍는 憂貌요 ?은 怒也라 本言 衛之仁人이 見怒於群小어늘 孟子以爲孔子之事可以當之라하시니라 肆는 發語辭라 隕은 墜也라 問은 聲問也라 本言 大王이 事昆夷에 雖不能殄絶其?怒하시나 亦不自墜其聲問之美어늘 孟子以爲文王之事可以當之라하시니라』
『○ 尹氏曰 言 人顧自處如何이니 盡其在我者而已니라』
『 시(詩)는 〈패풍(Ë風) 백주편(柏舟篇)〉과 〈대아(大雅) 면편(綿篇)〉이다. 초초(쿍쿍)는 걱정하는 모양이다.
온(?)은 노함이다. 이는 본래 위(衛)나라의 인인(仁人)이 여러 소인(小人)들에게 노여움을 받은 것을 말한 것인데,
맹자(孟子)께서 공자(孔子)의 일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씀한 것이다. 사(肆)는 발어사(發語辭)이다. 운(隕)은 실추함이요, 문(問)은 성문(聲問)『[성문(聲聞)]』이다. 이는 본래 태왕(大『[太]』王)이 곤이(昆夷)를 섬길 적에 비록 그들의
성냄을 없애지는 못했으나, 또한 스스로 그 명성의 아름다움을 실추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인데, 맹자(孟子)께서 문왕
(文王)의 일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씀한 것이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사람은 자처(自處)하기를 어떻게 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하니,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할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20장
▣ 제20장(第二十章)
『孟子曰 賢者는 以其昭昭로 使人昭昭어늘 今엔 以其昏昏으로 使人昭昭로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현자(賢者)는 그 밝음으로써 남을 밝게 하는데, 지금에는 그 어둠으로써 남을 밝게
하려 하는구나.”』
『昭昭는 明也요 昏昏은 闇也라 尹氏曰 大學之道는 在自昭明德而施於天下國家하니 其有不順者寡矣니라』
『 소소(昭昭)는 밝음이요, 혼혼(昏昏)은 어둠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대학(大學)의 도(道)는 스스로 명덕(明德)을 밝히고, 이것을 천하(天下)와 국가(國家)에
베풂에 있는 것이니, 그 순종하지 않는 자가 적을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孟子謂高子曰 山徑之蹊間이 介然用之而成路하고 爲間不用이면 則茅塞之矣나니 今에 茅塞子之心矣로다』
『 맹자(孟子)께서 고자(高子)에게 이르셨다. “산(山)길에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 삽시간만 사용하면 길을 이루고,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풀이 자라 길을 막나니, 지금에 띠풀이 그대의 마음을 꽉 막고 있구나!”』
『徑은 小路也요 蹊는 人行處也라 介然은 Á7然之頃也라 用은 由也라 路는 大路也라 爲間은 少頃也라 茅塞은 茅草生而塞之也라 言 理義之心이 不可少有間斷也니라』
『 경(徑)은 작은 길이요, 혜(蹊)는 사람이 다니는 곳이다. 개연(介然)은 숙연(Á7然)『[삽시간]』의 시간이다.
용(用)은 행함이다. 노(路)는 큰길이다. 위간(爲間)은 적은 시간이다. 모색(茅塞)은 띠풀이 자라서 길을 막는 것이다.
의리(義理)의 마음은 조금이라도 간단(間斷)함이 있어서는 안됨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22장
▣ 제22장(第二十二章)
『高子曰 禹之聲이 尙文王之聲이로소이다』
『 고자(高子)가 말하였다. “우왕(禹王)의 음악이 문왕(文王)의 음악보다 낫습니다.”』
『尙은 加尙也라 豐氏曰 言 禹之樂이 過於文王之樂이라』
『 상(尙)은 더 나음이다.』
『 풍씨(豐氏)가 말하였다. “우왕(禹王)의 음악이 문왕(文王)의 음악보다 나음을 말씀한 것이다.”』
『孟子曰 何以言之오 曰 以追쪾『(퇴려)』니이다』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가?” “퇴려(追쪾) 때문입니다.”』
『豐氏曰 追는 鐘紐也니 周禮所謂旋蟲이 是也라 쪾者는 齧木蟲也라 言 禹時鐘在者는 鐘紐如蟲齧而欲絶하니 蓋用之者多요 而文王之鐘은 不然하니 是以로 知禹之樂이 過於文王之樂也니라』
『 풍씨(豐氏)가 말하였다. “퇴(追)는 종(鐘)의 끈이니, 《주례(周禮)》에 이른바 ‘선충(旋蟲)’이 이것이다.
여(쪾)는 나무를 좀먹는 벌레이다. 우왕(禹王) 당시의 종(鐘)으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종의 끈이 벌레가 파먹은 것과
같아서 끊어지려고 하니, 이는 음악을 사용한 자가 많은 것이요, 문왕(文王)의 종(鐘)은 그렇지 않으니,
이로써 우왕(禹王)의 음악이 문왕(文王)의 음악보다 나음을 안다고 말한 것이다.”』
『曰 是奚足哉리오 城門之軌가 兩馬之力與아』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이 어찌 족하겠는가. 성문(城門)의 수레바퀴 자국이 두 말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겠
는가.”』
『豐氏曰 奚足은 言此何足以知之也라 軌는 車轍迹也라 兩馬는 一車所駕也라 城中之쪀는 容九軌하니 車可散行이라 故로 其轍迹淺하고 城門은 惟容一車하니 車皆由之라 故로 其轍迹深하니 蓋日久車多所致요 非一車兩馬之力이 能使之然也라 言 禹在文王前千餘年이라 故로 鐘久而紐絶이요 文王之鐘은 則末久而紐全이니 不可以此而議優劣也니라』
『○ 此章文義는 本不可曉라 舊說이 相承如此而豊氏差明白이라 故로 今存之어니와 亦未知其是否也로라』
『 풍씨(豐氏)가 말하였다. “해족(奚足)은 이것을 가지고 어찌 족히 알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궤(軌)는 수레바퀴 자국이다. 두 말은 한 수레에 멍에 하는 것이다. 성중(城中)의 길은 아홉 대의 수레바퀴를 용납하니, 수레가 흩어져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수레바퀴 자국이 얕은 것이요, 성문(城門)은 오직 한 대의 수레만 용납할 수 있으니, 수레가 모두 한 길을 따르기 때문에 수레바퀴 자국이 깊은 것이다. 날짜가 오래되고 수레가 많아 이렇게 된 것이니, 한 수레의 두 마리 말의 힘이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우왕(禹王)은 문왕(文王)보다 천여 년 전에 있었기 때문에 종(鐘)이 오래되어 끈이 끊어지려 하는 것이요, 문왕(文王)의 종(鐘)은 오래되지 않아 끈이 온전한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우열(優劣)을 의논해서는 안됨을 말씀한 것이다.”』
『 ○ 이 장(章)의 글 뜻은 본래 이해할 수 없다. 옛 해설이 서로 이어오기를 이와 같이 하는데, 풍씨(豐氏)의 말이 다소 명백(明白)하므로 지금 여기에 두었으나, 또한 이것이 옳은지는 알지 못하겠다.』
*맹자 ; 진심하 ; 제23장
▣ 제23장(第二十三章)
『齊饑어늘 陳臻曰 國人이 皆以夫子로 將復爲發棠이라하니 殆不可復로소이다』
『 제(齊)나라가 흉년이 들자, 진진(陳臻)이 말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부자(夫子)께서 장차 다시 당읍(棠邑)의
창고를 열어 주게 하실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이는 다시 할 수 없을 듯합니다.”』
『先時에 齊國嘗饑어늘 孟子勸王發棠邑之倉하여 以賑貧窮이러니 至此又饑어늘 陳臻이 問言 齊人이 望孟子復勸王發棠이라하고 而又自言恐其不可也라하니라』
『 이보다 먼저 제(齊)나라에 일찍이 흉년이 들었었는데, 맹자(孟子)께서 왕(王)에게 권하여 당읍(棠邑)의 창고를 열어서 빈궁(貧窮)한 자들을 구휼했었다. 이 때에 이르러 다시 흉년이 들자, 진진(陳臻)이 묻기를 ‘제(齊)나라 사람들은 맹자(孟子)께서 다시 왕(王)에게 권하여 당읍(棠邑)의 창고를 열어줄 것을 바랍니다.’하고, 또 스스로 그 불가(不可)할까
두렵다고 말한 것이다.』
『孟子曰 是爲馮婦也로다 晉人有馮婦者善搏虎라가 『卒爲善士러니 則之野할새 有衆逐虎주:졸위선사』한대 虎負췗
어늘 莫之敢?하여 望見馮婦하고 趨而迎之한대 馮婦攘臂下車하니 衆皆悅之하고 其爲士者는 笑之하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이것은 바로 풍부(馮婦)이다. 진(晉)나라 사람 중에 풍부(馮婦)라는 자가 범을 잘 잡다가, 마침내 선사(善士)가 되었는데, 들에 갈 적에 여러 사람들이 범을 쫓고 있었다. 범이 산모퉁이를 의지하고 있자, 사람들이 감히 달려들지 못하다가 풍부(馮婦)를 멀리 바라보고는 달려가 맞이하였다. 풍부(馮婦)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수레에서 내려오니, 여러 사람들은 모두 이를 좋아하였고, 선비들은 이를 비웃었다.”』
『手執曰搏이라 卒爲善士는 後能改行爲善也라 之는 適也라 負는 依也라 山曲曰췗라 ?은 觸也라 笑之는 笑其不知止也라 疑此時에 齊王이 已不能用孟子하고 而孟子亦將去矣라 故로 其言이 如此하시니라』
『 손으로 잡는 것을 박(搏)이라 한다. 마침내 선사(善士)가 되었다는 것은 뒤에 행실을 고쳐 선(善)한 사람이 된 것이다. 지(之)는 감이다. 부(負)는 의지함이다. 산굽이를 우(췗)라 한다. 영(?)은 달려듦이다. 소지(笑之)는 그칠 줄 모름을
비웃은 것이다. 의심컨대, 이 당시에 제왕(齊王)이 능히 맹자(孟子)를 등용하지 못하였고, 맹자(孟子) 또한 장차 떠나려 하신 듯하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이와 같으신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24장
▣ 제24장(第二十四章)
『孟子曰 口之於味也와 目之於色也와 耳之於聲也와 鼻之於臭也와 四肢之於安佚也에 性也나 有命焉이라 君子不謂性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입이 맛에 있어서와 눈이 색깔에 있어서와 귀가 음악에 있어서와 코가 냄새에 있어서와 사지(四肢)가 안일(安佚)에 있어서는 본성(本性)이나, 명(命)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이것을 성(性)이라 이르지 않는다.』
『程子曰 五者之欲은 性也나 然이나 有分하여 不能皆如其願하니 則是命也니 不可謂我性之所有而求必得之也니라 愚按 不能皆如其願은 不足爲貧賤이요 蓋雖富貴之極이라도 亦有品節限制하니 則是亦有命也니라』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다섯 가지의 하고자 함은 본성(本性)이나, 분수가 있어서 그 소원과 같이 할 수가 없으니, 그렇다면 이는 명(命)인 것이다.
이를 내 본성(本性)에 있는 것이라고 일러서 구하여 반드시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 내가 상고해 보건대, 다 그 소원과 같이 할 수 없음은 다만 빈천(貧賤)만이 아니요, 비록 부귀(富貴)가 지극하더라도 또한 품절과 제한(制限)이 있으니, 이 또한 명(命)에 달려 있는 것이다.』
『仁之於父子也와 義之於君臣也와 禮之於賓主也와 智之於賢者也와 聖人之於天道也에 命也나 有性焉이라 君子不謂命也니라』
『 인(仁)이 부자간(父子間)에 있어서와 의(義)가 군신간(君臣間)에 있어서와 예(禮)가 빈주간(賓主間)에 있어서와 지(智)가 현자(賢者)에 있어서와 성인(聖人)이 천도(天道)에 있어서는 명(命)이나, 본성(本性)에 있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명(命)이라 이르지 않는다.”』
『程子曰 仁義禮智天道在人이면 則賦於命者나 所µ;이 有厚薄淸濁이라 然而性善하여 可學而盡이라 故로 不謂之命也니라 張子曰 晏쵥이 智矣로되 而不知仲尼하니 是非命邪아 愚按 所µ;者厚而淸이면 則其仁之於父子也에 至하고 義之於君臣也에 盡하고 禮之於賓主也에 恭하고 智之於賢否也에 哲하고 聖人之於天道也에 無不?合而純亦不已焉이요 薄而濁이면 則反是하니 是皆所謂命也니라 或曰 者는 當作否요 人은 衍字라하니 更詳之니라』
『○ 愚聞之師하니 曰 此二條者는 皆性之所有而命於天者也라 然이나 世之人이 以前五者로 爲性이라하여 雖有不得이라도 而必欲求之하고 以後五者로 爲命이라하여 一有不至하면 則不復致力이라 故로 孟子各就其重處言之하여 以伸此而抑彼也시니 張子所謂 養則付命於天이요 道則責成於己니 其言이 約而盡矣로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인(仁)•의(義)•예(禮)•지(智)와 천도(天道)가 사람에게 있어서는 명(命)에서 받은 것이나, 받은 것이 후박(厚薄)과 청탁(淸濁)이 있다.
그러나 본성(本性)이 선(善)하여, 배워서 다할 수 있으므로 명(命)이라 이르지 않는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안영(晏쵥)은 지혜로웠으나 중니(仲尼)를 알지 못했으니, 이는 명(命)이 아니겠는가.”』
『 내가 상고해 보건대, 받은 것이 후(厚)하고 청(淸)하면 그 인(仁)이 부자간(父子間)에 있어서 지극하고 의(義)가 군신간(君臣間)에 있어서 극진하고, 예(禮)가 빈주간(賓主間)에 있어서 공손하고, 지(智)가 현부(賢否)에 대해서 밝고, 성인(聖人)이 천도(天道)에 대해서 부합되지 않음이 없어, 순수함이 또한 그치지 않는 것이요, 박(薄)하고 탁(濁)하면 이와
반대이니, 이는 모두 이른바 명(命)이라는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자(者)는 마땅히 부(否)가 되어야 하고, 인(人)은
연자(衍字)이다.”하니,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 ○ 내 스승께 들으니, 말씀하시기를 “이 두 조항은 다 본성(本性)에 있는 것으로서 하늘에서 명(命)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앞의 다섯 가지를 본성(本性)이라고 여겨서 비록 얻지 못함이 있더라도 반드시 구하고자 하고,
뒤의 다섯 가지를 명(命)이라고 여겨서 한 번이라도 이르지 못함이 있으면 다시 힘을 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각기 그 중요한 부분을 가지고 말씀하시어, 이것을 펴고 저것을 억제하려 하신 것이다. 장자(張子)의 이른바 ‘봉양은 하늘에 명(命)을 맡기고, 도(道)는 자신에게 이름을 책(責)한다.’는 것이니, 그 말씀이 요약하고도 극진하였다.”』
*맹자 ; 진심하 ; 제25장
▣ 제25장(第二十五章)
『浩生不害問曰 樂正子는 何人也잇고 孟子曰 善人也며 信人也니라』
『 호생불해(浩生不害)가 물었다. “악정자(樂正子)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선인(善人)이며, 신인(信人)이다.”』
『趙氏曰 浩生은 姓이요 不害는 名이니 齊人也라』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호생(浩生)은 성(姓)이요, 불해(不害)는 이름이니, 제(齊)나라 사람이다.”』
『何謂善이며 何謂信이닛고』
『 “무엇을 선인(善人)이라 이르며, 무엇을 신인(信人)이라 이릅니까?”』
『不害問也라』
『 불해(不害)가 물은 것이다.』
『曰 可欲之謂善이요』
『 “가욕(可欲)스러움을 선인(善人)이라 이르고』
『天下之理 其善者는 必可欲이요 其惡者는 必可惡니 其爲人也可欲而不可惡면 則可謂善人矣니라』
『 천하의 이치가 선(善)한 자는 반드시 가욕(可欲)스럽고, 악(惡)한 자는 반드시 가증(可憎)스러우니, 그 사람됨이
가욕(可欲)스럽고 가증(可憎)스럽지 않다면 선인(善人)이라 이를 수 있다.』
『有諸己之謂信이요』
『 선(善)을 자기 몸에 소유함을 신인(信人)이라 이르고,』
『凡所謂善을 皆實有之하여 如惡惡臭하고 如好好色이면 是則可謂信人矣니라 張子日 志仁無惡之謂善이요 誠善於身
之謂信이니라』
『 무릇 이른바 선(善)을 다 실제로 소유하여 악취(惡臭)를 미워하고 호색(好色)을 좋아하듯이 한다면, 이는 신인(信人)이라 이를 만하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인(仁)에 뜻하고 악함이 없음을 선인(善人)이라 이르고, 진실로 자기 몸을 선(善)하게
함을 신인(信人)이라 이른다.”』
『充實之謂美요』
『 충실(充實)함을 미인(美人)이라 이르고,』
『力行其善하여 至於充滿而積實이면 則美在其中而無待於外矣니라』
『 그 선(善)을 힘써 행해서 충만하여 쌓이고 꽉 참에 이르면 아름다움이 그 가운데에 있어서 밖에 기다릴 것이 없을
것이다.』
『充實而有光輝之謂大요』
『 충실(充實)하여 광휘(光輝)함이 있음을 대인(大人)이라 이르고,』
『和順積中而英華發外하여 美在其中而暢於四支하고 發於事業이면 則德業至盛而不可加矣니라』
『 화순(和順)이 마음속에 쌓여 영화(英華)가 밖에 드러나서, 아름다움이 그 가운데에 있어 사지(四肢)에 드러나며,
사업(事業)에 발로된다면, 덕업(德業)이 지극히 성하여 더할 수 없을 것이다.』
『大而化之之謂聖이요』
『 대인(大人)이면서 저절로 화(化)함을 성인(聖人)이라 이르고,』
『大而能化하여 使其大者로 泯然無復可見之迹이면 則不思, 不勉하여 從容中道하여 而非人力之所能爲矣니라 張子曰
大는 可爲也어니와 化는 不可爲也니 在熟之而已矣니라』
『 대인(大人)이면서 능히 화(化)하여 그 큰 것으로 하여금 민연(泯然)히 다시는 볼 만한 자취가 없게 한다면, 생각하지 않고 힘쓰지 않아도 종용(從容)히 도(道)에 맞아서 인력(人力)으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대인(大人)은 억지로 할 수가 있거니와, 화(化)는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니, 익숙히 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
『聖而不可知之之謂神이니』
『 성(聖)스러워 알 수 없는 것을 신인(神人)이라 이른다.』
『程子曰 聖不可知는 謂聖之至妙하여 人所不能測이니 非聖人之上에 又有一等神人也니라』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성(聖)스러워 알 수 없다는 것은 성인(聖人)이 지극히 묘(妙)하여 사람들이 측량할 수 없음을 이르니, 성인(聖人)의 위에 다시 한 등급의 신인(神人)이 있다고 말씀한 것은 아니다.”』
『樂正子는 二之中이요 四之下也니라』
『 악정자(樂正子)는 두 가지의 중간이요, 네 가지의 아래이다.”』
『蓋在善信之間이니 觀其從於子敖하면 則其有諸己者或未實也니라 張子曰 顔淵, 樂正子皆知好仁矣로되 樂正子는 志仁無惡而不致於學이라 所以但爲善人信人而已요 顔子는 好學不倦하여 合仁與智하여 具體聖人하니 獨未至聖人之止耳시니라』
『○ 程子曰 士之所難者는 在有諸己而已니 能有諸己면 則居之安하고 資之深하여 而美且大를 可以馴致矣어니와 徒知可欲之善하고 而若存若亡而已면 則能不受變於俗者鮮矣니라 尹氏曰 自可欲之善으로 至於聖而不可知之神이 上下一理니
擴充而至於神이면 則不可得而名矣리라』
『 선인(善人)과 신인(信人)의 사이에 있었을 것이니, 그 자오(子敖)『[왕환(王驩)]』를 따른 것을 본다면 자기 몸에
소유한 것이 혹 성실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안연(顔淵)과 악정자(樂正子)가 모두 인(仁)을 좋아할 줄 알았으되, 악정자(樂正子)는
인(仁)에 뜻하여 악(惡)함이 없었을 뿐이요, 학문(學問)에 힘을 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다만 선인(善人)과 신인(信人)이 되었을 뿐이요, 안자(顔子)는 학문(學問)을 좋아하고, 게을리 하지 않아서 인(仁)과 지(智)를 합하여 성인(聖人)의
체(體)를 갖추었으니, 다만 성인(聖人)이 그침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시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선비가 하기 어려운 것은 선(善)을 자기 몸에 소유함에 있을 뿐이다. 능히 선(善)을
자기 몸에 소유하면 거(居)함이 편안하고 이용함이 깊어서 미인(美人)과 대인(大人)에 점점 이를 수 있거니와, 다만
가욕(可欲)의 선(善)만을 알고, 있는 듯 없는 듯 할 뿐이라면, 세속에 변화를 받지 않을 자가 드물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가욕지선(可欲之善)으로부터 성이불가지지신(聖而不可知之神)에 이르기까지 상하(上下)가 한 이치이다. 이를 확충(擴充)하여 신(神)에 이른다면 <그 신묘(神妙)함을> 명칭할 수 없을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26장
▣ 제26장(第二十六章)
『孟子曰 逃墨이면 必歸於楊이요 逃楊이면 必歸於儒니 歸커든 斯受之而已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묵적(墨翟)에서 도피하면 반드시 양주(楊朱)로 돌아가고, 양주(楊朱)에서 도피하면
반드시 유학(儒學)으로 돌아올 것이니, 돌아오면 받아줄 뿐이다.』
『墨氏는 務外而不情하고 楊氏는 太簡而近實이라 故로 其反正之漸이 大略如此하니라 歸斯受之者는 憫其陷溺之久而取其悔悟之新也니라』
『 묵씨(墨氏)는 외면에 힘써 진실 되지 못하고, 양씨(楊氏)는 너무 간략하여 실제에 가깝다. 이 때문에 정도(正道)로
돌아옴의 점점 함이 대략 이와 같은 것이다. 돌아오면 받아준다는 것은 그 빠짐이 오래됨을 민망히 여기고, 뉘우쳐
깨달아서 새사람이 됨을 취한 것이다.』
『今之與楊墨辯者는 如追放豚하니 旣入其폺이어든 又從而招之로다』
『 지금에 양주(楊朱)•묵적(墨翟)의 학자들과 변론하는 것은 마치 뛰쳐나간 돼지를 좇는 것과 같으니, 이미 그 우리로 돌아오거든 또 따라서 발을 묶어놓는구나.”』
『放豚은 放逸之豕豚也라 폺은 ¦8也라 招는 퇳也니 羈其足也라 言 彼旣來歸어든 而又追咎其旣往之失也니라』
『○ 此章은 見聖賢之於異端에 距之甚嚴하고 而於其來歸에 待之甚恕하니 距之嚴故로 人知彼說之爲邪하고 待之恕故로 人知此道之可反이니 仁之至요 義之盡也니라』
『 방돈(放豚)은 뛰쳐나간 돼지이다. 입(폺)은 우리이다. 초(招)는 얽어맴이니, 그 발을 얽어매는 것이다. 저들이 이미 유학(儒學)으로 돌아왔는데, 또 기왕(旣往)이 잘못을 허물 함을 말씀한 것이다.』
『 ○ 이 장(章)은 성현(聖賢)이 이단(異端)에 대하여 막기를 엄히 하고, 그 돌아옴에 대(待)하기를 매우 서(恕)하게 함을 볼 수 있다. 막기를 엄히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 학설이 부정함을 알고, 대(待)하기를 서(恕)하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도(道)로 돌아올 줄을 아는 것이니, 인(仁)의 지극함이요, 의(義)의 극진함이다.』
*맹자 ; 진심하 ; 제27장
▣ 제27장(第二十七章)
『孟子曰 有布縷之征과 粟米之征과 力役之征하니 君子는 用其一이요 緩其二니 用其二면 而民有µ3하고 用其三이면 而父子離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삼베와 실에 대한 세(稅)와 곡식에 대한 세(稅)와 힘으로 부역하는 세(稅)가 있으니,
군자(君子)는 이 중에 한 가지만 쓰고, 두 가지는 늦춘다. 두 가지를 함께 쓰면 백성들이 굶어 죽고, 세 가지를 함께 쓰면 부자간(父子間)도 이산(離散)될 것이다.”』
『征賦之法이 歲有常數라 然이나 布縷는 取之於夏하고 粟米는 取之於秋하고 力役은 取之於冬하여 『當各以其時주:당각이기시』하니 若幷取之면 則民力이 有所不堪矣라 今『兩稅三限之法주:양세삼한지법』이 亦此意也니라 尹氏曰 言 民爲邦本이니 取之無度면 則其國危矣니라』
『 부세(賦稅)를 징수하는 법은 해마다 일정한 수(數)가 있다. 그러나 베와 실은 여름에 취하고, 곡식은 가을에 취하고, 힘으로 부역함은 겨울에 취하여, 각기 때에 맞게 하여야 하니, 만일 한꺼번에 아울러 취한다면 백성의 힘이 감당해 내지 못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양세삼한(兩稅三限)의 법도 또한 이러한 뜻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 되니, 취하기를 한도(限度)가 없이 하면 그 나라가 위태로워짐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28장
▣ 제28장(第二十八章)
『孟子曰 諸侯之寶三이니 土地와 人民과 政事니 寶珠玉者는 殃必及身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제후(諸侯)의 보배가 세 가지이니, 토지(土地)와 인민(人民)과 정사(政事)이니,
주옥(珠玉)을 보배로 여기는 자는 앙화(殃禍)가 반드시 몸에 미친다.”』
『尹氏曰 言 寶得其寶者는 安하고 寶失其寶者는 危니라』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보배로 여김이 보배로울 만한 것을 얻은 자는 편안하고, 보배로 여김이 보배로 여길 만한 것을 잃은 자는 위태로움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29장
▣ 제29장(第二十九章)
『盆成括이 仕於齊러니 孟子曰 死矣로다 盆成括이여 盆成括이 見殺이어늘 門人이 問曰 夫子何以知其將見殺이시니잇고 曰 其爲人也小有才요 未聞君子之大道也하니 則足以殺其軀而已矣니라』
『 분성괄(盆成括)이 제(齊)나라에 벼슬하였는데, 맹자(孟子)께서 “죽겠구나, 분성괄(盆成括)이여!”하셨다. 분성괄(盆成括)이 죽임을 당하자, 문인(門人)이 물었다. “부자(夫子)께서는 어찌하여 그가 장차 죽임을 당할 것을 아셨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였다. “그의 사람됨이 조금 재주가 있고, 군자(君子)의 대도(大道)를 듣지 못했으니, 족히 그 몸을 죽일 뿐인 것이다.”』
『盆成은 姓이요 括은 名也라 恃才妄作은 所以取禍니라 徐氏曰 君子는 道其常而已라 括有死之道焉하니 設使幸而獲免이라도 孟子之言이 猶信也니라』
『 분성(盆成)은 성(姓)이요, 괄(括)은 이름이다. 재주를 믿고 함부로 행동함은 화(禍)를 취하는 것이다.』
『 서씨(徐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그 상도(常道)를 말할 뿐이다. 분성괄(盆成括)은 죽을 도(道)가 있었으니,
설사 요행으로 면함을 얻는다 하더라도 맹자(孟子)의 말씀이 오히려 맞는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30장
▣ 제30장(第三十章)
『孟子之¦!하사 館於上宮이러시니 有業履於츐上이러니 館人이 求之弗得하다』
『 맹자(孟子)께서 등나라에 가서 상궁(上宮)에 머무르고 계셨다. 작업하던 신이 창문 위에 있었는데, 여관(旅館)주인이 찾아도 얻지 못하였다.』
『館은 舍也라 上宮은 別宮名이라 業屢는 織之有次業而未成者라 蓋館人所作을 置之츐上而失之也라』
『 관(館)은 머무름이다. 상궁(上宮)은 별궁(別宮)의 이름이다. 업구(業즞)는 신을 짬에 다음 작업이 있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여관주인이 만들던 것을 창 위에 놓아두었다가 잃어버린 것이다.』
『或이 問之曰 若是乎從者之첦也여 曰 子以是爲竊즞來與아 曰 殆非也라 夫子之設科也는 往者를 不追하며 來者를 不拒하사 苟以是心至어든 斯受之而已矣니이다』
『 혹자가 물었다. “이와 같이 종자(從者)들이 숨기고 있습니다.” 맹자(孟子)께서 “그대는 이 때문에 <우리가> 신을
훔치러 왔다고 여기는가?”하시자,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부자(夫子)께서 교과(敎科)를 설치함은 가는 자를 붙잡지
않고 오는 자를 막지 아니하여, 만일 이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오면 받아주실 뿐입니다.”하였다.』
『或問之者는 問於孟子也라 첦는 匿也니 言 子之從者乃匿人之物이 如此乎인저하니라 孟子答之에 而或人이 自悟其失하고 因言 此從者固不爲竊즞而來라 但夫子設置科條하여 以待學者하시니 苟以向道之心而來면 則受之耳라 雖夫子라도 亦不能保其往也라하니 門人이 取其言有合於聖賢之指라 故로 記之하니라』
『 혹자가 물었다는 것은 맹자(孟子)에게 물은 것이다. 수(첦)는 숨김이니, 그대의 종자(從者)가 마침내 사람의 물건을 훔치기를 이와 같이 한다고 말한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이에 답하시자, 혹자가 스스로 그 실언(失言)을 깨닫고, 인하여 말하기를 “이 종자(從者)가 진실로 신을 훔치러 온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자(夫子)께서 과조(科條)를 설치하여 배우는 자들을 대(待)하시니, <배우는 자가> 만일 도(道)를 향하는 마음으로 찾아오면 받아줄 뿐입니다. 비록 부자(夫子)라도 또한 그의 과거(過去)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문인(門人)이 그의 말이 성현(聖賢)의 뜻에 부합됨이 있음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기록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31장
▣ 제31장(第三十一章)
『孟子曰 人皆有所不忍하니 達之於其所忍이면 仁也요 人皆有所不爲하니 達之於其所爲면 義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차마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차마 하는 바에까지 도달한다면
인(仁)이요, 사람들은 모두 하지 않는 바가 있으니, 하는 바에까지 도달한다면 의(義)이다.』
『惻隱羞惡之心을 人皆有之라 故로 莫不有所不忍不爲하니 此는 仁義之端也라 然이나 以氣質之偏과 物欲之蔽로 則於他事엔 或有不能者하니 但推所能하여 達之於所不能이면 則無非仁義矣리라』
『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차마 못하는 바와 하지 않는 바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인(仁)•의(義)의 단서이다. 그러나 기질(氣質)이 편벽 되고 물욕(物慾)에 가리워지기
때문에 다른 일에는 혹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다만 능한 바를 미루어서 능하지 못한 바에까지 도달한다면
인(仁)•의(義)가 아님이 없을 것이다.』
『人能充無欲害人之心이면 而仁을 不可勝用也며 人能充無穿踰之心이면 而義를 不可勝用也니라』
『 사람이 남을 해치려고 하지 않는 마음을 채운다면 인(仁)을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며, 사람이 담을 뚫고 넘어가서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채운다면 의(義)를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다.』
『充은 滿也라 穿은 穿穴이요 踰는 踰牆이니 皆爲盜之事也라 能推所不忍하여 以達於所忍이면 則能滿其無欲害人之心
하여 而無不仁矣요 能推其所不爲하여 以達於所爲면 則能滿其無穿踰之心하여 而無不義矣리라』
『 충(充)은 가득함이다. 천(穿)은 구멍을 뚫는 것이요, 유(踰)는 담을 넘는 것이니, 모두 도둑질하는 일이다. 차마 못하는 바를 미루어서 차마 하는 바에까지 도달한다면 남을 해치고자 하지 않는 마음을 가득 채워서 인(仁)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하지 않는 바를 미루어서 하는 바에까지 도달한다면 담을 뚫고 넘어가서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득 채워서 의(義)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人能充無受爾汝之實이면 無所往而不爲義也니라』
『 사람이 이여(爾汝)를 받지 않으려는 실제를 채운다면 가는 곳마다 의(義)를 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此는 申說上文充無穿踰之心之意也라 蓋爾汝는 人所輕賤之稱이니 人雖或有所貪昧隱忍而甘受之者라 然이나 其中心에 必有慙忿而不肯受之之實이니 人能卽此而推之하여 使其充滿하여 無所虧缺이면 則無適而非義矣리라』
『 이것은 상문(上文)에 ‘담을 뚫고 넘어가지 않으려는 마음을 채운다.’는 뜻을 거듭 말씀한 것이다. 이여(爾汝)는 사람들이 경시하고 천시하는 칭호이다. 사람이 비록 혹 탐하고 어두워 속으로 참으면서, 이러한 것을 달게 받는 자가 있으나, 그 중심(中心)에는 반드시 부끄럽고 분하게 여겨서 즐겨 받지 않으려는 실제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이것을 가지고 미루어서 충만하여 이지러진 바가 없게 한다면 가는 곳마다 의(義)가 아님이 없을 것이다.』
『士未可以言而言이면 是는 以言?之也요 可以言而不言이면 是는 以不言?之也니 是皆穿踰之類也니라』
『 선비가 말해서는 안될 때에 말한다면 이는 말로써 물건을 핥아먹는 것이요, 말을 해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다면
이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물건을 핥아먹는 것이니, 이는 모두 담을 뚫고 담을 넘어가는 종류이다.”』
『?은 探取之也라 今人이 以舌取物曰?이라하니 卽此意也라 便쨻, 隱默은 皆有意探取於人이니 是亦穿踰之類라 然이나 其事隱微하여 人所易忽이라 故로 特擧以見例하여 明必推無穿踰之心하여 達於此而悉去之然後에 爲能充其無穿踰之心也니라』
『 첨(?)은 더듬어 취함이다. 지금 사람들이 혓바닥으로 물건을 취하는 것을 첨(?)이라 하니, 바로 이러한 뜻이다.
아첨하는 말을 잘함과 침묵을 지킴은 다 남에게서 물건을 탐취(探取)하려는 데 뜻이 있는 것이니, 이 또한 천유(穿踰)의 종류이다. 그러나 그 일이 은미하여 사람들이 경홀히 여기고 쉽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들어서 예(例)를 나타내어 반드시 천유(穿踰)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미루어 여기에까지 도달시켜 모두 제거한 뒤에야 천유(穿踰)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채움이 됨을 밝히신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32장
▣ 제32장(第三十二章)
『孟子曰 言近而指遠者는 善言也요 守約而施博者는 善道也니 君子之言也는 不下帶而道存焉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말이 가까우면서도 뜻이 먼 것은 선(善)한 말이요, 지킴이 요약하면서도 베풂이 넓은 것은 선(善)한 도(道)이니, 군자(君子)의 말은 띠를 내려가지 않고 도(道)가 있는 것이다.』
『古人은 視不下於帶하니 則帶之上은 乃目前常見至近之處也라 擧目前之近事에 而至理存焉하니 所以爲言近而指遠也니라』
『 옛사람들은 시선(視線)이 띠를 내려가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띠 위는 바로 목전(目前)에 항상 볼 수 있는 지극히
가까운 곳이다. 목전(目前)의 가까운 일을 듦에 지극한 이치가 여기에 있으니, 이 때문에 말이 가까우면서도 뜻이 먼
것이다.』
『君子之守는 修其身而天下平이니라』
『 군자(君子)의 지킴은 그 몸을 닦음에 천하(天下)가 평(平)해지는 것이다.』
『此所謂守約而施博也라』
『 이것은 이른바 지킴이 요약(要約)하면서도 베풂이 넓다는 것이다.』
『人病은 舍其田而芸人之田이니 所求於人者重이요 而所以自任者輕이니라』
『 사람들의 병통은 자기 밭을 버려두고 남의 밭을 김매는 데에 있으니, 남에게 요구하는 것은 중(重)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것은 가볍다.”』
『此는 言不守約而務博施之病이니라』
『 이는 지키기를 요약하게 하지 않고, 넓게 베풀기를 힘쓰는 병통을 말씀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33장
▣ 제33장(第三十三章)
『孟子曰 堯舜은 性者也요 湯武는 反之也시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요(堯)•순(舜)은 성(性) 그대로 하셨고, 탕(湯)•무(武)는 성(性)을 회복하셨다.』
『性者는 得全於天하여 無所汚壞하여 不假修爲하니 聖之至也요 反之者는 修爲以復其性하여 而至於聖人也니라 程子曰 性之, 反之는 古未有此語러니 蓋自孟子發之하시니라 呂氏曰 無意而安行은 性者也요 有意利行而至於無意는 復性者也라 堯舜은 不失其性이요 湯武는 善反其性이니 及其成功則一也니라』
『 성(性)대로 하였다는 것은 온전함을 하늘에서 얻어 더럽히거나 파괴한 바가 없어서, 수위(修爲)를 빌리지 않으니,
성인(聖人)의 지극함이요, 반지(反之)는 수위(修爲)하여 그 성(性)을 회복해서 성인(聖人)에 이르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성지(性之)와 반지(反之)는 옛날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지 않았는데, 맹자(孟子)로부터
발명(發明)된 것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뜻이 없이 편안히 행함은 성(性) 그대로 하는 것이요, 뜻이 있어 이롭게 여겨서 행하여 뜻이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성(性)을 회복한 것이다. 요(堯)•순(舜)은 그 성(性)을 잃지 않았고, 탕(湯)•무(武)는 그 성(性)을 잘 회복하였으니, 성공(成功)에 이르면 똑같은 것이다.”』
『動容周旋이 中禮者는 盛德之至也니 哭死而哀가 非爲生者也며 經德不回가 非以干祿也며 言語必信이 非以正行也니라』
『 동용(動容)하고 주선(周旋)함이 예(禮)에 맞는 것은 성덕(盛德)이 지극한 것이니, 죽은 자를 곡(哭)하여 슬퍼함이
산 자를 위해서가 아니요, 떳떳한 덕(德)을 지키고 간사하지 않음이 녹(祿)을 요구해서가 아니며, 언어(言語)를 반드시 미덥게 하는 것이 행실을 바르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다.』
『細微曲折이 無不中禮는 乃其盛德之至니 自然而中이요 而非有意於中也라 經은 常也요 回는 曲也라 三者는 亦皆自
然而然이니 非有意而爲之也라 皆聖人之事니 性之之德也니라』
『 세미(細微)하고 주선(周旋)『[곡절(曲折)]』함이 예(禮)에 맞지 않음이 없는 것은 바로 그 성덕(盛德)의 지극함이니, 자연스럽게 맞는 것이요, 맞음에 뜻을 둔 것이 아니다. 경(經)은 떳떳함이요, 회(回)는 굽음이다. 세 가지 역시 다 자연히 그러한 것이니, 뜻이 있어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모두 성인(聖人)의 일이니, 성지(性之)의 덕(德)이다.』
『君子는 行法하여 以俟命而已矣니라』
『 군자(君子)는 법(法)을 행하여 명(命)을 기다릴 뿐이다.”』
『法者는 天理之當然者也라 君子行之而吉凶禍福을 有所不計하니 蓋雖未至於自然이나 而已非有所爲而爲矣니라 此는
反之之事니 董子所謂正其義不謀其利하며 明其道不計其功이 正此意也니라』
『○ 程子曰 動容周旋이 中禮者는 盛德之至요 行法以俟命者는 『朝楣夕死可矣주:조문도석사가의』之意也니라 呂氏曰 法由此立하고 命由此出은 聖人也요 行法以俟命은 君子也라 聖人은 性之요 君子는 所以復其性也니라』
『 법(法)은 천리(天理)의 당연한 것이다. 군자(君子)는 이를 행하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계산하지 않는 바가 있으니, 이는 비록 자연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이미 위함이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반지(反之)의 일이니, 동자(董子)의
이른바 ‘그 의(義)를 바르게 하고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道)를 밝히고 공(功)을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뜻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동용(動容)하고 주선(周旋)함이 예(禮)에 맞음은 성덕(盛德)의 지극함이요, 법(法)을 행하고 명(命)을 기다림은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가(可)하다.’는 뜻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법(法)이 이로 말미암아 확립되고, 명(命)이 이로 말미암아 나옴은 성인(聖人)이요, 법(法)을 행하고 명(命)을 기다림은 군자(君子)이니, 성인(聖人)은 성(性)대로 한 것이요, 군자(君子)는 그 성(性)을 회복한 것이다.”』
*맹자 ; 진심하 ; 제34장
▣ 제34장(第三十四章)
『孟子曰 說『(세)』大人이어든 則¨4之하여 勿視其巍巍然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대인(大人)을 유세(遊說)할 때에는 하찮게 여기고 그 드높음을 보지 말아야 한다.』
『趙氏曰 大人은 當時尊貴者也라하니라 ¨4는 輕之也라 巍巍는 富貴高顯之貌라 ¨4焉而不畏之하면 則志意舒展하여
言語得盡也리라』
『 조씨(趙氏)가 말하기를 “대인(大人)은 당시의 존귀(尊貴)한 자이다.”하였다. 묘(¨4)는 가벼이 여김이다. 외외(巍巍)는 부귀(富貴)하고 고현(高顯)『[높고 드러남]』한 모양이다. 하찮게 여기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뜻이 펴져서 말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堂高數칅과 쿬題數尺을 我得志라도 弗爲也하며 食前方丈과 侍妾數百人을 我得志라도 弗爲也하며 般樂飮酒와 驅騁田獵과 後車千乘을 我得志라도 弗爲也니 在彼者는 皆我所不爲也요 在我者는 皆古之制也니 吾何畏彼哉리오』
『 당(堂)의 높이가 몇 길 되는 것과 서까래 머리가 몇 자 되는 것을 나는 뜻을 얻더라도 하지 않으며, 밥상 앞에 음식이 한 길이 진열됨과 시첩(侍妾)이 수백 명인 것을 나는 뜻을 얻더라도 하지 않으며, 즐기고 술을 마시며, 말을 달리고 사냥하며, 뒤에 따르는 수레가 천 대인 것을 나는 뜻을 얻더라도 하지 않을 것이니, 저에게 있는 것은 모두 내가 하지 않는
바요, 나에게 있는 것은 모두 옛 법이니, 내 어찌 저들을 두려워하겠는가.”』
『쿬는 ¡5也요 題는 頭也라 食前方丈은 饌食列於前者方一丈也라 此는 皆其所謂巍巍然者니 我雖得志나 有所不爲요 而所守者는 皆古聖賢之法이니 則『彼之巍巍者주:피지외외자』를 何足道哉리오』
『○ 楊氏曰 孟子此章은 以己之長으로 方人之短하니 猶有此等氣象이라 在孔子則無此矣니라』
『 최(쿬)는 서까래요, 제(題)는 머리이다. 식전방장(食前方丈)은 음식이 앞에 진열된 것이 한 길인 것이다.
이는 다 이른바 외외(巍巍)하다는 것이니, 내가 비록 뜻을 얻더라도 이를 하지 않을 것이요, 내가 지키고 있는 것은 다
옛 성현(聖賢)의 법이다. 그렇다면 저 외외(巍巍)한 것을 어찌 족히 말할 것이 있겠는가.』
『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맹자(孟子)》의 이 장(章)은 자기의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비교한 것이니, <맹자(孟子)는> 아직도 이러한 기상(氣象)이 있었다. 공자(孔子)에 있어서라면 이러한 것이 없다.”』
*맹자 ; 진심하 ; 제35장
▣ 제35장(第三十五章)
『孟子曰 養心이 莫善於寡欲하니 其爲人也寡欲이면 雖有不存焉者라도 寡矣요 其爲人也多欲이면 雖有存焉者라도 寡矣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마음을 수양함은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그 사람됨이 욕심이 적으면 비록 보존되지 못함이 있더라도 <보존되지 못한 것이> 적을 것이요, 사람됨이 욕심이 많으면 비록 보존됨이
있더라도 <보존된 것이> 적을 것이다.”』
『欲은 如口鼻耳目四支之欲이니 雖人之所不能無나 然이나 多而不節이면 未有不失其本心者니 學者所當深戒也니라 程子曰 所欲은 不必沈溺이요 只有所向이면 便是欲이니라』
『 욕(欲)은 입과 코와 귀와 눈과 사지(四肢)의 욕망 같은 것이니, 비록 사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나, 많이 하고 절제하지 않는다면 그 본심(本心)을 잃지 않을 자가 없으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소욕(所欲)은 굳이 여기에 빠지는 것만이 아니요, 다만 향하는 바가 있으면 바로 욕(欲)
이다.”』
*맹자 ; 진심하 ; 제36장
▣ 제36장(第三十六章)
『曾晳이 嗜羊棗러니 而曾子不忍食羊棗하시니라』
『 증석(曾晳)이 양조(羊棗)를 좋아했었는데, 증자(曾子)께서 차마 양조(羊棗)를 먹지 못하셨다.』
『羊棗는 實小하고 黑而圓하니 又謂之羊矢棗라 曾子以父嗜之하니 父沒之後 食必思親이라 故로 不忍食也시니라』
『 양조(羊棗)는 열매가 작고 색깔이 검으며 둥구니, 또 양시조(羊矢棗)라고도 이른다. 증자(曾子)는 아버지가 좋아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별세한 뒤에 먹을 때마다 반드시 어버이가 생각났으므로 차마 먹지 못하신 것이다.』
『公孫丑問曰 膾炙與羊棗孰美니잇고 孟子曰 膾炙哉인저 公孫丑曰 然則曾子는 何爲食膾炙而不食羊棗시니잇고 曰膾炙는 所同也요 羊棗는 所獨也니 諱名不諱姓하나니 姓은 所同也요 名은 所獨也일새니라』
『 공손추(公孫丑)가 물었다. “회자(膾炙)와 양조(羊棗)는 어느 것이 더 맛있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회자(膾炙)일 것이다.”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증자(曾子)는 어찌하여 회자(膾炙)는 잡수시면서 양조(羊棗)는 잡수시지 않았습니까?”<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회자(膾炙)는 누구나 똑같은 것이요, 양조(羊棗)는
독특한 것이니, 이름은 휘(諱)하고 성(姓)은 휘(諱)하지 않는다. 이는 성(姓)은 똑같고, 이름은 독특하기 때문이다.”』
『肉을 첓而切之爲膾라 炙는 炙肉也라』
『 고기를 저며 썬 것을 회(膾)라고 한다. 자(炙)는 구운 고기이다.』
*맹자 ; 진심하 ; 제37장
▣ 제37장(第三十七章)
『萬章問曰 孔子在陳하사 曰 탍歸乎來리오 吾黨之士狂簡하여 進取하되 不忘其初라하시니 孔子在陳하사 何思魯之狂士시니잇고』
『 만장(萬章)이 물었다. “공자(孔子)께서 진(陳)나라에 계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오당(吾黨)의 선비가 광간(狂簡)하여 진취적이되, 그 처음을 버리지 못한다.’하셨으니, 공자(孔子)께서는 진(陳)나라에 계시면서 어찌하여 노(魯)나라의 광사(狂士)들을 생각하셨습니까?”』
『탍은 何不也라 狂簡은 謂志大而略於事라 進取는 謂求望高遠이라 不忘其初는 謂不能改其舊也라 此語는 與論語小異하니라』
『 합(탍)은 어찌 아니이다. 광간(狂簡)은 뜻은 크되 일에 소략함을 이른다. 진취(進取)는 고원(高遠)한 것을 구하고
바람을 이른다. 그 처음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은 그 옛 잘못을 고치지 못함을 이른다. 이 말씀은 《논어(論語)》와 조금 다르다.』
『孟子曰 孔子不得中道而與之인댄 必也狂퇯乎인저 狂者는 進取요 퇯者는 有所不爲也라하시니 孔子豈不欲中道哉시리오마는 不可必得이라 故로 思其次也시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공자(孔子)는 ‘중도(中道)의 인물(人物)을 얻어 더불지 못할진댄 반드시 광견(狂퇯)을 할진저! 광자(狂者)는 진취적이요, 견자(퇯者)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하셨으니, 공자(孔子)께서 어찌 중도(中道)의 인물을 얻기를 원하지 않으셨겠는가마는 반드시 얻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다음의 인물을 생각하신 것이다.”』
『不得中道로 至有所不爲는 據論語컨대 亦孔子之言이니 然則 孔子字下에 當有曰字라 論語에 道作行하고 퇯作죺하니라 有所不爲者는 知恥自好하여 不爲不善之人也라 孔子豈不欲中道以下는 孟子言也니라』
『 부득중도(不得中道)로부터 유소불위(有所不爲)까지는 《논어(論語)》를 근거해 보면 또한 공자(孔子)의 말씀이니, 그렇다면 공자(孔子)라는 글자 아래에 마땅히 왈자(曰字)가 있어야 할 것이다. 《논어(論語)》에 도(道)는 행(行)으로
되어 있고, 견(퇯)은 견(죺)으로 되어 있다. 하지 않는 바가 있다는 것은 부끄러워할 줄을 알고 스스로 지조를 아껴서
불선(不善)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공자기불욕중도(孔子豈不欲中道) 이하는 맹자(孟子)의 말씀이다.』
『敢問何如라야 斯可謂狂矣니잇고』
『 “감히 묻겠습니다. 어떠하여야 광(狂)이라 이를 수 있습니까?”』
『萬章問이라』
『 만장(萬章)이 물은 것이다.』
『曰 如琴張曾晳牧皮者孔子之所謂狂矣니라』
『 “금장(琴張)•증석(曾晳)•목피(牧皮)와 같은 자가 공자(孔子)의 이른바 광(狂)이라는 것이다.”』
『琴張은 名牢요 字子張이라 子桑戶死에 琴張이 臨其喪而歌하니 事見莊子하니 雖未必盡然이나 要必有近似者라 曾晳은 見前篇하니라 季武子死에 曾晳이 倚其門而歌하니 事見檀弓이요 又言志異乎三子者之撰이라하니 事見論語하니라 牧皮는 未詳이라』
『 금장(琴張)은 이름이 뇌(牢)요, 자(字)는 자장(子張)이니, 자상호(子桑戶)가 죽자, 금장(琴張)이 그 상(喪)에 임하여 노래를 불렀으니, 이 사실이 《장자(莊子)》에 보인다. 비록 반드시 다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요컨대 반드시 이와 근사(近似)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증석(曾晳)은 전편(前篇)『[이루상(離婁上)]』에 보인다. 계무자(季武子)가 죽자, 증석(曾晳)이 그 문(門)에 기대어 노래하였으니, 이 사실이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보이며, 또 자기의 뜻은 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말하였으니, 이 사실을 《논어(論語)》〈선진(先進)〉에 보인다. 목피(牧皮)는 자세하지 않다.』
『何以謂之狂也니잇고』
『 “어찌하여 광(狂)이라 이릅니까?”』
『萬章問이라』
『 만장(萬章)이 물은 것이다.』
『曰 其志쥾쥾然曰 古之人, 古之人이여하되 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니라』
『 “그 뜻이 높고 커서 말하기를 ‘옛사람이여, 옛사람이여!’하되, 평소에 그의 행실을 살펴보면 행실이 말을 가리우지
못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쥾쥾는 志大言大也라 重言古之人은 見其動輒稱之요 不一稱而已也라 夷는 平也라 掩은 覆也라 言 平考其行이면 則不能覆其言也라 程子曰 曾晳言志而夫子與之하시니 蓋與聖人之珍하니 便是堯舜氣象也라 特行有不掩焉耳니 此所謂狂也니라』
『 효효(쥾쥾)는 뜻이 크고 말이 큰 것이다. 고지인(古之人)이라고 거듭 말한 것은 말할 때마다 곧 칭하고, 한 번만 칭할 뿐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이(夷)는 평소이다. 엄(掩)은 덮음이다. 평소에 그 행실을 살펴보면 행실이 그 말을 덮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증석(曾晳)의 뜻을 말함에 부자(夫子)께서 허여 하셨으니, 이는 성인(聖人)의 뜻과 같은 것이니, 곧 요순(堯舜)의 기상(氣象)이었다. 다만 행실에 가리우지 못함이 있었을 뿐이니, 이것이 이른바 광(狂)이라는 것이다.”』
『狂者를 又不可得이어든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하시니 是퇯也니 是又其次也니라』
『 광자(狂者)를 또 얻지 못하거든, 불결(不潔)한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 선비를 얻어서 더불고자 하셨으니, 이가 견(퇯)이니, 이는 또 그 다음인 것이다.”』
『此는 因上文所引하여 遂解所以思得퇯者之意라 狂은 有志者也요 퇯은 有守者也니 有志者는 能進於道하고 有守者는
不失其身이라 屑은 潔也라』
『 이는 위 글에 인용한 것을 인하여 마침내 견자(퇯者)를 얻을 것을 생각하신 소이(所以)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광(狂)은 뜻이 있는 자요, 견(퇯)은 지킴이 있는 자이니, 뜻이 있는 자는 도(道)에 나아갈 수 있고 지킴이 있는 자는
자신의 지조를 잃지 않는다. 설(屑)은 깨끗이 여김이다.』
『孔子曰 過我門而不入我室이라도 我不憾焉者는 其惟鄕原乎인저 鄕原은 德之賊也라하시니 曰 何如면 斯可謂之鄕原矣니잇고』
『 <만장(萬章)이 물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문 앞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내 유감으로 여기지 않을 자는 그 오직 향원(鄕原)일 것이다. 향원(鄕原)은 덕(德)의 적(賊)이다.’하셨으니, 어떠하여야 향원(鄕原)이라 이를 수 있습니까?”』
『鄕原은 非有識者라 原은 與愿同이라 荀子原慤字를 皆讀作愿하니 謂謹愿之人也라 故로 鄕里所謂愿人을 謂之鄕原이라 孔子以其似德而非德이라 故로 以爲德之賊이라하시니라 過門不入而不恨之는 以其不見親就로 辭幸이니 深惡而痛絶之也라 萬章이 又引孔子之言而問也니라』
『 향원(鄕原)은 유식(有識)한 자가 아니다. 원(原)은 원(愿)과 같으니, 《순자(荀子)》에 원각(原慤)이라는 글자를 모두 원(愿)으로 읽으니, 삼가는 사람을 이른다. 그러므로 향리(鄕里)의 이른바 원인(愿人)을 향원(鄕原)이라 이른다. 공자(孔子)께서는 덕(德) 같으면서도 덕(德)이 아니기 때문에 덕(德)의 적(賊)이라고 하신 것이다. 문을 지나면서 들어오지 않더라도 한(恨)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친히 찾아옴을 보지 못함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이니, 깊이 미워하고 통렬히 끊으신 것이다. 만장(萬章)이 또다시 공자(孔子)의 말씀을 인용하고 물은 것이다.』
『曰 何以是쥾쥾也하여 言不顧行하며 行不顧言이요 則曰 古之人, 古之人이여하며 行何爲踽踽쪱쪱이리오 生斯世也라
爲斯世也하여 善斯可矣라하여 쵖然媚於世也者 是鄕原也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어찌하여 이처럼 말과 뜻이 커서 말은 행실을 돌아보지 않으며, 행실은 말을 돌아보지 않고 말하기를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하며, 행실을 어찌하여 이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하는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을 위하여 남들이 선(善)하다고 하면 이 가(可)하다.’하여서, 엄연(쵖然)히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이 향원(鄕原)이다.”』
『踽踽는 獨行不進之貌라 쪱쪱은 薄也니 不見親厚於人也라 鄕原이 譏狂者曰 何用如此쥾쥾然行不掩其言하고 而徒每事必稱古人邪아하며 又譏죺者曰 何必如此踽踽쪱쪱하여 無所親厚哉아 人旣生於此世면 則但當爲此世之人하여 使當世之人으로 皆以爲善則可矣라하니 此鄕原之志也라 쵖은 如奄人之奄이니 閉藏之意也라 媚는 求悅於人也라 孟子言此深自閉藏하여 以求親媚於世하니 是鄕原之行也라하시니라』
『 우우(踽踽)는 홀로 걸어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양량(쪱쪱)은 박(薄)함이니, 남에게 친후(親厚)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향원(鄕原)이 광자(狂者)를 기롱하기를 ‘어찌하여 이와 같이 효효연(쥾쥾然)하여 행실이 말을 가리지 못하면서 한갓 매사에 반드시 고인(古人)을 칭하는가?’하며, 또 견자(죺者)를 기롱하기를 어찌 반드시 이와 같이 우우량량(踽踽凉凉)하여 친후(親厚)한 바가 없는가. 사람이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다만 마땅히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당세(當世)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선(善)하다고 하게 한다면 가(可)하다.’하니, 이것이 향원(鄕原)의 뜻이다. 엄(쵖)은 엄인(奄人)『[내시(內侍)]』의 엄(奄)과 같으니, 닫고 감추는 뜻이다. 미(媚)는 남에게 기쁨을 구하는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깊이 스스로 닫고 감추어서 세상에 친(親)하고 기뻐하기를 구하니, 이는 향원(鄕原)의 행실이다.”하셨다.』
『萬章曰 一鄕이 皆稱原人焉이면 無所往而不爲原人이어늘 孔子以爲德之賊은 何哉잇고』
『 만장(萬章)이 말하였다. “한 지방이 모두 원인(原人)이라고 이른다면 가는 곳마다 원인(原人)이 되지 않음이 없거늘, 공자(孔子)게서 ‘덕(德)의 적(賊)’이라고 하심은 어째서입니까?”』
『原은 亦謹厚之稱이어늘 而孔子以爲德之賊이라 故로 萬章疑之하니라』
『 원(原)도 또한 근후(謹厚)한 칭호인데, 공자(孔子)께서 ‘덕(德)의 적(賊)’이라고 하셨으므로 만장(萬章)이 의심한
것이다.』
『曰 非之無擧也하며 刺之無刺也하고 同乎流俗하며 合乎汚世하여 居之似忠信하며 行之似廉潔하여 衆皆悅之어든 自以爲是而不可與入堯舜之道라 故로 曰 德之賊也라하시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비난하려 하여도 들 것이 없으며, 풍자하려 하여도 풍자할 것이 없어서, 유속(流俗)과 동화하며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거(居)함에 충신(忠信)과 같으며 행함에 청렴결백(淸廉潔白)과 같아서, 여러 사람들이 다 좋아하거든, 스스로 옳다 여기되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덕(德)의 적(賊)’이라고 하신 것이다.』
『呂侍講曰 言 此等之人은 欲非之則無可擧요 欲刺之則無可刺也라하니라 流俗者는 風俗頹靡가 如水之下流하여 衆莫不然也라 汚는 濁也라 非忠信而似忠信하고 非廉潔而似廉潔이라』
『 여시강(呂侍講)이 말하기를 “이러한 사람은 비난하고자 하면 들 것이 없고, 풍자하고자 하면 풍자할 만한 것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하였다. 유속(流俗)은 풍속이 무너지는 것이 물이 아래로 흐름과 같아서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오(汚)는 탁(濁)함이다. 충신(忠信)이 아니면서 충신(忠信)과 같고, 염결(廉潔)이 아니면서 염결(廉潔)과
같은 것이다.』
『孔子曰 惡似而非者하노니 惡츛는 恐其亂苗也요 惡쨻은 恐其亂義也요 惡利口는 恐其亂信也요 惡鄭聲은 恐其亂樂也요 惡紫는 恐其亂朱也요 惡鄕原은 恐其亂德也라하시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같으면서 아닌 것『〔似而非〕』을 미워하노니, 가라지를 미워함은 벼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말재주가 있는 자를 미워함은 의(義)를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말 잘하는 입을 가진 자를 미워함은 신(信)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정(鄭)나라 음악(音樂)을 미워함은 정악(正樂)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자주색을 미워함은 붉은 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향원(鄕原)을 미워함은 덕(德)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다.’하셨다.』
『孟子又引孔子之言以明之하시니라 츛는 似苗之草也라 쨻은 才智之稱이니 其言이 似義而非義也라 利口는 多言而不實者也라 鄭聲은 淫樂也요 樂은 正樂也라 紫는 間色이요 朱는 正色也라 鄕原은 不狂不퇯하여 人皆以爲善하니 有似乎中道而實非也라 故로 恐其亂德이니라』
『 맹자(孟子)께서 또 공자(孔子)의 말씀을 인용하여 밝히셨다. 유(츛)는 묘(苗)와 같은 풀이다. 영(쨻)은 재주와 지혜가 있는 자의 칭호이니, 그 말이 의로운 것 같으나 의(義)가 아니다. 이구(利口)는 말이 많으나 성실하지 못한 자이다.
정성(鄭聲)은 음탕한 음악이요, 낙(樂)은 정악(正樂)이다. 자(紫)는 중간색이요, 주(朱)는 바른 색이다. 향원(鄕原)은
광(狂)하지도 않고 견(퇯)하지도 않아서, 사람들이 모두 선(善)하다 하니, 중도(中道)의 인물과 유사하지만 실제는
아니다. 그러므로 그 덕(德)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하신 것이다.』
『君子는 反經而已矣니 經正이면 則庶民興하고 庶民興이면 斯無邪慝矣리라』
『 군자(君子)는 떳떳한 도(道)를 회복할 뿐이니, 경도(經道)가 바루어지면 서민(庶民)이 <선(善)에> 흥기 하고,
서민(庶民)이 흥기 하면 사특(邪慝)함이 없어질 것이다.”』
『反은 復也라 經은 常也니 萬世不易之常道也라 興은 興起於善也라 邪慝은 如鄕原之屬이 是也라 世衰道微하여 大經不正이라 故로 人人得爲異說하여 以濟其私하여 而邪慝幷起하니 不可勝正이라 君子於此에 亦復其常道而已니 常道旣復이면 則民興於善하여 而是非明白하여 無所回互하여 雖有邪慝이나 不足以惑之矣니라』
『○ 尹氏曰 君子取夫狂퇯者는 蓋以狂者는 志大而可與進道요 퇯者는 有所不爲而可與有爲也라 所惡於鄕原而欲痛絶之
者는 爲其似是而非하여 惑人之深也니 絶之之術은 無他焉이라 亦曰反經而已矣니라』
『 반(反)은 회복함이다. 경(經)은 상도(常道)이니, 만세(萬世)에 변하지 않는 상도(常道)이다. 흥(興)은 선(善)에 흥기(興起)함이다. 사특(邪慝)은 향원(鄕原)과 같은 등속이 이것이다. 세상이 쇠하고 도(道)가 쇠미해져서 큰 경도(經道)가
바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이설(異說)을 하여 그 사욕(私慾)을 이루려고 해서, 사특(邪慝)함이 함께 일어나니 이루 다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군자(君子)가 이에 대하여 또한 그 상도(常道)를 회복할 뿐이니, 상도(常道)가 이미 회복되면 백성들이 선(善)에 흥기 하여 시비(是非)가 명백해져서 회호(回互)하는 바가 없어, 비록 사특(邪慝)한 자가
있더라도 족히 혹(惑)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광자(狂者)와 견자(퇯者)를 취하는 까닭은 광자(狂者)는 뜻이 커서 더불어 도(道)에 나아갈 수 있으며, 견자(퇯者)는 하지 않는 바가 있어서 더불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원(鄕原)을 미워하여 통렬히 끊고자 하는 까닭은 그 이것 같으면서도 아니어서 사람을 혹(惑)하게 하기를 깊이 하기 때문이다. 이를 끊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또한 경도(經道)를 회복하는 것일 뿐이다.”』
*맹자 ; 진심하 ; 제38장
▣ 제38장(第三十八章)
『孟子曰 由堯舜至於湯이 五百有餘歲니 若禹皐陶則見而知之하시고 若湯則聞而知之하시니라』
『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요순(堯舜)으로부터 탕왕(湯王)에 이르기까지가 5백여 년이니, 우왕(禹王)과 고요
(皐陶)는 직접 보고서 알았고, 탕왕(湯王)은 들어서 아셨다.”』
『趙氏曰 五百歲而聖人出은 天道之常이라 然이나 亦有遲速하여 不能正五百年이라 故로 言有餘也라 尹氏曰 知는 謂知
其道也라』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5백 년만에 성인(聖人)이 나옴은 천도(天道)의 떳떳함이다. 그러나 또한 더디고 빠름이
있어서 꼭 5백 년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유여(有餘)라고 말씀한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안다는 것은 그 도(道)를 앎을 이른다.”』
『由湯至於文王이 五百有餘歲니 若伊尹萊朱則見而知之하고 若文王則聞而知之하시니라』
『 탕왕(湯王)으로부터 문왕(文王)에 이르기까지가 5백여 년이니, 이윤(伊尹)과 내주(萊朱)는 직접 보고서 알았고,
문왕(文王)은 들어서 아셨다.』
『趙氏曰 萊朱는 湯賢臣이라 或曰 卽仲텪也라하니 爲湯左相하니라』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내주(萊朱)는 탕왕(湯王)의 현신(賢臣)이다.”』
『 혹자가 말하기를 “바로 중훼(仲텪)이다.”하니, 탕왕(湯王)의 좌상(左相)이 되었었다.』
『由文王至於孔子가 五百有餘歲니 若太公望散宜生則見而知之하고 若孔子則聞而知之하시니라』
『 문왕(文王)으로부터 공자(孔子)에 이르기까지가 5백여 년이니, 태공망(太公望)과 산의생(散宜生)은 직접 보고서
알았고, 공자(孔子)는 들어서 아셨다.』
『散은 氏요 宜生은 名이니 文王賢臣也라 子貢曰 文武之道 未墜於地하여 在人이라 賢者는 識『(지)』其大者하고
不賢者는 識其小者하여 莫不有文武之道焉하니 夫子焉不學이시리오하니 此所謂聞而知之也니라』
『 산(散)은 씨(氏)요, 의생(宜生)은 이름이니, 문왕(文王)의 현신(賢臣)이다.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도(道)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아 인간에게 있으니, 현자(賢者)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불현자(不賢者)는
그 작은 것을 알고 있어서,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도(道)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부자(夫子)께서 어찌 배우지 않았겠는가.”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들어서 아셨다는 것이다.』
『由孔子而來로 至於今이 百有餘歲니 去聖人之世가 若此其未遠也며 近聖人之居가 若此其甚也로되 然而無有乎爾하니 則亦無有乎爾로다』
『 공자(孔子)로부터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가 백여 년이니, 성인(聖人)의 세대와의 거리가 이와 같이 멀지 않으며, 성인(聖人)이 거주하신 곳과 가까움이 이와 같이 심하되, 그런데도 아무 것도 없으니, 그렇다면 또한 아무 것도 없겠구나!』
『林氏曰 孟子言 孔子至今時未遠하고 鄒魯相去又近이라 然而已無有見而知之者矣하니 則五百餘歲之後에 又豈復有聞而知之者乎리오 愚按 此言은 雖若不敢自謂己得其傳하여 而憂後世遂失其傳이라 然이나 乃所以自見其有不得辭者요 而又以見夫天理民츺不可泯滅하니 百世之下에 必將有神會而心得之者耳라 故로 於篇終에 歷序群聖之統하시고 而終之以此하시니 所以明其傳之有在요 而又以俟後聖於無窮也시니 其旨深哉로다』
『○ 有宋元豐八年에 河南程顥伯淳이 卒한대 潞公文彦博이 題其暮曰 明道先生이라하니 而其弟Å3正叔이 序之曰 周公沒에 聖人之道不行하고 孟軻死에 聖人之學不傳하니 道不行이라 百世無善治하고 學不傳이라 千載無眞儒하니 無善治라도 士猶得以明夫善治之道하여 以淑諸人하여 以傳諸後어니와 無眞儒면 則天下貿貿焉莫知所之하여 人欲肆而天理滅矣라 先生이 生乎千四百年之後하여 得不傳之學於遺經하여 以興起斯文으로 爲己任하여 辨異端하고 闢邪說하여 使聖人之道로 煥然復明於世하시니 蓋自孟子之後一人而已라 然이나 學者於道에 不知所向이면 則孰知斯人之爲功이며 不知所至면 則孰知斯名之稱情也哉리오』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맹자(孟子)께서 ‘공자(孔子)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가 멀지 않고, 추(鄒)나라와 노(魯)
나라의 거리가 또 가깝다. 그러나 이미 보고서 안 자가 없으니, 그렇다면 5백년 뒤에 어찌 다시 들어서 아는 자가 있겠
는가.’ 하신 것이다.”』
『 내가 살펴보건대, 이 말씀은 비록 감히 스스로 자기가 그 전통을 얻었다고 이르지 못하여 후세(後世)에 마침내 그
전(傳)함을 잃을까 걱정한 말씀인 듯하다. 그러나 바로 그 사양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스스로 나타내신 것이요, 또 천리(天理)와 민이(民彛)가 없어질 수 없으니, 백세(百世)의 아래에 반드시 장차 정신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터득할 자가 있을 것임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편(篇)의 끝에 여러 성인(聖人)의 전통을 일일이 서술하고 이것을 마쳤으니, 그 전통이 있는 데가 있음을 밝힌 것이요, 또 후세의 성인(聖人)을 무궁(無窮)한 후대에 기다리신 것이니, 그 뜻이 깊다.』
『 ○ 송(宋)나라 원풍(元豐) 8년에 하남(河南) 정호(程顥) 백순(伯淳)이 죽자, 노공(潞公) 문언박(文彦博)이 그 묘(墓)에 쓰기를 ‘명도선생(明道先生)’이라 하였다. 이에 그의 아우인 이(Å3) 정숙(正叔)이 다음과 같이 서(序) 하였다. “주공(周公)이 별세함에 성인(聖人)의 도(道)가 행해지지 못하였고, 맹가(孟軻)가 죽음에 성인(聖人)의 학문(學問)이 전해지지
못하였다. 도(道)가 행해지지 못하여 백세(百世)에 선(善)한 정치가 없었고, 학문(學問)이 전해지지 못하여 천년(千年)에 진유(眞儒)가 없었으니, 선(善)한 정치가 없더라도 선비는 오히려 선치(善治)의 도(道)를 밝혀서 남에게 사숙(私淑)하여 후세(後世)에 전할 수 있거니와, 진유(眞儒)가 없으면 천하가 무무(貿貿)『[어둠]』하여 갈 곳을 알지 못해서, 인욕(人慾)이 함부로 펴지고 천리(天理)가 멸할 것이다. 선생(先生)은 천 4백 년 뒤에 태어나서 전해지지 않던 학문을 유경(遺經)에서 얻어 사문(斯文)『[도학(道學)]』을 흥기 시킴을 자기의 책임으로 삼아, 이단(異端)을 분별하고 사설(邪說)을
막아서 성인(聖人)의 도(道)로 하여금 환하게 다시 세상에 밝혀지게 하셨으니, 맹자(孟子) 이후로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배우는 자가 도(道)에 대해서 향할 바를 알지 못한다면 이 분의 공로를 누가 알겠으며, 그의 경지를 알지 못한다면 명도(明道)라는 이 명칭이 실정에 걸맞음을 누가 알겠는가.”』
*맹자 ; 부록
▣ 부록
『○ 맹자 ; 부록 ; 맹자집주에 대하여+1』
『○ 맹자 ; 부록 ; 맹자집주에 인용된 성씨 약칭+2』
『○ 맹자 ; 부록 ; 맹자연보+3』
*맹자 ; 부록 ; 맹자집주에 대하여
▣ 맹자집주(孟子集註)에 대하여
『 본서(本書)는 《맹자(孟子)》 14편(篇)과 주자(朱子)『[주희(朱熹)]』의 장구집주(章句集註)를 원문(原文)에 현토(懸吐)하고 국역(國譯)한 것이다.』
『 맹자(孟子)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공자(孔子)의 학문사상을 계승하여 인의(仁義)를 제창하고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행할 것을 강조한 인물로, 후대에서는 아성(亞聖)이라 칭호하여 공자와 함께 추존되고 있음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 《맹자(孟子)》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밝혔듯이 맹자 자신이 그의 문도들과 함께 저술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서는 원래 7편(篇)으로 엮어져 있었으나, 후한말(後漢末)에 조기(趙岐)가 장구(章句)를 만들면서 각편을
상(上)•하(下)로 나누어 14편이 된 것인데, 이러한 체제가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 《맹자(孟子)》는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에 《논어(論語)》•《효경(孝經)》•《이아(爾雅)》와 함께 학관(學官)에 세워져 사박사(四博士)의 하나가 되었다. 그 후 무제(武帝) 때 사박사가 오경박사(五經博士)로 대체되면서 제자서(諸子書)의 하나로 격하되었으나, 송신종(宋神宗) 때에는 겸경(兼經)으로 높여졌다. 이어서 정(程)•주(朱)에 의하여 사서(四書)의 하나로 표장(表章)되면서 《논어(論語)》와 함께 유가경전(儒家經典)의 대표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이 《맹자(孟子)》가 청대(淸代)의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에도 들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 《맹자(孟子)》의 주석서로는 조기(趙岐)의 《맹자장구(孟子章句)》 14편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맹자(孟子)》의 해석서(解釋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실려 있는 고유(高誘)의 서(序)에는 고유 자신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정정한 일이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후한서(後漢書)》〈유림전(儒林傳)〉에는 “정증(程曾)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다.” 하였고,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에는 후한의 정현(鄭玄)과 유희(劉熙)가 각각 《맹자(孟子)》 7편을 주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상의 제본(諸本)들은 모두 산일되어 지금에는 전하지 않는다.』
『 현존(現存)의 주석서로는 주자(朱子)의 집주(集註), 그리고 조기(趙岐)의 주(注)에 의거하여 이루어졌다는 송대(宋代)의 손석(孫奭)의 소(疏)가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 들어있다. 그러나 손씨의 소는 위작(僞作)이라는 설이 있으며, 청대(淸代)의 초순(焦循)이 지은 《맹자정의(孟子正義)》 역시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역시 주자의 집주가 가장 정확하고 알기 쉬운 주석서로 알려져 있다. 주자가 평생의 정력을 바쳐 수많은 학설의 이동(異同)을 절충하여 사서집주(四書集註)를 만들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정주학(程朱學)을 신봉한 나머지 《영락대전(永樂大全)》을 내각(內閣)에서 간행 반포함으로써 사자(士子)들은 오로지 주자의 집주만을 읽어왔다. 이 때문에 우리 선현들의 사상을 바르게 파악하려면 주자의 집주에 입각한 해석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 본인은 다년간 고전강독을 지도해 오면서 초학자(初學者)들의 자습에 편리한 사서역간(四書譯刊)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이회(二以會) 회원들과 《논어집주(論語集註)》의 역간작업(譯刊作業)에 이어서 나머지 사서집주의 완역을 위하여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여 왔다. 그 결과, 지난 해에 《논어집주(論語集註)》를 출간하게 되었던 바 동호인들의 좋은 호응과 함께 사서완역(四書完譯)을 재촉하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감히 옛 상자에 있던 원고를 다시 수정하고
정리하여 세상에 펴내게 된 것이다.』
『 본서의 현토(懸吐)에는 다행히도 간재(艮齋) 전우(田愚)선생이 손수 현토한 수택본(手澤本)이 있어서 참고가 되었으며, 경의해석(經義解釋)에도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다만 체제의 통일성과 구독(句讀)의 기본법칙을 최대한 살리려는
의도 하에 일부 수정한 곳이 없지 않으며, 또한 최근에 입수된 양백준(楊伯峻)의 《맹자역주(孟子譯註)》를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 비재천학(菲才淺學)한 소치로 잘못 해석하여 경전(經典)에 누를 끼친 경우도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점 선배제현의 숨김없는 질정(叱正)을 기다려 더욱 원의(原義)에 충실한 역주서(譯註書)가 되도록 노력을 계속할 것을 다짐하면서 고전을 강독하고 자습하는 분들께 기초적인 길잡이로서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 끝으로 동양고전국역총서(東洋古典國譯叢書)의 간행을 추진하시는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안병주(安炳周)회장님의 큰 뜻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손수 오류를 지적하고 교정을 보아주신 이종덕(李鍾德)학형과 원고정리를 위해 애써준 김일균(金鎰均)군, 교정을 맡아준 박승주(朴勝珠)양, 박경숙(朴慶淑)양, 원재익(元載益)군, 한은진(韓恩珍)양 등의 노고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 서력(西曆) 1991년 신미(辛未) 신춘(新春)에 성백효(成百曉)는 열상(冽上)의 관일헌(觀一軒)에서 삼가 쓰다.』
*맹자 ; 부록 ; 맹자집주에 인용된 성씨 약칭
§《맹자집주(孟子集註)》에 인용된 성씨약칭(姓氏略稱)
『 『※ 연대(年代)가 표시되지 않은 것은 모두 송대(宋代)임 ※』』
『▷ 공씨(孔氏)』
『명(名)은 문중(文仲)이고 자(字)는 경부(經父).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反對)했음.』
『▷ 반흥사(潘興嗣)』
『자(字)는 연지(延之)이며 염계(濂溪) 주돈이(周敦Å3)의 문인(門人).』
『▷ 범씨(范氏)』
『명(名)은 조우(祖禹)이고 자(字)는 순부(淳夫).』
『▷ 범준(范浚)』
『자(字)는 무명(茂明)이며 향계선생(香溪先生)이라 칭(稱)함.』
『▷ 사씨(謝氏)』
『명(名)은 양좌(良佐)이고 자(字)는 현도(顯道)이며 이천(伊川)의 문인(門人)으로 상채선생(上蔡先生)이라 칭(稱)함.』
『▷ 서씨(徐氏)』
『명(名)은 도(度)이고 자(字)는 절효(節孝).』
『▷ 양씨(楊氏)』
『명(名)은 시(時)이고 자(字)는 중립(中立)이며 호(號)는 구산(龜山). 명도(明道)•이천(伊川)을 사사(師事)함.』
『▷ 여시강(呂侍講)』
『명(名)은 희철(希哲). 명도(明道)•이천(伊川)을 사사(師事)했음.』
『▷ 여씨(呂氏)』
『명(名)은 대림(大臨)이고 자(字)는 여숙(與叔). 명도(明道)•이천(伊川)을 사사(師事)했음.』
『▷ 오씨(吳氏)』
『명(名)은 역(â)이고 자(字)는 재로(才老).』
『▷ 왕면(王勉)』
『송(宋)의 건안(建安) 사람.』
『▷ 왕씨(王氏)』
『명(名)은 안석(安石)이고 자(字)는 개보(介甫)이며 형국공(荊國公)에 봉해졌으므로 왕형공(王荊公)이라 칭(稱)함.』
『▷ 유씨(游氏)』
『명(名)은 초(酢)이고 자(字)는 정부(定夫). 명도(明道)•이천(伊川)을 사사(師事)함.』
『▷ 윤씨(尹氏)』
『명(名)은 돈(焞)이고 자(字)는 언명(彦明)이며 이천(伊川)의 문인(門人).』
『▷ 이씨(李氏)』
『명(名)은 욱(郁)이고 자(字)는 광조(光祖)이며, 구산(龜山) 양시(楊時)의 문인(門人).』
『▷ 이연평(李延平)』
『명(名)은 동(쪋)이고 자(字)는 원중(愿中). 주자(朱子)의 스승으로 연평선생(延平先生)이라 칭(稱)함.』
『▷ 임씨(林氏)』
『명(名)은 지기(之奇)이고 자(字)는 소영(少穎)이며 호(號)는 졸재(拙齋).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의 문인(門人).』
『▷ 장경부(張敬夫)』
『명(名)은 식(쳫)이고 경부(敬夫)는 자(字)이며 호(號)는 남헌(南軒). 주자(朱子)와 교분(交分)이 두터웠음.』
『▷ 장씨(張氏)』
『명(名)은 일(鎰).』
『▷ 장자(張子)』
『명(名)은 재(載)이고 자(字)는 자후(子厚)이며 횡거선생(橫渠先生)이라 칭(稱)함.』
『▷ 정씨(丁氏)』
『명(名)은 공저(公著)이고 자(字)는 평자(平子)이며 당(唐)나라 사람.』
『▷ 정씨(鄭氏)』
『명(名)은 현(玄)이고 자(字)는 강성(康成). 후한(後漢)의 학자(學者)로 훈고학(訓¢學)의 원조(元祖).』
『▷ 정자(程子)』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Å3)의 형제(兄弟)를 함께 칭(稱)함. 명도(明道)의 자(字)는 백순(伯淳)이며 이천(利川)의 자(字)는 정숙(正叔)으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Å3)를 함께 사사(師事)함.』
『▷ 조씨(趙氏)』
『명(名)은 기(岐)이고 자(字)는 빈경(ª'卿). 후한(後漢) 사람으로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음.』
『▷ 조씨(趙氏)』
『명(名)은 순손(順孫)이고 자(字)는 화중(和仲), 격재선생(格齋先生)이라 칭(稱)함.』
『▷ 주자(周子)』
『명(名)은 돈이(敦Å3)이고 자(字)는 무숙(茂叔). 염계선생(濂溪先生)이라 칭(稱)함.』
『▷ 추씨(鄒氏)』
『명(名)은 호(浩)이고 자(字)는 지완(志完)이며 도향선생(道鄕先生)이라 칭(稱)함.』
『▷ 풍씨(豊氏)』
『명(名)은 직(稷)이고 자(字)는 상지(相之).』
『▷ 하숙경(何叔京)』
『명(名)은 호(鎬)이며 숙경(叔京)은 자(字)임. 주자(朱子)의 문인(門人)이며 대계선생(臺溪先生)이라 칭(稱)함.』
『▷ 호씨(胡氏)』
『명(名)은 안국(安國)이고 자(字)는 강후(康侯).』
*맹자 ; 부록 ; 맹자연보
▣ 맹자연보(孟子年譜)
『 맹자(孟子)의 연보(年譜)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므로 자세히 알 수 없고, 다만 청대(淸代) 사람 적자기(狄子奇)의
저술인 《맹자편년(孟子編年)》에 의하여 그 개략을 추려보았다.』
『▷ B.C. 372년 4월 2일』
『추(鄒)나라『[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연주부("州府) 추현(鄒縣)]』에서 태어나다.』
『▷ B.C. 358년『(15세)』』
『노(魯)나라에서 배우다.』
『▷ B.C. 332년『(41세)』』
『처음 추(鄒)나라 목공(穆公)을 만나다.』
『▷ B.C. 331년『(42세)』』
『제(齊)나라 평륙(平陸)에 머무르다.』
『▷ B.C. 330년『(43세)』』
『추(鄒)나라에서 임(任)나라로 가다.』
『▷ B.C. 329년『(44세)』』
『제(齊)나라 평륙(平陸)에서 제(齊)나라 서울로 가다.』
『▷ B.C. 328년『(45세)』』
『제(齊)나라 빈사(賓師)가 되다.』
『▷ B.C. 326년『(47세)』』
『제(齊)나라 떠나 송(宋)나라로 가다.』
『▷ B.C. 325년『(48세)』』
『송(宋)나라에서 추(鄒)나라로 돌아오다.』
『▷ B.C. 324년『(49세)』』
『추(鄒)나라에서 등(¦!)나라로 가다.』
『▷ B.C. 322년『(51세)』』
『등(¦!)나라를 떠나 추(鄒)나라로 돌아오다.』
『▷ B.C. 320년『(53세)』』
『양(梁)나라 혜왕(惠王)의 초빙을 받고 양(梁)나라로 가다.』
『▷ B.C. 319년『(54세)』』
『양(梁)나라 왕 영(촳)이 죽자, 양(梁)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가다.』
『▷ B.C. 318년『(55세)』』
『제(齊)나라에서 경(卿)이 되다.』
『▷ B.C. 317년『(56세)』』
『모친(母親)의 상(喪)을 당하여 제(齊)나라에서 노(魯)나라로 돌아와 장례를 모시다.』
『▷ B.C. 315년『(58세)』』
『노(魯)나라에서 제(齊)나라로 돌아오다.』
『▷ B.C. 314년『(59세)』』
『제(齊)나라가 연(燕)나라를 정벌하여 횡포하자, 제(齊)나라를 떠나 송(宋)나라로 가다.』
『▷ B.C. 313년『(60세)』』
『송경(宋툔)을 석구(石丘)에서 만나 인의(仁義)로 진(秦)•초(楚)의 왕(王)을 설득할 것을 권하다.』
『▷ B.C. 312년『(61세)』』
『송(宋)나라에서 설(薛)나라로 가다.』
『▷ B.C. 311년『(62세)』』
『설(薛)나라에서 노(魯)나라로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추(鄒)나라로 돌아오다.』
『▷ B.C. 289년『(84세)』』
『1월(月) 15일(日), 세상을 떠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