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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하는 남자,Celui qui doit mourir,..aka He Who Must Die,1957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그리스어 : Ο Χριστός Ξανασταυρώνεται, "Ό Christόs Xanastavrόnetai")는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Níkos Kazantzákis)의 소설로 1950 년부터 번역본으로 출판 된 후 1954 년 아테네에서 그리스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 아나톨리아의 Lycovrissi 마을 주민들에 의한 그리스도의 수난의 준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소설은 1948 년 작가가 앙 티브에서 망명하는 동안 쓰여졌습니다1. 이 책은 1950년에 스웨덴어로, 1951년에 노르웨이어와 독일어로, 1952년에 덴마크어, 핀란드어, 네덜란드어로, 1953년에 마지막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2. 그리스어 원문은 1954년이 되어서야 나왔는데, 1955년에 최초의 프랑스어 번역판이 나오기 1년 전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무대에 올리려는 그리스 마을 공동체의 시도에 대해 알려줍니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아래 있는 그리스 마을 Lycovrissi, 'La Fontaine-au-Loup'에서 열립니다.
그래서 마을은 7년마다 수난을 상연하고 마을 원로들은 마을 사람들 중에서 배우를 선발한다.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도록 선택된 마놀리오스는 수도원의 수련자였던 겸손한 소년이자 목자입니다. 얀나코스는 사도 베드로가 된다. 그는 당나귀를 타고 마을을 여행하며 물건을 파는 상인 겸 행상인입니다. 그는 따뜻하고 순진하며 무엇보다 당나귀를 사랑합니다. 부유한 늙은 귀족 파스파아르케아스의 아들 미켈리스가 사도 요한이 됩니다. 마을 카페의 주인인 코스탄디스는 사도 야고보 대제입니다. 그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공유하고 싶지만 조금 길을 잃었습니다. 다음은 유다로 선택된 파나요타로스입니다. 그는 복수를 기다리는 거칠고 열정적인 남자입니다. 과부 카테리나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마을의 매춘부입니다. 그것은 아름답지만 마을에서 변두리입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가장 관대하고 결국 그녀가 믿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그런 다음 Lycovrissi의 장로들이 발표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에 굽히는 횡포한 인간 그리고리스(Grigoris) 신부가 있습니다. 아르콘 파트리아르케아스는 마을의 족장입니다. 그는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산다. 늙은 라다스는 자신의 돈에 집착하는 구두쇠이지만 돈을 쓰지 않기 위해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Hadji Nikolis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무능하고 형제인 사제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교장입니다.
전체 이야기는 Lycovrissi의 영주 인 Agha의 터키 가족에 의해 향상됩니다. 그는 동양의 호화로움에 살며 구멍처럼 술을 마시고 라키와 예쁜 소년을 사랑합니다. 후세인은 주인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수행하는 동양의 거인이자 수호자입니다.
사제 포티스는 또 다른 캐릭터입니다. 그는 터키군의 침략을 받아 황폐해진 마을에서 굶주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리코브리시에서 피난처를 찾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마을에 왔습니다. 사제 그리고리스에게 격퇴당한 피난민들은 인근 사라키나 산의 벌거벗은 비탈로 후퇴하여 그곳에서 계속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그리스도를 연기하는 마놀리오스, 야나코스, 사도 베드로, 미첼리스, 사도 요한 등을 사랑하는 마을 사람들은 장로들에게 세뇌됩니다. 주인공은 거룩하고 진정한 사제인 포티스 신부로, 굶주리고 죽어가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청하기 위해 마을에 왔고, 그들은 마을을 떠나 사막 산에서 피난처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Manolios, Yannakos, Michelis 및 Konstandis의 도움으로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그리고리스 신부는 마을을 지배하는 자신의 권력을 두려워하여 사제와 그의 백성에 대한 증오 캠페인을 시작하고, 그 다음에는 나머지 그룹에 대한 증오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어느 순간 마놀리오스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지만 마지막 순간에 목숨을 건집니다. 마을 원로들의 독이 아가를 덮치기까지 하지만, 그는 자신의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불안해하며 편안함을 유지한다.
그런 다음 마놀리오스는 결심을 끝내고 언덕으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미첼리스는 재산을 버리고 마놀리오스와 함께 살게 된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를 화나게 하고, 아버지는 결국 죽게 됩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사도 유다인 파나요타로스는 실제로 성격을 바꾸지 않고 매우 위험해지고 실제 유다로 판명됩니다. 그가 미친 열정을 가졌던 미망인 카테리나의 죽음 이후 그의 삶은 더 이상 그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산의 주민들과 Michelis와 Manolios를 염탐하고 주요 악당 중 한 명인 Grigois 신부에게 보고하는 것은 바로 그입니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이 마놀리오스를 죽이러 온다.
«순간 마놀리오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는 문으로 돌아섰다. 닫혔습니다. 그는 불이 켜진 세 개의 램프를 바라보았고, 그 아래에는 전직 투표로 가득 찬 성상들을 바라보았다: 붉은 뺨을 가진 그리스도, 단정하게 빗은 머리를 빗고 미소 짓고 있는 그리스도; 동정녀 마리아는 아기를 굽히고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세례 요한은 사막에서 설교했습니다.
마놀리오스는 교회의 금고를 올려다보았고, 어둠 속에서 무자비한 인류 위에 굽혀 있는 전능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주위의 군중을 바라보았다. 마치 어둠 속에서 단검의 희미한 빛을 보는 것 같았다. 늙은 라다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그를 두고 가자!" 동시에, 문을 격렬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침묵을 지키고 입구 쪽으로 돌아섰다. 분노에 찬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열려! 열다! » ; "포티스 신부의 목소리야!" 누군가 소리쳤다. "야나코스의 목소리," 다른 사람이 말했다. "사라키니들이 우리에게서 그것을 빼앗으러 왔어!"
문은 심하게 흔들렸고, 경첩은 삐걱거렸다. 밖에서 남자와 여자들이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열려라, 살인자들아!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 포티스 신부는 분명하게 물었다.
사제 그리고리스가 손을 들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는 죄를 짊어지겠습니다! 자, 파나요타로스! 파나요타로스는 단검을 뽑아 들고 그리고리스 신부에게 돌아섰다. "아버지의 축복으로요?" 그가 물었다. "나의 축복으로, 공격하라!" ...
제사장 포티스와 그의 백성들은 마놀리오스의 시체를 산으로 옮겼다. 그는 곁에 무릎을 꿇고 그의 손을 잡았다.
자정쯤 종이 울리기 시작했고, 그리스도인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고, 예수님의 탄생을 보게 했다. 문이 하나 둘씩 열리자 기독교인들은 추위에 떨며 교회로 달려갔다. 밤은 고요하고, 얼음이 얼고, 별이 없었다.
포티스 사제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알리는 종소리를 기쁘게 들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나의 그리스도여, 그것은 정말로 헛되도다"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2000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너희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 나의 그리스도여, 당신은 언제 더 이상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우리 가운데 영원히 살기 위해 태어나시겠습니까? »
줄스 다신,Jules Dassin 감독
Melina Mercouri ... Katerina / Mary Magdalene
Jean Servais ... Priest Fotis
Carl Möhner ... Lukas
Grégoire Aslan ...Agha
Gert Fröbe ... Patriarcheas (as Gert Froebe)
2.35 : 1 screen/흑백/2.0 모노/122분
"1958 BAFTA Awards 음악상 후보
1957' Cannes Film Festival 황금종려상 후보,특별상 수상"
언어/Italy+France
자막/한국
번역/조나단 유 시나리오 스쿨,서은영
"희랍인 조르바>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불멸의 걸작이 <페르라>의 줄스 다신을 만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1883~1957)
수많은 세월,
간절히 보고 싶었던 영화를 텅 빈 극장에서
홀로 시사회를 할 때의 기분을 여러분은 아시나요?
서은영님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던 기쁨입니다.
카잔차키스는 1883년 그리스 크레타(Creta)섬의 수도인 메갈로카스트로(현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습니다.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당시 크레타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그의 조부와 부친은 터키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더랬죠.
사춘기 때부터 이런 집안의 영향으로 전투에 참가하였고
터키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89년 크레타에서 터키인 관리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
터키인들에 의해 기독교인 학살이 시작되자
그의 가족은 키클라데스 제도 낙소스(Náxos) 섬으로 피신하였죠.
낙소스 섬에서 프랑스 가톨릭 수도회가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며 프랑스어를 배웁니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그리스 정교를 믿었기 때문에
프랑스 가톨릭의 영향을 반대하며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하였죠.
1902년 아테네로 건너가 아테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졸업하자 그리스 섬 곳곳을 여행합니다.
특히 파리에서 그는 니체의 철학을 공부하였는데
카잔차키스에게 큰 사상적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됩니다.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니체의 표현대로 이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힘과 정신으로 질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불교에 심취해서 부처를 통해 자신의 구원을 얻기위해 노력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1917년에는 친구 알렉시스 조르바와 갈탄 광산을 찾기 위해
크레타 해안에서 머물렀죠.
그들의 광산사업은 망하고 말았지만 조르바와 추억을 <희랍인 조르바>라는 소설 속에
녹여내었습니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유쾌함과 순수함을 존경했고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훗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카잔차키스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역시 오늘 소개하는
바로 그가 1955년에 발표한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O Khristós Xanastavrónetai>입니다.
이 소설은 <페드라>를 만든 줄스 다신 감독에 의해
<죽어야 하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죠.
카잔차키스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에서
당시 유럽의 큰 화두였던 전쟁 난민 문제를
유럽의 철학·문예·사회 사조 등을 버무리면서
그리스의 본원적(本源的)인 신앙심과 비교하면서
행위 없는 신앙의 위선을 까발리는 위대한 문학으로 완성 시켰죠.
이 소설은 카잔차키스를 세계적인 대 문호로 각인시킵니다.
알다시피 그리스와 터키는 영원한 애증의 관계이죠.
그리스 정교 종주국으로서 로마와 적당하하게 타협하면서
그리스 반도를 지배하던 그리스가 동로마 제국과 함께
1453년 오토만 제국에 의해 멸망된 이후 약 400년간을
터키의 지배 하에 있었던 비운의 섬이었죠.
그러했던 그리스는 1912년 결성된 발칸 4국 동맹 협약으로 겨우 크레타 섬을
터키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었죠.
이 영화는 1900년대초 여전히 터키의 지배 하에 있던 그리스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크레타 섬은 그리스 정교회와 터키의 이슬람교가 극렬하게 충돌하는 에게해의 화약고와 같은 지역이었죠.
크레타 섬은 역사 대대로 매년 마을 사람 전체가 <예수 수난극>을 준비해서 무대에 올리는
독실한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집단촌이었습니다.
그해도 어김없이 그들은 터키 정부에게 허가를 맡은 후 <예수 수난극>을 준비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터키 정부를 대신해서 주둔한 총독을 <아기총독>이라고 부르는데
정말이지 한 방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그는
그리스인들을 대하는 모든 태도가 징글맞고 노련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마을의 수장은 그리스 정교회의 그레고리스 신부님입니다.
당연히 <예수 수난극>의 총 감독 역시 그레고리스 신부님입니다.
12명의 제자들로는 마을의 이러 저러한 청년들이 선출됩니다.
올 해도 막달라 마리아 역으로는 동네에서 온갖 남자들을 후리고 다니는
창녀인 카탈레나(Melina Mercouri) 가 선발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올 해의 예수 역으로는 동네에서 가장 수줍음이 많은
마놀리오스라는 남자가 맡게 됩니다.
마놀리오스는 자신은 말더듬이에다가 수줍음을 심하게 타기 때문에
예수역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항변하지만
그레고리스 신부님은 단호하게 예수님 역으로 마놀리오스를 지명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 수난극>의 연습이 시작되려는 찰라에
이 마을에 험악한 사건이 덮칩니다.
터키로부터 마을이 불타고 함락 당한 이웃의 피난민들이 크레타 섬으로 들이닥친 것이죠.
게다가 이들 중에는 이미 콜레라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크레타 주민들은 황급하게 이들을 마을로부터 몰아냅니다.
피난민들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크레타 사람들을 저주하며
반대편 사카리나 산으로 올라갑니다.
이제 크레타 사람들과 사카리나 피난민들 사이에 영화 내내 엄청난 반목과 대립이
팽팽하게 줄을 당깁니다.
콜레라로 죽어가는 사카리나 산 위의 난민들...
그들을 대상으로 몰래 빵 한 조각을 팔고
대신 그들의 손가락에 끼여 있는 금반지를 받아내는 극악한 크레타의 장사꾼이 있는가 하면
반면 죽어가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용감하게 나섭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예수 수난극>에서 예수 역을 연기하는 마놀리오스입니다.
마놀리오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준 토지 위에
난민들을 위한 정착촌을 짓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런 마놀리오스를 반역자로 규정하고
처단하려 하고 동시에 터키 군들은 이 난민들을 토벌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제 마놀리오스는 터키군과 자신을 반대하는 마을 사람 모두를 상대로
싸워야 합니다.
그런 마놀리오스를 돕는 유일한 사람은 마을의 창녀 카탈레나 뿐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
엄청나게 철학적이고 무시무시하게 비유적인 한 거장의 마스터피스입니다.
왜 세월이 지나도 수많은 문학 평론가들이
우리 인간이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 카잔차키스의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순위에 올리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제가 계시록 강의를 하면서 요한이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중에서
가장 혹독하고 참혹한 평가를 받았던 사데교회의 모델링이 바로
그리스 정교회라고 강의한 적이 있었죠.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요한계시록3장1절~)"
온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예수의 수난극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면 그것이
구원이라고 믿는 크레타 사람들의 행위를 통한 구원에
카잔차키스는 행위 없는 신앙은 죽은 믿음이라고 못 박으며
기독교의 이중적 민낯을 통렬하게 까발리는 영화입니다.
카잔차키스는 거듭 말하죠.
너희 행위에 중독된 기독교인들이여...
그대들은 21세기, 세기말에 예수가 다시 이 땅에 온다해도
결국은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바리새인적인 기질을 갖고 있노라고...
그래서 한번의 예배를 드리기 전에
야고보가 한 말을 기억하라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라"(야고보서1장27절)
[DRFA,JONATHAN]
CINE-CRIS 희귀 필름: 크리스토스 파파크리스토풀로스
조회수 11,302회 2021. 9. 5.
카뮈,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니체, 베르그송을 결합한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걸작이 와이드 스크린에서 그리스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찬가로 변신합니다.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가 금지한 영화로, 카잔차키스의 소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그리스 이단 사상가의 최고는 아니다). 장 세르베, 게르트 프로베, 그레고어 아슬란, 르네 르페브르, 뤼시앙 랭부르, 피에르 뱅, 모리스 로네, 페르낭 르두, 로저 하닌, 니콜 베르거, 조 다생, 테디 빌리스, 칼 모너, 요르고스 파운타스, 멜리나 메르쿠리, 나소스 케드라카스, 디모스 스타레니오스, 리라 무수리 등 프랑스, 독일, 그리스 배우들이 이 역사적인 영화에 참여합니다. 영화의 의상은 Giannis Tsarouchis가 디자인했으며 그리스 음악 테마는 Manos Hatzidakis의 관리하에 선택되었습니다. 종교적이고 정치적으로 혁명적인 이 영화는 그리스의 국보인 쥘 다생(JULES DASSIN)이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영어로 번역된 원작 소설 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https://archive.org/details/christr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