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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학교기고문1) 문밖에 계시는 주님
1.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이 성경구절은 흔히 예수님께서 불신자의 마음 문밖에 서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장면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진실일까요?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전지하신분이시니, 문안쪽 즉 집안에 아무도 없는데 두드리시지는 않을것이구요. 집안 누군가에게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문안쪽 집안엔 누가 있을까요?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일부이니, 문안에는 라이디게아 교회와 교인들이 있을것입니다. 교회와 교인들은 집안에 있고, 예수님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니 예수님께서 당신의 집인 교회에서 안계신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을 살다 자신의 죄가 생각나거나, 혹은 이땅에서의 인생은 험악하더라도 천국을 소망하는 분들이 교회에 갑니다. 혹은 마음의 평안을 위하여 교회에 갑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길 원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라고, 예수님께서 천국에 인도하여주시길 원하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얻고자 교회를 나갑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예수님을 읽어버렸는지 예수님이 안계십니다. 예수님이 없으신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구원이 없고, 죄용서도없고, 천국도 없습니다. 평안도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세상엔 계시록이 쓰여진 시대보다 예수님 안계신 교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2.
아이들이 자라면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아이의 바른 인성과 바른 신앙과 졸업후 사회에서의 역활을 잘 감당하도록 여러학교를 알아보고 그중 제일 좋게 생각되는 학교에 입학시키려합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학교가, 예수님없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아이를 못된 인성으로, 삐뚤어진 신앙으로, 졸업후 사회를 더럽히는 아이로 자라게한다면 그 학교는 피할것입니다. 어떤 부모라도 자신의 귀한 아이를 예수님 안계신 지옥으로 던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학교의 기준은 2가지였습니다. 먼저 인성, 신앙, 졸업후 사회에 유익을 주는 아이로 자라게하는 곳, 둘째 중고등학교 시간이 단지 대학입시만을 위한 준비기간이 아니고, 아이의 전인격 즉 지성 신앙감정 삶의 모습 모두가 자라는 성장의 시간이되게하는곳곳입니다.
3-1.
몇년전 학부모 방문의 시간동안 함께간 아내가 멀미등으로 호텔 음식을 먹지못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아이와 함께 과일을 구입하려하였는데요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상가건물안에 불은 켜져있으나 문은 잠겨있었습니다. 어떻게해야하나? 포기해야하나? 고민하고있을때, 아이가 포기하지않고 상가를 돌며 닫혀있는 모든 문을 하나씩 열어보더군요. 결국 많은 문 중에 잠기지않은 문을 하나 발견하였고 들어가 중국상인들과 과일가격을 흥정하고 결국은 엄마에게 줄 과일을 구입하였습니다. 아이가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아이로 성장한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한마디도 못했던 중국어인데 과일가격 흥정을 하더군요 아이의 외유내강을 바라보는 부모는 정말 기쁩니다. 집에 데리고 있었다면, 학교에서 배우못하였다면 이런 성장은 없었겠지요
3-2
3살 어린 동생을 챙기더군요. 물론 이전에도 동생을 아끼던 언니였으나 더욱 더욱 동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생의 미래를 위하여 동생도 자신의 학교에 보내달라며 하였습니다.
학교의 장단점을 말해보라고 했더니 단점으로 부모와 떨어져있어야하고 아플때 아빠병원에서 치료가 안되니 힘들고.. 등등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부모와 같이 좋은 선생님과 아버지보시게에 기뻐하실 학교와 힘들때 돌보아주는 좋은 언니들과 친구들이 있다고 장점을 말하더군요. 학교의 장단점을 분별하고 동생의 길을 인도하는 언니로 성장한것입니다.
한치앞도모르고 1분뒤의 상황을 모르는 언약한 인생이기에 나아간 인생길이 100% 옳은길이었다고 장담하지는 못한다고생각합니다. 다면 순간마다 최선을 다할뿐이지요
3-3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내려면 조금은 안정적인 대학에는 원서를 낼수없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하향 안정 지원을 할줄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떨어질 위험성이 있는 대학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학, 자신의 원했던 학과에 원서를 내었습니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물었을때
아이의 답은 "실패하더라도 도전조차안하면 훗날 후회가득한 인생이 될듯해서요." 라고하였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단 꿈을 향하여 도전하는 아이로 성장한것입니다. 학교의 교육이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않은 아이로 훈련시켜준것이죠
3-4
아이가 원하는 대학 합격을 통보받았을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쁜 딸의 인생에서 제일 황금기일것이다. 1시간을 아깝게 생각하고 지내라. 아빠가 생각하기엔 3가지중에 하나를 했으면 좋겠다 1)해외여행 2)운전면허취득 3)성경공부 무얼하든지 선택해라..."
아이의 결정은 학교에 남아서 선생님들과 동생들을 돕겠다며 귀국을 늦추는 것이었습니다. 선배언니들이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었으니, 자신도 후배들에게 그렇게 해주어야함이 마땅하다고하더군요. 배은망덕하지않은 아이로 자란 것입니다.
얼마전 친구의 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헴버거를 줄서서 구입하여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친구는 그것을 모르고 먹었는데요 아들이 헴버거가 없자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했다고합니다. 친구가 슬퍼하더군요
늦둥이를 둔 친구는 유치원생인 아들에게 잔신부름을 시켰더니 막내하는말 "내가 아빠 부하야? 왜 나를 시켜?"라고했습니다. 저는 "그럼 아빠와 엄마는 너에 종이냐? 아침부터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돈주어서 유치원에 보내고 왜 그래야하는데.." 어린 아이이지만 혼내라고 했습니다.
3-5
강의노트 나눔
아이가 대학에서는 열심히 강의를 듣고 교수들의 강의안을 pdf파일로 정리하여 나누워주더군요. 수업을 빼먹은 한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다른 학교를 나온 학우들이 이해를 못했다고합니다. 나혼자 공부하여 나혼자 출세하고 나혼자 잘먹고 잘살겠다는 개인주의 고립주의가 아니고, 함께 성장해 가는 공동체의 정신의 학교에서 배웠기때문입니다. 다른 학우들이 혼자 가지고있던 자료들을 가지고왔고 그 자료들을 더하여 아이의 자료는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학우들과의 관계도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학교에서 나눔으로 더욱 풍요로워지는 비결,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 수많은 열매가 맺어지는 비밀을 배웠기때문입니다.
3-6.
선생님 마중
아이가 있는 상해에 고등학교때의 선생님이 오신다고 하니 기뻐하며 마중을 하더군요. 다른 학교의 학우들은 이 또한 이해못하였다고합니다. 자신들은 아픈 기억이 떠올라서 고등학교나 학원을 생각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반면 아이는 학교와 선생님들을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하고있습니다. 은혜를 아는, 염치를 아는, 고마움을 아는 아이로 성장한것입니다. 학교와 선생님들이 자랑스러운 아이들이 대학에서도 함께하고 또 함께 공부하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오랜시간 함께하겠지요 학교에서 좋은 친구를 만난것입니다.
저역시 19살에 만난 오랜 친구와 함께 연합하여 동업하고있습니다. 오랜친구이기에 묵어서 서로 편하고 서로 위하고 서로 사랑합니다.
3-7
상해 푸단대에 입학하자마자 선배언니 오빠들의 도움이 쇄도하였습니다. 수년간 함께한 선배들이 후배의 입학을 축하해주면서 이것저것 도와주신 것입니다. 시기나 견제의 모습이 보인다는 다른 학교 일반적인 학원생들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아이도 내년 후배들에게, 선배들에게 받은 사랑 그대로,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추가하여 도와주려고 마음먹더군요. 이렇게 자라가면 아이만의 NQ(공존지수)가 생겨나겠지요 1-20년뒤면 만방의 출신들이 서로 서로 많이 도와주게될듯합니다.
저 어렸을때는 IQ지능지수가 중요했습니다. 혼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높은곳에 오르는 시대였던것입니다. 조금 지나니 EQ 감성지수가 중요해지더군요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공존지수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학교의 선후배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공존지수가 높아지겠지요
시편133편1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3-8
포이에마 (그의 만드신바라.)
엡2:1-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포이에마)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일은 하나님께서 전에 예비하사 우리고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이의 인간론에 대한 생각이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자신과 사람의 가치를 잘 모르고있기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의 죄성도 잘모릅니다.
고흐와 같은 명장들이 만든 작품은 그 가격이 수백억-수천억이라고하더군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포이에마)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으니 인생 각각의 가치는 그 어떤 피조물보다 귀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과 반역, 언약의 파기로 인하여 우리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어미의 모태에서부터 죄중에 태어났기에 죄를 사랑하고 죄만 행하는 죄인이 된것입니다. 이렇게 저희 모두가 죄인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땅에 내려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성부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고 기버하신 독생자를 저희를 위하여 죽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가치를 예수그리스도의 가치보다 더 높게 생각해주셨습니다. 어떤 이를 위하여 다른이를 죽이심은 다른이보다 어떤이기 귀하기때문입니다. 아이와 대화하다보니 아이가 포이에마는 이해하고있는 바른 인간론을 가지고있습니다. 사람보는 눈이 성장한것이지요 그러나 아직 죄성은 보지못하고 있어서 교육이 필요합니다.
포이에마 - 전적타락-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신 독생자 보다도 사랑하신 존재인 우리
4.
마땅히 계셔야할 예수님이 없는 교회, 구원이 없고 죄사함도 없고 은혜도 없는 교회가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계셔서 구원 죄사함 은혜 영생이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바른인성과 바른 신앙과 졸업후 사회에서의 유익인 되는 인재로 키우는 학교가 있습니다. 반면에 바르던 인성이 외곡되어 부모도 몰라보고 언니동생도 몰라고보고 사회에 해가되고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별안되게 키우는 곳도 있을것입니다.
아이의 전 인격을 하나님보시기에 좋게하지못하면 결국은 교회 문밖에 서계시는 예수님이라는 이상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인성과 신앙과 사회공헌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잊어버린 이상한 학교가 대부분인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죄가 관영하여 심판만이 남았을때 조차 유일한 구원의 방주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학생들에게도 특별한 방주, 서로 위하는 일종의 교회와 같은 공동체를 허락하신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작성자 : 최보인 최예주 아빠 (전 월광기독학교 이사, 가정의학과 전문의)
첫댓글 참으로 오랜만에
사랑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가족을 봅니다.
그것은 '행복'이란 제목의 수채화였습니다.
그리움과 부러움이 교차합니다.
고맙습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