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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믿음
(로마서 4 장)
전도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 성취해야 할 사명입니다.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심부름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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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로마 교회에 이 편지를 썼던 때는
주후 약 57년경으로 기독교 초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모든 교회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약 시대를
지배해왔던 모세의 율법과 할례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인데, 유대인들에게는 이 복음이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세 가지 자랑거리 즉 율법과
할례와 아브라함의 혈통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의 자랑을 주장하고 내세우려고 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 받는다는
복음은 영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인간 편에서
열심히 하는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율법과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든 교회마다 율법과 할례 문제로 논란이 많았습니다.
로마서의 수신자들인 로마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세계 교회에 잘못된
사상을 바로 잡을 사명이 사도 바울에게 주어져 있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이 잘못된 사상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계
교회는 또 다시 구약의 율법 사상으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도둑질을 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도둑질을 안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살인을 했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고 살인을 안했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 성경이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탐욕을 가지고 삽니다.
그리고 미움을 가지고 삽니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도둑질을 한 자이고 살인한 자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진심으로 율법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자는 내가 뭘 했다 안했다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악함과 더러움을 고백하면서 '나는 내 죄로 죽어
마땅하지만 예수님의 은혜라면 주와 함께 영원한 생명에 거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고 할 때 그 믿음이 그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로마서 4 :1-3)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진리는
구약 성경에서 이미 증거되어 있었습니다.신앙 생활의 법칙은
교회의 전통적 교리나 사람들의 교훈이 아니고 오직 성경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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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 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로마서 4 :4-5)
일을 한 자는 당연히
삯을 받습니다.그런데 일을
하지 않고도 삯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은혜라고 합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내고
예배에 참석하고 전도를 많이 쳐서
의롭다함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율법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율법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항상 피곤합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서 살아갑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면 자기 의가 생기고, 못하면 자기 불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은혜로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일 하지 않았는데 믿음만을 보시고 의롭다하십니다.
오히려 마음에는 불신과 의심과 교만과
정욕으로 가득한데도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십니다. 우리는 별로 한 것이 없는 데 하나님은 항상 풍성하게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때로는 고난과 환난이 와도 은혜로 사는 사람은 고난이 하나님이
주시는 떡으로 보이고, 환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물로 보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죄사함의 행복.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4 :6-8)
다윗은 죄로 인하여 성령께서 그를 떠나셨으나
회개하자 성령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임재하셨습니다.
결국 다윗도 죄사함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행복했습니다.
다윗이 왕이요. 부자요.
장군이요. 음악가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죄사함을 받고 성령 하나님을 소유함으로 행복했습니다.
마음에 아무 거짓도 없고
진실할 때 행복하였습니다.
죄 있는 자를 죄없다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고 행복하였습니다.
3. 할례보다 믿음이 중요함.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 할례시니라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4 :9-11)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할례의
의미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을 확증하는 표시라고 했습니다.
할례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거나
죄 사함을 받거나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할례와 상관없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을 자랑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영원한 축복을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면 그 축복 아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
니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로마서 4 :12-13)
아브라함의 할례는 그의 믿음의 의를 확증하는 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자의 조상이라고 할 때, 그 할례자는 육신적 할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고 그 후손이
온 세계에 충만하리라는 약속은 그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로마서 4 :14-15)
율법은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그로 하여금 진노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만으로라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바로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바로 우리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줄로 믿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잘못된
세 가지 자부심을 무너뜨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져야 할 새로운 세 가지 자부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 율법의 행위 대신 오직 믿음입니다.
2) 육신의 할례 대신 오직 성령의 거듭남입니다.
3) 아브라함의 혈통 대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 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로마서 4 :16)
우리는 율법으로 세상의 후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세상의 후사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온 세계의 왕으로 삼아주십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후손이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그 약속을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여주십니다.
믿음으로 율법을 행하는 자에게 뿐 아니라
율법을 행하지 못해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약속을
주십니다.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4.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로마서 4 :17-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은 인간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바랄 수
없고 기대도 할 수 없는, 실현 가능성 0%인 확률에 자신을 맡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까?
결국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는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그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믿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로마서 4 :19-2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에 대한 약속을 /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아브라함은 99세였고
사라는 90세입니다.이는 인간의 생식 기능이 이미 다 죽어버린 시점입니다.
생식기능이 죽은
가운데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이나 아내의 생식기능이 다
죽어버린 것을 알면서도 그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믿음이 아니면 믿음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5.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 :23-25)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악 때문에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셨고 우리의 의롭다 하심 때문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을 믿는 자는 참 하나님을 믿을 수
있으며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모든 내용을 다 믿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의 무엇을 의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단순히 전능하신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은 아브라함처럼 의롭다 하심을 얻게될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이
자녀를 주신다는 약속을 받은 후로 백세가
될 때까지 자녀를 얻지 못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
사라의 몸도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인줄 믿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을 본받아 지금은 비록
연약한 모습일 지라도 아브라함처럼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될 때까지
날마다 말씀 가까이 하며 기도에 힘쓰며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될 수 있도록 성령님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8. 18.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