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발걸음 때기 쉽지 않고.
과거에 대한 후회는 현재에서 제일 쉽게 찾을 수 있는 핑계이다. 그 다음으로 쉬운 핑계는 나 이외의 것에 원인을 두는 일이다. 하지만 핑계라 하기에는 사실이라고 외치는 나의 마음이다. 마음의 소리는 나의 생각이다.
입의 꿀 발린 말로는 더 이상의 나의 영혼에 유의미한 움직임을 만들 수 없다. 과거를 후회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이런 쉬운 말을 누가 하지 못할까? 핑계는 바뀜을 원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핑계는 내 마음의 응고되어 있는 불만과 불안이라는 검은 물들을 씻겨 내기 위한 것이다.
구름 위, 화려한 옷을 입은 채 태양의 입을 맞추는 이들. 그들을 선망의 대상이라고, 나의 선생이라고,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어떤 이들에게는 구름 위에 있는 높은 자들의 권리이다. 낮은 자들. 그들 사이에 내가 존재 할 수 없다고 확정을 내리는 순간 낮은 자의 마음으로써는 그들을 향해 증오와 불만 밖에 날릴 것이 없다.
추락과 상승. 나는 어느 길을 택하겠는가. 구름 위로의 상승인가? 혹은 구름 아래로의 추락인가? 상승과 추락. 그들처럼 나를 상승하는 것인가? 나처럼 그들을 추락시키는 것인 가? 추락과 낙하. 나의 마음속 썩어 물들어진 것은 나를 상승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인가? 혹은 나를 추락시키는 것인가? 어느 길로 가든 결과는 낙하. 결코 좋지 못한 기분. 나는 상승 할 수 없다. 구름 위로 올라 갈 수 없다. 그렇게 나의 썩은 것에 집중하는 순간 추락하는 가능성과 인간성. 내가 올라 갈 수 없더라면 그들을 추락시키는 수밖에. 얼마나 많은 추락하는 자들이 상승하는 자들의 발목을 붙잡았겠는가? 하지만 추락하는 힘보다 상승하는 힘이 쌘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에 저 정상, 구름 위에는 하얀 발목을 가진 자들이 아직도 많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알아 주면 얼마나 좋을고!’ 오래전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 있었다. 사색가일까? 적어도 그는 스스로를 멋진 사색가라고 생각했었겠지. 가끔식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글귀를 적고, 호구처럼 생긴 어린이를 붙잡아 다가 있어 보이는 말로 설교를 했겠지.
자의식과잉 분명히 그가 가지고 있던 병명 중 하나일 것이다. 무언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 때면 멋으로 들고 다니는 책을 피고는 인상을 구긴다. 그렇게 책 한 두 장을 넘기다 지루해지면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거나 먼 산을 바라본다. 그 누가 그리 추한 사람을 바라볼까? 이빨을 누렇고 피부는 더럽게 올라와 있다. 그렇게 사색가 연기가 막바지에 접어 들 때 그는 속으로 상상한다. 이 깊은 고뇌에서 나와 건너편을 바라 볼 때면 아리따운 아가씨가 그런 나를 보며 충격과 선망의 눈빛을 지으며 이쪽으로 걸어온다. ‘무슨 책을 읽는 겁니까?’ ‘아하… 그렇게 물어 본다면 난 무슨 표정으로 그녀를 반기며 어떤 멋들어진 말로 그녀를 미혹할고?’ 그의 사색가 연기는 이런 생각들을 통하여 조금은 진심이 된다. 그의 심각한 고뇌는 이 따위 생각 뿐이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고뇌가 끝난 후에는 현실을 본다. 아무런 시선도, 관심도, 사람도 없는 한적한 자신의 주위를 본다. 관중 없는 무대 위에 올라가 혼신의 연기를 난 후에는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자괴감이 들 뿐이다.
그의 이름은 초광. 보내 이름은 육통이지만 누가 광대의 본래 얼굴을 궁금해 하겠는가? 사람들이 육통을 보기에 문둥병자로 꾸며 머리를 푼 미치광이이기에 초광이라 불렀다. 본래는 정치를 하였다, 원래는 선비이다 하는 설명은 육통을 설명하는 문장이지 초광을 설명하는 건 “미치광이”이 단어 하나로 족하다.
누군가는 궁금할 수도 있다. 우리의 초광이 그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자괴감을 어찌 해소했을까? 그대들을 위하여 내가 답해주리. 노래이다. 노래만큼 감정을 고양 시키는 것이 없으니 어느 날은 신나는 광대의 노래를 부르며 기분을 높이고, 어느 날은 과부의 노래를 부르며 우울감에 빠진다. 그렇게 본인이 현제 처해있는 미련하고 멍청한 미치광이의 생활을 광대처럼 유쾌하다고, 과부처럼 불쌍하다고 착각하여 외면한다.
그날 그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으니 아무도 모른다. 그저 분노하였다는 사실만 안다. 아마 그 분노도 자신에게 취해 하는 연기에 불과한 것이다. 사색가인 초광의 유일한 대적은 당시에는 공구 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 근처에 공구가 왔다는 것 아니겠는가? 노래를 강하게 불며 뛰어 갔을 것이다. 수레를 타고 가는 공구의 모습은 초광이 보기에는 추락의 대상이었다. 비교적 하찮은 수레도 그의 눈에는 구름이었고, 그에게 단 한 눈길도 주지 않는 공구는 보다 더 짜증이 났다. 원래 그가 무슨 목적으로 공구를 찾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본인의 논리로 설득시키려고? 자신의 사상을 보여주려고? 그와 말 싸움을 하려고?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그의 입에서는 오로지 비방과 비판과 자격지심으로 무장을 한 힘없는 한 마디가 무력하게 수레 앞에 떨어졌다. 그는 느꼈을 것이다. 말을 던져 낼 때마다 불안하게 떨리는 자신의 눈빛을. 그는 느꼈을 터였다. 본인의 말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 앉은 입꼬리를. 대적이라 칭했던 자격지심의 원인. 본인의 생각에도 비교할 길 없는 공구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린 본인의 마음을. 그럼에도 그는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핑계를 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옳도다! 공구의 눈을 보아라 떨리고 있지 않는가?’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떨리는 것은 초광의 눈이었다. 공구는 그런 초광을 이상하게 여겼다. 궁금증이 들었다. ‘어째서 저자는 나에게 그리 말을 할까?’ 의문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여 본인의 발걸음을 때어 수레에서 내려오려 했다. 초광은 두려웠다.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의 옳음이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 미치광이인 자신을 대면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은 체 본인의 현실을 직시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도망쳤다. 종종, 종종. 걸어서 공자를 피했다. 공자는 아쉬워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없었기에.
그렇게 육통이란 이름 앞에 초광이란 이름이 덧씌워지고, 초광이란 이름 앞에 ‘수레를 타고 가다가 스쳐지나가다’하여 “접여”라는 이름이 덧씌워졌다. 그렇게 자신이 자신을 회피한 미래에는 추한 이름만이 덧씌워져 후대에 이르기까지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라는 불명예를 갖게 되었다.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가 노래를 부르며 공자가 있는 곳을 지나가다 말했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그토록 당신의 덕이 쇠락 했는가? 지나가 것은 도리어 간언할 수 없고, 오는 것은 오히려 좇아갈 수 있네. 그만두시게, 그만두시에! 지금 정치를 따르는 자들은 위태롭다네.”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려 그와 말씀을 해보려고 하셨다. 그러나 종종걸음으로 공자를 피했으므로 그와 말씀하시지 못했다.” (논어 18편 5장)}
밭을 갈고 있었다. 장저와 걸익이라 하던 사람이었다. 공구가 제자를 시켜 나루터를 물어보게 하였다. 헌데 그들은 어째서 대답해 주지 않고 제자를 향해 깨물었을까? 그러고 서는 그의 선생을 어째서 욕하였을까?
놀라운 길을 꿈꾸며 걷는 이를 비방 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었다. 그저 그들은 밭을 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다. 바뀌지 않는 인생과 나라에 푸념 만을 늘어 놓았다. 이 사회의 문제를 욕하였다. 그저 밭을 갈며. 이상을 추구하는 공구가 못 미더워 보였다 보다. 어차피 바뀌지도 않을 것이니 차라리 속세와 단절되는 것이 낫다고 결정 내린 본인의 결정을 부인하기는 싫었나 보다. 자신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타인을 부정하는 것이 편했다 보다. 아무리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욕하였다.
“도도하게 흐르는 물처럼 천하는 모두 이렇게 흘러가는 법인데, 누가 그것을 바꾸겠소? 어찌 세상을 피해 다니는 선비를 따르는 것만 같겠소?” (논어 18편 6장)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산다는 말인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나는 바꾸는 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논어 18편 6장)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엇갈린 이념을 붙잡은 체 엇갈린 삶을 사는 것인가? 불가능하게 보여도, 남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본질에 참여하는 삶을 사는 것인가? 넓고 평탄한 똥 통인가? 좁고 굽은 빛의 길인가?
누구나 이런 꿀 발린 말을 들으면 정답은 알아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더러워 질 때로 더러워진, 잘못 될 때로 잘못 된 그 모든 것들이 합쳐 응고된 마음에 붙잡힌 그 굳은 발걸음을 때긴 쉽지 않다. 용기도 나지 않고, 동기도 불충분하다. ‘더러운 곳에 내가 서있구나’ 통찰 하여도, ‘잘못된 길에 내가 걷고 있구나’ 깨달아도, ‘제발, 제발’ 용서를 구해도 당장 좁은 길을 가기보다는 잠깐 그 오물을 씻을 핑계를 찾을 뿐이다.
그렇게 난 종종걸음으로 도망 만을, 저 멀리서 건너고 건너서 들리지도 않을 욕 만을. 추락을 꿈꾸며 추락 만을, 저들은 서로 붙잡고 상승 만을. 용기를 내어 참여 할 수 있음에도 다시 한번 핑계 만을. 대면하지는 않고는 불공평하다 한탄 만을. ‘굳은 발걸음 때기 쉽지 않고’하며 이미 풀린 발을 다시 똥 통에 묻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