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자
윤오영
나는 마고자를 입을 때마다 한국여성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한다.
남자의 의복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호사가 마고자다.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같은 다른 옷보다 더 값진 천을 사용한다. 또 남자 옷에 패물이라면 마고자의 단추다. 마고자는 방한용이 아니요 모양새다. 방한용이라면 덧저고리가 있고 잘덧저고리도 있다. 화려하고 찬란한 무늬가 있는 비단 마고자나 솜 둔 것은 촌스럽고, 청초한 겹마고자가 원격原格이다. 그러기에 예전에 노인네가 겨울에 소탈하게 방한삼아 입으려면 그 대신에 약식인 반배反褙를 입었던 것이다.
마고자는 섶이 알맞게 여며져야 하고, 섶귀가 날렵하고 예뻐야 한다. 섶이 조금만 벌어지거나 조금만 더 여며져도 표가 나고 섶귀가 조금만 무디어도 청초한 맛이 사라진다. 깃은 직선에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둥글어도 안 되며, 조금 덜 파도 못 쓴다. 안이 속으로 짝 붙으며 앞뒤가 상그럽게 돌아가야 하니, 깃 하나만 보아도 마고자는 바느질 솜씨를 몹시 타는 까다로운 옷이다.
마고자는 원래 중국의 매괘자馬掛子에서 왔다 한다. 귀한 사람은 호사스러운 비단 마괘자를 입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청마괘자를 걸치고 다녔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마고자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고자는 마괘자와 비슷도 아니한 딴 물건이다. 한복에는 안성맞춤으로 어울리는 옷이지만 중국옷에는 입을 수 없는 우리의 독특한 옷이다. 그리고 그 마름새나 모양새가 한 국 여인의 독특한 안목과 솜씨를 제일 잘 나타내는 옷이다. 그 모양새는 단아하고 아취가 있으며, 그 솜씨는 섬세하고 교묘하다. 우리 여성들은 실로 오랜 세월을 두고 이어받아온 안목과 솜씨를 지니고 있던 까닭에 어느 나라 옷을 들여오든지 그 안목과 그 솜씨로 제게 맞는 제 옷을 지어냈던 것이다. 만일 우리 여인들에게 이런 전통이 없었던들 나는 오늘 이 좋은 마고자를 입지 못할 것이다.
문화의 모든 면이 다 이렇다. 전통적인 안목과 전통적인 솜씨가 있으면 남의 문화가 아무리 거세게 밀려든다 할지라도 이를 고쳐서 새로운 제 문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송자宋磁에서 고려의 비취색이 나오고 고전古篆 금석문에서 추사체가 탄생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예전엔 남의 문물이 해동에 들어오면 해동 문물로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탱자가 아니라 진주였다. 그런데 근래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남의 것이 들어오면 탱자가 될 뿐 아니라, 내 귤까지 탱자가 되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끝.
남귤북지南橘北枳 : 중국 회수의 남쪽인 회남의 귤나무를 회수의 북쪽인 회북에 심으면 탱자나무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은 사는 곳의 환경에 따라 착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진 고사성어다.
첫댓글 지금 저는 이 글을 읽은 것이 아니라 직접 정선생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구슬옥님, 앞으로 수필가 윤오영님의 작품을 몇 편을 더 연재하여 수필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문화를 새롭게 각인시키는 좋은 글 느낌표 남기고 갑니다. 윤오영님의 좋은 작품 많이 올려주세요.
이 글을 읽으며 느껴지는 것인데, 마치 '진품 명품'에 나오는 전문감정가가 돋보기 들고 살피며 설명하는 듯 하네.
마고자를 보는 안목을 통하여 우리의 문화적 품격을 지키려는 고상한 의지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