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 고 추
황호상 afhosang@gmail.com
그저께 팔당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동기생이 가지와 고추를 한 아름 안겨주고 갔다. 가지도 통통하게 살이 쪘고 흠 하나 없이 깨끗했지만, 고추는 더더욱 갸름하게 자란 것이 아직까지 짙은 녹색으로 물들지 않고 약간 연두색을 띠고 있는 것이 여간 먹음직스럽지 않았다. 만져보니 연한 것이 맵지도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식사 전이라 아내와 같이 잡곡밥을 물에 말아 고추를 된장에 찍어 소박하지만 행복한 저녁식사를 가졌다.
예상했던 대로 고추는 그리 맵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사이 고추처럼 밍밍하지도 않는 진짜 토종 고추였다. 아! 얼마 만에 맛보는 진짜 토종 고추인가, 특히 금년에는 초봄에 가물이 심했고 그 이후 장마에 높은 기온까지 겹쳐 고추 농사를 망친 곳이 많다는 뉴스를 들어온 터였다. 아내와 나는 동기생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면서 계절이 가져다 주는 고추의 풋 냄새를 마음껏 음미하였다.
옛날 시골에서 자라던 시기에 우리집은 농사를 지었기에 밥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반찬은 여간 부족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안동장까지 20리 길이었고, 기차를 타면 좀 더 빨리 갈 수 있었지만 그 기차역까지도 오리길이 넘었다. 불편하던 교통편을 감수하며 닷새마다 열리는 안동장에 다녔지만 우리집은 쌀과 잡곡 밖에 팔 것이 없었으므로 교역 조건이 엄청 불리한터라 고기는 물론 안동 고등어까지 마음껏 살 수 없었다. 그러므로 집에서 기르던 고추를 비롯한 푸성귀가 주요한 반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우리집 식단은 미리 정해진 게 없었다. 식사를 준비하기 전 어머니가 밭을 한 바퀴 휙 둘러보고는 고추가 좋으면 고추, 배추가 자랐으면 배추, 닭이 알을 낳았으면 달걀이 상위에 오르는 식이었다. 따라서 고추는 여름날 시골 밥상의 주인공인 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통상 점심상을 차려 놓고 들에 나가셨다. 우리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차려 놓은 밥상을 펼쳐 먹다 가도 반찬이 신통찮으면 앞 들에 나가 밭에 있는 고추를 만져 보고는 맵지 않은 것으로 골라 몇 개를 따 가지고 와서 점심을 마치기 일 수였다.
지금은 매운 청양고추와 맵지 않은 아사이 고추 등으로 품종이 분명히 분리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한 가지 품종 밖에 없었고 보통 매우 매웠다. 그러므로 풋고추를 반찬으로 먹으려면 여간 신중하게 고르지 않으면 그 매운맛에 물을 몇 사발씩 들이켜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추를 만져만 보면 매운 놈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그 방법은 이렇다. 어두운 짙은 녹색을 띄고 만져봐서 질기고 단단한 놈은 피하는 것이 좋다. 연두색에 가까운 옅은 색갈에다가 만졌을 때 연하고 내부에서 부드럽게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나는 놈은 보통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작다고 덜 매운 것은 아니다. 오뉴월 초여름에는 작은 놈은 보통 맵지 않다. 그러나 장마를 지나 무더운 여름이 되면 작은 놈이라 해서 맵지 않은 게 아니다. 그러므로 꽉 쥐어 봤을 때 질기지 않고 내부에서 연하게 부서지는 듯하게 느껴지는 놈이라면 비록 고추가 굵더라도 맵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당시 경상북도 북부에 안동지방에서는 겨울에만 김치를 담글 뿐 여름에는 김치를 거의 담그지 않았다. 일년내내 밭에는 채소가 풍성했으므로 김치를 담그기 보다는 제철 채소를 가지고 간장이나 고추장으로 가볍게 양념을 해 먹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풋 고추를 좋아하게 되었고 성년이 되어서도 여름 밥상에는 늘 고추가 올라오게 되었다. 그 시절 시골에는 고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유난히도 매운 풋고추를 즐겨하셨고, 장인 어른 또한 그리하셨다. 세월이 흘러 우연하게도 두 분 다 위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자 나는 새삼스럽게 매운 풋고추를 좋아하는 것과 위암과는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내과의를 만날 때 마다 매운 고추와 위암의 상관관계를 물었더니 매운 고추가 위벽에 자극을 주게 되어 그것이 위염, 위암으로 발전할 수는 있겠으나 특별한 인과 관계는 발견된 적으로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경험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 이후 풋고추를 자주 먹는 것은 피하게 되었다.
풍성하게 주었으니 식구들과 나눠 먹으라는 동기생의 조언에 따라 장모님, 딸네들에게도 나눠 주었더니 모두들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고추를 구해 왔느냐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오늘도 나는 그 옛날 내 고향 이우리골에서 마주하던 풋고추 밥상을 기억하면서 뭉클한 마음으로 풋고추의 아리고 쌉쌀한 맛을 음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