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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처동네 사람들(구, 학림寺) 원문보기 글쓴이: 일아연자강
불(佛)·법(法)·승(僧)
청정하고 광명하여 거리낌 없는 것이 스님이다. 심청정시불(心淸淨是佛) 심광명시법(心光明是法) 정광무애시승(淨光無碍是僧) 이것은 임제스님 법문인데, 실제로 심청정이 되고, 심광명이 되고, 정광무애가 되어야 바로 깨친 사람일 것입니다. 마음이 청정하다, 깨끗하다 하면 어느 정도로 깨끗한 것인가? 구름 한 점 없는 허공, 그 허공이 참 깨끗합니다만 그것은 마음이 깨끗하다고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그래서 허공이 깨끗하다는 그것도 또 한 방망이 맞아야 한다[허공야수끽봉(虛空也須喫棒)]고 말합니다. 마음 깨끗한 것에 비하면 허공도 깨끗한 것이 못 된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것을 명경에 비유합니다. 먼지 한 점 없는 그 명경이 얼마나 깨끗하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명경이 깨끗하다는 그런 유(類)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스님이 말했습니다. 명경을 부수고 오라 너와 서로 보리라. 타파경래(打破鏡來) 흥여상견(與汝相見) 그렇다면 불교에서 수행해 가는 차제(次第)로 보아서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참으로 깨끗한 마음, 청정한 마음인가....? 구경각을 성취하기 전에는 십지등각(十地等覺)도 심청정(心淸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십지등각은 아주 거친 망상[중망상.重妄想]은 떨어졌지만 자신도 모르게 아라야의 미세한 망상[미세망상.微細妄想]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의식세계인 제8 아라야 근본무명까지 완전히 떨어져야만 이것이 참다운 청정입니다. 그러면 허공보다 더 깨끗하고 거울보다 더 깨끗합니다. 이 자리는 일체 망상이 다 떨어진 무심경계로 진여자성이니, 성불, 견성이니 하는데, 이것은 말로써가 아니고 실제 경험에서 그 경지를 체득(體得)해야 됩니다. 모든 망상이 다 떨어지고 무심(無心)경계가 나타나면 목석과 같은 무심인가, 아닐 것입니다. 거기에는 더 깨끗한 마음에서 큰 광명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광명을 예전 스님들은 천일병조(千日丙照)라고 말했습니다. 천일병조! 해가 하나만 떠도 온 세계가 이렇게 환히 밝은데 하나, 둘, 셋도 아니고 천 개의 해가 일시에 두루 비춘다는 것이 겠지요. 그렇지만 이것도 오히려 유한입니다. '천(千)' 이라는 숫자가 있으니까. 마음이 청정한 여기에 생기는 광명은 천 개의 해가 한꺼번에 비춘다 해도 오히려 적당하지 않은 광명이니 불가설(不可說), 말로써는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방제불이 일시에 출현하여 하루 이틀도 아니고 미래겁이 다하도록 이 광명을 설명하려 해도 다하지 못하는 참다운 광명이다, 이 말입니다. 이제 심광명이라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광무애(淨光無碍), 즉 청정과 광명이 서로서로 거리낌이 없다,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이 있으면 빛이 있고 빛이 있으면 불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청정은 불에다 비유할 수 있고 광명은 빛에다 비유할 수 있어서 불이 즉 빛이고 빛이 즉 불입니다. 빛 여읜 불이 따로 없고 불 여읜 빛이 따로 없다. 그러니 둘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무애(無碍)라 합니다. 육조스님도 정과 혜를 말할 때 불과 빛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근본요점은 어디 있느냐 하면 심청정, 심광명을 성취하여 참으로 허공보다 더 깨끗하고 명경보다 더 깨끗한 무심경계만 증득하면 자연히 거기서 천 개의 해가 일시에 비추는, 비유할 수 없는 그런 대지혜 광명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정광무애라 합니다. 빛 따로 있고 불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빛이 즉 불이고 불이 즉 빛이다, 이런 말입니다. 이리하여 청정은 부처님[불.佛]이라 하고, 광명은 법(法)이라 하고, 무애는 스님[승.僧]이라 하여 불법승 삼보(佛法僧 三寶)가 되는데 세 가지가 각각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불[화.火]이라 말할 때는 부처님을 표현하고, 빛이라 말할 때는 불법을 표현하고, 불이 즉 빛이고 빛이 즉 불이다 말할 때는 스님을 표현하는 것이니, 표현은 각각 달라도 내용은 똑같습니다. 불이 빛이고 빛이 불이지 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불법승 삼보, 청정, 광명, 무애가 하나인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셋이 즉 하나이고, 하나가 즉 셋이다[삼즉일(三卽一) 일즉삼(一卽三)]고 합니다. 이 근본법을 바로 깨쳐서 실제로 증득할 것 같으면 그때에야 비로소 불법을 아는 동시에 모든 속박을 다 벗어나서 자유자재한 대해탈을 성취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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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 위덕 관세음보살...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나무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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