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헨리 주석성서 히브리서 그리스도의 재림(히 10:1-6)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이 성령의 지시대로 레위기에 기록된 계율을 격하시킨다. 왜냐하면 그것이 비록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고 그 시대의 정황을 놓고 볼 때 그것은 매우 뛰어나고 유용한 것이었지만 그 계율을 그리스도와 견주어 볼 때 그 계율은 오직 백성들을 그에게로 이끌기 위해 계획된 안내자일 뿐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 레위 계율의 연약함과 불완전을 그들에게 알린다는 것은 적절하고도 또 필요한 일이었다. 바울은 이와 같은 것을 다음 여러 가지 논증을 통해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Ⅰ. 바울은 먼저 율법은 장차 올 것의 그림자라는 사실과 실체가 나타났을 때는 그림자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그림자를 숭배할 수는 없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그리스도의 복음에 속한 것들은 좋은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이다. 그리스도와 복음에 속한 것들은 그 자체로써 뛰어나며 우리를 위해서도 가장 유익한 것이다. 그것들은 뛰어난 신성의 실체들인 것이다.
2. 이처럼 좋은 것들은 구약에서는 장차 올 것으로 예고되었을 뿐 명백히 드러나지도 않았고 그러기에 그 시대인들이 충분히 누릴 수도 없었다.
3.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것들의 윤곽만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복음 아래서 좋은 것들의 본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Ⅱ. 바울은 율법이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참 형상이 아님을 논증하였다. 형상이라는 것은 본상의 모습을 그대로 정확히 묘사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율법은 본상을 이같이 정확하게 묘사해 놓은 형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고 단지 그림자일 뿐이었다. 거울에 비추이는 얼굴은 벽에 나타나는 그림자보다 그 형상이 뚜렷하다. 그런데 율법은 이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율법은 신의 은혜의 위대하신 계획을 대충대충 본뜬 것이므로, 율법에 대하여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Ⅲ. 바울은 율법에 의한 제물은 해마다 거듭 드려지는 것을 보아 그 제물이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온전케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논증한다. 만일 그 제물이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사람들이 단번에 깨끗하게 되어 다시는 죄 의식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계속해서 제물을 드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1,2절). 만일 그 제물들이 공의의 요구를 만족케 하고 불의에 대한 대가로 충분한 것이었다면 또 그 제물이 양심을 깨끗게 하고 평온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그들은 제사드리는 일을 그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물을 드리는 자들이 그 제물 드림으로 인하여 양심에 가책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면 제물을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에 의한 제사는 그렇게 해 줄 수 없었다. 속죄의 날이 끝나기가 무섭게 죄인은 여러 가지 죄를 저지르게 되며 그러므로 또다른 속죄의 날이 있을 필요가 생기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해 매일 제단을 섬기는 것 이외에다 일년에 한번씩의 속죄일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반면에 복음 아래서의 속죄는 완전하며, 다시 되풀이한 필요가 없었다. 한 번 용서받은 죄인은 아주 용서받을 것이며, 다만 자신이 여전히 용서받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 자신의 회개와 믿음을 반복 다짐할 필요만이 있는 것이다.
Ⅳ. 바울은 율법의 제물로 죄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논증한다(4절). 그 제물에는 근본적인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점은 다음과 같다.
1. 율법에 의한 제물은 죄지은 우리와 같은 본성을 지니지 않았다.
2. 율법에 의한 제물이 하나님의 공의와 다스리심에 대한 우리의 반역을 속죄할 만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였다. 앞에서 제물은 죄를 범한 자와 같은 본성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속죄에 적당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더구나 제물로 드려지는 동물은 죄지은 사람보다 저등한 것이다. 그리고 죄지은 자보다 못한 것은 죄를 지은 사람을 완전히 속죄할 수 있는 희생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3. 율법에 의해 바쳐진 짐승들은 그것들이 지각이 있어서 자기들이 죄지은 인간들을 대신하여 희생되겠노라고 승낙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남을 대신하여 희생되고자 하는 제물은 자신의 제물로 드려짐을 승낙할 수 있는 존재이어야만 한다. 즉 그것은 자발적으로 죄인을 대신하여 자기를 드리겠노라고 할 수 있는 존재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는 죄인을 대신하기로 스스로 승낙하신 그런 제물이었다.
Ⅴ. 바울은 하나님께서 율법의 제물과 제사를 더 이상 받아들이시지 않으실 것이며, 그런 제사를 드리는 일이 인간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그때를 이미 예언하시고 정해 놓으셨음을 논증하였다. 그리고 그때가 이제 도래하였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제물들을 더 이상 바라시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폐하셨다. 따라서 지금도 제물에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다. 레위인의 율법을 폐지할 시기에 대하여 다윗에 의해 예언되었었고(시 40:6, 7), 그 내용이 본문에 다시 인용되어 있다. 이같이 바울은 모세로서 시작된 율법의 섭리를 격하시키는데 전력을 다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