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현대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6-2. 현대 태국불교의 무아설
일본 비판불교의 지지자들 사이에 불교의 정체성이 무아설을 중심으로 정법의 주장이 주어졌을 때, 현대 태국불교의 무아설 논쟁은 아마 훨씬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 13세기 이전에 대승불교가 태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최근 몇 세기 동안 태국의 불교는 상좌부였고, 그것이 (그리고 대개는 혼자만) 붓다의 근본불교를 나타낼 뿐이고 순수한 표현이라는 것이 상좌부의 일반적인 주장이므로 이것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므로 학자들 뿐만 아니라 국가적 승가의 지도자급 인물들과 또한 중요한 명상 스승을 포함하여 저명한 태국 불교도들 사이에서 불교 정체성의 결정적인 단서로서 무아의 보편타당성에 대한 부정과 자아의 교리에 대한 지지자들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태국에서의 분쟁은 저명한 태국의 상좌부 불교도들에 의해 열반이 진실한 자아(?tman; Pali어로는 att?)라는 주장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므로 열반에는 참된 자아가 있고, 그것은 깨달음에서 인식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서양의 학문적인 원전들에서 나타나는 방식처럼, 불교가 단순히 자아가 전혀 없다고 가르치며, 열반은 분명히 진실한 자아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다른 태국 불교도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참된 자아로서의 그러한 존재는 없다. 이 논쟁은 1990년대 후반에 특히 강렬하게 불붙었을지라도, 분명히 현대 태국불교에서 적어도 193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참된 자아를 논쟁하는 사람들은 붓다의 무아설은 자아가 아닌 것을 보여줌으로써 제자들 스스로 참된 자아를 발견하도록 용기를 북돋우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제안한다. 그러므로 무아의 가르침은 또한 명상을 함으로써 드러나고, 자아가 아닌 모든 것이 제거될 때 진정한 자아가 드러난다.
1939년 당시 국가 승가구조의 수장인 상가라자(Sa?ghar?ja)는 자신의 설법을 포함하여 많은 기고자들과 함께 한 권의 에세이 책을 출판했는데, 책에서 그는 열반이 진정한 자아라고 주장했다. 반대측은 같은 해에 유명한 태국 수도승 붓다다사(Buddhadasa)의 얇은 책을 발표했다. 한 신문은 열반이 자아인가 아닌가에 대한 견해를 보내달라고 독자들을 초대했다(Cholvijarn 2007: 4). 붓다다사는 (예를 들면 비판불교운동과 마찬가지로) 무아의 관점이 불교의 유일한 특징 혹은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자아를 주장하는 한 깨달음도 없다. 이는 분명히 상가라자 당시에도,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소수의) 다른 많은 태국 불교도들이 현재까지도 동의하지 않는다.상가라자의 주장은 촐비쟌(Cholvijarn)에 매우 분명하게 요약되어 있다(2007: 11)
무아설이라는 불교 교리의 독창성은 일단 자아가 얻어지면 실현된다. 붓다는 열반이 무아임을 발견했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오온은 무아라고 말할 수 있다. 붓다의 무아설은 불교만의 교리이다. 왜냐하면 붓다 가 실현한 자아는 조건 지어진 담마(법, 산스크리트어로는 다르마)들 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열반은 대상의 청정함이고, 번뇌의 오염 이 없는 것이고[여래장 참조], 한 번 도달하면 더 이상 집착할 것도 없다. 청정함으로서 그것은 하나의 대상 안에 반드시 자리하고 있다. 그 대상은 자아이다. 무아는 제자들이 조건 지어진 담마들을 거부하고 열반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붓다가 사용한 하나의 도구이다. 만약 열반이 무아라면 그때 열반은 거부되며 8정도의 수행은 목적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여래장 원전들을 상기하면서 상가라자는 붓다가 조건 지어진 것은 세속적이고, 사악하고, 무상하고, 죽음으로 이끈다고 말하지만 조건 지어지지 않은 것은 출세간이고, 선하고, 영원하며 죽지 않는다고 하였음을 주장한다. 전자는 거부되어야 하고, 후자는 수용해야만 한다. 자아가 없음을 수용한다면 무아도 거부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아마 문화적으로 중요한) 여래장 경전들과 마찬가지로 상가라자는 열반의 청정함을 많이 다루고 있다. 열반이 청정하므로 실제로 청정한 어떤 것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본래 청정한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아이다. 또한 그것은 마음이지만 모든 조건 지어진 담마들을 청정하게 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조건 지어지지 않은 마음 또는 의식, 즉 ‘마음’이다. 상가라자는 그는 다른 불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자아’가 임시적인 것이고 하나의 개념이라는 점에 동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임시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것의 지시대상, 즉 실제로 존재하고, 열반인 실제의 자아이다. 지명(指名)을 포기하는 것이 그 지시 대상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앞의 책: 13).
이 논쟁 15년 후에 탁월한 태국 명상의 스승(상가라자처럼 유명한데, 특히 신통력을 가진 부적들로 유명한)은 열반이 진정한 자아라는 견해를 제시했다(Cholvijarn 2007: 16 이하). 이 스승은 법신명상 기법, 수행들에 대한 발견(또는 그의 지지자들은 재발견이라고도 함)과 관련이 있으며, 그들은 현재까지도 매우 성공적인 법신운동으로 널리 퍼져있다. 이 명상들은 [마음이 가장 청정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 모든 오염 으로부터 해탈된 광명으로 빛나고 청정한 붓다의 모습과 명상 수행자의 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조건 지어지지 않은 ‘법신’의 실현을 포함한 다. 열반은 진정한 자아이고 이것은 또한 법신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불교의 무아 해석에 대한 반대, 특히 법신운동에 대한 반대가 1994 년에 (그리고 연속적인 출판들이) 저명한 태국 불교학자 파윳토[P. A. Payutto(Phra Dhammapi?aka)]에 의해 일어났다. 1995년에 프라라 지얀비시트(Phra Rajyanvisith)는 법신운동과 진정한 자아로서의 열반이라는 관점으로 응답하였다. 특히 프라라지얀비시트의 진정한 자아 로서의 열반이라는 주장은 특히 명상 수행자들이 이해한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명상 수행으로 나아가지 않는 학자들(‘학자들은 수행하 지 않는다’)은 이 점에서 종종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아의 관점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학자들만 그 견해를 주장한다. 반면 프라라지얀비시트는 특히 몇몇 저명한 숲속의 은둔 승려의 실현을 언급한다. 게다가, 그는 자아와 무상, 고통은 함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무아는 또한 무상한 것이고 고통이다. 그러나 열반은 고통이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영원한 것, 고통이 아닌 것(즉 행복)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여전히 무아의 상태 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아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참된 또는 초월적] 자아이다.
후에 태국에서 출판된 책들에서 참된 자아로서의 열반에 대한 다른 주장들과 이러한 주장들은 『Cholvijarn』(2007)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 그들을 따를 필요는 없다. 필자는 진정한 자아의 존재를 주장하고, 또한 대승 원전에서 여래장과의 명백한 유사성을 제안한 태국 상좌부 승려들의 사유방식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멀리 떨어진 역사와 다른 문화들과 동시대의 사건들을 비추어 볼 때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태국 자료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면 여래 장사상의 발전에 기여한 불교의 사유방식과 경험에 대한 어떤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핵심은 붓다의 의도에 대한 해석이 옳은가 혹은 불교 교리사의 다른 측면들이 옳은가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어떤 종류의 자아의 가르침을 선의로 받아들이고, 진실한 자아는 불교 가르침의 궁극적인 요지라고 주장한 불교도들이 역사 속에 있었고 현재에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무아에 대한 지지자가 압도적 다수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역사적·전체적으로 존재하는 불교 교리에 대한 학문적인 설명은 이 문제에 대한 다양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분명한 것은 열반을 진실한 자아로 주장하는 그 태국의 학자들과 명상 수행자들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이 채택하고 있는 대승의 교리라고 여기지 않고, 대승의 영향이라는 관념을 완전히 거부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비록 역사적으로 고대 인도에서 대승사상들이 무엇보다도 상좌부 부파의 맥락 안에서 발전하는 것을 막지 못했지만, 현대 상좌부 승려들은 스스로 대승사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본다. 태국의 경우에 진실한 자아는 붓다의 실재 가르침, 무아설의 궁극적 요지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진아를 팔리어 경전들에 대한 적절한 이해, 상세한 문헌적 분석과 논쟁의 결과로, 또한 명상의 경험을 통해 이해한다. 그것은 불교의 역사 전반에 걸쳐 자아 또는 이와 비슷한 견해를 주장하는 승려들의 집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허용한다. 때로 이 승려들은 그들의 이해를 방어하는 논서들을 저술하기도 했고, 때로는 아마 경전들(아마도 꿈이나 명상에서 개인적인 계시를 표현하는 것)을 저술하기도 했을 것이다. 다른 경우에 그들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몇 명의 친구들과 제자에게만 그것을 털어 놓았다. 때로는 (독자부 승려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했고, 때로는 그러지 않았다. 때로는 어떤 이유로든 그들의 저작과 영향력이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아마 이러한 견해들은 특히 거대한 주류 불교 공동체에 의해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여겨진 대승 경전들에 의지할 수 있었고, 또한 때로는 경전들이 번성했던 곳에 동반됐던 어떤 교리적인 혼돈의 상태에 의존할 수 있었던 대승의 환경에서 환영받고, 지원받고, 보전되었던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진아의 관점에서 불교를 바라보는 이러한 방식들은 분명히 동아시아인들의 환경에서는 맞아떨어졌음이 확실해 보이고, 그러므로 복잡한 이유들로 인해 그 곳에서 대승이 환영받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번성하였다.
이것들은 추론에 불과하다. 우리는 단지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여래장사상이 최근의 태국불교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쳤다거나 혹은 예를 들면 태국에서 ‘밀교적 상좌부’라고 하는 것을 통한 미세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거나, 여래장 부파의 어떤 측면들과 태국의 자아 지지자들 사이에 사유의 유사성들에 대한 빈약한 증거는 독립적으로 발전했지만 놀랄 만큼 비슷한 결과를 보이는 불교의 지적 유산과 정신적 유산에 응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불교의 정체성을 무아의 정의와 단순하게 일치시키는 것을 포기해야 하고, 그들을 무아설이나 중관의 교리와 일치시키기 위하여 여래장 원전들의 표면적인 발언 뒤의 의미를 자동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을 제안한다. 물론 여래장 원전들의 그 개념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실제로 의미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아의 교리에 위배되기 때문일 것이고, 그러므로 불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그것들이 왜 모호한 방식 혹은 잘못 이끄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것들을 매우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이 개념은 많은 세기 동안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불교를 제한적·규범적으로 한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