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섬 동백타워 외 1편
조은길
바다가 배꼽 위에 섬을 올려놓고
천년 묵은 손장난을 하고 있다
처음인 듯 다시
몸이 달아오른 늙은 동백나무들
울컥울컥 붉은 꽃송이를 토해내고
소심한 태양이
올이 촘촘한 은사커튼을 펼쳐
눈부신 꽃섬의 실루엣
불멸의 아름다움을 넘보는가
일제히 꽃섬 쪽으로 창을 낸
동백타워 레이스커튼 꽃주름 사이로
살빛이 백납 같은 여자 한 송이
꺾꽂이 되어있다
꽃무릇들
묵언의 씻김굿이다
갈가리 짓뭉개진 자궁을
정수리로 받쳐 들고
새파랗게 멍든 알몸이다
행여 꽃이라 마라
아름답다 손대지 마라
총부리에 재갈 물린 채
주린 짐승 같은 낯선 사내들에게
윤간당하고윤간당하고
만신창이로 더렵혀져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 여자들
여자라서
가난한 나라의 여자라서
그들의 죄를 몽땅 뒤집어쓰고 죽은
조선의 어린 여자들
행여 그만 잊어라 마라
그만 내려놓아라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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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길 : 경남 마산 출생, 199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로 등단,
시집으로 노을이 흐르는 강이 있음
ㅡ 「시인정신」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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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섬 동백타워 외 1편 / 조은길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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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2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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