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IKjCiENbWoU?si=CQwzSbd7on8rxAyo
Bachianas Brasileiras No. 4 • Villa-Lobos • São Paulo Symphony Orchestra. Wagner Polistchuk, conductor
Heitor Villa Lobos (1887~1959) 브라질의 작곡가. 스페인계의 아버지 라울 Raul은 역사학의 권위자였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아들에게 첼로와 클라리넷을 가르쳤다. 1899년 라울이 죽은 뒤에는 어머니 노에미아 Noemia가 그의 음악 교육을 계속했다. 빌라 로보스는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유럽으로부터 들어온 살롱음악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민중음악가들의 음악도 알게 되었다. 그의 가족들은 그를 다른 길로 나가게 하려고 했지만 그는 음악을 계속했고 쇼로스의 악단에 들어가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그는 14세 때부터 작곡하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독학으로 공부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바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레크레이오 극장 오케스트라의 첼로 주자가 되어 오페라, 오페레타, 사르수엘라 등 변화가 많은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1905년 브라질 국내 여행 시대가 시작된다. 확실한 본능에 이끌려 원시 인디언의 노래와 바히아 흑인의 리듬, 도시와 지방의 민요 등에서 브라질 음악의 혼을 이해하게 되었다. 바그너와 푸치니의 선율에서, 뱅상 댕디나 후에는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등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음악을 자기 자신 속에 직접 소유하고 있었던 창조자에게 영향이라는 문제는 점차 의미를 잃어 갔다.
빌라 로보스의 작품은 1915년부터 연주되었다. 1917년의 아마조나스와 위라푸루는 그의 창작활동의 여러 단계에서 발전 시켜나가는 장르, 즉 아마존적, 원초적 교향시, 그리고 생동하는 리듬과 기량이 넘치는 음의 만화경이라고 할 수 있는 장르를 확립했다. 1916년부터 1920년까지 일련의 5개의 교향곡을 발표했는데 그 중 세 곡은 세계적인 사건들이 주제이다(제3번 전쟁, 제4번 승리, 제5번 평화).
1923년 그는 파리에 갔고, 종종 소란스러운 청중 앞에서 연주된 그의 음악은 적지 않은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 예술세계에서의 끝없는 우정을 느끼게 했다. 폴 르 플렘, 르네 뒤메닐과 마찬가지로 플로랑 슈미트도 적절하고 열렬한 평론으로 빌라 로보스의 명성을 확립시키는 데 공헌했다.
브라질에서의 첫 시대의 친구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악보의 발행자인 막스 에시크를 소개해 주었다. 브라질 특유의 노래, 어린애의 가족, 야성(野性)의 시 Rudepoema, 아마조나스, 9중주곡, 쇼로스 등이 청중들을 사로잡기 위한 야성적 목록의 일부를 이루었다. 그의 가장 혁신적인 작품인 위대한 많은 쇼로스들은 가장 우수했다. 1930년 브라질로 돌아간 그는 활동을 작곡과 교육으로 나누었다. 음악 예술교육 감독국을 지도하기 위해 리우 데 자네이루에 머물면서 많은 콘서트를 지도하였고 많은 학교에서 음악 교육기관을 조직하는 등 정력적이고 유능한 리더로서 돋보이는 활동을 했다.
글쓴이: 베토벨라
https://youtu.be/2ioQABk7AXQ?si=GNA4PbJvfP8VUSIH
Bachianas Brasileiras No. 3 • Villa-Lobos • Hungarian National Philharmon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