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한 말
悠悠昊天(유유호천)-아득한 하늘은
曰父母且(왈부모차)-부모와 같다고 한다
無罪無辜(무죄무고)-죄 없고 허물도 없는데
亂如此幠(난여차무)-어지러이 이처럼 세상을 덮는가
昊天已威(호천이위)-하늘이 아무리 위엄 있어도
予愼無罪(여신무죄)-나에게 진정 아무 죄가 없은데
昊天大幠(호천대무)-하늘은 크게 나를 덮는구나
亂之初生(난지초생)-어지러움이 처음 일어남은
僭始旣涵(참시기함)-모함을 참말로 받아 들여서이네
亂之又生(난지우생)-어지러움이 또 일어난 것은
君子信讒(군자신참)-임금이 거짓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君子如怒(군자여노)-임금이 거짓말에 화를 내면
亂庶遄沮(난서천저)-어지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君子如祉(군자여지)-임금이 바른 말을 기뻐하시면
亂庶遄已(난서천이)-어지러운 세상은 이내 끝났을 것이네
君子屢盟(군자루맹)-임금이 어리석으니
亂是用長(난시용장)-나라의 어지러움은 다시 자라난 것이라네
君子信盜(군자신도)-임금이 도둑들을 믿어
亂是用暴(난시용폭)-어지러움이 다시 심하진 것이라네
盜言孔甘(도언공감)-도둑의 말이 더욱 달콤해지니
亂是用餤(난시용담)-어려움이 다시 심해진 것이라네
匪其止共(비기지공)-거짓말 하는 자들과 같이 지내니
維王之邛(유왕지공)-오직 임금도 재앙이 되어버렸다네
시경(詩經) 소아(小雅)
각하, 드라마 태조 왕건 83화를 보시옵소서 !
지금도 인기리에 재방송하고 있는 KBS1 드라마 “태조 왕건”
(2000.04.01.~2002.02.24.)은 고려(高麗)를 건국한 왕건(王建)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이지만, 중심인물은 강원도 철원에서 태봉(泰封)이란 나라를 세운
궁예(弓裔)에 포커스(focus)를 맞추고 있다.
궁예(弓裔)가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역사 내용은 너무 길기 때문에 여기에
기록 할 수가 없다.
다만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궁예(弓裔) 편을
간추려 본다.
▲아래 내용은 필자의 서재에 있는 삼국사기 열전(列傳) 궁예(弓裔)편을
간추려 타자를 친 것이다.
(김부식 삼국사기 열전(列傳)편 궁예. 辛鎬烈 譯解 P793~798)
※원본을 훼손하지 않은 범위에서 어려운 단어를 필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상인(商人) 왕창근(王昌瑾)이 당(唐)나라로부터 한반도에 들어와서 강원도 철원
시전(市廛)에 우거(寓居)하였다.
※시전(市廛)-장거리 가게
※시전(市典)-동, 서, 남 세 곳에 두었던 신라(新羅) 시대(時代)의 관청(官廳)
※우거(寓居)-정착되지 아니하고 임시(臨時)로 사는 것
신라 제54대 왕 경명왕(景明王) 2년에 이르러 시중(市中)에서 한 사람이 생김새도
점잔하고 귀밑머리는 다 하얗고 옛날의 의관(衣冠)을 단정히 입고 왼손에
자완(甆椀)을 들고 오른손에 고경(古鏡)을 들고 나타났다.
※자완(甆椀)-고급 도자기 그릇
※고경(古鏡)-오래된 옛날 거울
이 사람은 왕창근(王昌瑾)에게 말하기를 “내 거울을 사겠는가”
하므로 왕창근은 곧 쌀을 주고 거울과 바꾸었다.
그 사람은 그 쌀을 시장거리에서 식량이 없어 밥을 굶은 아이들에게 나눠 준 뒤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왕창근(王昌瑾)은 그 거울을 집에 가져와 벽위(壁上)에 걸어 놓으니
해가 거울에 비치자 작은 글씨가 보여다.
왕창근(王昌瑾)이 읽어 보니 고시(古詩예날시) 같았다.
거울에 있는 고시(古詩)의 대략 내용은 이렇다.
【상제(上帝)가 아들을 진마(辰馬)에 내려 보내어 먼저 닭을 잡고 다음에 오리를 쳤다.
사년(巳年)중에 두 용(龍)이 보여 하나는 청목(靑木)의 속에 몸을 감추고 하나는
흑금(黑金)의 동(東)에 형체(形體)를 나타냈다】
이라고 거울에 적혀 있었다.
※상제(上帝)-하늘을 다스린다는 신(神) 하느님.
※고시(古詩)-고대(古代)의 시(詩). 한시(漢詩)에서는 대개 후한(後漢) 이전의 시(詩).
시경(詩經) 문선(文選) 등에 있는 시를 말함
※진마(辰馬)-진한(辰韓)과 마한(馬韓).
※사년(巳年)-태세(太歲)의 지지(地支)가 사(巳뱀)로 된 해.
을사(乙巳).정사(丁巳).기사(己巳) 같은 뱀의 해.
왕창근(王昌瑾)은 처음에 글이 적혀 있는 줄을 몰랐는데 보게 되매 예사롭지
않이(非常)하여,
생각 끝에 궁예(弓裔)에 보고하니 궁예는 관리를 시켜 왕창근(王昌瑾)과 함께 거울
임자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고 오직 발삽사(勃颯寺)의 법당에 있는
진성소상(鎭星塑像)이 그 사람 같았다.
※발삽사(勃颯寺)-절 이름.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벽양면(碧養面) 신일리(新日里)
금강산(金剛山)에 있는 은적사(隱跡寺)의 옛 이름.
※진성소상(鎭星塑像)-진성은 토성(土星)별로서 찰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形像).
궁예(弓裔)는 신기하게 여기다 못해 문인 송함홍(宋含弘). 백탁(白卓). 허원(許原)등을
시켜 해석하게 하니 송함홍(宋含弘)등은 서로 말하기를
【상제(上帝하느님)가 아들을 진마(辰馬)에 내려 보냈다는 것은 진한(辰韓) 마한(馬韓)을
뜻하는 것이요, 두 용(龍)이 보여 하나는 청목(靑木)에 숨고 하나는 흑금(黑金)에
났타났다는 것은 청목(靑木)은 송(松소나무)이니 송악군 사람으로 용(龍)으로
이름한 이의 손자인 현재 파진찬(波珍飡) 시중(侍中)을 뜻하는 것인가 싶소.
흑금(黑金)은 철(鐵)이니 지금 도읍한 철원(鐵原)을 말하는 것이니 주상(主上궁예)이
처음 여기에 일어났다가 마침내 여기서 멸망한다는 증험(證驗)이요
먼저 닭을 잡고 뒤에 오리를 친다는 것은 파진찬(波珍飡) 시중(侍中)이 먼저
계림(鷄林)을 얻고 뒤에 압록(鴨綠)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라고 하였다.
※압록(鴨綠)-강 이름. “압록강(鴨綠江)”과 같다.
※파진찬(波珍飡)-신라시대의 신분계급 17계급중 네 번째 계급
해간(海干).파미간(破彌干)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송함홍(宋含弘)은 서로 말하기를
【지금 주상(主上궁예)이 이처럼 횡포한데 우리가 만약 실지로 말한다면 우리들만
죽음을 당할 뿐만 아니라 파진찬(波珍飡)도 또한 반드시 해(害)를 받을 것이다】하고
이에 말을 꾸며 보고하였다.
궁예는 마음대로 흉학(凶虐)을 부리어 신하들은 벌벌 떨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흉학(凶虐)-음흉(陰凶)하고 포악(暴惡)함
여름 6월에 장군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네 사람 모두 어릴 때 이름으로 홍술(弘述) 백옥(白玉) 삼능산(三能山)
복사귀(卜沙貴)다》등 네 사람이 비밀히 모의(謀議)하고 밤에 태조(왕건)의
사저(私邸)에 가서 말하기를
《방금 주상(主上 궁예)이 형벌을 남용(濫用)하여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신하들을
죽이니 백성이 도탄에 빠져 살아날 수 없소.
예로부터 어두운 자를 버리고 밝은이를 들어 탕무(湯武)의 일을 실행하오》하니
왕건이 낯빛을 달리하여 거절하며 말하기를
《나는 충성과 순결(純潔)로 자처하였으니 지금 비록 폭난(暴亂)을 만났을지라도
감히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소. 무릇 신하로서 임금(궁예)을 바꾸는 것을 혁명(革命)이라
이르는데 나는 실로 덕(德)이 부족하거늘 감히 은주(殷周)의 일을
본받는단 말이오》하였다.
※탕무(湯武)-고대 중국의 주(周)나라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으로 각각
은(殷)나라와 주(周)나라를 개국한 현명한 왕.
모든 장수들이 왕건에 재차 말하기를
《시기(時期)는 두 번 오지 않는 것으로 만나기는 어렵고 놓치기는 쉬우니 하늘이
주는 것을 갖지 않으면 도리어 그 죄를 받는 법이오. 지금 국정이 문란하고 나라가
위태로와 백성은 다 그 임금을 밉게 보고 원수같이 하니 지금의 덕망으로는
공(公왕건)보다 나은 자가 있지 않으며, 하물며 왕창근(王昌瑾)이 얻은 경문(鏡文)이
저와 같은데 어찌 조용히 엎드리고 있어 독부(毒夫궁예)의 손에 죽을 수 있겠소》
라고 하니,
왕건의 부인 류씨(柳氏)는 모든 장수들의 의견을 듣고 이내 태조(太祖왕건)에게
말하기를
《인(仁)으로써 불인(不仁)을 치는 것은 예로부터 그렇거니와 지금 모든 장수들의
뜻(衆意)을 들으니 여자인 저로서도 분(忿)이 나는데 하물며 대장부 이겠나이까
지금 민심이 갑자기 변하니 하느님의 명령이 정해진 모양입니다》하고
손수 군복을 꺼내어 태조(왕건)께 올리었다.
모든 장수들은 태조(왕건)를 호위하고 문을 나와 앞잡이를 시켜 외치며
《왕공(王公왕건)이 이미 정의(正義)의 깃발을 들었다》
하니
이에 앞뒤로 달려와 따르는 자가 얼마 인지 알 수 없고 또 먼저 궁성문에
당도하여 북을 두들기며 기다리는 자도 1만여 명이었다.
궁예(弓裔)는 듣고 어찌할 바를 몰라 이에 평민의 의복을 입고 산으로 도망갔다가
곧 부양(斧壤)의 백성에게 살해당하였다.
※부양(斧壤)-강원도 평강현(平康縣)의 고구려시대 현(縣)이름.
이렇게 하여 정치를 잘못하여 백성의 원망을 산 궁예(弓裔)는 망하고
왕건(王建)이 다시 새나라를 세워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되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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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태조 왕건 83화를 보시옵소서.
직언한 승려 처형한 폭군 궁예, 對언론 ‘징벌적 손해배상’ 떠올라
대신들 눈 질끈 감고 자리 보전…
궁예는 길바닥서 백성 손에 죽었다
정상혁 기자
조선일보
2021.02.18
드라마 '태조 왕건' 83화 속 폭군이 된 궁예(위)와 그에게 간언하다
죽임당하는 승려 석총. /KBS
“저 자는 지금 마구니의 더러운 입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내군들은 무엇을 하느냐?
저 입을 철퇴로 으깨주어라.”
이 장면은 KBS 드라마 ‘태조 왕건’ 83화에서 미륵을 자처하며 ‘쇼’를 벌이던
궁예가 입바른 소리를 한 승려 석총을 처형하는 장면이다.
일개 백성은 죽기를 각오하고 일인자에게 고한다.
“소승은 어려서 불문에 입문하여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미륵만 배워왔사오나
폐하와 같은 미륵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오늘날 거짓을 말하고 계시오이다.
낙원도 없고 극락도 없소이다.
거리엔 굶어 죽은 시체들과 오갈 데 없는 백성들이 유리걸식하고 있소이다.”
나는 아직도 이 드라마를 밤마다 케이블채널에서 재방송으로 다시 보곤 한다.
이것은 사극(史劇)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풍자극이다.
20년 전 방영돼 시청률 60%를 넘긴 이 드라마는 여전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순위 상위권에 포진해있다.
인기에 힘입어 유튜브 전 회차 유료 생방송이 진행되기도 했다.
“200회 전체를 서른 번 넘게 봤다”는 가수 박완규뿐 아니라,
만화가 기안84 등 연령을 초월해 광팬 인증이 속출한다.
공영방송에서 대하 사극이 실종돼 볼거리가 줄어든 탓도 있을 것이나,
당대와의 시차 없이 정확히 권력의 속성을 겨누는 스토리텔링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절대성을 부여하던 궁예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자제 잃은 모든 권력의 끝은 이와 같을 것이다. /KBS
특히 83화는 이미 정신이 돌아버린 궁예와 간언하는 석총의 긴장 구도 탓에
특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최근 여당에서 ‘가짜 뉴스’ 운운하며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언론사와
포털 사이트를 포함하는 입법 진행 소식이 나온 직후인지라 불현듯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석총은 외친다.
“조정에 사악한 간신들만 들끓고 있으니 어찌 폐하의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막히지 않겠사옵니까….
폐하, 나라가 이미 깊이 병들어있사옵니다.
백성들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옵니다.
아직도 저 요원한 ‘북방(北方)의 세계’를 논하지 마시고 죽어가는 백성과 나라를
구하시옵소서.
그 길만이 살길이옵니다….
더 이상 백성을 속이지 마시옵소서!”
철퇴를 맞고 쓰러져 피투성이가 된 석총보다 보기 괴로운 것은,
궁예가 정상이 아님을 알면서도 참담한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숙이는
고관대작들이다.
그들은 그저 눈을 질끈 감음으로써 자신의 안위를 보전한다.
죽기 전 석총은 마지막으로 내뱉는다.
“거짓 미륵이시여, 그대의 세상은 이미 끝났소이다.
이미 새로운 미륵이 나타나 내일의 세상을 준비하고 있소이다.
거짓 미륵이시여, 저주를 받을 것이외다.”
‘태조 왕건’의 주인공은 물론 왕건이지만,
실상 드라마 정국을 주도하는 건 궁예다.
드라마는 그의 광기를 통해 말세 의식 속에서 태어난 권력,
종교로서의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드러낸다.
궁예는 애꾸이고, 한 쪽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는 지도자로서의 치명적 약점을 상징한다.
그리고 되레 비판 세력을 꾸짖는다.
“네가 까막눈이기 때문이다.
봉사가 되었기 때문이야.”
궁예를 연기한 배우 김영철은
“원래 양쪽 모두 시력이 2.0이었는데, 궁예 안대 분장 탓에 한쪽 눈의 시력이 0.2까지
떨어졌다”며
“그 후 회복이 안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이 나는 정사(政事)와 관련한 고도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궁예는 116화에 이르러 죽는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어.
인생이 찰나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꼬? 흐흐흐….
이렇게 덧없이 가는 것을.
이렇게 가는 것을….”
드라마는 그의 최후의 죽음을 아름답게 포장한다.
드라마의 무거운 역할(役割.重役)에 대한 예우일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에는 궁예가 도망을 가다가 길바닥에서 백성들에 의해
맞아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