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이백스물세 번째
마지막 행복 찾기
우리는 인간임을 자처하면서도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인간이란 인간은 무엇인가를 묻는 존재’라고 했을까요. 덕일 스님이라는 분이 그랬습니다. “그땐 출가만 하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알 수 있겠다 생각했지요. 30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삶이 복잡합니다. 칼 융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야가 뚜렷해질 것이다. 바깥을 보는 자는 꿈을 꾸고, 안을 보는 자는 깨어난다.”라고 일러주었지만, 그 마음이라는 것도 우리는 역시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아주 단순하게 보아야 세상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물건들, 복잡해 보이는 비행기나 자동차, 거대한 건물들조차도 분해해보면 못, 바퀴, 스프링, 자석, 렌즈, 끈, 펌프의 7가지가 그것들을 받쳐주고 존재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았답니다. 한때 엄청나게 읽혔던 <총·균·쇠>에서도 인류의 역사와 문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을 ‘총·균·쇠’로 설명했습니다. 나이 들수록 복잡한 것들을 단순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생태주의의 효시로 일컬어지며 법정 스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데이비드 헨리 소로 David Henry Thoreau의 집에는 침대, 탁자, 책상, 거울, 솥, 냄비가 모두 하나뿐이었답니다. 그런데 의자는 세 개였답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관계’입니다.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가족과 이웃, 이들과 어떤 관계로 살아갈 것인가, 여기에 마지막 행복이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저 의자 셋이면 충분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