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을 출신대학별로 나눠 평균 연봉을 조사한 결과 고려대 출신 CEO들이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CEO 중에서도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오너 경영자에 고려대 동문이 많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가 국내 매출액 기준 1000대 상장사 대표이사급 CEO의 2011년 연간보수를 지난달 분석한 결과, 고려대 출신 CEO들의 평균 보수가 5억530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서울대 출신 CEO들로 평균 연봉이 4억9740만원, 연세대가 3위(4억1510만원), 4위 한국외국어대(3억9810만원), 5위 경희대(3억9040만원) 순이었다. 최고경영자 연간 보수는 2011년 기준 각 기업의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등기 사내이사 1인당 평균 금액으로 산정했다.
고려대 출신 CEO의 연봉이 서울대나 연세대 출신보다 많은 것에 대해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24일 “같은 CEO 중에서도 오너 경영자들이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며 “오너 기업가 중에 고려대 출신이 많다 보니 평균 연봉도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5억원 이상 고액연봉자는 고려대가 가장 많았다. 5억원 이상 연봉을 받는 그룹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고려대 출신이 35.1%로 가장 많았고, 서울대가 28.2%, 연세대가 27.2%로 뒤를 이었다.
대기업 오너 중에 고려대 동문 많아
대기업 오너 중에는 고려대 동문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인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비롯, 최태원 SK회장, 허창수 GS 회장, 이재현 CJ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김윤 삼양 회장, 김준기 동부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구자용 E1 회장 등이다. 서울대와 연세대 출신 오너들도 적지 않으나, 그룹 규모 면에서 고려대 출신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진다는게 재계의 대체적 평가다.
허창수 GS회장/조선DB
최태원 SK 회장/조선DB
이재현 CJ 회장/조선DB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조선DB
서울대 출신 오너 경영인에는 박용만 두산 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류진 풍산 회장, 김상범 이수화학 회장, 김택진 NC소프트 사장, 신동원 농심 부회장 등이 있다. 연세대 출신으로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비롯, 구본무 LG 회장, 이수영 OCI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구본걸 LG패션 회장 등이 있다.
30대 그룹 오너들의 출신 대학을 봐도 고려대가 가장 많다. 재벌분석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그룹 오너 61명을 출신대학별로 조사한 결과, 고려대 출신이 10명(16.4%)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대가 9명, 연세대가 8명으로 2, 3위였다. 오일선 소장은 “오너 경영인이 맡고 있는 그룹의 규모만 놓고 보면 고려대 출신이 군단장급이라면, 서울대나 연세대 출신은 사단장급 정도”라며 “연세대 출신 중에선 자수성가한 중견기업 오너가 상대적으로 많고, 서울대 출신 중에선 오너보다 전문경영인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서민적이고 끈끈한 학풍이 어필
재벌 오너들이 서울대나 연세대에 비해 고려대를 많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대 교수들은 ‘막걸리 대학’이라 불릴 만큼 서민적인 학풍과 끈끈한 선후배 관계 속에 길러지는 리더십 때문이라고 자평한다.
경영학과 77학번인 박경서 경영대 교수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70, 80년대만 해도 고려대 학생들은 소탈한데다 앞뒤 재지 않고 선후배 간에 끈끈하게 뭉치는 분위기였다”며 “선후배 중에 재벌 2세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 누구도 돈 있는 태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려대 출신 재벌 오너들 중엔 학창시절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은 졸업할 때까지도 자신이 현대가 2세라는 점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서민적 학풍’이 오히려 재벌들에게 어필했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기업 운영에 있어 꼭 필요한 친화력과 리더십 측면에서 연세대보다는 고려대가 낫다는 평가가 예전부터 있었다”며 “재벌 창업자 입장에서도 2세의 경영교육을 위해서는 ‘개인주의’ 이미지가 강한 연세대보단 우리 학교를 선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경제학과 오정근 교수는 “고려대 출신들의 친화력이나 리더십이 기업을 이끌어 가는데 강점이 있다는 측면에서 고려대를 많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고려대 출신 가운데 창업을 해 성공한 사례도 많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연세대 출신이 강세였다.그러나 박현주 회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나온 뒤에는 고려대 출신이 재계 뿐 아니라 금융계에서도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고려대 상대는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배출했다.
고려대는 전통적으로 법과대학이 상경계열보다 강세였으나 수년전에 법과대학이 없어지면서 상경계열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상경계가 강했던 연세대와 상승세의 고려대 간 승부가 점점 치열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