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찰과 정원이 있는 교토지만,
그 중에서도 청수사(清水寺, 기요미즈데라)와 함께 교토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금각사.
정식명칭은 녹원사(鹿苑寺, 로쿠온지)지만, 금박을 입힌 누각(사리전) 때문에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란 별칭이 더욱 유명한 곳입니다.
총 3층의 금각은 층마다 건축 양식이 달라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고 합니다.
최초 건립 시기는 1300년대로, 당시 일본 쇼군이 은퇴 후 별장으로 쓰기 위해 이 곳을 지었습니다.
(무로마치 막부, 우리나라 연혁으로 여말선초 즈음)
작은 화재도 몇 번 있고 했지만 현대까지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었습니다만 1950년에 큰 화재가 납니다.
화재 전 금각사의 모습
화재. 당시 비오는 날이었이었지만
50분 만에 전소
당시 화재경보기가 있었지만 화재 며칠 전 고장이었다고 함.
당시 내부에는 국보 및 보물이 꽤나 있었다고 합니다.
창건자인 아시카가 요시미츠 (무로마치 막부 3대 쇼군)의 목상.
당시 국보
반쯤 탄 상태로 겨우 구함. 대략 5-6개의 문화재가 소실.
화재는 당시 금각사의 견습 승려의 방화로 밝혀짐.
심한 말더듬이에 정신분열 증세를 앓고 있었다고 함.
원래는 금각사와 같이 타서 죽으려고 했는데 너무 뜨거워서 밖으로 나와 음독 자살하려다 실패하고 잡힘.
이 승려의 방화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소설이 있는데, 일본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인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입니다.
소설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소설가 김영하의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어주는 남자’ episode 1 참고
(http://m.podbbang.com/ch/episode/1749?e=21102626)
전소 후 교토 시민 및 전국민 모금 활동이 진행됐고, 이후 복원을 하게 됨.
불행 중 다행으로, 이전에 대보수 때 남겨진 도면이 있어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될 수 있었음.
복원은 약 3년 정도 걸렸는데, 날림공사를 한 탓에 2-3차에 거친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했고 결국 최종 복원까지는 50년이 소요됨.
숭례문 화재 때도 옆동네에 이런 날림공사 때문에 시간과 돈 까먹은 전례가 있으니 신중을 가하자고 했는데 역시나 날림공사를 해서 문제가 되었었죠.
전소 전 금각사의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현재의 모습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죠? 소실 전의 금각사는 금박이 많이 벗겨져 번쩍이는 느낌이 덜했었고, 2층엔 금박이 없었다고 합니다.
복원은 소실 직전의 모습이 아닌 창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다는 방침으로 진행되었고, 잔해를 조사하던 중 누각의 2층도 금박이 있었던 흔적을 발견하여 2층도 금박으로 덮여 있을거라고 추측이 되어 그렇게 진행 되었다고 함.
하지만 복원 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금박을 씌워 예전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함.
마지막은 금각사가 제일 아름다운 경관을 뽐낸다는 설경으로 마무리.
교토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 아니다 보니, 보기가 힘든 모습 중 하나..
첫댓글 숭례문과 여러모로 비슷하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은 저 범인을 주인공으로 하되 상당히 탐미적인 관점으로 사건의 전말을 서술하죠. 이문열이 극우적이고 탐미적인 미시마 유키오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우리꺼 약탈하고 없애고 한 놈들이라 그러건 말건..
엘리트건달 시부로군단이 태운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