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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분별하라 원문보기 글쓴이: 모래시계
KJV(킹 제임스 성경의 유래)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티오크(Antioch,안디옥) 교회가 성경전서를 순수하게 보존하여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 보급하고 있었을 때,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도시에 살던 오리겐(Adamantius Origen,A.D.185-254)이란 사람이 안티오크 크리스챤들이 전해준 성경을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오리겐은 당대의 가장 저명한 학자로서 스스로를 성경교사요 신학자라 공언했지만, 실상은 바알숭배자이자 철학자인 플라톤의 혼합주의(syncretism) 신봉자였다. 오리겐은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여호와의 증인들의 선구자가 되었고, 기독교와 플라톤 철학의 결합을 시도한 혼합적 영지주의자였다. 그리고 그 성경에다 주로 알렉산드리아의 변절한 유다인들이 만들어낸 외경들을 포함시켰는데, 오늘날 사본학에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라 함은 바로 오리겐이 난도질하여 만든 위조 성경의 사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소위 칠십인 역(LXX)이라는 것도 오리겐의 헥사플라에서 처음 등장한 위조성경이며, 그 이전에 번역되었었다는 설은 학자들에게도 이미 사실무근임이 밝혀진 바 있다.
그
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
때 유세비우스(Eusebius Pamphili,A.D.264-349경)라는 학자는
그들이 주로 전파한 성경은 코이네 그리스어 성경에서 라틴어로 번역해 준 A.D. 120년 경 라틴 벌게이트(the Latin Vulgate)라 불리운 성경이었다. 안티오크의 라틴 벌게이트 성경이 비공개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퍼지면서 당대의 가장 권위있는 성경으로 자리잡아 가자, 당시의 다마수스교황은 라틴 교부이자 저명한 학자인 제롬 (Jerome,본명은 Sophronius Eusebius Hieronymus,340-420 년경)을 시켜 위조 라틴 벌게이트 를 만들게 하였고, 그것으로 원래의 라틴 벌게이트를 대체시켜 버렸다. 오늘날 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가 그것으로서, 그 위조성경은 훗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정식으로 로마 카톨릭 공인성경으로 채택되었다. 이제는 학자들에 의해 안티오크의 라틴 벌게이트가 구 라틴 벌게이트 (the Old Latin Vulgate) 혹은 구 라틴어 성경 으로 불리고 있고, 대신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라틴 벌게이트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로마 카톨릭을 위한 성경이라는 증거는 마태복음 3장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왔다 에서 회개하라 (repent)를 고해성사하라 (do penitence)로 번역한 사실 하나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비록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로마의 공권력에 의해 구 라틴 벌게이트를 대체하려 하였지만, 비잔틴 제국 전역에서 일반일들에게 권위를 인정받은 성경은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아니라, 구 라틴 벌게이트였다. 존 위클리프가 최초의 영어 신약전서를 번역한 것이 바로 구 라틴 벌게이트에서였고, 이때문에 로마 카톨릭은 위클리프가 죽은 뒤에 그의 시체를 파내어 다시 화형시키기까지 하였다.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복음의 빛을 받게 된 것도 바로 구 라틴 벌게이트를 읽으면서였다. 이 즈음에 로마 카톨릭의 학자 중 매우 이례적인 인물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1469-1536)가 등장하였는데, 그는 교황과도 절친한 카톨릭 학자이면서도 주로 로마 카톨릭의 부패상을 꼬집고 카톨릭 사제들의 위선행위들을 냉소하는 책들을 많이 저술한 반카톨릭 인문주의자였다(그의 저술들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 대부분 금서로 지정되었다). 에라스무스는 로마 카톨릭이 공인(公認)한 성경이 가짜 성경이고, 오히려 일반인들 가운데 비공개적으로 퍼져 있는 성경이 참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학자답게 최초의 코이네 그리스어 성경 원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그리스어 성경을 단 한 권도 구할 수 없게 되자, 바젤에서 수집한 부분적인 그리스어 사본들을 가지고 짜맞추고 구 라틴 벌게이트에서 보충하기도 하여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로마 카톨릭에 의해 변개되지 않은 그리스어 성경을 편집 출판하였다.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성경은 그후 스테파누스와 베자, 엘지버 형제들의 손을 거치면서 수정 보완 되었다. 특히 1633년에 출판한 엘지버 제2판의 서문에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본문을 갖게 되었다 (Textum ergo habes, nunc ab omnibus receptum)는 표현을 쓰게 되면서부터 소위 공인 원문 (共認原文,Textus Receptus)이란 타이틀이 붙여지기 시작했다. 즉 공인원문(TR)이란 직접적으로는 에라스무스로부터 시작되어 엘지버 판에 이르는 그리스어 성경을 지칭하는 말이며, 공인원문이 로마 카톨릭에 의해 변질되지 않은 그리스어 사본들을 재생시킨 것이기 때문에 TR주의자들은 안티오크 교회 이래로 순수히 보존된 전통원문(Traditional Text)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TR주의자들이 스스로 인정하듯이 TR은 결코 완전한 성경이 아니며 (그들 스스로 85-95 % 가깝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최종권위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후스, 위클리프, 에라스무스 등의 학자들이 바른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애쓴 보람으로 로마 카톨릭 안에서도 바른 성경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루터, 칼빈(깔벵), 쯔빙글리, 낙스 등의 개혁자들이 등장하면서 소위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봇물이 터졌다. 내 백성아, 그녀(음녀 바빌론)에게서 나오라 (Revelation 18:4)는 말씀에 순종하여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뛰쳐 나왔다. 때를 같이 하여 서민들 속에 감춰져 온 참 성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프로테스탄트 영어 성경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틴데일 성경,카버데일, 매튜,타버너,대성경 및 제네바 성경 등이 그것이었다. 특히 제네바 성경 (1557,1560)은 스테파누스 TR에서 번역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킹 제임스 성경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가장 널리 보급된 프로테스탄트 성경이었다.
그러나 철저히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외쳤던 앤드류 폰 칼슈타트나 처음부터 참 성경을 지켜온 아나밥티스트(재침례교도)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절반만 나왔고, 성경으로는 절반만 돌아갔다. 루터, 칼빈을 비롯한 개혁 지도자들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입장에 서서, 구원의 교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카톨릭 전통들(성직제도, 성례전, 교회행정, 헌금제도 등)을 그대로 답습하였고, 반면 성경에 대한 입장은 학자들의 원본주의를 따랐다. 오늘날 개신교가 에큐메니칼 운동과 함께 다시 로마 카톨릭의 신바빌론주의로 되돌아가고 있고, 불완전한 사본에서 번역된 수많은 불완전한 번역 성경들을 신봉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은, 개혁자들의 개혁이 왜 실패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영국에 일찍부터 복음이 들어가서(A.D.37년경) 안티오크의 구 라틴 벌게이트가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로마 카톨릭의 영국진출이 번번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영국은 유일하게 반 카톨릭 국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영국을 사용하여 인류에게 완전한 성경을 선물하시기로 작정하셨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가 영국 해군에게 극적으로 패배한 사건을 기점으로 대영제국이 스페인을 대신하여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부상하였다. 스페인어 대신 영어가 세계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역사였다. 하나님의 섭리로 영어는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포함한 어떤 언어보다도 더 정확하고 풍부한 어휘를 지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에서 통용되는 전무후무한 세계어(world language)로 자리잡았다. 히브리어, 그리스어는 이미 사어(dead language)가 되었으나, 영어는 현재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현재 사용하시고 계신 계시언어가 되었다.
1611년 제임스 왕 1세 때 드디어 킹 제임스 성경이 출판되었다. 그런데 제임스 왕 자신이나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50여명의 학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그것은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이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영국 국교회와 주교들의 입지를 뒤흔들어 놓았고, 처음에 정한 번역 원칙들을 무시한채 TR과도 다르고 비숍스 성경과도 다르게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귀족들과 사제들보다는 오히려 일반인들 가운데서 그 권위가 인정되면서 기존의 모든 성경들을 대체해 나갔기 때문이다. 림스듀이 성경을 비롯한 로마 카톨릭 성경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가장 인기 있는 프로테스탄트 성경이었던 제네바 성경 및 심지어는 구 라틴어 성경까지도 대체해 나갈 정도였다.
>> 참고고리 : 흠정역, 제임즈 1세의 통치 >> 바깥고리 : 성경보기(KCM제공)
After the King James Bible
The greatest defect of the King James Bible is that the New Testament was translated from an inferior text. This Greek text was made in the Fourth Century and it is now known that it is quite removed from the text of the First Century. Sixteen years after the King James Bible was printed, a Greek manuscript of the Bible was presented to King Charles I. This Fifth Century manuscript is now known as the Alexandrine Codex and is in the British Museum. At that time, this was a much better manuscript than the text prepared by Erasmus and used by the translators of the King James Bible. Unfortunately, it was not available to the translators in 1611. During the 18th and 19th Centuries, much important work was done on the Bible text. Further manuscripts were discovered, for instance, the Codex Sinaiticus was found in St. Catherine's monastery by Tischendorf in 1844. This Fourth Century Greek manuscript contains the New Testament and most of the Old Testament. The Vatican Codex was made generally available. It became evident that the authorized version of 1611 needed revision to be more in conformity with the Greek text of the New Testament. This exhibition contains several important Greek New Testament texts; notably those by Grisebach, Tischendorf and Young. Bagster's comparison of manuscripts is also displayed. The Old Testament, as it is in our Bible, is based on the Masoretic text. The Masoretes were a group of Hebrew scholars who, from the 8th Century onward standardized the text of the Old Testament books. The Leningrad Codex is the oldest complete manuscript of the Masoretic text. It was written about 1008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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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는 위의 원문에서
라틴 벌게이트에 대한 ..정확한 그리고 쉬운 이해를 위하여
밑에 글을 ..빨간 글씨나 ,굵은 강조로 내용은 그대로 둔체
강조점을 조금 변형 합니다,..!
읽으시는 분들이 좀더 쉽게 그리고 기억에 남게 하기위하여
천천히 시간을 들여 작성하려 합니다,..그러니 나중에 다시 한번
확인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KJV(킹 제임스 성경의 유래)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티오크(Antioch,안디옥) 교회가 성경전서를 순수하게 보존하여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 보급하고 있었을 때,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도시에 살던 오리겐(Adamantius Origen,A.D.185-254)이란 사람이 안티오크 크리스챤들이 전해준 성경을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오리겐은 당대의 가장 저명한 학자로서 스스로를 성경교사요 신학자라 공언했지만, 실상은 바알숭배자이자 철학자인 플라톤의 혼합주의(syncretism) 신봉자였다. 오리겐은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여호와의 증인들의 선구자가 되었고, 기독교와 플라톤 철학의 결합을 시도한 혼합적 영지주의자였다. 그리고 그 성경에다 주로 알렉산드리아의 변절한 유다인들이 만들어낸 외경들을 포함시켰는데, 오늘날 사본학에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라 함은 바로 오리겐이 난도질하여 만든 위조 성경의 사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소위 칠십인 역(LXX)이라는 것도 오리겐의 헥사플라에서 처음 등장한 위조성경이며, 그 이전에 번역되었었다는 설은 학자들에게도 이미 사실무근임이 밝혀진 바 있다.
그
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
때 유세비우스(Eusebius Pamphili,A.D.264-349경)라는 학자는 이 두 사본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콘스탄틴은 이 50권의 공인성경(위조성경) 외에 어떤 성경이라도 소유하거나 읽거나 배포하는 자는 모두 체포하여 목을 자르고 그들이 지닌 성경은 압수하여 불사르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안티오크 교회 출신의 신실한 크리스챤들은 콘스탄틴 황제의 핍박을 피해 알프스 산속으로 들어가서, 피에드몽 골짜기를 거점으로 제국 전역에 바른 성경을 보급하였다.
그들이 주로 전파한 성경은 코이네 그리스어 성경에서 라틴어로 번역해 준 A.D. 120년 경 라틴 벌게이트(the Latin Vulgate)라 불리운 성경이었다. 안티오크의 라틴 벌게이트 성경이 비공개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퍼지면서 당대의 가장 권위있는 성경으로 자리잡아 가자, 당시의 다마수스교황은 라틴 교부이자 저명한 학자인 제롬 (Jerome,본명은 Sophronius Eusebius Hieronymus,340-420 년경)을 시켜 위조 라틴 벌게이트 를 만들게 하였고, 그것으로 원래의 라틴 벌게이트를 대체시켜 버렸다. 오늘날 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가 그것으로서, 그 위조성경은 훗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정식으로 로마 카톨릭 공인성경으로 채택되었다. 이제는 학자들에 의해 안티오크의 라틴 벌게이트가 구 라틴 벌게이트 (the Old Latin Vulgate) 혹은 구 라틴어 성경 으로 불리고 있고, 대신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라틴 벌게이트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로마 카톨릭을 위한 성경이라는 증거는 마태복음 3장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왔다 에서 회개하라 (repent)를 고해성사하라 (do penitence)로 번역한 사실 하나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비록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로마의 공권력에 의해 구 라틴 벌게이트를 대체하려 하였지만, 비잔틴 제국 전역에서 일반일들에게 권위를 인정받은 성경은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아니라, 구 라틴 벌게이트였다. 존 위클리프가 최초의 영어 신약전서를 번역한 것이 바로 구 라틴 벌게이트에서였고, 이때문에 로마 카톨릭은 위클리프가 죽은 뒤에 그의 시체를 파내어 다시 화형시키기까지 하였다.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복음의 빛을 받게 된 것도 바로 구 라틴 벌게이트를 읽으면서였다. 이 즈음에 로마 카톨릭의 학자 중 매우 이례적인 인물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1469-1536)가 등장하였는데, 그는 교황과도 절친한 카톨릭 학자이면서도 주로 로마 카톨릭의 부패상을 꼬집고 카톨릭 사제들의 위선행위들을 냉소하는 책들을 많이 저술한 반카톨릭 인문주의자였다(그의 저술들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 대부분 금서로 지정되었다). 에라스무스는 로마 카톨릭이 공인(公認)한 성경이 가짜 성경이고, 오히려 일반인들 가운데 비공개적으로 퍼져 있는 성경이 참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학자답게 최초의 코이네 그리스어 성경 원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그리스어 성경을 단 한 권도 구할 수 없게 되자, 바젤에서 수집한 부분적인 그리스어 사본들을 가지고 짜맞추고 구 라틴 벌게이트에서 보충하기도 하여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로마 카톨릭에 의해 변개되지 않은 그리스어 성경을 편집 출판하였다.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성경은 그후 스테파누스와 베자, 엘지버 형제들의 손을 거치면서 수정 보완 되었다. 특히 1633년에 출판한 엘지버 제2판의 서문에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본문을 갖게 되었다 (Textum ergo habes, nunc ab omnibus receptum)는 표현을 쓰게 되면서부터 소위 공인 원문 (共認原文,Textus Receptus)이란 타이틀이 붙여지기 시작했다. 즉 공인원문(TR)이란 직접적으로는 에라스무스로부터 시작되어 엘지버 판에 이르는 그리스어 성경을 지칭하는 말이며, 공인원문이 로마 카톨릭에 의해 변질되지 않은 그리스어 사본들을 재생시킨 것이기 때문에 TR주의자들은 안티오크 교회 이래로 순수히 보존된 전통원문(Traditional Text)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TR주의자들이 스스로 인정하듯이 TR은 결코 완전한 성경이 아니며 (그들 스스로 85-95 % 가깝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최종권위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후스, 위클리프, 에라스무스 등의 학자들이 바른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애쓴 보람으로 로마 카톨릭 안에서도 바른 성경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루터, 칼빈(깔벵), 쯔빙글리, 낙스 등의 개혁자들이 등장하면서 소위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봇물이 터졌다. 내 백성아, 그녀(음녀 바빌론)에게서 나오라 (Revelation 18:4)는 말씀에 순종하여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뛰쳐 나왔다. 때를 같이 하여 서민들 속에 감춰져 온 참 성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프로테스탄트 영어 성경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틴데일 성경,카버데일, 매튜,타버너,대성경 및 제네바 성경 등이 그것이었다. 특히 제네바 성경 (1557,1560)은 스테파누스 TR에서 번역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킹 제임스 성경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가장 널리 보급된 프로테스탄트 성경이었다.
그러나 철저히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외쳤던 앤드류 폰 칼슈타트나 처음부터 참 성경을 지켜온 아나밥티스트(재침례교도)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절반만 나왔고, 성경으로는 절반만 돌아갔다. 루터, 칼빈을 비롯한 개혁 지도자들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입장에 서서, 구원의 교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카톨릭 전통들(성직제도, 성례전, 교회행정, 헌금제도 등)을 그대로 답습하였고, 반면 성경에 대한 입장은 학자들의 원본주의를 따랐다. 오늘날 개신교가 에큐메니칼 운동과 함께 다시 로마 카톨릭의 신바빌론주의로 되돌아가고 있고, 불완전한 사본에서 번역된 수많은 불완전한 번역 성경들을 신봉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은, 개혁자들의 개혁이 왜 실패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영국에 일찍부터 복음이 들어가서(A.D.37년경) 안티오크의 구 라틴 벌게이트가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로마 카톨릭의 영국진출이 번번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영국은 유일하게 반 카톨릭 국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영국을 사용하여 인류에게 완전한 성경을 선물하시기로 작정하셨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가 영국 해군에게 극적으로 패배한 사건을 기점으로 대영제국이 스페인을 대신하여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부상하였다. 스페인어 대신 영어가 세계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역사였다. 하나님의 섭리로 영어는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포함한 어떤 언어보다도 더 정확하고 풍부한 어휘를 지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에서 통용되는 전무후무한 세계어(world language)로 자리잡았다. 히브리어, 그리스어는 이미 사어(dead language)가 되었으나, 영어는 현재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현재 사용하시고 계신 계시언어가 되었다.
1611년 제임스 왕 1세 때 드디어 킹 제임스 성경이 출판되었다. 그런데 제임스 왕 자신이나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50여명의 학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그것은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이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영국 국교회와 주교들의 입지를 뒤흔들어 놓았고, 처음에 정한 번역 원칙들을 무시한채 TR과도 다르고 비숍스 성경과도 다르게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귀족들과 사제들보다는 오히려 일반인들 가운데서 그 권위가 인정되면서 기존의 모든 성경들을 대체해 나갔기 때문이다. 림스듀이 성경을 비롯한 로마 카톨릭 성경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가장 인기 있는 프로테스탄트 성경이었던 제네바 성경 및 심지어는 구 라틴어 성경까지도 대체해 나갈 정도였다.
>> 참고고리 : 흠정역, 제임즈 1세의 통치 >> 바깥고리 : 성경보기(KCM제공)
After the King James Bible
The greatest defect of the King James Bible is that the New Testament was translated from an inferior text. This Greek text was made in the Fourth Century and it is now known that it is quite removed from the text of the First Century. Sixteen years after the King James Bible was printed, a Greek manuscript of the Bible was presented to King Charles I. This Fifth Century manuscript is now known as the Alexandrine Codex and is in the British Museum. At that time, this was a much better manuscript than the text prepared by Erasmus and used by the translators of the King James Bible. Unfortunately, it was not available to the translators in 1611. During the 18th and 19th Centuries, much important work was done on the Bible text. Further manuscripts were discovered, for instance, the Codex Sinaiticus was found in St. Catherine's monastery by Tischendorf in 1844. This Fourth Century Greek manuscript contains the New Testament and most of the Old Testament. The Vatican Codex was made generally available. It became evident that the authorized version of 1611 needed revision to be more in conformity with the Greek text of the New Testament. This exhibition contains several important Greek New Testament texts; notably those by Grisebach, Tischendorf and Young. Bagster's comparison of manuscripts is also displayed. The Old Testament, as it is in our Bible, is based on the Masoretic text. The Masoretes were a group of Hebrew scholars who, from the 8th Century onward standardized the text of the Old Testament books. The Leningrad Codex is the oldest complete manuscript of the Masoretic text. It was written about 1008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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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게이트'(Vulgate)라는 말은 ‘공통의’, ‘평민의’라는 의미의 라틴어 ‘vulgar’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는 제롬의 라틴벌게이드 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즉 카톨릭이 만든 성경 입니다,
카톨릭의 성경은 평민은 볼수가 없습니다,,,그런데 ,,,어떻게 카톨릭의 성경이 평민의 성경이 될까요?
이는 150년경 안디옥 성도들이 읽던 즉 일반 평민들이 읽던 구 라틴 벌게이트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안디옥 성도들이 보존하고 전파하였던 라틴 벌게이드가 참 평민의 성경인 것 입니다,
캐톨릭이 제롬을 통하여 ,,카톨릭 성경을 만들고.. 라틴벌게이트라.. 칭하게 되면서
이와 구분하기 위하여서 참 평민의 성경이 즉 안디옥의 라틴 벌게이트가
구 라틴 벌게이트로 이름이 변하게 되고 ...평민의 성경과 상관이 없는 카톨릭의 제롬의 성경이
라틴 벌게이트로 불러지게 됩니다,
루시퍼라는 성경의 말씀은 이 카롤기의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닌
구 라틴 벌게이트 ,,즉 참 라틴 벌게이트 안디옥의 성경에서 부터 나오는 명칭 입니다,
그러기에 이 구 라틴 벌게이틍에서 나온 킹저엠스 성경을 전후한 영어 성경들은
모두가 루시퍼로 기록 되어져 있는 것 입니다,
자료 수정 없이 올립니다,
밑에 자료들을 통하여서 더 많은 진실들을 접하시기 바랍니다,
밑에 자료들을 보시기 이전에 밑에 글을 꼭 한번씩 확인하시고 읽으셔야 도움이 됩니다,
전체자료보기☞→▶ 성경의 두 뿌리 & 진리의 변질
안디옥 벌게이트(구라틴 벌게이트) & 제롬의 라틴벌게이트)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티오크(Antioch,안디옥) 교회가 성경전서를 순수하게 보존하여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 보급하고 있었을 때,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도시에 살던 오리겐(Adamantius Origen,A.D.185-254)이란 사람이 안티오크 크리스챤들이 전해준 성경을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오리겐은 당대의 가장 저명한 학자로서 스스로를 성경교사요 신학자라 공언했지만, 실상은 바알숭배자이자 철학자인 플라톤의 혼합주의(syncretism) 신봉자였다.
오리겐은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여호와의 증인들의 선구자가 되었고, 기독교와 플라톤 철학의 결합을 시도한 혼합적 영지주의자였다. 그는 안티오크 크리스챤들이 전해 준 성경을 자신의 사상에 맞게 뜯어 고치고 플라톤 철학과 혼합시키는 대수술작업을 가하여 헥사플라 (Hexapla,육단 대조 성경)라는 전대미문의 위조성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성경에다 주로 알렉산드리아의 변절한 유다인들이 만들어낸 외경들을 포함시켰는데, 오늘날 사본학에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라 함은 바로 오리겐이 난도질하여 만든 위조 성경의 사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소위 칠십인 역(LXX)이라는 것도 오리겐의 헥사플라에서 처음 등장한 위조성경이며, 그 이전에 번역되었었다는 설은 학자들에게도 이미 사실무근임이 밝혀진 바 있다.
그 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 때 유세비우스(Eusebius Pamphili,A.D.264-349경)라는 학자는 오리겐의 헥사플라 중 다섯째 칼럼을 편집하여 로마 제국의 공인성경 50권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학자들에 의해 가장 권위있는 사본으로 여겨지고 있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콘스탄틴때 만들어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으로서, 바로 유세비우스가 편집한 오리겐의 위조성경이었다. 이 두 사본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콘스탄틴은 이 50권의 공인성경(위조성경) 외에 어떤 성경이라도 소유하거나 읽거나 배포하는 자는 모두 체포하여 목을 자르고 그들이 지닌 성경은 압수하여 불사르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안티오크 교회 출신의 신실한 크리스챤들은 콘스탄틴 황제의 핍박을 피해 알프스 산속으로 들어가서, 피에드몽 골짜기를 거점으로 제국 전역에 바른 성경을 보급하였다.
그들이 주로 전파한 성경은 코이네 그리스어 성경에서 라틴어로 번역해 준 A.D. 120년 경 라틴 벌게이트(the Latin Vulgate)라 불리운 성경이었다. 안티오크의 라틴 벌게이트 성경이 비공개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퍼지면서 당대의 가장 권위있는 성경으로 자리잡아 가자,
제롬 (Jerome,본명은 Sophronius Eusebius Hieronymus,340-420 년경)을 시켜 위조 라틴 벌게이트 를 만들게 하였고, 그것으로 원래의 라틴 벌게이트를 대체시켜 버렸다.
오늘날 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가 그것으로서, 그 위조성경은 훗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제는 학자들에 의해 안티오크의 라틴 벌게이트가 구 라틴 벌게이트 (the Old Latin Vulgate) 혹은 구 라틴어 성경 으로 불리고 있고, 대신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라틴 벌게이트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로마 카톨릭을 위한 성경이라는 증거는 마태복음 3장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왔다 에서 회개하라 (repent)를 고해성사하라 (do penitence)로 번역한 사실 하나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비록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로마의 공권력에 의해 구 라틴 벌게이트를 대체하려 하였지만, 비잔틴 제국 전역에서 일반일들에게 권위를 인정받은 성경은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아니라, 구 라틴 벌게이트였다. 존 위클리프가 최초의 영어 신약전서를 번역한 것이 바로 구 라틴 벌게이트에서였고, 이때문에 로마 카톨릭은 위클리프가 죽은 뒤에 그의 시체를 파내어 다시 화형시키기까지 하였다.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복음의 빛을 받게 된 것도 바로 구 라틴 벌게이트를 읽으면서였다.
이 즈음에 로마 카톨릭의 학자 중 매우 이례적인 인물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1469-1536)가 등장하였는데, 그는 교황과도 절친한 카톨릭 학자이면서도 주로 로마 카톨릭의 부패상을 꼬집고 카톨릭 사제들의 위선행위들을 냉소하는 책들을 많이 저술한 반카톨릭 인문주의자였다 (그의 저술들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 대부분 금서로 지정되었다). 에라스무스는 로마 카톨릭이 공인(公認)한 성경이 가짜 성경이고, 오히려 일반인들 가운데 비공개적으로 퍼져 있는 성경이 참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학자답게 최초의 코이네 그리스어 성경 원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그리스어 성경을 단 한 권도 구할 수 없게 되자, 바젤에서 수집한 부분적인 그리스어 사본들을 가지고 짜맞추고 구 라틴 벌게이트에서 보충하기도 하여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로마 카톨릭에 의해 변개되지 않은 그리스어 성경을 편집 출판하였다.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성경은 그후 스테파누스와 베자, 엘지버 형제들의 손을 거치면서 수정 보완 되었다. 특히 1633년에 출판한 엘지버 제2판의 서문에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본문을 갖게 되었다 (Textum ergo habes, nunc ab omnibus receptum)는 표현을 쓰게 되면서부터 소위 공인 원문 (共認原文,Textus Receptus)이란 타이틀이 붙여지기 시작했다. 즉 공인원문(TR)이란 직접적으로는 에라스무스로부터 시작되어 엘지버 판에 이르는 그리스어 성경을 지칭하는 말이며, 공인원문이 로마 카톨릭에 의해 변질되지 않은 그리스어 사본들을 재생시킨 것이기 때문에 TR주의자들은 안티오크 교회 이래로 순수히 보존된 전통원문(Traditional Text)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TR주의자들이 스스로 인정하듯이 TR은 결코 완전한 성경이 아니며 (그들 스스로 85-95 % 가깝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최종권위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후스, 위클리프, 에라스무스 등의 학자들이 바른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애쓴 보람으로 로마 카톨릭 안에서도 바른 성경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루터, 칼빈(깔벵), 쯔빙글리, 낙스 등의 개혁자들이 등장하면서 소위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봇물이 터졌다. 내 백성아, 그녀(음녀 바빌론)에게서 나오라 (Revelation 18:4)는 말씀에 순종하여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뛰쳐 나왔다. 때를 같이 하여 서민들 속에 감춰져 온 참 성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프로테스탄트 영어 성경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틴데일 성경,카버데일, 매튜,타버너,대성경 및 제네바 성경 등이 그것이었다. 특히 제네바 성경 (1557,1560)은 스테파누스 TR에서 번역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킹 제임스 성경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가장 널리 보급된 프로테스탄트 성경이었다.
그러나 철저히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외쳤던 앤드류 폰 칼슈타트나 처음부터 참 성경을 지켜온 아나밥티스트(재침례교도)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절반만 나왔고, 성경으로는 절반만 돌아갔다. 루터, 칼빈을 비롯한 개혁 지도자들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입장에 서서, 구원의 교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카톨릭 전통들(성직제도, 성례전, 교회행정, 헌금제도 등)을 그대로 답습하였고, 반면 성경에 대한 입장은 학자들의 원본주의를 따랐다. 오늘날 개신교가 에큐메니칼 운동과 함께 다시 로마 카톨릭의 신바빌론주의로 되돌아가고 있고, 불완전한 사본에서 번역된 수많은 불완전한 번역 성경들을 신봉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은, 개혁자들의 개혁이 왜 실패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영국에 일찍부터 복음이 들어가서(A.D.37년경) 안티오크의 구 라틴 벌게이트가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로마 카톨릭의 영국진출이 번번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영국은 유일하게 반 카톨릭 국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영국을 사용하여 인류에게 완전한 성경을 선물하시기로 작정하셨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가 영국 해군에게 극적으로 패배한 사건을 기점으로 대영제국이 스페인을 대신하여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부상하였다. 스페인어 대신 영어가 세계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역사였다. 하나님의 섭리로 영어는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포함한 어떤 언어보다도 더 정확하고 풍부한 어휘를 지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에서 통용되는 전무후무한 세계어(world language)로 자리잡았다. 히브리어, 그리스어는 이미 사어(dead language)가 되었으나, 영어는 현재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현재 사용하시고 계신 계시언어가 되었다.
1611년 제임스 왕 1세 때 드디어 킹 제임스 성경이 출판되었다. 그런데 제임스 왕 자신이나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50여명의 학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그것은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이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영국 국교회와 주교들의 입지를 뒤흔들어 놓았고, 처음에 정한 번역 원칙들을 무시한채 TR과도 다르고 비숍스 성경과도 다르게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귀족들과 사제들보다는 오히려 일반인들 가운데서 그 권위가 인정되면서 기존의 모든 성경들을 대체해 나갔기 때문이다. 림스듀이 성경을 비롯한 로마 카톨릭 성경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가장 인기 있는 프로테스탄트 성경이었던 제네바 성경 및 심지어는 구 라틴어 성경까지도 대체해 나갈 정도였다. >> 참고고리 : 흠정역, 제임즈 1세의 통치 >> 바깥고리 : 성경보기(KCM제공)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
첫댓글
글제목 => 악투르스별과 우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
글주소 => http://cafe.daum.net/aspire7/9zAE/6241
글제목 => 제8권 진리의 변질 (후)
글주소 =>http://cafe.daum.net/aspire7/9zAE/6243
@filter
위의 두제목의 글과 그곳에 달린 댓글들을 읽으시고
지금 올리어진 자료를 보신다며는
전체적인 내용의 큰지도가 보일 것 입니다,
아직도 알아야 한 진실과 진리들이 많지마는
우선 기복적으로 ..이것들만 알아도
거짓과 참을 분별할수 있는 기초 초석은 성립 될 것 같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러하신 분들은 물론 귀찮아 하며 안볼 것 이지마는
참으로 마음속에 성경말씀에 대한 진실과 진리
그리고 사탄이 되어버린 타락한 천사 루시퍼
그리고 하수인 마귀들의 미혹과 거짓을 분별하기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즉 기본적인 분별 지식의 초석이 될 것 입니다,.
@filter
에고 오늘은 더 이상 불가능 하군요
여기까지만이라도 하고 마칩니다,
@filter
노파심에 한번 더 댓글 답니다,
성경말씀과 믿음의 길에
사실 이러한 사실들 몰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 그리고 말씀에 대한
굳건한 믿음만 있으며는 됩니다,
하지마는 미혹 바빌론의 벨리알의 자식들은
일반 성도님들의 이러한 초석의 지식마져 없는 것을 잘 알기에
이리저리 말을썩어가며 ..거짓을 만들고 진리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혹의 일에 의분을 가지시고 분별하기 원하시는 분들은
꼭 습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페르시아의 사제인 성 아이탈라와 성 요셉(Josephus)은 사푸르 2세 치하에서 그들의 주교인 성 아켑시마스(Acepsimas)와 함께 순교하였다 성인명 아이탈라(Aithalas)
376년
[영] 불가타(따) 성서. 신구약성서의 라틴어 번역판. 서방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대부분이 성 예로니모의 번역이다. 이 번역의 본래의 목적은 4세기 후반까지 널리 사용되던 구라틴어 역 수사본(Old Latin MSS.)의 여러 가지 종류의 번역본들의 사용을 끝내기 위한 것이었다.
예로니모는 382년 교황 Damasus 1세(366~384)의 요청으로 번역에 착수했는데, 복음서를 개역하는 일부터 시작해 384년에 이를 완성했다. 이 개역에는 Codex Sinaiticus에 가까운 그리스 수사본을 대본으로 삼았고, 신약성서의 다른 책들은 다른 수사본을 대본으로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Vulgate (가톨릭에 관한 모든 것, 2007. 11. 25., 가톨릭대학교출판부)
Codex Sinaiticus
이사야 14:12 πω? εξεπε?εν εκ του ουρανου ο εω? ορο? ο πρω? ανα λλων ˙ ?υνετριβη ει? την γην ? απο?τελλων ει?
ο εω?φορο? =Εωσφορε
즉 님이 그토록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구 벌게이트 = 70인역 헤오스페로스 를 인용함
루시퍼가 아니라 헤오스페로스= 빛을 전달하는 자
고로 님이 주장하는 루시퍼는 제롬의 번역을 따름이 사실임
@성도의 본분
벨리알의본분이
카톨릭대학교출판부 자료를 가지고 왔군요
@filter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은 그들의 수장을 인정하는 제롬의 번역을 따르는자?
구 벌게이트에서는 루시퍼라 번역하지 않았지요?
@filter 이젠 무슨 핑겔 도망하실까?
@성도의 본분
또 되풀이 되는 벨리알 자식의 위증
사람들이 ...순교하신 알베르토님의 증언을 믿어야 할까요?
아니며는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
루시퍼처럼 ..자랑과 교만 질투에
발광 빛을 나르는 성도의 본분
아니 벨리알의본분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filter ㄲㄲㄲ
질투에 발광?
반사''''''
님의 소유
ㅡㅡㅡㅡㅡ
상대에게 벨리알?
이것도 패스 반사
@성도의 본분
성도의본분
어디서 그렇게 시간이 남아돌아서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댓글놀이나 글을 올리는지 궁금하지마는
별로 중요한 일은 못되고
이제 그만좀 따라 다니 다니시기를 부탁 합니다,
@filter 반사?
죽치고 남아서?
이것도 반사
ㅡㅡㅡㅡ
결국은 님의 입에서 나오는더러운 열매이니 반사
@성도의 본분
..ㅋㅋ 킥킥 거리고 똥이야기나 하는
루시퍼 삼총사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여간 쉽지가 않습니다,
@filter 반사
ㅡㅡㅡㅡ
님께선 모래시계
장사 하시면서 글 쓰시느냐 정신 업호이다
안되면 요~~ㄱ 비스듬이 해대면서 말이우다
@성도의 본분
환란전 환란 휴거관게로 거의 한달 두달 그 이상의
논쟁과 ...킥킥 거림과 ..몇달의 시간을 보내고
이렇게 또 시간을 보낼수 있는 성도의 본분이 참 기이하게 보이기 까지 합니다,
@성도의 본분
죄송 합니다 ...이만 물러 갑니다,
소수의 어떤 사람들은 킹제임스가 가장 완벽하다고 주장하기도합니다만
실제로 신학자들은 킹제임스성경에 대해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수의 목사들은 십일조가 중요하다 주장하기도 합니만
실제로 신학자들은 십일조를 강조하는 목사들을 먹사라 합니다
@filter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겨우 변명이 십일조?
김엘리야 목사님 십일조 많이 강조하시죠
십일조나 신학자들이
하나님 말씀의 권능과 공의보다 더 그렇게 중요하던가요?
@성도의 본분
성도의본분
카톨릭대학교출판부 자료 가지고 와서
또 벨리아 자식들의 위증을 하러 들어왔는지?
@filter 반사
정죄의 근본 휠터랑 반사
한킹예게 물어봥~~~
ㅡㅡㅡㅡㅡㅡ
아 글 꾸 휠터링 님께 반대 글 씀 무저건 벨리알?
대단타
이는 지신이 하나님 이란 주절이!
아쿠
몬ㅅ라 뵙습니당~~~~~
좀 솔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영국은 원래가 카톨릭 나라였습니다.
1520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이 전 유럽을 휩쓸면서 카톨릭에서 분리되는 운동이 강하게 일어났어도
영국은 여전히 카톨릭 국가였습니다.
그러다가 정치사회적 이유로 헨리 8세가 캐서린과의 혼인을 반대하는 교황과 반목하고
다시 헨리8세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 카톨릭을 폐지하고 성공회를 만들죠!
이때문에 캐서린의 딸 메리가 영국 국왕에 올랐을 때 성공회를 핍박하고 카톨릭으로 돌리려는 시도가 잉태되었고 메리공주를 피의 메리라고 불리게 된 것이죠!
이런 정치사적인 배경에서 성공회가 나온 것이지 구란틴벌게이트역이
미리 퍼져 있어서 그랬다? 아닙니다.
벌게이트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공용으로 사용되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 란틴역은 부분적으로만 존재하고 있었고,
70인역이 헬라어로 번역되자 이에 대응하여 카톨릭이 제롬에게 라틴어판 성경을 번역하게 했고
제롬에 의해 만들어진 라틴어판 성경이 비로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라틴어 성경이 되어서
이것이 라틴 벌게이트역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기 때문에
구라틴벌게이트역이라는 말은 합당한 말이 아닙니다.
어쨌든 영어 성경에 <루시퍼>라는 단어를 도입한 KJV1611성경은
라틴 벌게이트역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도 루시퍼는 daystar임을 표시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