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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라리★
메일 : bestyh17@hanmail.net
출처 : 팬카페
팬카페 : http://cafe.daum.net/Shine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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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해성이와 함께 2층 우리방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해성아, 우리 잘 지내보자. 아, 지해 너도."
해성이 손에 자신의 두 손을 얹으면서 말하는 강세음.
나를향한 왠지모를 이상한 눈빛...
"손 치워."
"응?"
"손 치우라고."
해성이는 세음이의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한편으론 고소한 면이 있긴 했지만,
왠지 무안해진 나는 세음이에게 말을 건넸다.
"해성이 대신 내가 사과할게. 저녀석이 또 낯을 가리는 건가."
낯을 가리긴 개뿔 =_=^ 해성이는 낯같은 거 안 가린다.
"됐어. 괜찮아 ^^"
저 웃음이... 가식으로 느껴진다면, 내 눈이 잘못된 거겠지?
세음이가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해성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해성이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인기척으로 눈치채고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누나."
"응?"
"저 애... 눈빛이 맘에 안들어. 나를 보는 눈빛이나 아빠를 보는 눈빛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단지 누나를 보는 눈빛 하나만은 분명히 달라."
뭐, 나도 쟤가 그래보인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빠가 맘에 드셔서 데려온 애이니,
좋은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해성아, 말 함부로 하지 말자."
라고 한마디 하고 나가려는데...
"쳇, 누나도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해성이의 말이 들려왔다.
* * *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등교 직전에 있는 나를 부르시는 아빠.
아빠는 오늘부터 '현수인' 을 찾는다고 하신다.
저녁 7시 쯤, 우리학교 2학년에서 현씨성을 가진 남자애들을 모아오라는
아빠의 분부. 내가 다 데려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하고는 세음이와 함께 등교길에 나섰다.
해성이는 세음이와 등교하는 것이 싫은 모양인지,
오늘따라 일찍 등교하고 없었다.
나 또한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아빠의 입장을 생각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해성이가 말했던 대로 느낌이 좋지 않단말야...
세음이는 우리반에 배정되었고, 담임선생님과 함께 교실안으로 들어왔다.
"전학이다. 앞으로 너희들과 함께 2학년 3반 꼬리표를 달고다닐 강세음.
친하게 지내도록 하고... 세음아, 특별히 앉고 싶은 자리가 있니?"
"선생님~ 저기 뒷쪽 창문가에 앉고싶어요. 전학오기 전 자리가 거기인지라..."
뒷쪽 창문가? -_- 앉든가 말든가...가 아니잖아!!
뒷쪽 창문가. 한마디로 맨 뒷줄의 창문가가 아니던가.
...고로 그곳은, 내가 앉고 있는 자리. 서빈이 옆자리를 지칭하는데...
"흠... 좋다. 어차피 한달 후, 자리배치를 바꿔 줄 예정이니까...
강지해, 그래도 되겠지? 오냐. 너는 수이 옆자리에 앉거라."
나는 대답도 안했는데, 혼자서 '오냐' 를 하시는 우리 담임선생님=_=^
결국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수이의 옆자리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서빈이는 똥씹은 표정을 하고서, 수이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나와,
자신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는 세음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솔직히 수이 옆자리, 4분단 둘째줄이라 선생들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좋은자리다 +_+
(옛말에 있지않은가, 등잔밑이 어둡다=_=.)
수이와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이 나가시자,
'그럼 자볼까...' 라는 생각 하나로 책상에 엎드리는데,
=_=^ 젠장스럽게도 세음이가 서빈이에게 알짱거리는 모습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물론 서빈이는 그런 세음이를 계속 무시하고 있지만.
...으갸갸갸=_=^ 잠 좀 자려고 했는데, 강세음 고 여우같은 것이 서빈이 곁에서
재잘재잘대는 소리가 자꾸만 들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여기서도 다 들리는 저것의 앙칼진 목소리. (지해한테만 앙칼지게 들린다;;)
"이름이 현,서,빈 이라구? 이름 이쁘다 ^ㅇ^ 얼굴은 그것보다 더 이쁘지만."
"......(무시-_-)"
"내 이름은 강,세,음 이야! 잘 부탁해 ^^ 짝."
"......(개무시-_-)"
"으음...서빈아! 너 인기 많지? 오호호 ^o^ 그렇게 생겼어~ 여자친군 있어?"
여기 조용히 살아계시다 =_=^
지금까지는 심드렁하게 앉아있던 서빈이가, 갑자기 세음이의 귀에
뭐라고뭐라고 중얼거린다.
그 소리를 들은 세음이의 얼굴표정은 약 3초간 굳어져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슨말을 들었길래. =_=^
하도 짜증이 나서, 책상을 박차고 교실을 나와 화장실을 향해 걸었다.
아오, 이거. 생각할수록 열받잖아 =_=^
물론 서빈이가 개무시 한 덕에, 조금 낫긴 하지만 말이다.
도대체 아빠는 어쩌자고 저런애를 입양했대 =_=^
분명히, 아빠 앞에서는 요...요조숙녀처럼!! 그랬을거야.
아빤 돈이 많으시니깐 ㅡ.,ㅡ 부잣집에 들어와서 잘살아보자는 심술보로.
그렇게 화가나서 씩씩대며 걸어가다가...
오늘 아빠가 말해주신 나의 본분이 생각나고야 말았다.
[원하고 2학년 남학생들 중, 현씨성을 가진 남자학생들을 아빠의 이름으로 불러내라.]
고 하신, 아빠의 말씀이... 이제서야 생각난 것이었다!
지금은 쉬는시간이 끝나가니까, 다음 쉬는시간부터 계속 찾아다니는거야 +_+!!
## 42
"전국적으로 유명한 최고재벌 강석훈! 그니깐, 우리아빠!
우리 아빠가 저녁을 대접한다고! 알아들어, 무식아?"
"무식이라니, 나한테 어떻게 그런말을..."
"그럼 니가 똑똑해? =_=^"
2학년 1반부터 8반까지, 우리반인 3반을 제외해놓고서 모두 차례대로 왔다갔다 한 끝에,
2학년의 현씨성을 가진 남학생들을 모조리 불러낼 수 있었다.
역시 우리아빠의 힘은 대단해 +_+ 이름만으로도 모조리 끌어모을 수 있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앗 차! 하며 생각난 사람.
가까운 곳에 있던 서빈놈이었다.
그래서 끌어들이고 있는 중인데... 도무지 끌어들여지질 않는다 =_=^
알바때문이니, 어쨌느니. 안가겠다고 버티고있는 녀석.
그래=_=^ 네놈 하나 빠진다고 해서, 현수인이란 놈 못 찾겠어?!
결국은 그녀석을 끌어들이는 것을 포기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저녁 7시가 되어버렸다.
현씨성을 가진 남학생, 우리학년엔 몇 없더라.
대충 다 온 것 같자, 아빠는 미리 예약해놓은 음식점에 현씨성을 가진 남학생들을
모조리 집어넣는다.=_=
저녀석들은 현씨성을 가진 남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밥 한끼를 대접받고 있는 것이였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빠는 왜이리 무식한 방법을 쓰셨을까.
아빠는 저녁을 맛있게 먹고있는 현씨성을 가진 남학생들을 하나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신다. 그러나, 아빠가 찾는 '현수인'이란 사람은 없는 듯 싶었다.
맛있게 저녁을 먹는 그애들을 뒤로한 채, 한숨을 내쉬는 아빠.
"지해야, 이게 전부니?"
"아, 응. 아니아니!! 아르바이트 한다며 쏙 빠진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야."
"...혹시 걔는 아닐까? 얼굴 생김새나 성격은 어때?"
"설마~ 음... 걔 생김새는, 머리스타일과 눈빛에 따라 달라져. 특히 가장 큰 이유가 눈빛.
척 보기에는 귀엽게 생겼고, 평소에는 귀여운 짓을 하다가,
가끔가다는 무섭게 변하기도 하고 그래. 성격? 성격은... 글쎄, 착하다? 아, 몰라!"
아빠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시기 시작한다.
한참만에 나온 아빠의 몸짓, 그 몸짓은 아빠의 심리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_=;
그렇지만... 설마하니, 서빈이가 현수인일리가 있어?
아침이 밝았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내뿜는 햇살이 뜨거운 나머지,
그것을 못 이겨내고 승질을 부리며 일어난 나였다. 앗 뜨거, =_=^
아침을 먹고,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려는데...
아빠가 나를 잠깐 부르셨다.
"아무래도... 원하고에 다니지 않는 것 같구나. 그렇다면 이제 아빠가 찾아볼테니,
지해 너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
별로 신경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답니다 -_-
교실 안이 후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슨일인가 하여 교실 안으로 뛰쳐들어온 나.
내가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건...
"지해야."
나를 부르고 있는... 한휘선배 때문이었다!
"한휘선배?"
그제서야 교실이 후끈 달아올라있던 이유를 알게된 나였다.
물론 여자애들만이었지만서도.
한휘선배는 교복이 아닌, 캐쥬얼차림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선배는 어떤 옷이든 다 멋있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캐쥬얼 차림이 가장 잘 어울린다.
그런 한휘선배가 캐쥬얼 차림으로 우리 반에 와 있으니...
달아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한휘선배.
나는 힐끔 서빈이의 자리를 쳐다보았다.
이게 웬걸, 서빈이는 아직 등교 전이었다.
대신, 서빈이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세음이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분노하고 있는 눈. 그런 눈을 가지고 있는 세음이였다.
그걸 더 볼 새도 없이, 나는 한휘선배에게 이끌려 학교 밖으로 내쳐졌다(?).
"선배~ 얼마안있으면 수업 시작해요! 선배도 학교 가보셔야죠~
이게 무슨 복장이에요!=_= 교복도 아니고."
"너, 그 새 우리학교에 대해 잊었냐?"
"네?"
잊다니? 무얼?=_=
선하고등학교에서는 화요일에 쉬었던가? 그건 아니었는데.
그럼 뭐지? 교복을 안입고 학교가도 된다는건가? 그것도 아닌데...
"오늘 선하고등학교 생일이다."
아! =_= 그제서야 생각난 선하고등학교 개교기념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선배, 선하고는 생일일 지 몰라도, 원하고는 다르다구요!! 저 들어갈게요!"
교문앞에서 이게 무슨꼴이람.
다행히도 선도가 없었기에, =_= 아니, 선도가 있었어도 한휘선배 때문에
내가 피해볼 일은 없었겠구나.
여하튼!!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한휘선배에게 붙잡힌다면, 나는 바람을 피는거나 다름없단 말이다 ㅜ_ㅜ!!
"선배, 이 손 놔요. 저 들어가야 한다니까요!!"
"여전히 기억력은 빵점이구나?"
"저 원래 금붕어 기억력이랍니다 =_=^"
"그렇다고 선하고 개교기념일이 내 생일인 걸 까먹으면 쓰나~"
생...일?
갑자기 다리에서 힘이 빠진턱에 한휘선배에게 끌려가고 있는데,
저 쪽 맞은 편에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마치 저게 누군가... 하는 표정으로
나와 한휘선배를 바라보고 있는 서빈이가 내 눈 안에 들어왔다.
서빈이의 옆에 서 있던 서겸오빠와 같이.
## 43
한휘선배는 서빈이와 서겸오빠를 못 본 듯 싶었다.
나를 잡고있는 선배의 왼손은 힘이 풀릴줄을 모른 채, 나를 잡아당기고만 있었다.
한휘선배에 비해 보잘것없는 힘을 가진 나였기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야 말았다.
서빈이가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러시지 마시죠."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서겸오빠,
그리고 나의 왼팔을 잡으며 한휘선배를 무서운 눈으로 보고있는
서빈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훗, 너냐. 이미 소문으로 들었다. 너희 둘의 관계는."
"그럼 알아서 놔 주시지요."
우리 서빈이... 한 번 터지면 말리기 어려운 성격인데...=_=^
아마도 지금 한휘선배에게 존대어를 쓰는것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는 것일 뿐,
조금씩 터지기 시작하면 반말을 찍찍 하게 될 듯 싶다.
"풉... 내가 쉽게 놓았을 것 같았으면 지해를 데리고 여기까지 올 수 없었겠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런 마음은 없었는데, 또다른 너를 눈치채고 난 후에는
절대 너에게 지해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해를 잡고있는 손, 놓으라 했다."
"너를 이기기 위해... 내가 여지껏 무엇을 해왔는 줄 아냐?"
뭔 뜻인지 하나도 모를말만 하는 한휘선배.
시간이 지날수록 양쪽 팔을 잡고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아파 죽을것만 같다 ㅜ_ㅜ
그렇가도 이 심각한 분위기에 내가 나설수도 없는 일.
"그딴 건 알 바 없고, 놔."
"힘을 길렀다. 5년동안 너를 이기기 위한 힘을 길렀다."
또 다시 침묵이다. 서로를 죽일듯이 노려보기만 하는 두사람.
이대로 두면, 정말 싸움이라도 날 기세였기에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저...저기, 잡고있는 내 팔목들 좀 놔주면 안될까? 너무 아파."
동시에 내 팔목을 놓아주는 두사람.
무슨 용기가 생겼던걸까, 그 험악한 분위기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나의 용기에게,
정말 가상하다고 전해주고 싶다 (-_-);;
"이렇게 해!! 우선 한휘선배, 나 수업은 들어야 하니까 들어갈게.
대신 서빈아, 한휘선배 오늘이 생일이래니깐 나 수업끝나고 축하해주러 가도 되지?"
두 사람의 시선은 나에게로 꽂혀있었다.
왠지 서빈이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한휘선배는 아쉽지만 만족한다는 듯이 뒤로 돌아서며
'수업끝나고 보자' 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서빈이와 함께 교실로 돌아가려 뒤로 돌았는데,
이미 서빈이는 교문을 향해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서빈이의 뒤를 쫓아 빠르게 달려, 결국엔 서빈이에게 팔짱을 끼운 나 =_=v
"서빈아~ 화났어?"
"...믿어."
"응?"
"넌 믿는다고."
확고한 서빈이의 말.
믿어~ 날 마음껏 믿으라구!!=_=
"나... 힘들게 하지 않을꺼지?"
"응?"
"아냐, 바보. 됐어. ^^"
빠르게 교실을 향해 걸어가는 녀석.
그런데... 복도에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드르륵- 하고 서빈이가 뒷문을 연 것을, 뒤로 총총 걸어 따라 들어가는 나.
일제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반 아이들.
맙소사! 우리는 지각이었던 것이다.
* * *
지각한 탓에 하게 된 화장실청소.
내가 여자화장실, 서빈이가 남자화장실을 각각 혼자서 하라는 명을 받아
나 혼자 열심히 화장실 청소 중이다.
윽, 더러워 =_=^ 휴지통에 있던 쓰레기들을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데...
"쟤지? 서겸, 서흠 형제와도 알고지내고, 은근히 킹카 티가 나는 현서빈 꼬드기고,
게다가 옆학교의 지존 조한휘까지 꼬드겼다는 애 말야."
"어~ 맞네. 훗, 지가 해성이의 누나면 다인 줄 알아."
뭐라고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잠잠히 듣고만 있었다.
강지해, 넌 참 성격도 좋은 아이로구나. (=_=^)
그런데 또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도저히 들어주기 어려웠다.
"서빈아~ 나, 너가 맘에 들었어! 오늘 시간 어때?"
"너, 시끄럽게 굴지 마."
세음이의 목소리와, 언제 이 앞에 왔는지 모르는 해성이의 목소리였다.
그 때, 교문앞으로 나오라는 한휘선배의 문자를 받고서,
화장실 청소 한 것을 선생님께 검사맡은 후,
선배가 기다리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누가 날 부른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 계속 달렸다.
## 44
"너만 내 생일 축하해주면 되."
왜 생일인데 다른 아이들은 없냐며, 그만큼 인간관계가 좋질 않냐며
궁시렁대는 나에게 한휘선배는 이 말 한마디를 던진다.
쳇, 내가 뭐 대수라고.
이렇게 생각하지만서도 은근히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랄까.
"근데 어쩌죠, 선배? 급히 오느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네요."
"됐어. 너가 이렇게 있어주는 것이 내겐 가장 좋은 선물이다."
거짓말일것이라 믿으면서도 왠지모를 애틋함에 휩싸여버린 나였다.
단 둘 밖에 없는 조용한 카페안에서, 오렌지 에이드를 소심하게시리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나.
제길, 이러고 있을 게 아닌데... 그래도 어쩌리오,
내가 두려움이라 생각지 않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는 게, 사실인것을.
선배도 이런 내가 꽤나 신경쓰였는지,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어, 규현이냐? 네 죽마고우라던 신하람, 그리고 윤하 데리고 우리 자주 오던 카페로 와.
왜냐고 묻는다면,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말해두지."
자기 할 말만 늘어놓고서 폰 플립을 닫아버리는 한휘선배.
선배의 옆모습은, 은근히 분위기 있어 보이면서도 섹시하단 말이야.
아, 침착하자! 침착하자, 강지해!
너에겐 한휘선배보다 분위기는 없지만, 한휘선배만큼 섹시하진 않지만,
잘난 니 서방 서빈이가 있잖니!
고개를 좌우로 여러번 흔들고서, 정면을 바라보는데...
한휘선배 어깨 너머로... 보이는 두 남녀.
저 여자는... 세음인데. 남자가 서빈이는 아니겠지 싶어 고개를 남자쪽으로 돌렸는데...
맙소사,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그 남자가 서빈이였기 때문이겠지?
멀리서 보이는 뒷모습이었지만, 그가 서빈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저 여자는 강세음이 분명했고.
다정히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 내가 잘못 본 거겠지, 하고 눈을 비비고 다시봤지만
역시나였다. 뒷모습 뿐이엇지만 왠지모르게 그들은 웃고있을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현서빈, 지금 내 뒷통수 치는 거 아니지? 그렇지?
얼마지나지 않아, 그들의 모습은 내 시야 안에서 사라졌고, 한휘선배가 불렀던
규현이, 하람이, 윤하가 도착하여 내 옆, 앞자리를 파고들었다.
"엇, 강지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너였구나."
규현이가 뭐라 말한 것 같은데...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지해야, 야, 강지해!"
"어?"
"뭔 생각하느라 불러도 모르냐?"
하람이의 부름에 정신이 든 나.
규현이는 삐졌는지 옆에서 계속 투덜거린다.
제길, 짜증나 죽겠어.
"선배, 생일이었으면 진작에 말을 하셨어야죠! 이거 좀 섭섭한걸요?"
"너희 안부르려다 부른거니 그걸로 만족해라."
"야, 근데 강지해. 넌 왜 얼이 빠진채로 그러고 있냐?"
윤하놈의 말이었다. 별로 짜증나 할 일도 아닌데 괜히 짜증이 난다.
오늘은 예민해지는 날도 아닌데... (말 안해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글쎄, 왜였을까. 그냥 모든 게 짜증만 날 뿐이다. 하람이가 말을 걸어도,
윤하가, 규현이가 태클을 걸어도, 한휘선배가 조심스럽게 날 불러도,
난 그냥 '응, 으응.' 정도로 대답해줬을 뿐, 무성의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생일을 맞은 한휘선배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마이너스 상태다.
"지해야, 너 내 생일 축하해준다며. 그런데 자꾸 시무룩하게 있을래?"
"으응, 미안."
"미안하다는 말 말고, '생일 축하해' 라는 말 듣고싶은데?"
"생일축하해, 그리고 미안해."
아무 말 없는 한휘선배. 그러나 이내 다시 입을 연다.
"지해야, 자길 사랑해주는 사람한테 미안하단 말 많이하면 어떻게 되는 지 알아?"
".........."
"자길 사랑해주는 사람의 죄인이 되는거야... 그러니까 그만 해."
"그렇지만 미안해, 어쩔 수 없잖아. 미안한 건..."
"강지해."
"날 좀 내버려 둬!!"
카페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잡힐까 염려되어 계속 달렸다.
나... 이럴 자격 있는걸까?
서빈이 때문에 마음이 아파오는 거, 한휘선배에게 화풀이해도 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나 한걸까?
난 한휘선배의 마음을 잘 아는데, 짝사랑이 얼마나 힘들고 가슴아픈건지 잘 아는데...
그런 한휘선배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그건 그 누구도 모른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나를 짝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아무도 모른다.
그딴 방법 따위는 없다.
그런 내가... 행복을 주진 못할 망정, 이렇게 상처난 곳에 상처를 덧나게 해도 되는건가?
그러면 안된다는 것 쯤이야 나도 잘 알고 있는데... 그게 도저히 되질 않는다.
그래서 미안하다.
무작정 뛰쳐나온 탓에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짚어 보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윤...하야?"
"그래, 나 윤하다. 너 여기 길 모르잖아. 집에 어떻게 돌아가려고 왔냐?"
"내가 길 모른다는 건 어떻게..."
"너가 길치라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윤하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몇 걸음 걷자, 내가 아는 곳에 당도하였다.
윤하말대로 정말 난 길치인가보다.
어느새 우리 집 앞. 윤하는 얼른 들어가라고 부추기는데,
나는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세음이를 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윤하에게 잠시만 같이 있자고 부탁하였다. 이야기 좀 하자고.
"그래. 나도 물어보고 싶었던 거 있으니까. 조용한 곳에서 은밀한 대화를 나눠보자구. 큭."
"새끼... 변태끼는 여전하네."
"누가 변태끼가 있다는거야!? 내가? 말도안되!"
"내가 너 다시 만나면 꼭 이 말 해주려 했다. 변태끼 좀 어떻게 없애보라고."
씩씩거리는 윤하. 그런 윤하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고야 말았다.
"흑...흑끕. 그러니깐! 그렇게 해서...흑끕... 서빈이와 세음이가 다정히 있는 걸...흑끕...
목격하고 만거야! 흑끕.흑끕."
"그것때매 아까 시무룩 해 있던거냐?"
"응!!"
윤하가 입을 열라고 하다가, 잠시 망설인다.
그렇지만 곧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다면..."
"......?"
"넌 그냥 한휘형한테로 오는 게 낫겠다."
지금 윤하 이새끼가 무슨 말을 하는거지?
한휘선배한테로 가라고? 나보고?
"무슨소리야... 이새끼야."
"현서빈 그녀석 믿지 못할거라면, 차라리 한휘형한테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적어도 널 아프게 할 형은 아니니까."
그래... 가 아니잖아!!
강지해, 분위기에 휩쓸리면 안되.
그렇지만... 행복한 것 같았어.
그 뒷모습이... 내 눈에 콩깍지가 씌였던 걸 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행복해보였어.
서빈이놈을 믿어보고 싶은데... 그게 자신이 없다.
서빈이 옆자리를 빼앗기고 난 후, 서빈이와 멀어진 것 같아, 그게 불안했는데...
결국은 너는 세음이에게로 가 버리는 구나, 싶어서 순간 울컥했다.
이런식으로 의심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나는 지금 녀석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야, 강지해. 너는 궁금하지도 않냐?"
"응? 뭐가?"
"내가 수이를 만나게 된 거... 알게된 계기 같은 거!"
"안 궁금해...흑끕. 그것보다도...흑끕. 서빈이의 마음 상태가 무지무지하게 궁금해!...흑끕."
"안궁금해도 들어!"
새끼... 왠 삿대질이야. 솔직한 내 마음을 말한건데!!
그렇지만 윤하가 말하겠다니까 왠지 궁금해진다. 끌끌.
"내가 너희 옆집에서 떠난 거, 이민 때문이었잖아! 그 때, 나 미국으로 간거였잖아.
거기서 만났어.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만난애가 수이였고, 내가 곤경에 처해 있던
수이를 구해준 것 부터 우리의 인연은 계속해서 지속되왔었어."
"오올, 정의의 기사 역할도 하네? 정윤하가."
"그 말, 귀에 거슬린다? 흐음. 어쨌든, 어느날 갑자기 수이가 찾아와서... 자신은 한국엘
간다는거야! 아니, 한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했었지. 그래서 난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이가 떠난 지 3일 후, 나 혼자 한국으로 토꼈어. 그런데, 수이네 가족이 정착한 곳이
우연찮게도 이 곳이었던 거야. 풉, 처음 여기 왔을 때, 너 생각이 딱 났었드랬지.
그렇지만 아직도 이곳에 살거라는 생각은 하질 못했다."
무흘, 정윤하. 넌 나한테 약점을 잡힌게야.
윤하, 네놈 부모님께 연락을 취해서 '윤하 여깄어요!' 하고 이르게 되면...
넌 어떻게 될까? 푸흡.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거보다도 더 궁금한 게 있어서 그만 뒀다.
"그런데 윤하, 너는 선하고 다녔잖아! 수이는 원하고 다니던 상태였고."
"너, 현수인이라고 들어봤냐? 5년 전, 전설의 현수인."
현수인? 그게 무슨 상관이래? 왜 다른학교를 다녔드랬냐고 물어본건데!!
"들어는 봤을거다. 우선, 나는 그 애를 동경했지만, 그 애는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내가 그 다음으로 동경하는 대상이 한휘선배였다. 한휘선배가 그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선하고로 갔던거지. 수이는 이미 원하고를 다니고 있었고."
결국은 동경어쩌구 때문에 선하고로 갔다가, 그 동경의 대상 덕분에
수이의 학교인 원하고로 전학오게 된 거구나.
그런데 현수인인가 뭔가, 걔는 무슨 상관이었드랬대?
"현수인은 무슨상관?"
"혹시나 5년전에 사라졌던 그 애가 지금은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어서 수소문 해
찾아다녔지만,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더라고. 만약 그 애가 지금이라도 나타난다면..."
나타난다면?
"난 더이상 한휘형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게 될 거다. 그만큼 그 앨 동경해왔으니까."
## 45
다음 날, 아침부터 한숨을 내쉬는 아빠를 보며 왠지모를 안쓰러운 느낌이 드는 건 왜였을까?
"아빠, 무슨 일 있어?"
"휴… 수인이를 아직도 못찾았단다. 이 동네를 벗어났을 애는 아닌데…."
"그럼 나도 찾아볼게!! 그 애의 특징을 간략하게 설명해 줘."
불안해하는 아빠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이었다.
아빠는 웃음지어보이며 내게 수인이란 아이의 특징을 설명해 주셨다.
눈빛이 소름 돋힐만큼 무서운 아이, 그리고 외동아들인데
그 애의 아빠 성함은 현석현. 아빠의 친구로, 돌아가셨다고 하고…
엄마의 성함은 모르나 돌아가셨다고 언뜻 들은 바 있다고 하신다. 제길, 복잡한 집안이로군.
복잡한 건 딱 질색인데. (☜ 별로 복잡하지도 않은데;;)
"다른 건 없어?"
"아, 최근에 접한 소식. 이 동네에 '전설의 현수인' 이라 불리던 소년이 있었는데, 그 소년이
사라진 게 5년 전이라 하더구나. 5년 전에 그 애의 엄마가 죽었다고 하던데…. 기간이 딱딱
들어맞는걸로 보아 '전설의 현수인' 이라는 애가 내가 찾고있는 그 애인 듯 싶어."
전설의 현수인? 그렇다면 아무래도 해성이에게 도움을 청해보는 편이 낫겠어. 므흘.
그 때, 해성이가 2층에서 내려오고, 그 뒤를 따라 세음이가 내려왔다.
세음이는 해성이하고 친해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지만, 해성이는 귀찮은 듯, 무시하고 있었다.
"강해성. 세음이랑 친하게 지내라."
아빠가 굳은 얼굴로 해성이에게 말했다.
해성이는 아빠 말에 잠깐 멈칫 하더니, 이내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말한다.
"때가 되면 정이 붙겠지. 아빠도 알다시피 나는 사람하고 친해지는데에 능숙하지 않잖아."
문을 나서는 해성이. 나는 해성이의 뒤를 따라 잽싸게 집을 나섰다.
또 아빠가 세음이랑 같이 등교하라고 할까봐.
그렇게 되면 나는 어제일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게되고,
그렇게 되면 가슴아픈 건 나일테니까. 두렵다. 왠지모르게 두려워진다.
"해성아, 아빠가 찾는 현수인 말야."
"아, 맞다. 누나. 어제 내가 불렀는데 왜이리 급히 뛰어간거야?"
어라, 날 부른 게 이놈이었구나.
"아, 그냥… 그럴 일이 있었어!! 여하튼!! 니가말한 '전설의 현수인' 이 아빠가 찾는 현수인 인 것 같다더라."
그래서 그 앨 찾는 걸 좀 도와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해성이의 얼굴이 굳어져버린 바람에 말을 잇지 못했다.
굳어진 얼굴의 해성이는 재빠르게 학교쪽으로 뛰어가버렸다. 젠장, 왜이런다냐.
나도 세음이를 마주치는 것이 좀 그래서 해성이를 뒤따라 뛰었다.
북새통을 이루는 교실 안.
자리에 앉아 한국말을 언제부터 가르쳐 줄 거냐는 레힌의 말을 뒤로하고,
서빈이의 자리 쪽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교실에 온 세음이가 서빈이에게 접근중인 것을 발견.
그 둘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앉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하원이.
"지해야, 너… 서빈이를 저 애한테 빼앗길 생각은 아니지?"
빼앗기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난 너니까 서빈이를 포기한거야. 저 애한테 뺏기면 나도 바로 대쉬 들어간다?"
저 모습을 외면하고 싶다.
못본 척, 어제일도 못본 척 하고 다시 서빈이하고 얘기해보고 싶어.
그런데 난 이기적이라 그런지 보고도 못본 척, 그게 안 되.
저 자릴 빼앗기는 게 아니었어….
"바보야!!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빼앗기기밖에 더해? 자, 이리 와!!"
하원이의 손에 이끌려 서빈이의 자리 근처까지 왔다.
서빈이는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내게로 다가왔다. 하원이가 손을 놔주며 서빈이에게 말한다.
"너희 우리반 공식 커플이라며!! 현서빈, 지해가 오해한 내용 확실하게 정리해줘라."
방긋 웃으며 사라지는 하원이.
웃는 모습을 하고있긴 하지만… 지금 얼마나 힘겨울까?
괜시리 미안해진다. 서빈이는 나를 끌고 복도로 나간다.
"뭐야, 하원이 말에 따르면 우리 지해자기가 날 오해했단 말이야?"
"그…그럼 뭔데!! 웃으면서 대화했잖아!!"
"에이, 그럼 대화 내용은 들어봤어?"
대화내용? 웃으면서 대화할 내용은 내가 화낼만한 대화내용밖에 없잖아!!
"못들었구나? 내가 재연해주리?"
-[상황재연]-
"서빈아~ 어젠 즐거웠어!!"
"너 대가리에 총 맞았냐? 어제 많이 역겨웠다."
방긋방긋.
"서빈아, 너 나 어떻게 생각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어쩌지?"
방긋방긋.
"으흐, 앞으로 좋게좋게 생각하면 되지~"
"내 곁에 지해가 있는 한 널 좋게 생각할 일은 없을텐데."
방긋방긋.
-[재연 끝]-
헉… 저런 대사를 웃으면서 했단 말이야?
역시 현서빈, 넌 신기할 정도로 놀라운 존재야.
하지만 아직 오해는 다 풀리지 않았도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어제 내가 목격한 장면은 뭐야?
둘이 팔짱까지 껴 가며 웃고있던데!!"
"웃고있다니!! 쟤가 억지로 팔짱 낀 건 사실이지만 나 안 웃었어!!"
…그러고보니 나는 녀석의 뒷모습만 봤다. 그런데 왜 웃고있었다고 느낀걸까?
질투가 심했던 걸까? 무표정으로 있던 나는, 표정을 풀고 활짝 웃어보였다.
"이제 오해 다 풀린거지?"
끄덕끄덕.
"아직 우린 멀었나보다. 오해가 믿음을 뚫어버렸잖아. 그치, 지해야?"
"……."
"날 믿어. 그냥 믿어주기만 하면 되는건데… 믿어줄 수 있지?"
"……응."
신성한 학교 복도에서 우린 누가 보든가 말든가 상관치 않고,
서로를 꼬옥 끌어안았다.
믿는다는 약속이었고, 사랑한다는 애정표현이었다.
오랫만에 안긴 서빈이의 품은 따뜻하다 못해 더웠다.
교실에 들어가면 우선적으로 하원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 46
"지해야, 선생님 좀 도와주겠니? 네가 글씨가 이쁘다는 소문을 들었다."
방과 후, 선생님께서 부르셔서 교무실에 간 나.
우리 선생님도 참으로 엽기적이시다.
칭찬같은 거 안해줘도 도와드렸을 터인데 말이다.
나는 도와드리겠다고 대답하였다.
"우리반 애들 집주소, 가족관계, 전화번호를 정리한 표인데,
이걸 똑같이 이 종이에다가 옮겨주렴."
B4용지 크기의 종이 두장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나는 순순히 그걸 받아들고 교무실의 선생님 옆자리에 앉아 옮기기 시작.
오늘따라 우리반 애들의 수가 많게 느껴졌다.
에고야, 팔아파. 드디어 남자 마지막 번호!! 이것만 하면 이제 끝이다.
51번 현서빈! 서빈이 차례였군. 집주소는 한화 오피스텔…… 어?
서빈이가 집을 따로 얻은건가? 서흠이네 집에 같이 산다더니.
전화번호는 02-32X-247X.
가족관계는… 아버지 현석현, 어머니 안희영. 그리고 현서빈.
자…잠깐, 현석현…… 현석현?!!!!
아빠가 찾고있는 현수인의 아버지이자, 아빠 친구 현석현. 뭔가…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선생님!! 다 옮겼어요!! 저 급해서 얼른 갈게요!!"
학교를 뛰쳐나오면서… 생각난다.
엄마 묘소 앞에서 '엄마 아들 수인이' 라고 했던 것.
그리고 나에게 했던 말,
'너가 아는 현서빈이 현서빈이 아니더라도 사랑해 줄 수 있어?'
이 말…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윤하놈이 서빈이보고 '전설의 현수인' 을 닮았다고 한 것도… 윤하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한휘선배가 서빈이에게 '또다른 너' 라고 했던것도 모두모두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여러가지 증거자료를 보아, 수인이란 애는 서빈이가 분명했다.
이렇게 많은 자료가 있었는데 나는 왜 여지껏 몰랐던걸까?
곧장 서빈이에게 전화를 시도했다.
"서빈아, 지금 어디야?"
[지해? 나 지금 알바하는 중!!]
"어디야?"
[여기… 한화오피스텔 근처에 있는 TX편의…]
"알았어!! 갈게!!"
뚝-. 한화 오피스텔이라면 이 근방이다.
곧장 달려 그 쪽으로 갔다. TX편의점이라… 아!! 저깄군.
"어서오세… 어? 지해?"
"너 나랑 얘기 좀 하자. 급해. 나 급하단 말야."
서빈이는 알았다는 듯 옆에있던 알바생에게 대타를 신청한 후, 나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 있어?"
"아… 아… 그…."
"뜸들이지 말고 말해봐. 무슨일이야?"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
결국은 이렇게 물어보고야 말았다.
그래, 우선 아버지가 현석현이란 분이 맞는지만 확인해보자.
"가족관계? 그건 왜?"
"그…그냥!! 알아야 할 일이 있어서."
"엄마는 아시다시피 돌아가셨고 아빠는 없다."
아빠가 없다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몰라. 우릴 버리고 갔으니까."
"실례인 건 아는데, 아버지 성함이…."
"현석현."
"고마워!! 알바 열심히 해!!"
이로써 확실해졌다. 들뜬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자 아빠가 나를 반겨주셨다.
나에게 알려줄 정보가 더 있어서 일찍 퇴근하셨다고.
"생일이 너랑 같고, 가명을 쓰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아빠!! 나 찾았어, 그 애!!"
마침 때를 잘 맞춰 해성이가 2층에서 내려왔고,
나는 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빠를 보며 그 애에 대해 설명하였다.
다른 건 몰라도 아빠성함과 생일은 맞다고.
그러자 조용히 있던 해성이가 말을 한다.
"아빠가 찾는 현수인이 '전설의 현수인' 이 맞다면…
누나 말대로 아빠가 찾는 현수인은 서빈형이 맞아."
"뭐야, 그럼 너 알고있었단 말야?"
"아빠가 찾는 현수인이 그 현수인인지는 몰랐지."
내가 현수인에 대해 물어봤을 땐 자기도 현수인을 모르는 척 했으면서.
그럼 날 속인거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길.
서빈이새끼. 만나기만 해 봐라. 비밀이 있었다는 죄목으로 보기좋게 처단해줄테다.
"누나, 또 재밌는 거 말해줄까?"
"응."
"서겸형, 서흠이랑 서빈형은 고종사촌 관계야. 서빈형 엄마가 서흠이네 아빠 여동생이거든."
뭐야, 이 빌어먹을 집안관계.
"서빈이란 가명은 서겸형, 서흠이랑 서자돌림으로 맞춘거지."
아… 그랬군. 서빈, 서겸, 서흠. 이름이 너무 비슷해서들 처음엔 혼동스러웠었지.
묵묵히 우리의 말을 듣고만 계시던 아빠가 입을 여셨다.
"현서빈… 그 아이를 데려오너라. 다른 이유 없이 단순한 저녁초대로 말이다."
"아빠, 그 전에 알아둘 것은…."
저새끼가 또 무슨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해성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숨을 내쉬고서 말을 잇는다.
"지해누나와 서빈… 아니, 수인이 형. 지금 사귀는 중이라는 것만 아빤 알아두면 되.
뭐, 그 명분 때문에 저녁초대는 쉽겠다만 ^^."
쉽겠다만…?
"서빈형이 '전설의 현수인' 인 게 퍼지게 되면, 누나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어.
이 동네가 혼란스러워지겠지…."
"수인이가 그토록 영향력이 센 것이니?"
나를 빤히 바라보다 나에겐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해성이에게 묻는 아빠.
"형이 현수인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 지 벌써 5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그 형을 따르는 존재들은 많아."
"그 대표적으로 윤하… 정윤하."
갑자기 어젯밤, 윤하가 했던 얘기가 떠올라
무심코 해성이와 아빠에게 이야기 해 버린 나였다.
아빠는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윤하… 윤하라면 우리 옆집에 살던 꼬마 아니냐.
이민갔다더니… 그래, 언제 한국에 왔다던?"
아빠는 윤하에 대해 꼬치꼬치 캐 물으셨다.
질문 공세는 늦은 밤까지 계속 되었고, 그 질문공세가 끝난 건,
술을 퍼부어 마신 듯 필름이 끊긴 채 누군가에게 업혀돌아온 세음이 덕분이었다.
"지해야!! 세음이 데리고 방으로 올라가렴."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세음이를 부축한 채 2층으로 걸어올라갔다.
그 때, 세음이가 나만 들릴 크기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지해… 넌 너무 많은 걸 가지고있어… 큭."
## 47
우리 반 교실 안. 해성이가 서빈이의 오른손을 꾹 잡고,
내가 서빈이의 왼손을 꾹 잡고 저녁초대에 응해주길 부탁하고 있다.
"저녁식사에 초대한다고?"
"응!! 지해누나 남자친구라고 하니깐 아빠가 저녁식사에 초대하래."
"나만… 나만 가는거야?"
"응!! 또 누구 갔으면 좋겠어? 아, 아니다. 윤하형도 갈거야!!
옆집에 살던 형이라서, 오랫만에 보고싶다면서 아빠가 초대하랬어."
해성이의 말이 맞다. 아빠가 아침에 말하시길,
오랫만에 윤하도 보고싶으니 윤하도 데려오란다.
어떻게 컸는지 보고싶다나 어쨌다나.
윤하는 아까 등교길에 만나 허락을 받아놓았다.
그 애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승낙하였는데… 이녀석은….
"나 알바는…?"
"알바? 오늘 하루 빠져도 되!! 누나가 손 써 놓을거야. 그치, 누나?"
"어? 아, 으응!"
해성이새끼… 왜 그런일은 나한테 떠맡기는 거냐고!!
제길스럽게도 분위기상 나는 '응' 이라고 대답해 버렸고,
그제서야 서빈이의 승낙을 받아냈다.
해성이와 나는 동시에 잡고있던 서빈이의 손을 놓아주었고,
해성이가 내 귀에 대고 나만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말하였다.
"누나, 서겸형하고 서흠이, 그리고 하원누나 한테는 슬쩍 귀띔해놓을게.
이 세사람은 서빈형이 현수인이란 사실을 알고있거든."
고개를 끄덕였고, 해성이 덕에 소란스러웠던 교실은 해성이가 나감으로서 잠잠해졌다.
해성이를 보고 꽥꽥거리는 여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해성이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
학교가 파하고, 해성이가 서빈이를 데리고 있는 사이에 나는 후다닥 TX편의점,
서빈이가 알바하는 곳으로 가서 그 곳을 운영하는 사장에게
우리 아빠의 이름을 대고 '서빈이가 필요하니 오늘만 쉬게 해달라' 부탁하며
손에 만원짜리 몇장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교문 앞에서 해성이와 서빈이, 윤하를 만나 집으로 향하였다.
"서빈아……."
"응?"
"아니, 아니야!"
혹시 우리 아빠를 보고 놀라진 않을까 싶어서 긴장을 풀여주려 했으나,
뭐라 말해야 할 지 몰라 그냥 관뒀다.
이윽고 집앞에 도착한 우리 일행.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렸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오랫만이에요."
"오, 윤하… 멋지게 컸네. 오랫만이다. 그런데… 서빈이란 애는…?"
"아빠, 여기…."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치켜드는 서빈이.
아빠는 서빈이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표정은 환한 표정으로 바뀐다.
서빈이는 아직 우리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듯 싶었다.
"수인아…."
아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서빈이를 부른다.
서빈이는 수인이라는 이름에 멈칫한다.
윤하도 놀란 표정으로 서빈일 바라본다.
"누구시죠? 혹시…."
"그래, 석훈아저씨다. 알아볼 수 있겠니?"
서빈이는 아빠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그리고서는 아빠에게 와락 안긴다.
"아저씨, 오랫만이에요. 정말 오랫만이에요…."
그렇게 감격에 겨운 상봉을 마치고,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
세음이는 오늘도 뭘 하는지 아직까지 들어오질 않았다.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졌다.
"정말 내가 아는 현수인, 맞는거야?"
"피식- 그래, 맞다. 모르는 척 해서 미안했다. 너라면 날 알아볼 것 같아서…."
알고보니 윤하와 서빈이, 초등학교 때 친했던 사이라고 한다.
여하튼 우리는 즐거운 저녁 만찬을 즐겼다.
"수인아, 아직도 네 아빠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니?"
아빠가 서빈이, 아니… 수인이에게 물으셨다.
"그 얘긴 안하면 안되요? 오늘은 좋은 날인데."
"아니, 너희 아빠의 부탁으로 널 찾게 된 거니까, 이야기 해야 해."
"살아… 계세요?"
고개를 내저으시는 아빠. 서빈이는 덤덤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1년전에 그만…. 그런데 수인아, 아빠를 원망하고 있다면…
이젠 더이상 그런 마음을 없애렴."
"난 그럴수가 없어요.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서빈이의 두 손이 덜덜덜 떨리면서, 맑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1년 전, 너희 아빠가 죽기 하루 전에 나를 찾아왔었다.
그 때, 죽으려고 했던 거였는 줄 알았더라면 내가 말렸을텐데….
너를 찾아서 이걸 전해달라더구나."
아빠가 서빈이에게 내미는 건, 통장 하나와… 편지로 보이는 종이.
아빠도 읽어보질 않았는지 확실하게 밀폐되어있었다.
서빈이는 조심스럽게 그걸 받아들고, 편지를 뜯기 시작한다.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는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흐른다.
서빈이의 두 손은 아직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천천히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서빈이의 두 눈에서는, 더욱 많은 양의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자살? 자살이에요? 아빠가 죽은 이유, 그 이유가 자살이에요? 아저씨, 대답해봐요. 네?!"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7년동안 혼자 고생하고, 혼자 미움받고, 혼자 아파왔으면서 자살을 해요?!!!!!!!"
"석현이는 너희 엄마가 죽은 걸 알고나서, 죄책감에 시달려했었어. 아마도 그것때문이었을거야."
"하… 아저씨. 나 이제 아빠 용서해야 되요?"
아무말이 없으신 아빠.
서빈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관문을 통해 급하게 집을 빠져나간다.
"누나… 누나가 나가봐. ^^"
해성이의 말. 여태껏 힘들었을 서빈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온다.
왜 그렇게 아파했니? 왜 그렇게 아파야만 했니? 왜 그렇게 아팠던거니?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너에게 해 줄 말이 없잖아….
그렇지만 나, 너에게 무슨 말이든 위로라는 것을 해 줘야 하는 거, 맞지?
현관을 빠져나와 '현서빈' 이라는 이름을 연달아 외쳤다.
대문을 나서려 했을 때, 뒤에서 연못에 돌을 던지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서빈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정원 안에 있는 연못가에 쭈그려 앉아,
작은 조약돌을 '퐁당-퐁당-' 소리가 나게 돌을 던지고 있는, 뒷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는 녀석.
"저…저기. 서빈아…수인아?"
녀석을 어찌 불러야 할 지 몰라 두 이름을 연달아 부르는 나를 보고,
서빈이는 피식-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넨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그…글쎄. 수인이는 본명이니까 모든 사람들이 수인이라고 부르게 하고,
서빈이란 이름은 내가 너를 부르는 애칭으로 할까?"
서빈이는 다시한번 피식- 웃더니, 뜸을 들이다가 이내 입을 연다.
"지해야. 그 반대로 하자. 다른 애들보고는 서빈이라 부르게 하고, 너만 나를 수인이라 불러.
본명은 소중한 거니까, 소중한 사람 입에서만 나왔으면 좋겠다."
"응, 그래!"
서빈…아니, 수인이는 쭈그리고 앉아 있던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내가 했던 말 잊지 않았겠지?"
수인이가 했던 말? 무슨 말?
"너가 아닌 현서빈이, 현서빈이 아니더라도 사랑해 줄 수 있지?"
아… 그 말이라면 똑똑히 기억하지 ^-^.
"응."
"그럴 수 있지?"
"물론!"
"피식- 고마워, 지해야. 내 앞에 있는 게 너라서 고맙고,
힘들 때 내 옆에서 웃어주는 게 너라는 게 고마워."
나도… 나도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항상 웃는 모습에 고맙고, 그 웃음이 나를 향한다는 사실이 고마워.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줘서 고마워.
내 옆에 있는 게… 다른사람이 아닌 너라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 48 (서빈번외Ⅰ)
살고싶지 않아서 죽으려 했으나 나에겐 죽음조차 용납되질 않는 이 빌어먹을 삶.
평탄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우리 가족에게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친 것을 살펴보려면
아마도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벌써 몇번째 우체통을 찾아온 빨간딱지.
그만큼 가난했던 우리 가족은 그래도 이렇게 함께 살고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몇번째 경고장을 받은 어느날,
"후… 여보. 안되겠소. 내 일본으로 가서 돈을 벌어오리다. 그 때까지 잘 견뎌내주길 바라오."
이 말만 남기고 나와 엄마의 곁을 훌쩍 떠나버린 아빠…. 그게 3년 전 일이다.
초등학교 6학년, 알 건 다 알고있을 만한 나이에 내가 느낀 건, 배신이었다.
3년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아빠에게서 느낀 것이다.
믿음에 대한 배신. 아빠는 나와 엄마를 버린것이다. 제길… 아빠에게 속은것이다.
엄마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느라 시름시름 앓고계신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싸움 뿐이었다. 아빠에 대한 분풀이.
[퍽-]
내가 때려야 하는 그 애의 얼굴을 아빠라 생각하면 한층 때리기 쉬웠다.
"야, 수인아! 너 언제부터 그런 힘을 길렀냐?"
윤하, 정윤하였다. 몇 안되는 친구놈들 중 하나.
"풉, 쟤네가 아빠라고 생각하면 없던 힘도 샘솟던데?"
"야야, 재밌는 얘기 좀 들어볼래?"
"됐다~ 오늘은 피곤하다."
"그러지말고 들어봐~ 우리 옆집에 강지해라는 애가 살거든? 그 애가…."
윤하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윤하와 헤어져 공터 벤치에 앉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감았다.
문득 '하늘은 날고 싶다.' 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런데 인기척이 들려왔다. 발걸음 소리를 들어보니 한둘이 아니었다.
"현수인, 맞지?"
중학생으로 보이는 놈들이 대여섯명 가량 내 앞에 서 있었다.
"맞다면."
"버릇없는 자식, 내 동생을 그딴식으로 패?"
어제 팬 그새끼를 말하는건가? 풉. 누가 동생을 그딴 약골으로 키우랬나.
"선배, 제게 저녀석과 1대 1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요."
"한휘, 네가? 그럴 필요 없다."
"제 실력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중에선 가장 강하다는 걸.
제가 지면 무조건 후퇴하는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여섯명이서 초등생 하나를 상대한다면, 우리 이름만 더러워지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생각이 있는 자식이로군. 그렇다고 해서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난 아직은 질 수 없다구. 아직은 지면 안된다구.
생각했던 것보다 상대의 힘은 강했지만 그렇다고 내 상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길바닥에 뻗어버린 그자식. 그자식의 명찰을 보니 이름은 '조한휘'.
"씨발,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한꺼번에 덤비자."
다섯명의 조무래기들은 오히려 조한휘 하나보다도 상대가 되질 못했다.
별것도 아니면서 까부는 새끼들, 그런 새끼들이 가장 싫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전설의 현수인' 이라 불리며, 나를 따르는 녀석들도 많이 생기게 되었다.
"수인아, 이제 싸움은 그만하면 안되겠니?"
엄마는 항상 나를 불러 앉히고서는 이 말을 하셨다.
내가 싸움을 하는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나를 매일같이 말리시는 엄마.
내가 싸움을 하는 이유, 그 단 한가지 이유는… 누구에게도 지고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속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엄마곁을 떠난 아빠를 잊고싶었다.
"엄마, 이제 나를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어. 도저히 그만둘수가 없어."
"아빠는 돌아오실게다. 곧 돌아오실게야."
[쾅─!!]
탁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직도 남편이란 존재를 믿고있는 엄마가 한심스러웠지만,
그건 믿고있는 것이 아니라 믿고싶다는 뜻임을 알고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화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엄마가 야속했다.
나는 조심스레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를 꼬옥 끌어안았다.
"엄마, 우리 아빠는 기억해내지 말자. 그리고 우리 빚쟁이들을 이겨내자.
이겨내서 아빠 보란듯이 잘 살아버리자. 우리 무너지지 말자."
고개를 끄덕이시는 엄마. 속으로 울고계실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왔다.
그냥 마음껏 울어버리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앞인데 뭐 어때서 저렇게 속으로 끙끙 앓고 계시는 건지.
내 앞에선 강한 척 할 필요가 없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데…….
오랫만에 윤하녀석이 만나자길래 흔쾌히 승낙하였다.
녀석을 교문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는데….
"현수인? 오랫만이다. 훗, 너에게 맞은 곳… 아직도 흉터가 아물질 않았지."
누군가 해서 고개를 치켜들어 얼굴을 보았는데, 그 사람은 다름아닌 조한휘였다.
"다음에 다시 도전한다. 너를 당해낼만한 힘을 가지게 되면 꼭 너에게 먼저 도전하도록 하지."
간땡이가 부어도 제대로 부었군. 한살 많은 새끼가 져 놓고서 왠 개폼?
"너랑 나는 아무래도 영원한 적이 될 것 같군. 그럼 이만…."
나 또한 저새끼와의 악연이 계속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끊이질 않았다.
조한휘가 사라지고, 이내 도착한 윤하녀석. 감히 날 기다리게 하다니.
"수인아~ 미안. 옆짚에 사는 여자애 떼어놓고 오느라 늦었다."
"여자? 걔가 너 좋대?"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놀아달라고 조르는것을 겨우 떼놓고 왔다구.
아… 근데 너하고 걔하고 나란히 세워두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
윤하놈이 계속 그 여자애에 대해 설명을 해대니,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갔다.
"이쁘냐?"
"객관적으로 봤을 땐 무지 이쁘지…. 아, 혹시 너?"
"그런거 아니니까 닥쳐. 이름이 뭐랬드라?"
"지해. 강지해."
윤하와 나는 여러곳을 쏘다닌 후, 헤어졌다.
바로 다음날, 내 고종사촌 동생인 서흠이가 만나자고 하여 약속장소로 가 보니,
서흠이는 또래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와 있었다.
"누구야?"
"아, 형. 내 친구 해성이. 강해성이야. 윤하형 옆집에 사는 강지해라는 누나의 친동생.
윤하형이 그 누나 얘기 형한테 많이 했다며."
해성이라는 놈의 생김새를 보아하니 윤하가 매일같이 말하던
지해라는 여자애가 이쁘다는 윤하의 말이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서흠이, 그리고 해성이란 애와 대화를 나누면서 해성이와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또한 해성이와 지해라는 애는 같이 살지 않고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언제 한 번 얼굴이나 봐 보고 싶다.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나 왔어."
대답이 없다.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 지금 이 시각에 엄마가 나가셨을 리 만무한데….
더군다나 문까지 열려있고…. 그 불길한 느낌을 사실로서 증명해 주는 건,
"엄마─!!"
거실 한 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 49 (서빈번외Ⅱ)
곧장 병원으로 옮겼으나 엄마를 담당한 담당의사의 말은 나를 놀래키기에 충분하였다.
"가망이 없으십니다. 어찌하여 이런 병을 키우고 계셨던건지….
다행히도 지금은 정신이 드셨으니 마지막 인사라도…."
자궁암이란다. 자궁암. 암이란다.
어찌하여 이런 무서운 병을 가지고도 내색 한 번 안하셨던 거지….
제길.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바보였던 것이다.
"씨발…."
엄마가 계신 곳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인사라는 것을 나누기 위해서. 제길, 마지막 인사란다.
"엄마……."
"허억.수인아…. 더이상…허억.싸…싸움은 하…하지말거라…허억…………."
"엄마…엄마─!!"
조용히 세상을 떠나신 엄마.
나랑 무너지지 말자고 약속까지 해 놓고서, 아빠 보란듯이 잘 살자고 약속해놓고서,
약속을 저 버린 채 떠나신 엄마.
아빠에게 속은것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나는 엄마에게도 속은것이다.
마지막 내게 남긴 유언… 싸움을 하지 말라는 그 마지막 부탁….
도저히 못들은 척 하고있기 어려웠다.
"그래…. 고모의 마지막 부탁이라면 어쩔 수 없는거지."
"그렇지만 현수인이란 이름과 이 외모로는 도저히 싸움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잖아?"
날 위해 고민해주는 서겸형과 서흠이. 그리고 해성이.
"현수인이라는 이름은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버려둬라.
대신… 서빈이라는 가명을 써."
서겸형의 말이다. 서빈이란 이름, 입에 담기도 어려울 것 같던 서겸형이
나보고 그 이름을 쓰라고 한다.
안서빈, 내게있어선 고종사촌 동생인 개구쟁이 녀석.
서겸형이 무척이나 이뻐했던 막내동생.
그런 서빈이는 6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그만….
나는 그런 서빈이의 이름을 빌어… 현서빈이란 가명을 사용하기로 하고,
아무 말 없이 그 동네를 떴다가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 후 다시 돌아왔다.
윤하만은 이리 변신한 나를 알아볼 것 같아 피해다니려 했으나,
윤하는 내가 없는 사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한다.
후, 나중에 만나게 되면 녀석에게 무슨 잔소리를 듣게될까?
차츰 귀여운 짓 하는 스타일에 익숙해져만 갔고,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다시는 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 앞에 나타난 어쩔 수 없는 싸움.
서겸형과 서흠이, 해성이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였다.
[퍽- 파아아앗-]
그렇게 나는 의리라는 빌어먹을 이유 덕에 엄마와의 약속을 어쩔 수 없이 깨뜨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나는 바보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바보인 척, 그것은 사랑을 파는 소년이란 명분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여자나 나와의 연애를 원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렇게 계약 연애라는 것을 시작하였다.
그 짓을 하기 시작한 것도 어느덧 3년,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가고 있었다.
서겸형과의 약속 때문에 어떤 카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내 눈에 보인 건, 조한휘였다. 훗, 많이 변했군…. 이라고 느끼고 있는데
내게 다가오는 한 여자. 그 뒤에 서있는 조한휘.
"야!!! 너가 사랑팔고 다니는 놈이냐?"
"아… 응 ^ㅇ^."
"팔 게 없어서 사랑을 팔고 다니냐???? 사랑이 니 밥이냐???????!!!!!!
나 -_- 예약한다. 너에게 사랑은 개떡이 아니란 걸 보여주겠써 +_+)//////"
"난 원하고등학교 2학년 현서빈이야 ^ㅇ^. 너는… 선하고등학교 학생인 듯 보이는데…"
"난 선하고등학교 2학년 강지해다 -0-!!! 핸폰번호 01x-xxx-xxxx 니깐 연락하던지 하고!!!"
"응 >_<. 연락 할테니깐… 이만 바이바이 하자!!! 히히. 가볼데가 있거든."
지해… 강지해? 잊고있었던 이 이름을 듣자 꿈에서조차 콧빼기도 보이지 않던 윤하가 떠올랐다.
정말… 윤하가 말한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여자. 해성이와 닮은 외모.
내가 귀 아프게 들어왔던 지해란 아이임이 분명했다.
훗… 조한휘가 지해란 애를 좋아하는건가? 이거 재밌게 됐는데?
빠져들지 않을거다. 지해란 아이에게 빠져들지 않을것이라는
생각 아래에서 그 애를 만나왔지만… 그녀를 만나게 된 이상, 나는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게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애가 좋아하는 건, 서흠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후부터는 거의 절망감에 빠지다시피 한 나였다.
이게 사랑이구나… 이런 게 사랑이구나.
내가 지해에게 느끼는 이 감정이 바로 사랑이란 감정이구나….
그 후, 나는 지해를 위해 서흠이와 연결시켜주려고 무딘 애를 썼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둘이 잘되게 밀어주려 했는데,
그건 또 왜이리 힘든건지, 왜이리 아픈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만 더해간다. 눈물만 늘어난다.
상처만 더 깊이 패여버린다.
너란 존재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내가 예전 현수인이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서흠이와 조금이라도 같은 면을 가지게 된다면, 너는 나를 좋아해줄까?
……결국에 나는 약간의 변신을 시도하였고, 나를 본 모두의 표정은 그야말로 경악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봐도 좋다만, 너만은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길 바랬다.
그렇지만 너 또한 다른사람들과 같은 표정을 짓더라.
하아, 사랑이란 거, 정말 힘들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흠이에게서 온 전화.
[서빈형!! 지해누나가 지금 나 때문에 선하고 녀석들한테 잡혀있는데, 형도 같이가자.]
지해가 잡혀있다고? 나는 무슨 용기가 생겼던 걸까, 나 혼자 가겠다고 말해버렸다.
[그래. 뭐, 조한휘 똘마니들이니까 지해누나를 어쩌진 못할꺼야.
물론 형이라면 똘마니들 여럿쯤이야 감당해낼 수 있을테니까.
지해누나 있는 곳이 어디냐면…….]
서흠이에게서 주소를 받고, 나는 그 쪽으로 무작정 뛰어갔다.
여섯명, 여섯명이다.
나보고 누구냐고 묻는 새끼에게 내 가명인 '현서빈' 이라는 이름을 대고,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데….
[빠직-]
제길, 방심한 사이에 각목으로 뒷통수를 맞아 쓰러진 나.
나 때문에 쓰러진 두 놈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놈이 음흉안 웃음을 띄우면서
나에게로 다가오는데,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어두웠지만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민을 갔다던 내 친구 윤하… 정윤하였다.
어쩌다가… 윤하가 조한휘의 똘마니가 된거지?
변한 나를 윤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윤하가 지해를 인질로 잡다니. 설마하니… 지해도 못알아 본 게 아닐까?
뒷통수를 맞은 통증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녀석들이 짓밟고 있을 때,
"이 미친놈의 개쉐이들아. 6명이서 한명 패면 재밌냐?
아 존나 꼴시려워=_=^ 너희가 이제 남자망신 다 시키는구나?
이제 주먹 그만 날리시지?"
지해가 뒤에서 욕을 쏟아붓고 있었다.
여섯놈 모두의 시선이 지해에게로 집중된 사이에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 나는
지해를 조롱하려드는 윤하녀석의 뒷통수를 후렸다.
그렇게 다시 놈들과 사투를 벌이는데…
갑자기 등장한 조한휘가 지해와 나를 그대로 보내주었다.
지해네 집으로 향하는 사이, 나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확실하게 고백을 해 버렸다.
가슴졸이며 기다리는 사랑은 절대 하지 않을거라고,
나 혼자 아파하는 사랑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였지만,
이 다짐은 너에대한 사랑 앞에서 스스럼없이 무너졌다는 거, 넌 그걸 알까?
대답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에대한 지해의 반응.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내 품 안으로 들어오는 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에 볼을 꼬집고 또 꼬집어 보았다.
그러나 이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지해야, 너는 네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을 본 적 있니?
작아지고 싶지 않아도, 너 앞에서만은 작아져버리는… 그런 마법에 걸린 나를 본 적 있니?
다행이다. 나만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서,
나만 네 앞에서 작아져버리는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며칠이 흐르고, 선하고에 다니던 윤하가 원하고로 전학을 왔다.
윤하라면 내가 이렇게 많이 변했어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미안했지만 서슴치않고 녀석을 경계했다.
수학여행을 부여로 가게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슴이 철렁거렸다.
잊고있었던 엄마가 생각나면서… 또 잊고있었던 아빠란 존재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학여행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한 나였지만,
지해가 자꾸만 보채는 바람에 오랫만에 엄마도 볼 겸 해서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지는 그 곳, 부여로 향하였다.
## 50 (서빈번외Ⅲ)
엄마의 묘소 앞. 낙화암으로 가던 도중,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왔다.
지해도 데리고 올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돌맹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 그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그 곳에는 지해가 서 있었다.
지해를 엄마에게 소개시키고 나서 이제 내려가야지 하고 뒤로도는 순간,
선생님이 우리의 뒤에 서 계셨고… 결국엔 우리는 그 죄값을 달게 받아야 했다.
왠지 나때문인 것 같아 지해에게 미안했다.
수학여행이 끝난 다음날, 우리반에 강세음이란 아이가 전학을 왔다.
선생님이 덧붙인 말로는, 지해네 아버님이 이 애를 입양하셨다고.
어디에 앉고싶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지해자리에 앉고싶다 대답하는 강세음.
지해자리라면 즉 내 옆자리였다.
괜찮겠냐는 선생님의 말에 순순히 응하고 다른 자리로 가 버리는
지해를 얼마나 붙잡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름이 현,서,빈 이라구? 이름 이쁘다 ^ㅇ^ 얼굴은 그것보다 더 이쁘지만."
"……(무시-_-)"
"내 이름은 강,세,음 이야! 잘 부탁해 ^^ 짝."
"……(개무시-_-)"
"으음…서빈아! 너 인기 많지? 오호호 ^o^ 그렇게 생겼어~ 여자친군 있어?"
이것이 내 발목을 채어갔기 때문이다. 나는 강세음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시끄러워."
나는 계속해서 나와 강세음 주변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지해를 느낄 수 있었다.
지해가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아 지해가 쳐다볼 때 쯤에는 무관심한 척,
지해가 보지 않을때는 주변 아이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웃으면서 그 애에게 안좋은 말들을 내뱉었다.
다음날이었다. 등교를 하는데,
길 건너편에서 조한휘가 지해를 강제로 끌고가는 것이 보였다.
"형, 먼저 가. 나 저것만 처리하고 들어갈게."
"지각일텐데…."
"괜찮아. 형 지각하기 전에 먼저 들어가라, 응?"
서겸형을 보내놓고서 터벅터벅 조한휘에게로 걸어갔다.
"이러시지 마시죠."
"훗, 너냐. 이미 소문으로 들었다. 너희 둘의 관계는."
"그럼 알아서 놔 주시지요."
"풉… 내가 쉽게 놓았을 것 같았으면 지해를 데리고 여기까지 올 수 없었겠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런 마음은 없었는데,
또다른 너를 눈치채고 난 후에는 절대 너에게 지해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훗, 드디어 알아챈건가?
그래도 내가 확실하게 현수인이란 걸 눈치챈 사람은 조한휘밖에 없는 듯 싶다.
윤하녀석은 날 의심하긴 했지만 아닌 척 잡아뗀 후에는
별다른 의심을 안하는것으로 미루어보아.
"지해를 잡고있는 손, 놓으라 했다."
"너를 이기기 위해… 내가 여지껏 무엇을 해왔는 줄 아냐?"
"그딴 건 알 바 없고, 놔."
"힘을 길렀다. 5년동안 너를 이기기 위한 힘을 길렀다."
힘을… 길렀다? 난 그 때 그대로 일텐데.
싸움을 하지 않았으니, 덜하면 덜했지 더하진 않았을 것이다.
훗, 이제서야 조금은 상대가 될 듯 싶다.
싸움이 붙겠구나 싶어 마음의 준비를 해 두었건만 지해가 싸울 분위기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우리 둘을 말린다. 결국엔 조한휘가 먼저 물러섰고, 나와 지해는 교실로 들어갔다. 제길….
지해야, 조한휘 생일 축하해주러 가는 거… 나 아무런 의심도 할 필요 없지?
그냥… 그냥 단순히 축하만 해 주고 오는거지?
난 널 믿으니까. 너를 믿으니까 그곳에 보내는거야.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거지?
그 날 저녁, 알바가 끝나고 얼마전에 이사 온 새 집으로
아직 옮기지 못한 물건을 가지러 서흠이네 집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서빈아!! 이런데서 만나다니."
강세음이었다. 내게 팔짱을 끼우며 말하는 그녀.
내가 이 애 에게 차갑게 굴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지해가 자꾸 이 애를 경계하려 하니까.
나는 지해를 안심시켜줘야 되니까.
"이런데서 만나다니. 정말 지랄같군."
물론 나도 그 애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우리의 사이를 자꾸만 파고들려 하는 것 같아서.
지해와 나의 사이를 갈라놓는것만 같아서, 그게 싫었다.
"에이~ 서빈아! 그러지 말고 나 저기까지만 데려다주라, 응?"
"…나 간다."
강세음을 뿌리치고 그 자리를 떴다.
다음날, 하원이와 옥신각신 다투고… 아니, 다툰다기 보다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지해.
하원이는 내게로 지해를 끌고 오더니, 지해가 의심한 부분을 풀어달라 말한다.
훗, 그렇게 지해가 의심하지 않게끔 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어디서 의심할 부분을 산거지?
"뭐야, 하원이 말에 따르면 우리 지해자기가 날 오해했단 말이야?"
"그…그럼 뭔데!! 웃으면서 대화했잖아!!"
"에이, 그럼 대화 내용은 들어봤어?"
나는 아까 강세음과 했던 대화내용을 정확하게 재연해주었고,
그제서야 그 부분에서는 오해가 풀린듯한 지해였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어제 내가 목격한 장면은 뭐야?
둘이 팔짱까지 껴 가며 웃고있던데!!"
"웃고있다니!! 쟤가 억지로 팔짱 낀 건 사실이지만 나 안 웃었어!!"
아, 어제 잠시 만난것을 목격한거구나. 그렇지만 웃고있었다니.
난 분명히 웃은 기억이 없는데….
여하튼 지해는 오해가 전부 풀렸다는 뜻으로 활짝 웃어보였다.
나는 지해에게 몇마디를 건넨 후, 지해를 꼬옥 끌어안았다.
하원이가 나에게 좋아한단 고백을 한 후로, 하원이와 나와의 사이는 서먹서먹했었는데…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동시에 미안하다는 말도 전해주어야 겠다.
나같은 거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그런 너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TX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내게 걸려온 지해의 전화.
무슨 급한일이 있는지 찾아오겠다는 지해였다.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 나타난 지해.
"무슨 일 있어?"
"아… 아… 그…."
"뜸들이지 말고 말해봐. 무슨일이야?"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
가족관계? 갑자기 가족관계는 왜 묻는거지?
"가족관계? 그건 왜?"
"그…그냥!! 알아야 할 일이 있어서."
"엄마는 아시다시피 돌아가셨고 아빠는 없다."
되돌이키기 싫은 말을 결국 꺼내버리고야 말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건, 아마 지해도 알고있을 테고…. 나에겐 아빠란 없다.
나를 버리고 간 아빠따윈 아빠라고도 생각치 않는다.
지해는 내가 아빠가 없다고 한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몰라. 우릴 버리고 갔으니까."
"실례인 건 아는데, 아버지 성함이…."
"현석현."
"고마워!! 알바 열심히 해!!"
이때까지는 내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게 될 지 짐작하지 못하였다.
지해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게된 이유를 알게된 건, 다음날… 지해의 집 안에서였다.
아침부터 나를 찾아온 해성이. 해성이가 나의 오른쪽 손을 잡고,
지해가 나의 왼쪽손을 잡으며 저녁식사에 초대한다고 말한다.
알바는 지해가 어떻게든 해 주겠다면서. 결국에 나는 그 남매의 꼬임(?) 에 넘어가버렸고,
방과 후… 해성이와 지해, 그리고 윤하녀석과 함께 지해의 집으로 향하였다.
학교에서 가까이 있는 지해의 집.
"아저씨, 오랫만이에요."
"오, 윤하… 멋지게 컸네. 오랫만이다. 그런데… 서빈이란 애는…?"
"아빠, 여기…."
이상하다. 지해네 아빠의 목소리가 왠지 낯이익다.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나는 지해 아빠의 얼굴을 보기위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왠지… 얼굴도 낯이 익었다. 누구지? 누구였더라?
"수인아…."
!!!!!!!!!!!!?
"누구시죠? 혹시…."
"그래, 석훈아저씨다. 알아볼 수 있겠니?"
그래, 낯이 익다 싶었더니… 석훈아저씨였어. 내가 어렸을적부터 많이 따랐던 아저씨.
그런데… 석훈아저씨가 지해의 아빠였다니. 나는 힐끔 윤하녀석의 얼굴을 보았다.
윤하녀석의 표정은 그야말로 놀란 표정.
나는 아저씨에게 가까이 다가가, 어렸을 적 아빠에게 안기듯 안겼다.
식탁에 삥 둘러앉아 즐거운 저녁만찬을 즐기고 있는 우리.
윤하녀석이 내 정체를 알아챘으니, 이제 이 동네에 소문이 퍼지는 건 시간문제겠구나….
새끼, 소문 하나는 잘 퍼트리는 놈이니까.
입을 막으면 그만이었지만, 더이상 막고싶지도 않았다. 이제 나를 감추고 살기 싫어졌다.
"수인아, 아직도 네 아빠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니?"
석훈아저씨의 말이었다.
"그 얘긴 안하면 안되요? 오늘은 좋은 날인데."
"아니, 너희 아빠의 부탁으로 널 찾게 된 거니까, 이야기 해야 해."
아빠가… 날 찾았다고?
"살아… 계세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가망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역시나 고개를 내저으시는 아저씨.
"1년전에 그만…. 그런데 수인아, 아빠를 원망하고 있다면…
이젠 더이상 그런 마음을 없애렴."
"난 그럴수가 없어요.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엄마가 죽은 이유가 되는 자궁암이라는 것이 아빠가 사라져서
생긴 병이 아니라는 것 쯤이야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빠를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1년 전, 너희 아빠가 죽기 하루 전에 나를 찾아왔었다.
그 때, 죽으려고 했던 거였는 줄 알았더라면 내가 말렸을텐데….
너를 찾아서 이걸 전해달라더구나."
통장과 편지. 나는 급히 편지봉투를 뜯어 편지의 내용을 보았다.
편지의 내용은 대충 이러하였다.
언제 이 편지가 나에게 가게될지는 모르나, 그저 한심한 아빠를 용서해달라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있다고.
8년동안 일본에서 벌어온 돈은 모두 이 통장안에 있으니 내가 쓰라고.
아빠는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나를 보살펴주지 못한 죄책감에 엄마를 따라가겠노라고.
그렇다면… 아빠가 죽은 이유는, 자살?
"…자살? 자살이에요? 아빠가 죽은 이유, 그 이유가 자살이에요? 아저씨, 대답해봐요. 네?!"
"……."
"……7년동안 혼자 고생하고, 혼자 미움받고, 혼자 아파왔으면서 자살을 해요?!!!!!!!"
"석현이는 너희 엄마가 죽은 걸 알고나서, 죄책감에 시달려했었어. 아마도 그것때문이었을거야."
"하… 아저씨. 나 이제 아빠 용서해야 되요?"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뒤섞인 눈물들이었다.
대문을 박차고 나와 연못가에 앉아 돌을 연못에 던지고 있었다.
내가 걱정되었는지 따라나온 지해.
"저…저기. 서빈아…수인아?"
나를 뭐라 불러야 할 지 몰라 혼자 중얼거리는 지해. 피식…. 절로 웃음이 났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그…글쎄. 수인이는 본명이니까 모든 사람들이 수인이라고 부르게 하고,
서빈이란 이름은 내가 너를 부르는 애칭으로 할까?"
애칭…? 애칭이라, 그거 좋지. 그렇지만 반대로… 반대로 하자.
"지해야. 그 반대로 하자. 다른 애들보고는 서빈이라 부르게 하고, 너만 나를 수인이라 불러.
본명은 소중한 거니까, 소중한 사람 입에서만 나왔으면 좋겠다."
"응, 그래!"
항상 나를 지탱해줘서 고마워. 항상 나를 일으켜줘서 고마워.
나에게 사랑을 일깨워줘서 고마워. 사랑이란 것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지해야, 너에게 모든것이 고마워.
…………아버지. 당신이란 존재는… 내 삶에 있어서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요?
어째서 당신 없이 나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렇게 많이 욕하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많이 원망하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왜 행복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알고싶습니다. 당신이란 존재….
나에게 무엇을 주고 가셨는지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이태껏… 당신만을 원망해 온 제 자신에게 이렇게 실망스러운 적은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정말 한심하고 또 한심할 뿐입니다.
글쎄요….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요? 행복? 자유? 그저 아빠란 존재?
당신은 나에게 다 주지 못하고 가서 미안하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준 것이 없어 미안합니다.
당신을 원망했던 것을 두손모아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하늘에서 행복하게 계세요.
나중에 그곳에 가게된다면, 당신에게 주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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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라리★
메일 : bestyh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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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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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07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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