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이코 시대』는 이 타락한 세계의 갖가지 병에 대한 소설적 보고서이다. 그 병의 양상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그려 보여주고 과거를 파헤쳐 병의 원인을 찾아 드러내는 개성의 문학 세계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정확한 언어에 실려 여기 떠올랐다. 전상국이 구축한 소설 병리학의 앞머리에 놓인 작품은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사이코 시대」이다. 저마다 견디기 힘든 마음의 병으로 신음하며 고통의 바다를 허우적거리며 건너는 병인들로 가득 차 읽기 괴로울 정도로 어둡고 무거운 소설이다. 작가는 한 시대를 ‘사이코 시대’라 진단하고,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 보였다. 이 우울한 비관주의가 이념, 도덕적 가치, 이상 사회의 꿈 등 아름다운 것들을 앞세우는 당대 문학 일반과는 다른 개성적 세계를 열었다.
전상국 소설에는 어린 시절에 입은 정신적 외상 때문에 마음이 병든 인물이 자주 나온다. 「사이코 시대」의 땡삐, 「거울의 알리바이」의 르뽀 작가 변재동, 「시인의 겨울」의 주인공인 시인 김현세, 「이것은 기분 문제가 아니다」의 주인공 등. 그들의 정신적 외상은 전쟁·분단의 과거와 깊이 관련되어 있는바, 이 점에서 그들은 전쟁·분단 현실의 상징으로서 문학사에 올라 있는 ‘아베’(「아베의 가족」의 주인공)의 분신들이다. 영혼 깊숙이 낙인된 정신적 외상 때문에 지옥의 시간을 사는 인물에 대해 말하는 서술자의 태도는 안쓰러운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땡삐를 비롯하여 전상국 소설 곳곳에 나오는 아베의 분신들을 서술자는 언제나 연민의 눈길로 바라본다.
전쟁·분단의 과거와 무관한 정신적 외상 때문에 마음이 병든 인물도 있다. 「거울의 알리바이」의 윤혜선, 「개미거미들의 화음」 속 박한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윤혜선이 무당이 되어 녹두장군을 몸주로 섬기는 것, 많은 남성과 육체관계를 맺는 것, 언제나 죽음 충동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 죽기 전에 덫을 놓아 죽은 뒤에도 자신과 관계 맺은 이들을 구속한다는 것 등은 그 정신적 외상으로만 설명 가능하다.
「거울의 알리바이」, 「개미거미들의 화음」, 「시인의 겨울」에는 각각, 고발문학 작가, 소설가, 시인이 서술자로 등장한다. 문인인 만큼 당연하게도 글쓰기가 주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이들의 고민은 문학이란 무엇이며 문학 작품을 짓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근본 문제를 향한다.
이런 근본 문제를 향하는 그들의 고민을 이끄는 것은 자신의 지난 글쓰기에 대한 반성이다.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작가로 갱신하여 ‘글쓰기의 신명’을 다시 찾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낸 그 반성은 자신의 지난 글쓰기를 근본 부정하는 데까지 이른다. 「거울의 알리바이」의 주인공인 고발문학 작가는, 독자들의 취향 및 요구와 타협하는 독자 추수의 글, 대상에 매몰되어 개연적 진실에서 멀리 벗어난 자극적인 고발의 글, 자기 삶의 실현으로서의 글이 아니라 “글 속에 나는 어디에도 없”는 “자기 배반”의 글을 써온 자신에 대한 통렬한 부정을 딛고 “나를 고발하여 처단하는 그 복수...
<작가소개>
전상국 소설가, 전 대학교수
1940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춘천고,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동행」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바람난 마을』 『하늘 아래 그 자리』 『아베의 가족』 『우상의 눈물』 『우리들의 날개』 『외등』 『형벌의 집』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 『사이코』 『온 생애의 한순간』 『남이섬』, 장편소설로 『늪에서는 바람이』 『불타는 산』 『길』 『유정의 사랑』이 있다. 그 밖의 저서로 『김유정』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소설창작강좌)』 『우리가 보는 마지막 풍경』 『물은 스스로 길을 낸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춘천山 이야기』 『춘천 사는 이야기』 『작가의 뜰』 등과 콩트집 『식인의 나라』 『장난 전화 거는 남자를 골려준 남자』 『우리 시대의 온달』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1977), 한국문학작가상(1979), 대한민국문학상(1980), 동인문학상(1980), 윤동주문학상(1988), 김유정문학상(1990), 한국문학상(1996), 후광문학상(2000), 이상문학상 특별상(2003), 현대불교문학상(2004), 경희문학상(2014), 이병주국제문학상(2015), 강원도문화상(1990), 동곡상(2013)을 수상했고, 황조근정훈장(2005), 보관문화훈장(2018)을 수훈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강원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