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의 「그 이불을 덮고」감상 / 박준
그 이불을 덮고
나희덕
노고단 올라가는 양지녘 바람이 불러 모은 마른 영혼들
졸참나무잎서어나무잎낙엽송잎당단풍잎 느티나무잎팽나무잎산벚나무잎너도밤나무잎
그 이불을 덮고 한겨울 어린 풀들이 한 열흘은 더 살다 간다
화엄사 뒷산 날개도 채 굳지 않은 날벌레들 벌써 눈뜨고 날아오겠다
그 속에 발 녹인 나도 여기서 한 닷새는 더 걸을 수 있겠다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1997년 10월 ..........................................................................................................................................................................
혹한의 날들을 앞두고 얼어붙지 않기 위해 나무는 스스로 말라갑니다. 뿌리로 수액을 내뿜기도 하고 넓은 잎을 땅에 떨구기도 하면서. 하지만 이러한 나무의 버림은 다른 존재에게 얻음와 생명이 되기도 합니다. 겨울 산중에 쌓인 낙엽을 들췄을 때 그 속에는 이르게 돋아난 어리고 연한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이니까요.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버리는 일은 곧 내 곁의 누군가를 위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깨닫고 싶은 나날들입니다.
박준(시인) |
첫댓글 졸참나무잎서어나무잎낙엽송잎당단풍잎
느티나무잎팽나무잎산벚나무잎너도밤나무잎
그 이불을 덮고
한겨울 어린 풀들이
한 열흘은 더 살다 간다
(니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