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느는 열정을 일깨우는
마법의 강이다.
마음 둘 데 까마득하여
그녀 곁을 서성거릴 때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의 미소가
온 하늘 가득 빛으로 달려와 춤을 추며
달콤한 포옹으로
싸늘해진 내 심장에 온기를 선물한다.
센느는 내 그리움이
흘린 눈물이다.
열정에 허기진 발길 멈출 데 없어
그녀 곁을 오르내릴 때마다
쉬임없이 흘러내린 내 눈물
한 해 두 해 일곱 해
이젠 떠날 수 없는
그리움의 강이 되었다.
뽕네프가 보이는 풍경, 새벽 미명에...
오베르에서 기차를 타고 뽕뚜와즈를 거쳐 파리로 돌아왔다.
17구 뻬헤르 역에서 내렸다. 역 안에서 비가 오고 있는 밖을 바라보며
어디로 가나,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빠른 걸음으로 비를 뚫고
광장을 돌아 지하철 입구 근처에 있는 라 쁠라스 까페로 뛰어 들어갔다.
년 전까지 불어 선생과 일주일마다 만났던 곳이다.
아직 안느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전화기는 늘 가득 충전되어 있다.
까페 안은 비를 피해 들어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창 근처 레지스탕스가 즐겨 쓰는 캡을 비스듬히 쓰고 신문을 읽고 있는
건장한 남자 옆에 자리를 잡았다.
봉 쥬~, 봉 쥬.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급히 다가 온
웨이트레스에게 차를 주문했다. ‘마드모아젤, 에스프레소 두블루, 실부뿔레.
아가씨 따블 에스프레소 부탁합니다.‘
안느와 나의 사랑은 고립된 사랑이다.
두 사람 사이에만 유효한 절대적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밖으로 노출시켜 관계 설정을 새롭게 하려면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그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해 우리의 사랑은
냉정하고 단호한 심판대 앞에 서야 된다.
우리의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타인들로부터 날카롭고 치욕적인
조롱을 받게 될 것이고, 끝내 그들로부터 황급히 도망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상처를 입고 모욕당해 숨듯 도망쳐 둘만의 고립된 삶을 살아가면
노출되지 않았을 때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일까? 상처를 받아 훼손되고,
조롱당한 사랑에는 더 이상 열정도 없고, 더 이상 순수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사랑이 시작된 때로 거슬러 올라가 잘못된 만남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운명을 탓하고 서로를 원망하며, 서로에게 아픈 상처를 입히려고 입술에, 혀에
쓰디 쓴 악마의 독을 바르지 않을까?
빈센트 봔 고흐의 사랑도, 서로 눈으로만, 느낌으로만, 영혼으로만 교감을 나눈
그런 사랑이었다. 그들의 사랑이 너무 절절했기에 타인들이 그들의 눈빛에서
사랑의 열병의 흔적을 너무 쉽게 발견하게 되고, 무례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받았다. 그렇게 순수한 영혼은 처참히 짓밟히고, 훼손되어, 결국 분노하고,
자해하고, 끝내 목숨까지 던져버리지 않았는가?
안느를 설득시켜야 한다. 전화를 넣었다. 그러나 꺼져 있었다.
번호입력이 잘못 되었나? 다시 또박 또박 번호를 눌렀다. 꺼져 있다.
갑자기 온몸이 얼음에 재여진 것처럼 급속히 냉각되었다.
‘무슈, 제 에뽕제, 뻬이에 실부뿔레. 아저씨 나 일 끝났어. 계산해 주세요.’
웨이트레스가 자신의 파트타임 일이 끝났다고 커피 값을 계산하라고 자는 듯이
밖을 바라보고 있던 나를 깨웠다.
라쁠라스 카페에서.
파리 남쪽 비쥐프에서 민박을 하는 김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냈어? 빈방 있나? 하루 얼마지? 며칠 머물건데 좀 싸게 안되나?’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민박에 도착했다. 김군은 좀 놀랬다.
이 사장님 좋은 집 두고 왜 여기로? 뭔일 있어요? 얼굴이 달라졌는데요?
응, 센느 좀 찍으려고. 파리 시내작업은 끝냈는데, 이쪽 센느는 아침 일찍
오기가 어려워서 네 집에서 며칠 지내면서 아침 일찍 촬영 좀 하려고.
생각도 않던 말이 튀어나왔다.
비수기라 민박은 거의 비어 있었다. 시장 조사를 나온 한국의 중소기업체 사람들 3명,
감정이 메말라 재충전하기 위해서 온 지방 대학 미대교수 부부. 그리고 파리 보자르
입학을 준비하는 여학생과 나 손님은 모두 7명이다.
김군은 골프 친구다. 파리 17구에서 아시안 슈퍼를 하는 김씨와
끌리쉬 근처 빠띠뇰가에서 한인식당을 하는 정씨, 그리고 나, 4명은 골프 친구들이다.
정씨 정씨 아내 그리고 김씨는 내가 머리 얹는 날 동반 라운딩을 해준 사람들이다.
김군은 나보다 2달 늦어 머리를 얹었는데 그때 함께 라운딩을 했다.
그의 누나는 스페인에 산다. 그래서 그의 꿈은 프랑스에서 돈을 벌어서
스페인으로 이주해간 가는 것이다. 불어도 영어도 잘못하면서 프랑스에 눌러앉아
민박, 공항 픽업, 차량 투어를 하며 독신으로 지내는 친구다.
성수기 때는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과 스페인 누나까지 프랑스로 와서 민박집을
도와준다. 김군 가족들을 몇 번 만났는데, 평범한 시골사람처럼 소박하고,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얼마나 구수한지 끼니때마다 생각이 날 정도다.
김군 부탁이 하나 있는데, 꼭 들어줘야 해. 뭐죠? 공항에서나 투어하다가
안느씨 만나면 내가 민박집에 있다는 말 절대 하지마. 모르는 척 하라구.
잠시 심각하게 생각하던 김군 ‘알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말 안했다고
아주머님께 혼나면 책임지셔야 합니다.’ 당연하지. ‘아 그러구 또 하나,
내 골프 피 두 번만 내주시구요. 하하하’
어차피 말을 했으니 내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다음 날 아침 일찍
택시를 불러 타고 메종잘포로 센느를 건너갔다. 여긴 내겐 낯선 센느다.
하늘은 적당히 흐렸고, 파스텔 톤의 엷은 회색구름이 시야를 맑게 해준다.
낡은 사진기를 꺼내 목에 걸었다.
일 년 후, 안느와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이날부터 센느강 작업에 매달렸다.
센느에 사는 백조. 노트르담 성당 뒷편.
운하 근처에서 쉬고 있던 백조 두 마리가 거친 날게 소리를 내며 날아올라
파리 시내 쪽으로 사라졌다. 멀리 점으로 변해가는 백조를 바라보다가
백조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안느가 떠올랐다. 안느 생각이 한번 나기 시작하면
다른 걸 할 수가 없다. 무얼 봐도 거기 안느가 어른거린다.
목에 걸린 사진기는 홀로 인적 드문 센강변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내가
뭘 하려고 여기서 어슬렁거리는지 알려주는 도구일 뿐이다.
보이는 것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사진에 ‘나’를 담을 수 있는 거야.
무슈 장이 이런 말도 했나? 왜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난거지?
일주일만 묵겠다고 했는데 한 달이나 머물렀다.
시선에서 ‘나’를 찾기 위해 센느로 매일 나갔지만 보이는 건 안느 뿐이다.
한 달 동안 촬영한 모든 사진에서 안느만 보인다. 어떻게 해야 나를 볼 수 있을까?
샤르트르의 연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 다리 위에 앉아 파리 시내 쪽을 바라보며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프랑스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꼭 그렇게 하리라는 부질없는 다짐도 해본다.
백조 두 마리가 날개를 넓게 펴고 글라이더처럼 머리 위로 지나갔다.
내 상념이 머리 속을 하얗게 만들고 날개를 펴 달아나는 것처럼.(11편 완)
*글 쓰기가 좀 힘이 듭니다. 마음이 무겁고, 누군가의 생각이 나서 호흡도 멈춰버리고요.
그래서 이번 글이 좀 그럴 겁니다.
막막하고 답답한 내 마음처럼. 눈물도 말라버리고 감정도 건조해지고, 삶도 사막같고, 그런 느낌.
*글 읽어주신 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열었으니 닫힐 때까지 다 쏟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씁니다.
왜 이랬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어이도 좀 없구요.
첫댓글 글을 힘들게 쓰신 것처럼
읽는 마음도 편치않네요.
마음 속의 얽힌 갈등과 상념이 안타깝기만.....
편안해진 골드문트님을
언제나 만나보려는지요~
글 다 쓰고나면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겠죠?
지금 삶은 편안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은 내 사랑도
별거 아니더라
변하지않을
천년의 사랑을
꿈꾸었건만
변하는건 사람이고
식어버리는건 사랑이더라
우리가
사랑이란걸
하긴했던걸까........
떠나버린 그리움이
생각나는 아침이예요..
감사하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변하죠.
그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대로 붙잡아두려니까 사는 게 힘 드는 거 같아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 글 오래 전 이야깁니다.ㅎ
7편에 그 당시 상황에 대해 글 있습니다.ㅎ
즐이고 줄여도 아직 서너편은 더 써야할듯 합니다.
'사진에서 나를 본다'라는 주제가 진행 중이라서요.
지루하시다고 하면 빨리 마치겠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죄송하지만 7편 이후를 보시면,
왜 두려운 지 뭐가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어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드셨습니다. 갑자기 파리 가고 싶어집니다.
남은 생! 부디 부디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암요!
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나를 죽이면 간단합니다. 그건.ㅎ
눈이 아파 님의 글앞에 한참?을 망서렸습니다.
드물게 느낌 좋은 문체를 놔버릴수 없지요.
그동안 쭉 읽은 글, 전반적으로 아픔이 베어있지만 쓰시는 지금의 아픈 마음이 더 안타깝습니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시길.....
감사합니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깁니다.
힘이 떨어지고 아파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산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잠을 자다가 문득 꼭 써야 할 이야기가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컴을 켜서, 글을 적어놓습니다. 안 잊어버리도록.
잠은 낮잠, 초저녁 잠, 아침 잠, 합해서
자는 시간은 5~6시간 정도. 이만하면 충분하죠?
여러가지 걱정 감사합니다.
가슴에 맺혀진 사랑 안느씨는 가슴 아파도 이해할겁니다.
늦게나마 부인한테 속죄하신다는 마음 응원합니다~
원래 처음부터 아내에게 몹쓸짓을 한다...라고 생각하고 결행한겁니다.
그래서 더 나쁘다고 아내는 늘 야단치고요.
감사합니다.
사랑방쉼터에 국정 관련 정치성 글을 올려서
쉼터에 어울리는 글을 부탁드렸더니 삭제하였던군요.
정성 들여 올린 글 간섭해서 죄송하며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언젠가 그런 류의 글을 본 것 같아서 올렸는데,
그런 류의 글이 시빗꺼리가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일 후에 동행에 올려진 모든 글을 관심을 가지고 보고서
정체성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진 삭제를......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는 건 책임이 따르는 행동이죠.
그 책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내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명의 이름이나 거리의 이름등 이국적이라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던 사람사는 곳이니 다 그리움도 있고 추억도 묻어져
있겠지요 사랑이란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는가 봅니다.
잔잔한 이국하늘의 그리움은 또다른 한국의 그리움과
다를 것 같네요
그리움은 국적이 없어요.ㅎ
다만, 분위기만 달라질 뿐입니다.
문화적 차이랄까?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