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하나도 범하지 않으려면?"에 대한 답글입니다.
◎질문.
지금부터 죄 하나도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죄 범했을 때에 마귀가 들어올까봐 그럽니다.
◈답글. 옳은 일을 하는 데 전심전력하십시오.
크리스챤들이 아직도 복음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부분 이 같은 생각들을 합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상태는 아직도 죄인의 신분에 속하였다는 뜻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 곧 사단이 아직도 자기 심령을 장악한 상태의 사람들만이 죄를 범하게 되면 율법에 규정된 형벌을 받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리고 의가 있는 사람, 곧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은 옳은 일을 행하게 되면 그에 따른 상급을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받게 된다는 소망이 생겨 의를 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상태는 아직도 자신의 심령에 사단의 유혹과 하나님의 율법이 공존해 싸우는 상태입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죄가 있는 사람만이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의가 있는 사람만이 의를 행하여 상받으려고 애씁니다.그러므로 죄를 한 가지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입니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라디아서 2:16) 하심 같이, 사람이 비록 "죄짓지 말라"라는 율법을 다 지켜 행하였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는 죄를 저지를 수 있는 죄성(사단의 습성)을 마음 속에 품고 있습니다. 죄성을 품고 있는 자들은, 죄를 저질러도 적발당하지 않을 기회와 방법만 찾게 되고 또 죄는 육체의 당연한 본능이라고 하는 지식이 보편화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 죄를 미워해 근절시킬 선과 의와 정의가 없습니다.
사람의 심령에 죄를 저지르도록 유혹하는 사단과, 또 죄를 저지르는 일을 금지시키는 하나님의 율법이 공존하고 있으면, 그는 아직도 죄를 저지를 수 있는 죄인들입니다. 도적질할 마음을 지닌 자들은 사람의 이목(耳目)이 미치는 곳에서는 그나마 "도적질 하지 말라"라는 율법을 지킵니다. 왜냐하면, 도적질하는 일이 적발당하면 형벌과 수치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적발당하지 않을 기회만 포착되면 김일성 일가들처럼 도적질을 자행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유행되어 행횡하는 온갖 죄악들을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을 지닌 채 하나님의 율법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고, 죄악의 행횡을 용납지 않고 대적해 박멸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영접해 믿고 복음의 말씀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천국인들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좌파분자들이 김일성 일가들의 악행(불법)을 마치 축구장에서 뛰는 유명 선수들의 개인기 정도로 취급해 자랑질 합니다. 그래서 심판관이신 하나님의 제재(制裁)만 없으면 살인 만행을 마구잡이로 자행하는 김일성 일가들을 마치 유명 축구 선수들의 개인기 정도로 취급해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김일성 일가들의 살인 만행에 대해 아직도 호루라기를 불어 제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김일성 일가들의 노련한 개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불법을 적발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이제 김일성 일가들의 살인 만행을 노련한 개인기로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흠모하여도 국법에 의해 전혀 제제받지 않는 정국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죄성을 버리지 않는 죄인들의 심리 상태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으려고 애쓰는 죄인의 신세로만 에덴 동산에서 처신하였을 뿐,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사랑하여 그의 뜻을 완벽하게 세우려는 자녀, 곧 충효로운 후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을 적발해 멸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어도(죄를 저질러도) 죽지 않는다는 사단의 말을 듣게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노아는 온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믿고 산 중턱에 거대한 방주를 짓는 험난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알기만 할 뿐, 다시 말해 죄 짓지 않으려고 애쓰는 죄성만 갖고 있을 뿐, 세상에 행횡하는 죄악을 소멸시켜 하나님의 뜻이 땅에 임하기를 바라는 소망은 전혀 없습니다.
의인은 노아와 그 가족들처럼 하나님의 명령(말씀)을 힘써 지키려는 소망을 갖고 사는 자들이며, 죄인은 다만 죄 하나도 범하지 않아 죗벌과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고만 조심할 뿐,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 곧 십자가 같은 희생에 큰 소망을 갖고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죄지을 마음을 갖고서도 죄 안짓는 데만 신경쓰는 사람들이며, 의인은 정의로운 일을 행하려는 마음을 갖고 의로운 일을 하려는 데만 신경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온통 죄 안짓는 데만 초미의 관심을 기우려 신경 쓸 뿐, 죄악(좌익사상)을 미워하고 대적해 소멸시켜 사람과 땅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한 예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죄 안짓는 일은 그런대로 최선을 다해 지키지만, 죄악을 대적해 싸우는 의로운 일은 엄청난 수고와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그런 일들은 기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고 사모하게 되면, 그가 해야 할 의로운 일들을 하고자 하는 쪽으로 항상 마음이 기우려지기 때문에 죄지을 사단의 마음과 생각이 그 사람의 심령 안에 거할 곳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죄악을 두려움 없이 자행하는 짐승 같은 자들과, 죄악을 저지르면 하나님께 형벌받을까봐 두려워하여 죄 안지으려고 하는 죄인들과, 옳은 일을 하면 하나님께 영생을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는 의인들이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대를 어느 쪽 사람이 되어 사느냐에 따라 각자가 하나님께 죄인으로, 또는 의인으로 판정받게 됩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죄악을 밥먹듯이 저지르는 김일성 일가들보다는 그나마 자신들이 착하다고 자처합니다. 그러나 짐승 같은 자들만큼 흉악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죄인의 상태라는 뜻일 뿐, 결코 의인으로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사는 삶은 하나님께 무조건 죄인으로 판결받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주된 원인은, 불신 범법자들만큼 추악한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과 또 김일성 일가들만큼 포악무도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데에만 주력할 뿐,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기능으로 살아간 일이 없는, 곧 거짓과 불법불의와 음란방탛한 일을 미워해 대적하는 의의 일은 결코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빛은 세상의 거짓과 죄악을 적발해 꾸짖고 소금은 세상의 부정부패한 것들을 적대해 정결케 합니다. 신앙인들이 이 같은 일들을 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빛과 소금처럼 주위 사람들의 거짓과 불법불의와 음란방탕한 죄악을 책망해 꾸짖는 영적 보안 역할을 감당치 못할 때에는 그 나라 그 사회의 도의적 정치적 보안이 무너져 빨갱이 세상으로 적화됩니다. 신앙인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그 때부터는 세상을 소돔·고모라와 같은 나라와 사회로 치닫게 만듭니다.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의로운 일에 신경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의의 소망을 지닌 의인들입니다. 신앙인들의 마음에 이런 의의 소망이 없을 때에는 반드시 죄 안짓고 형벌과 수치를 당하지 않는 죄인들의 안이한 삶만 살게 됩니다.
죄 안짓는 데에만 신경쓰는 바리새인 같은 생각을 버리십시오. 즉 죄 안짓는 데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율법적인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처럼 의롭고 올바른 일만 하려는 마음 쪽으로 힘쓰고 애쓰십시오. 그런 쪽으로 마음의 방향을 잡았다 해서 하루 아침에 죄 지을 죄성(罪性)이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다시 죄의 유혹에 빠져 쓰러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럴 때에는 예수님이 죄사함 받을 길을 열어주어 조금 전에 저지른 죗값에 대한 형벌로 남들이 까닭 없이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 범죄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태복음 6:12) 하심 같이, 자신에게 범죄한 자를 용서할 수 있는 기회를 예수님이 만들어 주시어 그를 용서함 같이 자신이 조금 전에 저지른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컴퓨터 게임이나 음란물 화면이나 코미디 프로에 빠질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차라리 그 시간대에 집안 청소나 설거지라도 하여 부모님께 효도하십시오. 자신이 지금 무슨 말과 글과 화면에 빠져 있느냐가 바로 그런 일들을 만들어 낸 악령들과 함께 즐기는 짓입니다. 의로운 말과 글과 화면을 보면 의로운 심령이 부강하여 즐기는 상태이지만, 배설물 수준의 흉악한 정보들에 넋을 빼앗기게 되면 그것들을 제작한 마귀와 함께 즐기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람들이 시키는 돈벌이 이익보다도 하나님이 시키는 의로운 일들의 이익금이 더욱 큽니다. 그리고 직장일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근본 원인은 바로 의로운 일에 대한 가치와 의욕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세자 예수'에 기록된 빛과 소금 성분을 되찾아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길 바랍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