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푸캉은 규모 면에서나 지력 면에서 눈부시게 성장하여, 이제 하나의 '청년' 도시가 되었다. 치수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지하 12 층에 완벽한 운하망을 만들어놓았다. 그 운하들 덕분에 식량을 도시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신속하게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클리푸캉 개미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서 수상 운송 기술을 본 궤도 에 올려놓았다. 둥둥 떠다니는 월귤나무 잎새가 뗏목으로는 아주 제 격이었다. 물의 흐름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수백 머 리의 물길을 여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동쪽의 버섯 재배장에서 서 쪽의 진딧물 축사까지 물길로 오고갈 수가 있는 것이다. 클리푸캉 개미들도 언젠가는 물방개 사육에 성공하리라고 기대하 고 있다. 물 속에 사는 커다란 딱정벌레들은 그들의 딱지날개 아래 에 공기주머니가 달려 있어서 아주 빨리 헤엄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을 길들여 월귤나무 잎새를 밀게 만든다면, 다소 불안정한 현재 의 뗏목 추동 방식을 확실하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클리푸니가 손수 미래 지향적인 한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거 미 그물에서 자기를 구해준 뿔풍뎅이를 떠올린 것이다. 그 곤충을 전투에 이용한다면 얼마나 완벽한 무기가 될 것인가? 뿔풍뎅이는 이 마에 커다란 뿔을 하나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갑을 두른 것처 럼 단단한 딱지가 있다. 게다가 그들은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기도 한다. 여왕개미의 생각은 그 곤충들의 부대를 만들어, 그 곤충 하나 하나의 머리마다 열 마리의 포수 개미들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클리 푸니의 눈에는 벌써 포수 개미들을 태운 뿔풍뎅이가 적진으로 날아 가 적들의 머리 위로 개미산을 쏟아붓는 광경이 선하다. 거의 완벽한 무기가 아닌가.... 한 가지 걸림돌은 아직 그들이 언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방개나 뿔풍뎅이를 사육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개미 수십 마리가 그들의 후각적인 발산물을 해독하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들에게 개미의 페로몬 언어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 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은 그 결과가 보잘것없지만, 클리푸캉 개미들은 그래도 그들 에게 분비꿀을 주면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먹이야말로 곤충 세계의 가장 확실한 공통어인 것이다. 도시 전체가 이렇게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음에도, 클리푸니는 마 음이 편치 않다. 예순다섯 번째 도시를 재가받으려고 세 번이나 사 절단을 연방 쪽으로 보냈건만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벨로키우키 우니가 동맹을 거부하는 것인가? 생각을 거듭할수록, 자기가 보낸 사절단 겸 첩보원들이 서투르게 행동하다가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에게 들킨 게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하 50층에 있는 로메슈제의 환각제 분비 물에 유혹당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무슨 일일까? 클리푸니는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고 싶었다. 여왕개미는 연방의 재가를 받는 일도 조사를 계속하는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여 왕개미가 801호를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클리푸캉에서 가장 훌륭하 고 민첩한 병정개미이다. 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기 위하여 여왕개 미가 젊은 병정개미와 완전 소통을 시행한다. 그 병정개미는 여왕개 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클리푸 캉의 눈, 클리푸캉의 더듬이, 클리푸캉의 발톱이 되어 보고, 느끼 고, 싸울 것이다.
할머니는 식량과 음료가 가득 든 배낭을 준비했다. 그 속에는 따 듯한 마편초 차가 든 보온병도 세 개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못된 르뒤크처럼 식량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되올라 오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터였다..... 그런데 혹시 그 사람 이 암호 단어를 찾아낸 것은 아닐까?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럴 리가 없다고 단정했다. 자종 브라젤은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챙겨왔는데, 그 가 운데는 대형 최루탄과 방독면 세 개도 들어 있었다. 다니엘 로젠펠 트는 플래시를 부착한 최신형 사진기를 가져왔다. 세 사람은 바햐흐로 회전 목마와도 같은 나선 계단 속에서 돌고 있었다. 앞서 계단을 내려갔던 사람들이 그랬듯이, 계단을 내려가노 라니 옛날 일들과 묻혀 있던 생각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어린 시 절, 부모님, 가장 먼저 겪은 고통, 이러저러한 잘못들, 못다 이룬 사랑, 이기주의, 오만, 회한.... 세 사람의 몸은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 었다. 그들은 지구의 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과거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인생이란 참으로 긴 것이다. 그 긴 인생을 우리는 얼마나 창조적으로 살아왔던가? 창조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너무 쉽 게 파괴적인 삶 쪽으로 쏠려왔던 것은 아닌가! 세 사람은 마침내 어떤 문 앞에 다다랐다. 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 귀가 새겨져 있었다.
죽음의 순간에 영혼은, 위대한 '신비'를 깨운친 사람들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것을 느낀다. 맨 먼저 힘겨운 에움길을 무작정 달린다. 어둠 속을 나아가는, 불 안하고 끝없는 행로이다. 그 다음에는 종말을 앞두고 공포가 절정에 달한다. 전율, 부들거 림, 식은땀, 격심한 공포가 지배한다. 그 단계가 끝나고 나면 바로 갑작스럽게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빛을 향해 올라간다. 눈에 경이로운 빛이 비치고 영혼은 노랫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울 려퍼지는 순결의 땅과 풀밭을 지난다. 성스러운 말들이 신심을 일깨운다. 깨달음을 얻은 완벽한 인간은 자유로워지고, '신비'를 찬양한다.
다니엘 로젠펠트가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저 글귀를 읽은 적이 있지요. 플푸타르코스의 책에 나오는 겁니 다." 자종이 힘주어 말했다. "정말 멋진 글귀인데요." "어째 으시시하지 않아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물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이 저 글귀에 딱 들어맞는 것 같은데요. 저대로라면, 두려움 다음에 빛이 나타나겠군요. 이제 저 글귀대로 단계를 밟아나가면 되는 겁니다. 두려움이 필요하다면 두려워합시다." "바로, 쥐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는 듯이 정말로 쥐들이 나타났다. 세 탐 험가는 쥐들이 굽 높은 신발께까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 서 쥐들이 몸에 닿을까 전전 긍긍했다. 다니엘이 다시 사진기를 작 동시켰다. 회색 낯짝에 새까만 귀를 가진 징그러운 털 짐승의 모습 이 플래시 불빛에 드러났다. 자종이 부랴부랴 방독면을 나누어주고 주위에 최루가스를 듬뿍 뿌렸다. 쥐들은 이내 줄행랑을 쳤다. 세 사람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더 내려갔다. "우리 뭐 좀 먹을까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제의했다. 할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들은 식사를 했다. 쥐 사건을 모두 잊은 듯했다. 세 사람 모두 최강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좀 썰렁했기 때문에 그들은 식사 끝에 술 한 모금과 따뜻하고 맛있는 커피 한 잔씩을 마 셨다. 마편초 차는 언제나 그렇듯이 간간이 입가심으로만 마시는 거였다.
개미들은 한참을 파들어간 다음 무른 흙이 있는 지대를 거쳐서 다 시 올라온다. 마침내 더듬이 한 쌍이 땅 위로 비죽 솟아올랐다. 잠 망경 같다. 처음 맡는 냄새들이 잠만경에 밀려든다. 개미들이 한데로 나온다. 세계의 끝 건너편에 다다른 것이다. 여 전히 물의 벽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 낯선 세계가 펼쳐져 있다. 몇 그루의 나무, 몇 군데의 풀밭이 보이는가 했더니 이내 단 단하면서 매끄러운, 잿빛의 허허벌판이 나타난다. 개미 도시 하나, 흰개미 도시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몇 걸음 나아가니 시커멓고 거대한 것들이 그들 주위로 덤벼든다. 감시자들과 비슷하기는 한데, 마구잡이로 덤벼든다는 점이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앞쪽 멀리에 거대한 돌덩이 하나가 서 있다. 너무 높아서 더듬이로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돌덩이는 하늘을 가 리고 땅을 짓누르고 있다. 저건 세계의 끝의 벽일 게다. 저 뒤에는 문이 있다. 103683호가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가다가 그들은 한 떼의 바퀴벌레들과 맞닥뜨린다. 바 퀴들은 뭔지 알 수 없는 덩어리 위에 달라붙어 있다. 그들의 딱지는 투명하기 때문에 내장과 기관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혈관 속에서 움 직이는 피도 보인다. 흉측한 것들! 개미들이 바퀴벌레들을 피해 달 아난다. 그때 어떤 덩어리가 떨어져서 수확개미 세 마리가 가루가 되었다. 그럼에도 103683호와 세 동료는 계속 가기로 마음을 정한다. 구멍 이 송송 뚫린 나지막한 벽돌을 지나 커다란 돌덩어리가 있는 쪽으로 계속 나아간다. 그때, 그들은 너무나 기이한 구역 안으로 들어온 것 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곳은 땅이 빨갛고 우툴두툴하다. 우 물같이 생긴 것이 하나 있다. 그 안에 들어가서 휴식을 좀 취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름이 10머리는 족히 될 하얀 공이 하늘 에서 떨어져 통통거리며 그들을 쫓아온다. 그들은 우물로 뛰어들어 가까스로 벽에 달라붙자 공이 바닥에 부딪힌다. 그들이 다시 우물에서 나온다. 겁에 잔뜩 질려서 허둥지둥 달린 다. 주위를 둘러보니 땅이 파랗기도 하고 풀빛이기도 하고 노랗기도 하다. 도처에 아까와 같은 우물이 있고 하얀 공들이 그들을 쫓아온 다. 이젠 도저히 못 참겠다. 용기에도 한계가 있다. 이 세계는 정말 이지 너무 기이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숨이 끊어질 정도로 내달려 도망을 친다. 지하도를 건너 정상적인 세계로 되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