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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릉시는 국소적으로 발생한 극심한 돌발가뭄으로 큰 피해를 겪었다. 이번 사례는 단순한 가뭄이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급성 가뭄(돌발가뭄)의 뚜렷한 사례로, 지역적 특수성과 구조적 취약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강릉이 이번 가뭄에서 유독 취약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수자원 구조의 단일화다. 강릉의 주민 생활용수는 대부분 오봉저수지 하나에 의존하고 있으며, 상류 지류의 유입량이 줄어들면 저수지 저수율이 급격히 하락한다. 이러한 집중형 구조는 대체로 수원이 부족해 수급 불안정을 초래한다.
둘째, 지형과 강수 패턴의 불리함이다. 강릉은 동해안과 산악이 맞닿은 지형으로, 내륙에서 내린 비가 해안까지 제대로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이번 가뭄에서도 영서지역에는 비가 내렸지만, 영동지역인 강릉에는 강우가 거의 없었다. 셋째, 기후 불규칙성과 폭염이다. 최근 강릉의 강수량은 평년 대비 절반 수준에 그쳤고, 장기간 고온과 건조가 지속되면서 토양 수분과 저수지 수위가 급격히 낮아졌다.
원인을 분석하면, 돌발가뭄은 강수 부족과 증발·증산 증가가 맞물린 복합적 현상이다. 강릉의 경우 최근 6개월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45% 수준에 불과했으며, 짧은 시간 내 집중 강우가 반복되었으나 저수지와 지하수 충전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여기에 연속된 폭염과 강한 햇빛으로 증발량과 증산량이 증가하면서 토양과 수자원은 빠르게 고갈됐다. 또한 기후변화로 강수 패턴이 불규칙해지고, 폭염과 건조 현상이 심화되면서 돌발가뭄 발생 가능성은 높아졌다.
결과는 심각하다.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4%대까지 떨어졌고, 수도 제한과 생수 배포가 불가피했다. 농작물과 토양도 큰 타격을 입었으며, 산불 위험도 높아졌다. 지역 주민과 산업 활동은 직접적 피해를 받았고, 돌발가뭄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재난임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대응은 장기적·구조적 접근이 중요하다. 첫째, 수원 다변화와 저장능력 강화다. 저수지 하나에 의존하지 않고, 지하저류댐, 빗물 재활용, 해수 담수화 등 다양한 보완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조기경보와 스마트 관리 시스템 구축이다. 위성, 토양수분 센서, 강수 패턴 분석을 활용해 돌발가뭄을 조기 감지하고 대응 프로토콜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생태기반 해법(보호·지속가능한 관리·생태계 복원)을 통한 물 순환 개선이다. 산림 복원, 습지 복구, 유역 관리 등을 통해 지형적 불리함을 상쇄할 수 있다. 넷째, 기후위기 대응과 감축이다. 폭염과 강수 불균형의 배경이 되는 온실가스를 줄여 장기적으로 가뭄 위험을 완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 참여와 절수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 주민들의 물 사용 행동 개선, 산업체 절수, 캠페인 등이 함께할 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강릉 돌발가뭄은 우연이 아니라 기후변화의 경고음이다. 짧은 시간에 급격히 나타나는 돌발가뭄은 예측과 대응이 어렵지만, 수원 구조 재편, 지형·기후에 맞춘 물 관리, 생태기반 해법, 기후 감축과 주민 참여가 함께한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강릉에서 시작된 이번 사건은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기후 재난과 대응의 교훈이다.
2021년 IPCC 제6차 보고서는 '지구온난화 1.5도~2도 시나리오'에서 돌발가뭄의 빈도와 강도가 전 세계적으로 뚜렷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변화가 폭염 강화, 강수 양극화, 대기 순환 이상을 가져오고 토양 수분이 급격하게 고갈되어서 돌발 가뭄이 발생하는 건 더 이상 드문 현상이 아니다. 돌발 가뭄은 기후변화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유형의 가뭄이다. 대한민국 어디도 돌발 가뭄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다. 강릉 가뭄은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이 직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기후 위험이고 기후 재난이다.
극한 폭우와 극한 가뭄, 기후 양극화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같은 하늘 아래 한쪽은 물에 잠기고 다른 쪽은 메마른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이미 일상을 갈라놓고 있다. 돌발 가뭄이 끝이 아니다.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기후재난을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후재난의 칼끝을 피해 갈 사람은 없다. 피할 곳도 없다. 누구든 어디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너무 늦지 않으려면 남은 건 결국 온실가스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
자연의 무심한 우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무기력하기도 하지만 답을 찾아 우연을 극복하는 것도 우리 인간이다. 2050 탄소중립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