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충돌(계속) 두 문명이 만나면서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또 다른 예는, 서양과 동양의 만남이다. 중국 한나라의 연대기를 보면, 서기 115년 경에 로마 제국의 것으 로 보이는 배 한 척이 풍랑을 만나 며칠간 표류한 끝에 중국 해안에 닿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곡예사들과 마술사들이었다. 그들은 뭍에 닿자마자 그 미지의 나라 주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구경 거리를 제공했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은 코 큰 이방인들이 불을 뱉어 내고 자기들의 사지를 묶고 개구리를 뱀으로 바꾸는 광경을 넋을 읽고 보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서방에는 광대와 불 먹는 자들이 살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당연하다. 그 후로 수백 년이 흘러서야 중국인들의 그릇 된 생각을 일깨워줄 기회가 생겼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세 사람이 마침내 조나탕이 만들어놓은 벽 앞에 이르렀다. '성냥 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가?' 다니엘은 사진 찍기를 잊지 않았다. 오귀스타 할머니가 'PYRAMIDE'라는 단어의 철 자를 하나하나 누르고 나자 벽이 스르르 돌아갔다. 오귀스타 할머니 는 자기 손자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지나가자 곧 벽 이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종이 벽에 불빛을 비추었다. 어디나 바위뿐이었다. 그런데 좀 전에 보았던 벽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아까는 벽이 불그스름했는 데 이제는 벽이 노랗다. 유황의 광맥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공기는 여전히 숨쉬기에 거북함이 없었다. 어디선가 조금씩 공기 가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르뒤크 교수 말대로 이 동굴이 퐁텐블로 숲으로 통해 있는 것일까? 그때 갑자기 또 한 무리의 쥐들이 나타났다. 앞서 만났던 쥐들보 다 훨씬 더 공격적인 놈들이었다. 자종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방독 면을 다시 쓰고 최루 가스를 뿌렸다. 조나탕이 만든 벽이 자주 회전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때마다 '적색 시대'에 있던 쥐들이 먹이를 찾아 '황색 지대'로 넘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적색 지대의 쥐들은 그래도 근근히 살아나갈 수 있었겠지만 황색 지대로 이주해 온 쥐들 은 먹고살 만한 것을 전혀 찾아내지 못한 나머지 저희들끼리 먹고 먹히고 했을 것이었다. 그러니 세 사람은 그 살아남은 쥐들이 가만둘 리가 없었다. 그놈 들에게는 최루 가스가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놈들이 덤벼들었 다. 펄쩍펄쩍 뛰면서 달라붙으려고 했다. 다니엘은 혼비 백산하여, 놈들이 앞을 못 보도록 손전등 불빛을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나 그 흉측한 짐승들은 무게가 수 킬로그램이 나 되는데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세 사람의 몸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자종이 오피넬표 접칼을 빼어들고 쥐 두 마리를 찌른다음 그것을 다른 쥐들에게 먹이로 던져주었다. 오귀스타 할머 니는 작은 권총을 몇 방 쏘았다..... 그렇게 그들은 쥐 떼를 벗어났 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어렸을 때 나는 몇 시간 동안 땅바닥에 길게 엎드려서 개미집을 관찰하곤 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텔레비전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 로 느껴졌다. 개미집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내가 개미집을 유린하고 난 뒤에, 개미들은 다친 개미들 중에서 어떤 개미는 데려가고 어떤 개미는 죽게 내버려 두었다. 크기가 모두 똑같았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어떤 선별 기준 이 있길래 어떤 개체는 쓸모가 있고 어떤 개체는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세 사람은 유황 광맥의 노란 줄무늬가 있는 굴 속을 달렸다. 그러 고 나서 다다른 곳은 어떤 철망이었다. 철망의 가운데에 나 있는 출 입구가 철망 전체의 모습을 고기잡이 할 때 쓰는 통발처럼 보이게했다. 출입구는 보통 몸집을 가진 사람 하나가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좁 아지면서 둥근 뿔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둥근 뿔의 출구에 뾰족한 것들을 놓았을 것으로 보아 한번 빠져나가면 다시는 되돌아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건 최근에 설치한 거예요...." "그렇군요. 이 문과 이통발을 만든 사람들은 일단 들어온 사람들 이 되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군요."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것 역시 조나탕의 작품일 것으로 생각했다. 조나탕은 문과 금속에 통달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보세요!" 다니엘이 새김글 위에 불빛을 비추었다.
여기에서 의식이 끝납니다. 무의식 안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그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하죠?" 모두가 같은 순간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끝까지 가봅시다!"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다니엘이 말꼬리 같은 머리채가 걸리지 않도록 깃 안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들은 엉금엉금 기어서 차례차례 강철 통발 속을 통과했다. "이상하네. 언젠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말했다.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통발 속에 들어가 보신 적이 있다구요?" "그래요. 아주 오래 전 일이었지." "아주 오래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아주 어렸을 때지. 생후.... 1초나 2초쯤 되었을 때지."
도시로 돌아온 수확개미들이 세계의 건너편, 괴물들과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로 가득 찬 땅을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 다. 바퀴벌레, 시커먼 덩어리들, 거대한 돌덩어리, 우물, 하얀 공....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그렇게 괴상한 세계에 도시를 만드는건 불가능해. 103683호는 구석 자리에 앉아 힘을 다시 모으며 생각에 잠겨 있 다. 동포들이 그의 얘기를 듣게 되면, 모든 지도를 다시 만들고 지 리학의 기본 원칙들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이제 연방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통발을 빠져나오고 나서도 세 사람은 한참을 더 걸었다. 정확하게 는 알 수 없었지만 10킬로미터 정도는 족히 나아간 듯했다. 그렇게 걸었으니 피곤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동굴 바닥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에 다다랐다. 실개천의 물 은 아주 뜨겁고 유황 성분이 많이 들어 있었다. 다니엘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물의 흐름을 따라 떠내려가는 나 뭇잎 위에 언뜻 개미들을 본 것 같았다. 그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 다. 아마도 유황 냄새 때문에 환각이 일어나는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햇다. 몇백 미터를 더 나아갔을 때, 자종의 발 밑에서 우두둑거리는 소 리가 났다. 그가 불빛을 비추어 보고 떨리는 비명을 질렀다. 해골의 갈비뼈였다! 다니엘과 오귀스타 할머니가 손전등으로 주위를 비추어 보다가 다른 해골 두 개를 더 찾아냈다. 그중의 하나는 크기로 보아 아이 것 같았다. 혹시 조나탕 네 식구들은 아닐까? 그들은 다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하여 내처 달렸다. 쥐들이 다가 오는 듯 둔중한 울림이 느껴졌다. 벽의 노란 빛깔이 흰색으로 바뀌 었다. 석회암의 빛깔이다. 기진 맥진한 상태가 되어서야 그들은 동 굴의 끝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다시 올라가는 나선 계단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마지막 남은 총알을 쥐들을 향해 쏘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나선 계단 쪽으로 뛰어들었다. 자종은 아직 정신이 말 짱해서 그 나선 계단이 먼저 것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 말하면,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시계 방향으로 돌 면서 올라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벨로캉 개미 하나가 도시 안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온 도시가 술렁 거리고 있다. 클리푸캉이 연방의 예순다섯 번째 도시로 공인되었음 을 알리기 위해 연방의 사절이 올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러나 여왕개미 클리푸니는 백성들처럼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 지 않았다. 클리푸니는 벨로캉에서 온 그 개미를 미심쩍게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벨로캉에서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를 파견하여 이 도시에 침투시킨 것은 아닐까? '그 자는 어떻든가?' '아주 지쳐 있습니다. 며칠 만에 오느라고 벨로캉에서부터 달려 온 것 같습니다.' 기진 맥진해서 주위를 배회하고 있던 그 개미를 발견한 것은 목축 개미들이었다. 그 개미는 이제껏 아무 페로몬도 발산하지 않았으며, 클리푸캉 개미들은 그의 원기를 되찾아주려고 그를 꿀단지 개미들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를 여기로 데려오라.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렇지 만 경비병들은 입구에 머물러 있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즉각 출동하기 바란다.' 클리푸니는 자기가 태어난 도시에서 소식이 오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던 차에 그곳의 개미 하나가 도시 안으로 들어온 것이 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접하고 클리푸니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그 개미가 첩자가 아닐까라는 의심과 그렇다면 그를 죽여버려야 한 다는 생각이었다. 그를 만나볼 때까지는 두고볼 것이지만,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바위 냄새가 풍긴다면 가차없이 죽여버릴 것이다. 클리푸캉 개미들이 그 벨로캉 개미를 데려온다. 클리푸니와 그 벨 로캉 개미는 상대방을 알아보고 이내 서로에게 달려들어, 위턱을 활 짝 벌리고 가장 기름진 먹이를 교환한다. 감정이 복받쳐서 두 개미 는 한 동안 발산할 페로몬을 잊고 있다. 클리푸니가 먼저 페로몬을 발한다. '조사는 어디까지 진행됐나? 흰개미 도시는 가보았나?' 103683호는 동쪽 강을 건너 흰개미 도시를 찾아갔던 일이며, 폐허 가 된 도시에는 흰개미가 한마리도 살아 있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려 준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그 몬느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일으킨 자들은 세계의 동쪽 끝 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병정개미가 설명한다. 그 동물들은 보이지 않 고, 느껴지지도 않는 아주 이상한 것들이며, 갑자기 하늘에서 튀어 나와 모든 개미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클리푸니가 주의 깊게 듣고 있다. 103683호가 덧붙인다.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세계의 끝을 지키는 자들이 어떻게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을 조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클리푸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첩자들도 아니고 용병들도 아니며, 유기체와도 같은 도시가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감시하는 비밀 군대이다. 그 들은 도시를 고뇌에 빠뜨릴 염려가 있는 정보들을 차단한다.... 그 리고 클리푸니는 그 암살자들이 327호를 죽인 것이며, 클리푸니 자 신을 죽이려 했던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럼 도시 바닥의 바위 밑에 감추어놓은 식량은 어떻게 된 겁니 까? 화강암 속의 통로는요?' 그 점에 대해서는 클리푸니가 아무 대답을 못 한다. 바로 그 두 가지 수수께기를 풀려고 사절 겸 첩자들을 파견해 놓은 터였다. 젊은 여왕개미가 벗에게 자기 도시를 구경해 보라고 권한다. 길을 가면서 여왕개미는 물을 얼마나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설명 한다. 예를 들어 동쪽 강은 빠지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곳으로 줄곧 생각되어 왔지만, 그것 역시 물이기는 마찬가지이고, 여왕개미는 거 기에 빠졌어도 죽지 않고 살아났다. 언젠가는 나뭇잎 뗏목을 타고 그 강을 내려가서 세계의 북쪽 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클 리푸니는 어쩌면 북쪽 끝을 자들도 있을 거라면서 그들을 부추겨서 동쪽 끝에 있는 자들과 싸움을 붙일 수도 있으리라며, 흥분된 페로 몬을 발한다. 103683호는 클리푸니에게 거창한 계획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모든 계획이 실현 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벌써 이루어놓은 성과가 분부시다. 그 병정개미는 이렇게 광대한 버섯 재배장이나 진딧물 축 사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고, 지하 운하 위를 떠다니는 뗏목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병정개미를 놀라게 한 것은 여왕개 미가 발한 마지막 페로몬이다. 여왕개미 클리푸니는 사절들이 두 주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벨로캉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단언한다. 여왕개미는 자기가 태어난 그 도시가 세계에 대한 적응력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 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하나만 보아도 그 도시가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다. 벨로캉은 달팽이처럼 겁이 많은 도시이다. 옛날에는 혁신적이었 지만 이제는 시대에 뒤져 있다. 세댁 교체가 필요하다. 여기 클리푸 캉 개미들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 클리푸니는 자기가 연방을 이끌 게 된다면 연방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65개 도시가 함께 클리푸니의 제안을 실천해 나간다면 열 배나 더 많은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클리푸니는 벌서 강물을 정복할 생각 을 하고 있으며 뿔풍뎅이를 이용하여 비행 군단을 가동시킬 구상을 가지고 있다. 103683호가 망설인다. 그는 자기의 모험담을 들려주기 위하여 벨 로캉으로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클리푸니가 그 계획을 포 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벨로캉에는 비밀 부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자기네들이 원하 지 않는 것은 굳이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