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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준 여유(5) - 봄을 맞는 마음
지난 수년간 겨울을 넘기면서 ‘봄을 맞는 마음’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이런 저리 이유로 못쓰게 되더니 이번에는 코로나19 때문에 3월과 4월이 실종되어 버리네요. 고향 시골집 방들은 유리창으로 된 이중문이 아니고 창호지를 바른 출입문 하나만 있으니 겨울엔 말 그대로 ‘바람도 문풍지에 싸늘하게’(애수의 소야곡) 문틈과 문풍지 사이로 스며듭니다. 아무리 이불을 덮어도 코끝은 시려오고 때로는 자리끼로 떠 놓은 물에도 살얼음이 생겼지요. 이러니 어찌 봄이 기다려지지 않겠습니까?
봄이 왔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곧 바로 맞는 것이 ‘보리고개’였으니까요. 우리 집은 농사를 짓지 않고 할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셔서 동네에서 쌀밥을 주로 먹은 몇 안 되는 집 중 하나였습니다. 매일 이집 저집 놀려 다니는데 친구들 집 사정을 모르겠습니까? 모두가 검어틔틔한 꽁보리밥을 먹었죠. 우리는 봄이 되면 잔디 비슷한 풀에서 나는 ‘피’라고 부른 보드라운 새순을 뽑아 먹었지요. 마산 친구들은 '피'를 '삐끼'라 하더군요. ‘피’를 찾으러 사람들이 잘 밟지 않는 야외 논둑길로 나갔습니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아지랑이 연무가 오르는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논둑을 걸으면 멋져 보이겠죠? 아닙니다. 겨우내 모아두었던 거름이 날이 풀리자 썩기 시작하면서 나온 똥물이 고랑으로 흘러 아래 개울로, 그리고 조금 큰 내(川)로 모이는데 그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찌르지요. 자연 다큐를 보면 탄자니아와 케냐에 걸쳐 있는 세렝게티 평원에 백만 마리가 넘는 누, 얼룩말, 영양 무리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사자, 하이에나. 표범, 치타 등 포식자들이 여기저기서 이들을 노리고 모습이 보이지요. 멋진 풍경이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쏟아내는 배설물로 구린내가 진동을 한답니다. 나는 이 장면들을 볼 때마다 고향 고성의 넓은 들을 떠올립니다. 세렝게티의 배설물이 식물을 새싹을 키우듯이 거름덩이에서 흘러내린 영양분 가득 머금은 구린 물은 봄 농사의 거름이 되고 개울의 미꾸라지를 살찌워 줍니다.
나는 봄을 맞는 이 시기 ‘꽃구름 속에’ (박두진 작사, 이흥렬 작곡)라는 가곡을 떠올립니다. 1980년대 초 이 가곡을 처음 들으면서 끌리더군요. 1연이 소프라노의 경쾌한 리듬으로 ‘꽃바람이 마을마다 훈훈히 불어와 꽃가루 흩뿌리고 진한 꽃향기 풍기어라’라는 가사에 그렇고 그런 멜로디이지요. 그런데 2연으로 넘어가면 단조로 느린 만가(挽歌, dirge)와 같이 애절하며 음침한 가락이 기다립니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죠.
추위와 주림에 시달리어/ 한 겨우내 움치고 떨며
살아온 사람들/ 서러운 얘기 서러운 얘기
그리곤 다시 1연과 같은 경쾌하며 환상을 자아내는 3연으로 이어집니다.
아, 까맣게 잊고/ 꽃향에 꽃향에 취하여
아득하니 꽃구름 속에/ 쓰러지게 하여라
나비처럼 쓰러지게 하여라
‘꽃향에 취하여 쓰러진다.’는 건 꽃향이 진해 배고픈 아이들의 정신을 마약같이 몽롱하게 만들기 때문이겠죠. 옛 음판을 찾아보니 1980년대 테이프로 된 ‘한국가곡’ 중 김윤자의 노래로 나옵니다. 요즈음 U-Tube에는 조수미의 노래가 좋습니다.
음울한 이 시기를 넘기면 모두가 기다리는 진달래 계절이 옵니다. 나의 고향에서는 4월 5일 식목일을 기점으로 ‘만산이 홍록이라’ 온 산이 진달래로 붉게 물듭니다. 1980년대 진달래를 북한의 국화라 하여 학원가에서 ‘진달래 축제’를 못하게 하기도 했지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 흠뻑 베여있는 진달래인데 이게 왜 북한만의 꽃이란 말인가요? 정말 아쉽고 의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달래는 주린 배를 채워주었지요. 산에 올라 진달래를 싫건 따 먹으면 입술이 검어죽죽 해집니다. 그러니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려주는’ 연애시가 아니라 한 철의 보충 음식이었습니다. 요즘 다큐에서 높은 가지에 앉은 원숭이가 새순을 맛있게 따 먹는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진달래를 따먹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조금 지나면 철쭉이 피는데 우리는 먹을 수 있는 진달래를 참꽃, 못 먹는 철쭉을 개참꽃이라 구분했습니다. 개참꽃을 먹으면 꽃잎이 목구멍에 붙어 죽는다고 했지요. 그래서 철쭉이 ‘나의 색깔이 참꽃보다 이쁜데 한번 따 먹어 봐라’ 뽐내고 유혹하듯 더 진하고 황홀한가요? 조금 나이 든 아이들은 자기 또래 여자애들을 보고 ‘연달래’, ‘진달래’, ‘홍달래’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여름철 도랑에서 등물 치는 여자애의 젖꼭지가 연한 색인 연달래에서 진달래, 홍달래로 바뀐단 말입니다.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얼굴이 벌긋케 붉은 큰 여자애가 죽을힘을 다해 한 사내애를 잡으러 뒤쫓아 가는 걸 보았는데, ‘홍달래’라고 놀려서 그랬다더군요. (이런 글 써도 되나?)
우리집 정원에는 살구, 매화, 대추, 앵두, 감, 뽈통/뽈똥, 석류, 계피, 치자 등등...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약재로 심어둔 것이죠.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이 중 먹을 수 있는 감꽃만 기억 나군요. 감꽃은 사실 너무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잎에 가려 보이지 않지요. 그러나 흰색 우유 빛의 싱싱한 새 꽃도 좋고 시들어 갈색이 된 꽃도 맛있습니다. 요즘은 기온이 올라 서울에도 감이 자라는데 길을 가면서 감나무 속을 유심히 살펴보곤 합니다. 아직은 감꽃 철은 아닙니다. 뽈통은 구글에 나와 있네요. 앵두보다 맛있습니다. 몇 년 전 동네 아파트 정원에서 보고 반가웠는데 어느새 없어졌더군요. 그리곤 정원을 풍요롭게 하는 수선화와 작약이 싹을 올리고 모란이 뒤이어 봉우리를 만듭니다. 모란과 작약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모란은 다년생 나무이구요, 작약은 수선화와 같이 매년 땅속에 있는 구근에서 싹을 피웁니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풍요로운 모란을 찾아 덕수궁, 이대정원, 조계사, 종각 등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란이 필 시기 해외여행 중이었더군요. 돌아와서 찾아보았으나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영랑의 생가가 있는 전남 강진으로 내려가야 하나... 아쉬워하니 백연수 이노 사장님이 ‘내년에 보면 되지 뭘 그래’ 하시더군요. 시절이 하수상한데... 두보(杜甫)가 ‘만흥’(漫興)에서 읊은 대로 ‘점노봉춘 능기회(漸老逢春 能幾回)’라 ... 늙어가는 이 몸 몇 번 더 봄을 맞을 것인가 했더니 젊은 사람이 별 소리 다한다고 핀잔을 주네요.
정년을 5년 정도 앞두고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대 정문으로 들어가 오른쪽 길을 따라 당시 법정관으로 가는 길에 목련이 아름답습니다. 4월 9일 집 아이 결혼식을 중강당에서 했는데 그때가 한창이었지요. 본관 앞 양지바른 곳에선 일찍 피지요. 5년이 지나 정년퇴임하고 다시 이 시기에 맞추어 목련길을 걸어 볼 기회가 없더군요. 지난 2주 간 문창재 형, 임철순 주필 등 꽃 사진을 종종 올리는 분들에게 좋은 모란꽃 사진을 올려달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별로입니다. 차라리 수년 전 지하철 안국역에서 전시한 모란꽃 사진이 좋습니다.(사진 1)
오늘(5/1)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어 점심 먹고 조계사로 갔습니다. 집사람이 따라 붙네요. 조계사 입구의 붉은 모란은 한두 개 보이고 흰 모란도 거의 시들어 가네요. 모란은 전지를 해서 낮게 만들어야 꽃이 탐스러운데 모두 훌쩍 커버려 꽃들이 탐스럽게 모이지 않군요.(사진 2, 작년에 찍은 흰 모란) 집사람이 처음 신혼살림을 차린 옥인아파트로 가자고 하군요. 작년 가을에 가보았는데 아파트는 다 흘리고 본래 이름인 수성동 계곡으로 복원되어 있더군요. 20대에 쉽게 다녔던 약간 오르막길이 70대가 되니 오르기가 힘들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마치 나의 노고에 보답을 하듯이 계곡 직전 길가에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고 그 맞은편에 모란이 탐스럽게 피어 있네요. 며칠을 두고 여러 친구들에게 못살게 굴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하나 건졌습니다.(사진 3) 서울의 모란은 4월 15일 경이 절정이라고 기억해 두어야겠습니다.
왜 모란을 몇 년을 두고 찾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살던 집에 탐스럽게 핀 모란과 작약이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이 보다는 영랑의 애잔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란 시가 요즘 부쩍 연상되었기 때문인가 합니다. 모란에는 향기가 없다죠? <삼국사기> 선덕여왕 편에는 당에서 모란꽃 그림과 씨를 보내왔는데 (여왕은 공주였을 때) 그림을 보고 꽃은 빼어나지만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예견을 하지요. 당시 당의 수도인 낙양은 모란이 유명한데, 그래서 지금도 모락 축제가 열린다는데, 그 씨를 보낸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씨를 심어보니 과연 꽃은 탐스러운데 향기가 없더라....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은 향기가 없다는 뜻이라면서 선덕여왕의 예지력에 감탄했다고 하지요. 덕만(德曼, 선덕왕의 이름)이 총명하다는 뜻 뿐 일까요? ‘여자가 이쁘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른다’는 구절이 뒤이어 나오고 수년이 지나 뒤에 당에서 여자가 나라를 다스리기 어려운니 신라에 총독을 보내려는 의도도 비치는데, 아마도 자기의 치세에 닥칠 어려움을 예견한 건 아닐까요?
수년을 두고 진짜 느껴보고 싶은 봄이 있습니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그리고 교향곡 6번 ‘전원’을 아우르는 봄의 기분 말입니다. ‘귀거래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래지만 귀향은 앞부분이고 후반부는 봄을 맞아 농사짓고 한가하게 지내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시입니다. ‘기자이심위형역(旣自以心爲形役)이니 해추창이독비(奚惆悵而獨悲)라, 스스로 마음이 몸의 부림을 받았거니, 즉 물욕과 벼슬을 찾으려는 육신의 욕망에 마음이 못 이겨 벼슬길에 나섰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라는 첫 문장부터 압권입니다. 그리곤 배는 물결에 흔들리고 가벼운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면서 고향으로 향합니다. 동양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전에 서서 옷자락 날리는 그림이 바로 이 구절일 겁니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잡초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방으로 들어서니 항아리 가득한 술이 나를 반기는구나. 솔 독을 껴안고 혼자 마시며 남쪽 창에 기대어 호기를 부려봅니다. 다음 날부터 지팡이 짚고 나가 쉬기도 하고 해가 어스름이 넘어가면 홀로 서성이며 소나무를 쓰다듬기도 하죠. 이것이 전반부입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귀거래혜(歸去來兮)여, 돌아 왔구나’를 외치 봅니다. 이젠 봄을 맞아 혼자만이 누릴 새 삶의 기쁨을 고대하죠. ‘청식교이절유(請息交以絶遊)로다, 교류도 쉬고 노는 것도 그만하자’고 다짐하지요. 세상과 나는 어긋나기만 하니, 즉 내가 세상에 맞추어 살아가지 못하니, 왜 다시 수레에 올라 벼슬길에 나서겠느냐, 이웃, 친척과 기쁜 이야기 나누고 노래와 가야금 타고, 글 쓰며 시름을 삭이리라 합니다. 그런데 농부가 이제 봄이 왔으니 밭에 나가 일해야 할 때라고 일러 주군요. 수레도 몰고 배도 저어 깊은 골짜기도 가고 험한 산길도 오릅니다. 이마에 땀을 닦고 주변을 돌아보니 ‘목흔흔이향영(木欣欣以向榮)이라, 물오른 나무들은 쭉쭉 뻗어 가며 꽃을 피우려하며, 천연연이시류(泉涓涓而始流)라, 샘에서는 물은 솟아올라 졸졸 흘러내리면서’ 생명이 약동함을 보여 주는군요. 모두가 철을 만나 신명이 나는데, 갑자기 나의 삶은 점점 저물어 감을 느낍니다.
자, 이같은 분위기를 맞추어 줄 음악이 무엇이 있을까요? 봄에 관한 음악은 수없이 많습니다. 봄의 꿈, 봄의 노래, 고향의 봄, 봄날은 간다 등등. 이 중 2개만 고릅니다. 먼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입니다. 종다리가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반갑다 웃는데 그 뒤에 또 한 마리가 나타나 암수 한 쌍이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 위로 즐겁게 날며 봄기운을 만끽하네요. 이백(李白)은 ‘촉도난(蜀道難)’에서는 ‘웅비자종요림간(雄飛雌從繞林間)’이라, 삼림에서 수놈을 날아가면 암놈이 따라간다‘고 했지요. 이건 남자가 앞장서고 여자가 뒤따르는 동양적, 유교적 표현이죠. 사실은 암놈이 날면 수놈이 따라 가며 구애하는 게 새들의 세계입니다. ‘봄’소나타 1악장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마치 종달새 한 쌍이 서로 꼬리를 물고 하늘을 빙빙 날아다니며 서로 ‘나 잡아 봐라’하는 모습 같습니다.
‘귀거래사’가 맞는 봄은 ‘전원’ 교향곡이 잘 보여주지 않는가요?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다르게 보이고 손님이 없으니 문은 늘 닫아 두고, 지팡이 짚고 가다가 쉬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 들어서 먼 하늘을 보면 구름은 무심히 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지친 새들은 집으로 돌아 오구나. 그리곤 농사일에 나서죠. ‘전원’ 교향곡은 ‘표제 음악’입니다. ‘전원’(Pastoral)이라는 제목이 있고 각 악장마다 베토벤 자신이 제목을 붙이지요. 1악장: 시골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즐거운 기분, 2악장: 시냇가의 풍경, 3악장: 시골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 폭풍우, 5악장: 목동의 노래, 폭풍이 지나간 뒤의 기쁨과 감사입니다. 5악장이지만 3-5 악장은 계속 연주됩니다. 3-4악장이 쉬지 않고 연주되는 교향곡은 많습니다. 나는 특히 1악장과 2악장이 ‘귀거래사’의 전반부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황홀감을 느끼며 듣곤 합니다. 물론 ‘늙은’ 지질인 중부 유럽 빈의 숲속에서 ‘졸졸’ 흐르는 전원의 얕은 개울은 땅덩어리는 작아도 산이 높고 계곡이 깊은 우리의 개천과는 유사한 게 별로 없지요. 그러나 봄을 맞는 마음이란 ‘현상적’인 차이를 떠나 감성은 비슷할 겁니다. 더 큰 차이라면 베토벤은 폭풍우가 지나간 뒤 다시 기쁜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귀거래사’에서는 ‘언덕에 올라가서 휘파람 길게 불고,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보는 즐거움’을 뒤로 하면서, 이제는 ‘자연을 따르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무얼 그리 서두르느냐.’고 도교적인 ‘자연으로 귀의’하는 것으로 매듭짓습니다. 그만큼 처연하면서 시적 감흥을 준다고 하겠지요.(2020.5.4.)